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46화. 옐로우 게이트.(16)
* * *
속성화, 그것은 라이칸들의 전유물이자, 양날의 검이었다.
마법을 사용해 속성의 힘을 사용하는 수인들과 달리, 속성의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라이칸들이 유일한 방법으로 속성을 사용하는 기술.
자신의 특성에 맞는 속성의 힘을 사용하게 해주지만, 그 리스크가 제법 뼈아픈 라이칸들의 전유물인 속성화가 거론 된 것이다.
속성화를 사용하려면, 평소 절제하고 있는 야생성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
그렇게 완전한 짐승으로써의 요건이 갖춰지게 되면 자연의 기운을 더욱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데, 이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속성의 힘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려 신체에 속성의 힘이 깃들게 된다.
속성화를 사용한 라이칸과 사용하지 않은 라이칸의 전투력 차이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였다.
개인의 재능에 의해 조금씩은 차이가 있겠지만, 기초적인 군사훈련만을 받은 일반적인 병사가 순식간에 정교하고 날카로운 검술을 펼치는 기사로 탈바꿈을 하는 셈이었다.
이렇게만 보자면, 라이칸들이 매 전투에서 필수로 사용해야 할 기술 같았다.
하지만 속성화를 부르는 다른 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은 바로 버서커(Berserker).
속성화를 사용한 지 15분 정도가 지나면, 속성화를 사용한 라이칸들은 광포하고도 흉포한 야생에 의해 정신이 잠식당해 피아식별이 불가능한 상태로 들어서게 된다.
마치, 옛날이야기에서 나올법한 보름달이 뜨면 머리가 돌아버려 사람을 죽이는 늑대인간과 상당히 비슷한 성질의 그것이었다.
또한, 속성화를 종료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적이라고 인식한 존재들이 모두 죽어야 종료할 수 있었기에, 전투가 15분 이상을 넘어갔는데도 적들이 살아있다면, 말 그대로 광기에 잠식당한 짐승이 되어 주변에 있는 모두를 적으로 인식했기에 양날의 검이라고 불렸다.
속성화에 대한 고찰을 끝마친 난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능 몬스터들도 전부 처리했고, 머릿수도 우리가 좀 더 많단 말이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속성화를 사용한 라이칸들의 전투력이 얼마나 높아질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진하의 말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라이칸들의 속성화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난 찬성.】
【텔레파시】 채널에 참가한 네 명에게 나의 뜻을 말한다.
【....그, 그럼 나도 찬성...】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나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오소리.
여전히 무표정한 한설화였지만, 그녀 또한 거부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하아...
표지안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차피, 내가 반대해도 다수결이니, 뭐니 그딴 거 운운하면서 할 생각이잖아?】
【......맞아.】
【....하아..그래 좋아, 다 좋다. 이거야. 내 고유 능력인 【야생의 감】에 의하면, 저 몬스터들은 아마 속성화를 사용한 라이칸들에게 썰려 나갈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만약에 또 다른 몬스터들이 출현한다면 어쩔 건데? 그렇게 되면 15분을 넘기는 건 당연한....】
【그건, 걱정하지 마. 지금 이 전투 현장을 벗어난 척후조가 저 멀리 앞에서 정찰을 하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알려올 거야.】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척후조 녀석들이 알려올 땐 이미 늦어. 척후조 녀석들이 몬스터들의 전진을 막아줄 그것도 안 되는....】
【정희철과 몇몇 녀석을 척후조에 붙여뒀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 녀석들이라면 충분히 몬스터들의 전진을 막아줄 테니까.】
이진하의 말에 표지안이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작은 한숨과 함께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도, 수락의 의미가 담긴 제스처 같았다.
.......그나저나, 정희철? 녀석이 대체 누구길래, 저 사나운 암표범 같은 녀석이 입을 다무는 거지?
순간적으로 강한 호기심이 생겼으나, 언젠가 알게 되겠지란 생각에 금세 호기심을 탈탈 털어버렸다.
【자, 그럼 속성화에 대해서는 모두 찬성하는 거지?】
그 누구의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수긍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이진하의 입에서 속성화에 대한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앞열에서 열심히 전투를 벌이고 있던 라이칸들의 귀가 쫑긋 움직인다.
이진하의 명령을 들은 라이칸들에게서 당황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높아질 대로 높아진 사기에 취해 더욱 흉포한 포효를 내뱉으며 명령을 달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앞열에서 4조가 버프 마법을 사용할 때처럼 형형색색의 화려한 빛들이 터져 나왔고, 몬스터들의 커다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화르르르륵.
