〈 49화 〉 48화. 옐로우 게이트.(18)
* * *
.......하, 한강진 이사장님...?
한시아의 할아버지인 한강진이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안전지역 하르멜로 무사히 이동을 완료했습니다.】
【정령지기 올데스 하라마만타가 소환됩니다.】
듣고 싶지 않은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스템의 알림음을 들은 D 구역의 훈련생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닥에서 천천히 머리부터 솟구쳐 오르는 정령지기 올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히, 히이익...!!"
"으으...으...또, 또다시..."
D 구역에 있던 훈련생들에게 첫 등장과 동시에 엄청난 공포감으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은 올데스는 트라우마와 같은 존재였다.
또르르르.
내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막 안전지역으로 이동한 나와 D 구역에 있던 훈련생들의 주변으로는 레드문, 블루문, 골드문 아카데미의 교수진과 2, 3학년 훈련생들이 전부 모인 상태.
그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올데스를 만나지 않은 건가? 올데스가 어떤 녀석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야.
모르는 게 확실했다.
이 미친 살인 광대 새끼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면, 저렇게 태연하게 "오오…. 이게 정령지기야?"라는 소리를 내뱉을 수 없을 테니까.
킬킬킬킬...
올데스 특유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아아안녕하십니까아...여, 여여여러러부우운?
올데스의 인사에 선뜻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조금 전만 해도 웅성거리며 올데스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드러난 올데스의 기괴한 모습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서 서 있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올데스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새, 생긴 게 완전 광...."
블루문의 무리 속에서 금기어가 나오려는 조짐이 보였고, 보통의 미소를 짓고 있던 올데스의 입가가 더욱 길게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자 D 구역의 훈련생들이 단체로 고개를 돌리며 블루문의 무리를 바라보며 외친다.
"아, 안 돼!!!!"
"머, 멈춰!!!"
"배, 배고파!!! 씨발!!!!"
그 금기어를 재빠르게 잘라내며, 아무 말이나 내뱉는 D 구역의 훈련생들.
"아, 안녕하십니까. 올데스 하라마만타님...."
마무리로 이진하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올데스의 풀네임이 흘러나온다.
"오, 올데스 하라마만타...?"
"....어째,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돌발적인 신입생들의 수상한 행동에 교수진과 선배 훈련생들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잘 잡아내는 것 같았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신입생들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
그러자 대표로 이진하가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모두를 바라보며 말한다.
"하, 하하...여, 여기 계신 정령지기님의 이름은 올데스 하라마만타. 님 입니다. 굉장히 강하시고...자신의 이름을 제외한 무언가의 단어로 자신을 지칭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시니까……. 아시죠...?"
꿀꺽.
말을 끝낸 뒤, 크게 목울대를 움직이며 침을 삼키는 이진하였다.
이진하는 말을 끝내고 나서도 불안하지, 계속해서 올데스의 눈치를 살폈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파악을 완료한다.
신입생들의 발 빠른 행동 덕에 무의미한 인명사고를 막아낼 수 있었다.
킬킬킬...
그런 모습을 아주 재밌다는 듯이 가벼운 박수를 치며 바라보는 올데스.
자, 자자자자잘 부탁드립니다아아아? 킬킬킬킬...
그때.
골드문의 교수님 중 한 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올데스에게 말을 걸어온다.
"정령지기...아니, 올데스 하라마만타님. 갑작스레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리부리한 눈매와는 다르게 매우 공손한 어조로 올데스에게 물음을 던지는 그였다.
아. 차차차차차참!!! 이, 이이이거 제가 실수를....킬킬.... 그 이이이이유는 바로 저들 때문입니다아아아?
올데스가 D 구역의 훈련생들을 바라본다.
덜컹.
신입생들은 가슴속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뱀과 같은 혀로 톱날 같은 이빨을 쓸고 있는 모습이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그 무언가의 모습 같았다.
신입생들의 리더를 맡은 이진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저...무슨 이유로....저희들을...."
킬킬킬킬.....그, 그그그그그건 바로!!!! 메, 메메메메리!!!! 메리가 서, 서서서설명을 해줄거랍니다아아?
".....메, 메리요...? 그게 도대체 누구....."
이진하가 살며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하던 찰나.
스스스스슷.
작은 소리와 함께 올데스와 마찬가지로 바닥에서 천천히 솟구쳐 모습을 드러내는 누군가가 보였다.
