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 47화. 옐로우 게이트.(17)
* * *
속성화를 사용한 라이칸들은 강하고 뛰어났으며, 용맹하고 잔인했다.
평소 절제하던 야생성이 해방되자, 들끓는 호승심과 살심에 그대로 노출이 된 라이칸들에게 자비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원초적인 전투를 기반으로 하는 라이칸들의 싸움방식이라고 볼 수 없는 전투였다.
마치, 마법 사용의 금제가 풀린 3조가 강력한 지원폭격이라도 하는 것만 같이 온갖 속성들이 자신의 강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주변에 적들을 무참하게 태워죽이거나, 전기로 지져버리는 라이칸들과 허공을 달리며 몬스터들의 빈틈을 놓치지 않는 라이칸.
새하얀 수증기를 피워올리며 닥치는 대로 살상을 하고 있는 라이칸과 아무런 대책도 없이 몬스터들을 향해 몸을 던져 어그로를 끄는 라이칸.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두가 강한 임팩트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 역시 오소리가 전투에 끼어든 그 순간부터 그 뒤를 이어 열심히 몬스터들을 죽이고 있는 상황.
세 개의 꼬리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적재적소에 몬스터들의 공격을 끊거나, 빈틈을 노려 피떡으로 만든다.
절대로 앞으로 나서서 오버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미 내가 없어도 충분히 전투가 아주 유리한 상황이었고, 야생성이 개방된 라이칸들의 옆에 서서 같이 전투를 한다는 게 여간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위험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여 몬스터들의 공격 흐름을 끊는 것에 몰두했다.
표지안, 그녀는 괴물이었다.
혼자서 지금 몇 마리의 몬스터를 죽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녀가 죽인 몬스터의 숫자를 세던 난 그 숫자가 50마리 이상이 넘어가자, 숫자를 세는 걸 그만뒀다.
그녀가 몬스터들을 지나칠 때마다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고, 뎅강 썰린 고깃덩어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밑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하드캐리.
나 혼자서 캐리 한다를 직접 실천하고 있는 표지안이다.
그렇게 얼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화염을 뒤집어쓴 라이칸 한 마리가 마지막으로 남은 몬스터의 목을 거칠게 물어뜯고 고개를 이리저리 털자, 그 치열했던 무사용 마법의 전투가 끝이 났다.
주변은 온통 그을려있었고, 잘게 썰려나간 몬스터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있었다.
"정확히 10분 41초 걸렸네. 모두 수고했다. 일단 속성화부터 종료하도록 해!"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진하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라이칸들이 아쉽다는 듯, 콧김을 뿜으며 거친 숨소리를 내었지만, 곧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는 하나둘씩 속성화를 종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았던, 3조와 이진하가 재빠르게 움직이며 사상자들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부상자의 치료와 함께 몬스터들의 시체를 정리했고, 다시 한 번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저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척후조들과 합류를 하기 위해 이동을 한다.
결국, 이번에도 사망자가 15명이 나왔다.
첫 전투에서 27명을 잃었던 것에 비하면, 조금 나은 수준이었지만, 중요한 건 결국 또다시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 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 전투였으니.
올데스의 시험이 아니었더라면, 더 많은 훈련생이 살아남았을까 생각해보는 나였다.
현재 인원 270명.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청춘들이 무참히 꺾여 생을 마감한 인원을 제외하고 남은 훈련생들의 숫자.
결국, 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도태된다.
모든 아카데미들의 공통적인 교육 방침.
아니....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녀석이 강한 것이지.
강자라고 해서 무조건 살아남을 순 없다.
내 생각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는 녀석이 강한 놈. 이였다.
여전히 1조에 속해, 한시아와 얼굴을 마주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난 걱정하는 한시아를 위해 척후조와 합류하는 시간 동안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저벅저벅.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던 그때.
"정지!!"
이진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한시아와의 대화를 잠깐 멈춘 난 앞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는 떨리는 눈으로 앞의 상황을 눈에 담았다.
40마리는 족히 되어 보이는듯한 몬스터들의 시체, 그 시체들로 작은 언덕을 만들어 그 위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녀석과 몇몇 훈련생들이 보였다.
짙은 갈색 머리에, 초콜릿 피부, 그리고 울그락불그락한 튼튼한 근육까지 녀석을 보고 떠오른 이미지는 상남자 그 자체였다.
"수고했다. 정희철."
거만하게 앉아있는 녀석의 이름이 정희철인듯했다.