파지지지직.
전신을 주황색과 붉은색이 어우러진 화염으로 뒤덮고 있는 라이칸.
새파란 전기 스파크를 쉴 새 없이 튀기며 전신에서 전류가 흐르는 라이칸들이 빠른 속도로 몬스터들의 무리 속으로 뛰어든다.
화염을 뒤집어쓴 라이칸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들이 남겨놓은 새까만 발자국에서 시뻘건 화염이 솟구쳐 올라 화염의 장벽을 만들기 시작한다.
화르르륵.
촤아아악!!
라이칸이 휘두른 발톱에 의해 몬스터 한 마리가 그대로 양단이 되며 허공으로 핏물이 튄다.
치이이익.
그러자 순식간에 피가 타오르며 치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사라져버렸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는 라이칸들의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의 털들이 새까맣게 그을리며 타오르기 시작한다.
키에에에엑!!!
너구리의 모습을 한 라이칸이 온 사방으로 전기를 내뿜으며 빠르게 몬스터들의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자, 그 전기 스파크에 몸이 닿은 몬스터들의 몸이 덜덜덜 떨리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있는 적들에게 도트데미지를 줄 수 있는 그 모습은 마치 게임에서 나오는 장면과 비슷했다.
......태양불꽃갑옷? 세상에 태불갑이라니...
이차원으로 오기 전에 가끔씩 즐기던 게임의 아이템이 생각나는 나였다.
화염과 전기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라이칸들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적들을 불태우고 감전시켜 마비를 주거나 전기로 지져버리는 도트데미지를 주는 토템과 같았다.
또한, 속성화를 사용하기 전보다 훨씬 뛰어난 움직임을 보여주는 라이칸들이었다.
그때.
타타타탓.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흰색의 털을 가진 늑대 라이칸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더니, 발에 힘을 주고서 강하게 발을 박찼다.
팟!
아주 높게 뛰어오른 늑대 라이칸.
그 라이칸의 전신에는 연한 초록색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는데, 점프하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한 번 불어왔던 걸로 보아 바람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듯했다.
공중에 떠오른 늑대 라이칸이 지면에서 화염방사로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불태우는 라이칸을 향해 높게 점프해 달려드는 원숭이 몬스터를 공중에서 물어버렸다.
콰득.
라이칸의 날카로운 이빨이 정확히 원숭이의 목을 물었고, 살이 찢겨나가며 몬스터가 그대로 바닥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좋은 엄호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게, 아직 공중에 떠 있는 늑대 라이칸을 향해 뛰어오르며 톱날 같은 뿔을 찔러가는 사슴 한 마리가 보였다.
.위험했다.
공중에선 발을 디딜 무언가가 전혀 없었기에, 방향을 틀거나 무언가를 밟아 그 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도와줘야겠어.
일미를 움직이며 톱날 사슴을 후려치려던 찰나.
파아아앙!!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 떠 있던 늑대 라이칸이 뒷다리로 강하게 허공을 밟더니, 그대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는.
파아아앙!!
다시 한 번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허공을 또다시 밟아 방향을 튼 늑대 라이칸이 톱날 사슴의 목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콰드드득!!
" 크르르릉..!!!"
.....공기를...밟았다? 아니, 바람을 밟은 건가?
뭐가 됐든, 지면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허공을 뛰어다니며 움직이는 라이칸을 보고 있자니,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속성화를 사용한 라이칸들의 전투를 넋 놓고 바라보던 그 순간.
스스스스스슷....
안개의 소리가 있다면 이럴까,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리가 들려왔다.
.......표지안?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렸더니, 그곳에는 전신에서 새하얀 수증기를 뿜어대는 표지안이 보였다.
스스스슷.
표지안에게서 그 정체 모를 소리가 들려왔고, 안 그래도 탄탄하고 유려했던 그녀의 몸매가 좀 더 날카롭고 다부지게 변해갔다.
.....이 녀석도 속성화를 사용한 걸까? 표지안의 속성이.....물이였었지..
다른 라이칸들과 마찬가지로 신체 주변에 물이 떠다니거나, 뭔가 온몸이 물에 흠뻑 젖을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다르게 굉장히 특이한 모습이었다.
그 굉장히 특이한 모습에,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내 옆에서 멀뚱히 멀뚱히 서 있는 오소리를 불렀다.
