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39화. 옐로우 게이트.(9)
* * *
녀석의 아가리가 크게 벌려지며 그 날카로운 이빨이 훈련생의 머리를 집어삼킨다.
킬킬킬킬....자, 자자자잘 먹겠습니다아아아...?
또 하나의 꽃이 새까만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저 미친 광대 새끼가...!!
쯧.
나의 뒷목을 타고 올라오는 뻐근함과 머릿속의 회로를 잠시 마비시키는 황당함에 혀를 찼다.
자신의 이름을 못 외웠다고 다짜고짜 사람을 쳐 죽이다니..정령지기란 새끼는 대가리 돌아버린 게 분명했다.
....미친 새끼....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저 광대 새끼를 쳐 죽이고 싶었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우선 저놈이라도 살리고 보자.
더 이상의 전투력 손실을 결코 이곳을 빠져나가는데 좋지 못했다.
"저...정령지기님."
잘게 떨리는 목소리가 담긴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 순간.
슈우우우욱!!!
훈련생을 집어삼키려던 정령지기의 아가리가 빠르게 나에게로 쏘아져 온다.
".......!!!"
녀석의 끈적한 침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 톱날 같은 이빨이 내 눈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커, 커커커컨닝은 안된답니다아아? 도, 도도도도움도 절대 바, 바바받거나 줄 수 없어요오오?
꿀꺽.
역시나 내 동체시력으로는 녀석의 움직임을 전혀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지금 내 목이 몸과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절을 올려도 모자랐다.
.....그, 그래도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웠어...
나는 일부러 훈련생을 부르는 게 아니라, 정령지기를 불렀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오줌을 지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녀석을 불렀다면, 정령지기는 내가 도움을 주려는 줄 알고 그냥 나를 죽여버릴 게 뻔했기에 훈련생이 아닌, 정령지기를 먼저 부른 것이었다.
.....자, 그럼 이제 두번 째 단추....
"...하아....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정령지기님께 제 이름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작은 한숨과 함께 능청스럽게 양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다, 다다다당신의 이름말입니까...? 호오....기, 기기기기기쁩니다아아... 처, 처처처음입니다아아...제, 제제제게 이름을 알려주고 싶다는 사람은...그, 그럼 아, 아아아알려주시죠.....당신의 이름...
할짝.
녀석의 혀가 나의 볼을 쓸어올리며 핥는다.
".....제 이름은 사이비...사이비입니다."
내 이름을 말하자, 고개를 잠시 갸웃거리더니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녀석.
킬킬킬킬킬!!!! 캬캬캬캬캬!!!! 사, 사사사사이비...? 이, 이이이름이 정말 멋집니다요오오오..?
"....감사합니다..."
할짝 할짝.
흠칫.
녀석의 혀가 볼에서 내려와 나의 경동맥 근처를 핥기 시작했다.
....겨, 경동맥...? 위, 위험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사, 사사사사이비군!! 저, 저저저정말 맘에 듭니다아아? 화, 화화화확실하게 외워둘게요오오?
"...기억해주신다니...감사합...."
그, 그그그그그런데에에에!!! 사, 사사사이비군은 제 이름을 아실까요오오오?
"............."
.......드디어 기다리던 질문이 들어왔다.
시간을 지체 할 순 없었다.
도무지 예측이 안되는 또라이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는 정령지기였기에, 난 황급히 두눈에 힘을 집중시키고선 【뱀의 심안】을 사용했다.
그리고는 정령지기의 생각을 읽었다.
『사, 사사사사이비비비군!!! 트, 트트트트틀려줘!!! 제, 제제제제바아알!!! 머, 머머머머먹게 해줘!!! 킬킬킬킬킬!!! 주, 주주주죽여어어어...』
오싹
"........!!!"
.....미, 미친 새끼.... 맘에 든다면서...이 개새끼야....
나의 생각보다 훨씬 더 미친놈인 게 분명했다.
......그나저나....이렇게 되면 녀석의 이름을 알아낼 수가 없는데...녀석의 이름을 끌어올려야 해.
내가 죽기를 바라는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는 녀석에게서 녀석의 이름을 끌어올려야 했다.
"........정령지기님?"
왜, 왜왜왜왜 그러시나요오오오? 서, 서서서서설마....제 이이이이름을 모르시는.... 킬킬킬...