"...아. 씨발..좀 빨리빨리 좀 다녀라. 어?"
입버릇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정희철은 몬스터들의 시체에서 훌쩍 뛰어내린 뒤, 괜히 오른발로 시체를 툭 걷어차고서 주머니에 손을 깊게 푹 찔러넣었다.
녀석의 가슴팍을 보니, 골드문의 훈련생을 상징하는 황금색 달이 새겨져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깊게 넣고는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표지안에게 다가가는 녀석.
"왜 이렇게 늦게 와. 지안아. 응?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
말을 하며 표지안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녀석.
촤아악!
그전에 표지안의 오른손이 움직이며 녀석의 손을 간단하게 쳐낸다.
"....건들면 뒤진다?"
살벌한 표정과 함께 기세를 끌어올리는 표지안.
그러자 정희철이 히죽히죽 웃으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난다.
"차암. 너무 한다~ 그치? 앞에서 좆 빠지게 몬스터들을 저지시켜줬더니, 어깨동무 한 번에 사람을 죽인다는 협박이나 하고 말이야. 안 그러냐 애들아?"
딱 봐도 나 양아치요!! 하는 인상을 가진 뒤쪽에 있는 녀석들을 돌아보며 이죽대는 정희철.
끼리끼리 논다고, 킥킥 거리며 정희철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녀석들이었다.
.....참. 이 세상 어딜 가도 저런 양아치 새끼들은 꼭 있구나.
괜히, 이병찬이 생각나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나였다.
그때.
험악한 분위기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이진하가 박수를 한 번 친 뒤, 그대로 이동 명령을 내렸다.
"서로 피곤할 테니, 이쯤 하자고. 자, 계속 이동한다."
이진하의 말에 정희철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지만, 이내 혀를 한 번 차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1조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1조에 합류한 정희철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골드문의 서열 1위는 표지안이 아니었나? 저 녀석에 태도를 보면 표지안을 무서워하기는커녕, 갖고 노는 것 같은데?
그리고 또 이상한 건 표지안의 태도였다.
만약, 내가 정희철과 같은 행동을 그녀에게 했더라면, 그녀는 나의 불알을 까버리기 위해 전력을 다할게 뻔했다.
....아, 모르겠다. 누가 누굴 신경 써.
그대로 그 미묘한 상황에 대해 관심을 접는다.
이 옐로우 게이트에 휘말린 것 만으로 아주 크나큰 불행이었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계속해서 이루어진 탐색에서 더이상 몬스터와의 충돌은 없었다.
결국.
"오늘은 이곳에서 밤을 보낸다. 모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아줘. 그리고 불침번들은 자기 시간대 절대 잊지 말고."
어제 불침번을 섰으니, 당분간은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선두에서 걷던 라이칸들이 모두 앓는 소리를 내며 흩어진다.
나 또한,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한시아에게 다가갔고, 몬스터들의 고기에 쌓여있는 독을 중화시켜 불에 말린 육포를 뜯어 먹고는 그대로 한시아를 품에 안고서 잠이 들었다.
3일이 흘렀다.
이놈의 미로인지, 미궁인지 모를 이 길이 어찌나 긴지, 도저히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3일이란 시간 동안, 많은 전투가 발생했지만, 그전에 겪었던 수백 대 수백의 대규모 전투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난이도 조절을 위함인지, 아니면 그냥 몬스터의 숫자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인지 우리를 향해 공격해오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많아 봐야 50마리 정도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던가.
이제 제법 이 옐로우 게이트에서의 생활에 적응해나가, 몬스터들을 봐도 처음과 같이 두려움에 몸을 떠는 훈련생은 없었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적어진 이유도 있었지만, 거의 뭐, 비슷한 짐승형의 몬스터들을 계속해서 상대하다 보니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전투 루틴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3조는 아직 좀 더 적응 기간이나 자신감이 필요해 보였지만.
확실한 건, 라이칸들이 포진되어있는 1조와 2조는 이 무료한 탐색 시간보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몬스터와의 전투를 더욱 선호하게 됐다는 것이다.
【대장.!!】
이제는 육성으로 말하는 것이 귀찮은지, 항상 【텔레파시】를 통해 말을 걸어오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오소리였다.
별동대가 해체 된 지도 며칠이 흘렀건만, 여전히 나를 대장이라 부르는 녀석.
【왜?】
그리고 그런 호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
【부탁이 있어.】
그럴 줄 알았다.