이내 그 누군가의 전신이 드러나고 스스슷 거리는 소리가 멈추자.
.....부르셨습니까, 올데스 하라마만타님.
아주 고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메, 메메메메리!!! 사, 사사사상당히 오랜만이군요오오오?
어린아이처럼 박수를 치며 꺄르르 웃어대는 올데스.
메리라 불린 여성은 하얀색의 토끼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가면으로 인해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떠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메리의 특징이 있다면, 목소리에 아무런 감정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네. 오랜만입니다. 올데스 하라마만타님. 나머지는 제가 잘 설명하겠습니다.
마치 기계가 말을 하는듯한 무감정한 목소리와 어조.
메리는 올데스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 한쪽 무릎을 꿇는다.
올데스는 그런 메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시선을 돌려 D 구역에 머물던 나와 훈련생들을 바라본다.
새, 새새새새생각보다 더 많이 사, 사사사살아남으셨군요오오오?
씨익 미소를 짓는 올데스.
저, 저저저저는 기, 기기기회를 주는거랍니다아아아? 사, 사사사살아남을 기회를.....킬킬킬...
올데스는 정말로 재밌다는 듯이 양손으로 그 쭈욱 찢어진 입술을 가리는 시늉을 하더니, 점점 바닥 속으로 가라앉는다.
......기회를....살아남을 기회를 주는 거라고...?
올데스가 마지막에 뱉어냈던 의미심장한 말이 왠지 모르게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두 눈이 바닥 속으로 잠기기 전까지, 계속해서 재밌어 죽겠다는 눈빛으로 훈련생들을 바라보던 올데스가 완전히 지면 속으로 사라진다.
하, 하아.....
휴우.....
시야에서 올데스가 사라지자, 억눌러 왔던 무언가가 한숨으로 뿜어져 나오는 훈련생들이다.
다행이었다.
올데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목이 날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D 구역의 훈련생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목 언저리 근처를 매만지던 훈련생들에게 무미건조한 메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으시겠지만, 제 이름은 메리. 이 안전지역 하르멜의 관리인입니다. 이 안전지역에선 여러분들을 제외한 그 어떤 누구도 여러분들에게 해를 가할 수 없으며, 이 게이트 내부에서 걸린 저주나, 그 어떠한 제약도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효력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안전을 보장하는 지역입니다.
.....관리인? 이 녀석이…? 그나저나, 그 어떠한 제약이라면 올데스의 시험도 포함되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이곳은 안전지역이니까.
하얀색의 토끼가 면을 쓰고서, 펑퍼짐한 하얀색의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메리는 말을 내뱉고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현재 A 구역 생존자 256명, B 구역 생존자 252명, C 구역 생존자 267명, D 구역 생존자 270명. 총인원 1,045명이 안전지역에 도달했음을 확인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딱 들어맞는 박자로 인원파악부터 하는 메리였다.
마지막 D 구역의 생존자를 알리는 숫자가 들려오자, 각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이미, 세 아카데미의 신입생들끼리 낙오가 됐다는 가정을 두고 있었던 세 아카데미였다.
한 아카데미의 신입생들의 숫자는 110~ 120명 이상이었는데, 세 아카데미의 신입생들을 모두 합쳐봐야 270명이라는 말은 많은 훈련생들이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기적이지만, 세 아카데미의 교수진들은 제발 자신들의 아카데미 훈련생들이 조금이라도 덜 피해를 봤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이 미궁은 4개의 구역이 존재합니다. 동쪽은 A 구역, 서쪽은 B 구역, 남쪽은 C 구역, 북쪽은 D 구역으로 불립니다. 각 구역마다 모두 등장하는 몬스터가 다르며 난이도 또한 다릅니다.
메리의 말에 레드문 아카데미의 한 2학년 훈련생이 손을 번쩍 들고서 질문을 한다.
"그, 그럼...난이도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지..."
고개만 살짝 돌려 그 훈련생을 바라보는 메리.
.....A 구역이 하(下), B 구역이 중(中), C 구역이 중상(中上), D 구역이 상(上)의 난이도입니다.
메리의 대답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그 훈련생은 재빠르게 입으로 손을 가려 헛기침을 한 뒤, 슬며시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가장 낮은 난이도의 구역에 속한 그였으니,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가장 등급이 낮은 난이도와 함께, 든든한 교수님들의 비호를 받고 있었기에 사실상 교수님들이 먼저 전멸하기 전까지는 생존이 보장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교수님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라면, 차라리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반면, 메리의 말에 안 그래도 어두웠던 얼굴이 점점 더 시꺼멓게 그늘이 지는 D 구역의 훈련생들.