"그건 아니고요. 저희 세계에서는 누군가와 연(?)을 맺을 때, 마음속으로 자신의 이름을 되새기며 상대방을 항상 존중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문화가 있거든요."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녀석이 킬킬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 그그그그렇습니까아아..? 조, 조조조조좋은 문화라고 새, 새새생각합니다아아?
주변의 훈련생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알고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그런 친절하고 예쁜 문화 따위는 없었으니까.
......아, 제발...표정관리들 좀 해라...너희 표정 보고 구라치는 거 들키겠다. 이 새끼들아.
"....하지만 제가 먼저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녀석의 표정이 의아함으로 가득 찬다.
왜, 왜왜왜왜왜요오오? 저, 저저저저랑 연(?)을 맺기 시, 시시시싫다고오오...?
하아.
한숨과 함께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먼저 다짐을 해주셔야 합니다. 하급자인 제가 상급자인 정령지기님께 연(?)을 허락받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숙였던 고개를 다시금 들어 올려,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킬킬킬킬킬...!! 사, 사사사사상급자, 하급자.....조, 조조조좋습니다아아!! 사, 사사사상급자인 제가 허락을 하, 하하하도록 하겠습니다아...?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지금이 중요했다.
확실하게 들어야 했다.
만약, 이번에도 이름을 외우지 못한다면 나의 목을 뎅강 썰려서 녀석의 입속을 탐험하고 있으리라.
......후우우...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며 얼굴이 뜨거워졌다.
.....기회는 단 한 번...
그 순간.
『나 올데스 하라마만타는 너를 존중....아니, 킬킬킬킬....너를 아주 맛있게 먹어주겠습니다...? 킬킬킬킬....』
오싹
......이, 이런 개새끼....
물론, 나도 녀석을 속이려 들었지만, 사람 좋은 얼굴로...아니, 광대 좋은 얼굴로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킬킬킬....허, 허허허허락 했습니다아아...? 이, 이이이제 사이비군이...대, 대대대답 할 차례라고요오오? 제 이, 이이름은..?
......한 순간이나마...연(?)을 가지고 장난침에 껄끄러운 감정을 가졌던 내가 병신이지....두고보자, 이 광대 새끼야..
생각을 마친 나는 눈을 감고서 다짐을 하는듯한 시늉을 한 뒤,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모든 훈련생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올.데.스. 하.라.마.만.타.님."
...........!!!
"........."
웅성웅성.
"올데스 하라마만타...?
".....마, 맞는 거야? 지, 진짜...?"
주변의 훈련생들이 불안함과 희망이 섞인 듯한 눈빛으로 나와 올데스를 지켜보았다.
.....왜 대답을 안 하는 거야....사람 불안하게...
혹시, 내가 잘못 알아들었나란 생각이 스멀스멀 조금씩 피어오르던 그때.
킬킬킬....마, 마마마맞습니다..... 여, 여여여역시 사이비군......
하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나는 어느새 늘어났던 목이 다시 줄어들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올데스를 쳐다보았다.
처음과는 달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던 올데스는 혀로 이빨을 한 번 스윽 훑었다.
그리고는 나에게서 시선을 거둬 훈련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 지지지지금부터 당신들에게 시, 시시시시험을 내리겠습니다아아아?
할짝.
녀석이 훈련생들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 순간.
【D 지역 정령지기 올데스 하라마만타의 시험이 내려졌습니다.】
【지원 마법을 제외한, 다른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D 2 지역까지 이동하십시오.】
【지원 마법을 제외한, 다른 마법을 사용할 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시, 생존한 인원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 그그그그럼 D 2 지, 지지지지역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아아아?
말도 안되는 알림음을 이어 올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처음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벽 속으로 스르륵 사라지는 올데스였다.
화아아아악.
올데스가 사라지자, 멈춰있던 것만 같은 공기가 다시 순환하며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훈련생들이 하나둘씩 바닥에 털썩 주저앉기 시작했다.
"....하아...하아..."
".......미, 미친.....지,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
털썩.
내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일미를 움직여 바닥으로 주저앉으려는 한시아의 허리를 휘감아 받쳐줬다.
【...하아...하아....가, 감사해요....】
【....아니야....힘들면 잠시 쉬고 있어.】
【저, 저보다는....사이비님이.....】
【..난 괜찮아. 그러니까 앉아서 쉬고 있어.】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한시아였다.