왠지 요 며칠 동안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는 게 빠른 시일 내로 무언가를 말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 돼.】
【왜, 왜에에...아직 드, 듣지도 않았잖아….】
【뭔데? 무리한 부탁은 절대 들어줄 생각 없으니까, 잘 생각하고 말해.】
그러자 금세 환한 표정이 되어 웃음을 짓는 녀석.
【다, 다른 게 아니라...앞으로 하루에 한 번씩 나에게 대장의 독을 주입해줬으면 해.】
내 귀를 의심했다.
.....미친놈 아냐 이거...
【너 변태야? 무슨 독을 하루에 한 번 주입해달라고….】
【그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에서 【면역】이라고 있는데, 이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독에 중독되어야 하거든. 그래야 숙련도가 올라가서 점점 더 강한 독에도 내성을 가질 수 있어서….】
언젠가 들어본 것 같았다.
예전 세상에서 봤던 다큐멘터리 중에서 벌꿀 오소리에 대해 다루는 영상이 있었는데, 코브라의 극독에 중독되어도 잠깐 잠을 잤다가 일어나면 독이 중화되었던 그 유명한 짤이 생각났다.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괜찮겠어? 지금 이곳은 옐로우 게이트 내부야. 혹시라도 독으로 인해, 뭔가 신체에 문제가 생긴다면….】
【괜찮아!! 방법을 미리 생각해뒀어. 지금처럼 탐색이 이루어질 때 말고, 자기 전에...그때 한방만 놔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녀석이었다.
【......그래. 대신, 네가 찾아와.】
【헤헤헤. 그럼 당연하지. 고마워, 대장.】
히죽히죽 웃으며 고개를 살랑살랑 흔드는 오소리.
.....이상한 놈이네. 뭐, 내가 저 녀석의 입장이었더라면……. 나도 똑같은 부탁을 했겠지만.
"선두 대기!!!"
오소리를 쳐다보며 피식 웃음을 짓던 순간, 이진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를 이어 들려오는 훈련생들의 웅성거림.
웅성웅성.
......무슨 일이지? 몬스터라도 나타났나? 아니야...몬스터들이 나타났다면, 라이칸 녀석들이 좋다고 뛰어나갔겠지.
"저, 저게 뭐야?"
"홀리.....쒸에에엣!!! 실화냐....."
"아, 안전지역 하르멜....?"
주변에서 중얼거리는 1조의 목소리에 시선을 정면으로 던졌다.
그러자 내 눈에는 바닥에 커다란 글씨로 【안전지역 하르멜】이라고 써진 글귀가 보였고, 그 글귀 위에 커다란 화살표가 보였다.
그리고 그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에 떡하니 자리 잡은 하얀 빛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원.
........저게 뭐지?
이런 나의 의아함을 풀어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 저거 포탈존 아니야? 생김새가 딱 들어맞는데……."
....포탈존?
이내 포탈존이라 추정되는 거대한 원을 바라보며 훈련생들에게서 많은 말이 쏟아져나왔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이진하가 결단을 내리고서 입을 연다.
"눈앞에 있는 건, 포탈존이라 추정된다. 마력의 흐름도 일정하고 문제가 될 만해 보이는 건 없다. 전원 포탈존으로 이동한다."
웅성웅성.
새로운 무언가는 항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훈련생들이 불안한지,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었지만, 곧 이진하가 제일 먼저 포탈존으로 발을 내디뎌 안으로 들어가자 천천히 훈련생들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이윽고, 모든 훈련생들이 하얀빛을 내는 거대한 원 안으로 들어오자.
【안전지역 하르멜로 이동하시겠습니까?】
기계음이 들려온다.
"이동한다."
굳건한 이진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거대한 빛이 모두를 감싼다.
파아아아앗...
빛이 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나의 시야가 새하얗게 물들었고, 그 찬란한 빛에 의해 제대로 눈을 뜨지 못했다.
킁킁.
그때.
나의 코끝으로 미로 속에서 풍기던 퀴퀴한 냄새가 아닌, 온갖 달콤하고 향기로운 맛있는 음식의 냄새가 느껴졌다.
꿀꺽.
절로 침이 넘어가며 목울대가 크게 일렁였고, 미로가 아닌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는 서둘러 눈을 뜬 바라본 정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훈련생들을 바라보며 매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유독 내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하, 한강진 이사장님...?
한시아의 할아버지인 한강진이 수많은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