자신들을 지켜줄 교수님들도 없고, 경험이 많은 선배들 또한 없이, 오로지 신입생들끼리만 낙오되어 뭉쳐있는 구역.
"하...씨발 좆같네....."
"왜...왜...하필 우리가...씨발...!!"
거친 욕설을 내뱉는 신입생들이다.
나 역시, 암울한 그 사실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서 메리를 바라본다.
".......저기 관리인님...아니, 메리님?"
무거운 내 목소리에 메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말씀하세요.
"....저는 D 구역에서 이곳으로 온 사이비라고하는데....혹시, 제가 북쪽…. 그러니까 D 구역이 아닌, 다른 구역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요?"
꿀꺽.
질문을 던지고서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나의 질문에 잠시동안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보던 그녀는...
.......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내가 물어놓고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였다.
그런데....가능하다니.... 만약, 메리의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가장 난이도가 높은 D 구역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다.
.......무조건, A 구역으로 간다. 그리고서 교수님들과 선배들의 보호를 받는 것도…….
머릿속에서 생존 회로를 돌리며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있던 그 순간.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그전에... 올데스 하라마만타님이 저를 이곳에 불러낸 이유를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조건이요...? 이유라니...그게 무슨..."
무언가 싸한 느낌이 내 몸을 엄습한다.
....느낌이 안 좋아. 조건이라니.....
그 순간.
【띠링!】
【안전지역 하르멜의 관리인 메리가 특별한 생존방법을 제안합니다.】
【라이프 게임】
【설명: 가장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D 구역에 선발된 훈련생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 훈련생들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이벤트.
D 구역의 생존 인원들은 A 구역에 50명, B 구역에 55명, C 구역에 65명이 편입될 수 있다.
편입된 생존 인원들은 편입된 구역의 생존 인원으로서, 새로운 생존의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제일 밑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려는 인원들을 위한 이벤트이니, D 구역을 제외한 구역의 생존 인원들은 다른 구역으로 이동이 불가능하다.
다만, D 구역에서 탐색을 진행할 인원은 최소 100명이 필요하다.
만약, D 구역에서 탐색을 진행할 최소 인원인 100명이 안 되었을 경우, 1,045명의 모든 생존 인원들은 머리가 터지며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D 구역의 생존 인원들이 다른 구역으로의 이동을 희망하는 경우, 최소 1,045명의 절반인 523명의 생존 인원들 앞에서 오른손을 든 뒤, "재설정"이라고 외치면 된다.
(희망자의 새로운 구역 설정은 무작위로 정해진다.)】
기나긴 기계음 목소리와 반투명한 창이 눈앞에 떠올랐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에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긴장감과 어색한 기류가 공존하며 떠다니기 시작했다.
.....미, 미친.....지금 이딴 걸....특별한 생존방법이라고….
좆까는 소리였다.
이 라이프 게임은 그 고생을 하며 생존한 D 구역의 생존자들을 이간질해 무너뜨리려는 개수작이었다.
그때.
저, 저저저저는 기, 기기기회를 주는거랍니다아아아? 사, 사사사살아남을 기회를.....킬킬킬...
모습을 감추기 전,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던 올데스가 문득 떠올랐다.
빠드드득.
입안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고, 꽉 말아진 두 주먹에서 축축한 땀이 느껴졌다.
........미친 광대 새끼....뭐? 살아남을 기회? 이 개새끼가...
170명의 훈련생이 다른 구역으로 이동해 좀 더 안정적인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그럼 남겨진 100명의 훈련생들은....?
개죽음이나 당하라는 말이었다.
.......조건이 있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싸하다 했어.
"흠흠...!! 커흠!!"
".......흐으음...흠!!"
주변에서 훈련생들의 어색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훈련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고, 오른손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이 새끼들..... 실화냐..? 진짜?
며칠 동안 죽음을 정면에서 받아치며 싸워온 전우들이 한순간에 등 뒤에 칼을 숨기며 다가오는 적군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이었다.
........아...씨발....네들이 자꾸 그러면...그땐 나도 진짜 깡패가 되는 거야...이 새끼들아.
나는 왼손으로 한시아의 오른손을 붙잡았고, 나의 오른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