한시아를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은 나는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올데스가 내린 시험 때문인지, 훈련생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니, 절대로 좋을 수가 없었다.
이 옐로우 게이트에서 지원 마법을 제외한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서, 다음 지역까지 이동하라니...
그건 그냥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첫 전투만 하더라도 모든 라이칸과 수인이 힘을 합쳐 겨우 이겨낼 수 있었다.
공격마법을 쓰지 못한다면, 화력을 담당하고 있는 3조가 그냥 공중분해 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최악이군. 딜러가 없는 파티라니...
저벅저벅.
난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덜덜 떨고 있는 훈련생에게 다가갔다.
녀석은 자신이 지려버린 오줌 위에서 몸이 굳어버린 듯, 전혀 움직일 생각조차 않하고...아니,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쯧...이건 뭐...공포에 굴복해버렸는데..? 이러면 있으나 마나....
그 순간.
덥석.
녀석이 나의 다리를 붙잡았다.
"....고, 고마워... 저, 정말로...흐윽...흑흑....고, 고마워....정...말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서럽게 울어대는 녀석이다.
"....쯧...진심으로 고맙다면, 그 한심한 모습 좀 어떻게 좀 해줄래? 존나 짜증 나니까?"
"....흐흑....미, 미안해....고, 고마워....지, 진심이야...."
".........."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녀석이 지금 내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나의 다리를 잡은 그 손에서 느껴졌으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이곳에서 널 지켜줄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
내 다리를 붙잡은 녀석의 손이 힘없이 스르륵 흘러내렸고, 난 녀석을 두고서 그 앞에 있는 시체에 다가가서 팔목을 감싼 팔찌를 벗겨내었다.
......불쌍한 놈. 남 도와주려다가 개죽음을 당했구나. 마음 같아선 너를 살려주고 싶지만...혹시, 모르니까 나도 보험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거든...미안하다.
마음속으로 녀석의 명복을 빌어줬고, 고개를 힐끔 돌려 한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래...혹시 모르니까...보험은 꼭 필요하지….
그리고는 한시아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걸음을 옮겨 회수한 팔찌를 이진하에게 넘겼다.
"....저기, 아까 죽은 녀석 팔찌."
".....그래. 고맙다."
"........"
일단은 위험한 고비를 한 번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는 혀끝에 느껴지는 씁쓸함에 혀를 찼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무의식적인 희망이 처참히 깨지는 오늘에 괜스레 기분이 안 좋아졌다.
"......저기...사이비라고 했지?"
이진하였다.
".........?"
".......그....차라리 네가 리더를 맡을래...? 나, 나 같은 놈보다는 네가 맡아주는 게 훨씬...."
빠득..
이가 갈렸다.
"....왜? 무서워? 지금 이렇게 애새끼들이 뒤져나가니까,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
"........."
"....넌 지금 도망치고 있는 거야. 왜? 처음에 자신만만하던 그 모습은 어디 갔지? 지금 네 명령하나에 목숨이 걸린 애들이 몇이나 되는 줄 알아? 그렇게 무섭고 죽음의 무게를 못 견디겠으면 앞으로의 대책이나 세워. 괜히 나한테 와서 네 편한 대로, 구색 맞춰서 책임 떠넘겨서 도망치지 말고."
"........."
"....하아...정신 차려라. 이 새끼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앞으로의 미래가 심히 걱정되는 나였다.
"...하...씨발.. 진짜 좆같네.....그 광대 새끼...."
이진하에게 대책이나 세우라고 나무랐던 나지만, 나 역시도 그냥 홧김에 질러본 말이었다.
세상에...공격마법을 사용하지 말라니...
마법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내게도 굉장히 치명적인 부분이었다.
.....아아...몰라..일단 시아 좀 끌어안고 쉬고 있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걸음을 옮겨 한시아에게 다가가 한시아를 꼭 끌어안아 휴식을 취했고,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사기 때문인지, 이진하는 무리하지 않고 탐사를 멈추었다.
그렇게 시신과 상황을 정리하다 보니, 이곳에서의 첫날 밤을 맞이했다.
불안함과 긴장감, 공포와 두려움,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찬 새까만 적막이 맴도는 밤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