【야. 저게 물속성을 가지고 있는 라이칸이 속성화를 사용한 모습이야?】
【응? 아, 맞아! 저게 물속성을 사용하는 라이칸의 모습이야.】
오소리의 말에 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도대체 어딜 봐서? 다른 속성의 라이칸들은 불이나 전기, 바람 같은 게 보이는데...저 녀석은 신체 주변에 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는데?】
나의 말에 오소리가 "후훗…." 하고 웃음을 짓더니, 허리에 양손을 올려놓으며 말한다.
【아, 그게 그 세 가지 속성은 나름 좀 티가 많이 나지. 속성이 겉에서 잘 보이니까. 하지만 물속성과 대지속성은 조금 특이하거든. 겉으로 잘 티가 안 나.】
【...으음? 물과 대지?】
【응. 아, 참! 참고로 나는 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
【그래? 그럼 설마...너도 지금 속성화를 사용한 거야?】
고개를 끄덕거리는 오소리.
【.....진짜 신기하네. 그래도 표지안은 저 수증기 같은 거라도 피어오르지. 너는 뭐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으음...일단 말보단 보는 게 더 낫긴 할 건데….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물속성을 사용하는 라이칸의 경우, 실제로 물을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어.】
【물을 다루는 경우가 없다니?】
【물속성 라이칸...그러니까, 표지안은 물이 아닌, 자신의 몸속에 흐르고 있는 피를 다루는 거야. 몸속의 혈액을 빠르게...아주 빠르게 순환시키고 움직임으로써, 순간적으로 강한 힘과 아주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있거든. 심장이 엔진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엔진에 피라는 에너지를 계속해서 빠르게 주입함으로써, 훨씬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게 되는 원리인 거지.】
.......호오....이건 꽤 신선한데?
쉽게 말해 간지가 났다.
자신의 피를 빠르게 순환시킴으로써, 뛰어난 신체능력을 가지게 된다니.
고개를 슬쩍 돌려 표지안을 바라본다.
이미, 그녀는 몬스터들에게 뛰어들어 손에 걸리는 족족 모든 걸 갈라버리며 피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마치, 양 떼 속에 던져놓은 늑대...아니, 몇 주는 굶주린 흑표범과 같았다.
살벌하게 몬스터들을 도륙 내고 있는 표지안에게서 시선을 거둔 후, 다시 오소리를 바라본다.
【그럼 너는? 너는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거야.】
【으으음....이건 말보단 보여주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를 거야. 네 꼬리로 나를 아주 강하게 후려쳐 줘.】
터무니없는 오소리의 요구에 나는 눈에 물음표를 띄우고서 녀석을 바라본다.
【야. 아무리 내가 라이칸이 아니라지만...무시하냐? 못 봤어? 이 꼬리로 몬스터들이 수박처럼 터져나가는 거?】
【잘 알고 있지. 그러니까, 후려쳐달라 이거야. 그게 이해가 가장 빠르거든.】
녀석의 눈을 바라본다.
오소리는 흔들림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이었고, 곧 그 말이 진심이란 걸 알게 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 악어 새끼들에게 물려도 괜찮았는데, 내 꼬리 공격쯤이야.】
【응응. 해 줘. 받아줄게.】
파스스스슷.
검은색의 아지랑이가 일미에게서 진하게 풍겨나온다.
【그럼...간다?】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그 순간.
휘이이이익!!!
일미가 바람을 가르며 거친 소리를 내었고.
콰아아아앙!!!!
일미와 오소리 녀석이 충돌한다.
일미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충격에 잠시 인상을 찌푸린 나는 일미에 직격당한 녀석의 몸에서 회색빛의 연기가 피어오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먼지? 심각한데? 언제 한 번 옷을 빨라고 말해야...
투두두둑..투둑.
무언가 흘러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닥을 향했다.
그곳에는 오소리가 입고 있던 제복과 상당한 비슷한 색깔의 돌덩어리가 떨어져 있었다.
....이게 무슨...?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올려 오소리를 쳐다본 난 놀란 표정이 되는 것도 잠시..
피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녀석이 공격을 받은 가슴 언저리는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나 있었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바위 갑옷 뭐 그런 거냐?
예전 세상에서 보았던 애니메이션 중에서 나X토에 나오는 짙은 다크서클을 가진 빨간 머리 소년이 생각나는 나였다.
【봤지? 대지 속성은...뭐, 이런 느낌이야. 이제 나도 가볼게. 속성화까지 사용했는데, 가만히 있기는 좀 그래서.】
히죽거리는 웃음을 지은 오소리가 말을 마치자, 그 귀여운 엉덩이를 씰룩이며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