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38화. 옐로우 게이트.(8)
* * *
【띠링!】
【D3 지역에서 벌어진 첫 전투에서 생존한 인원이 50%가 넘기에,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게이트 내부에 존재하는 정령지기가 60초 뒤에 소환됩니다.】
게이트 내부에서 들려왔던 딱딱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뭐, 뭐야? 이게 도대체..."
"보, 보상? 정령지기...?"
주변에 훈련생들의 반응을 보아 나에게만 들려온 건 아닌 것 같았다.
【모든 능력치가 소량 상승합니다.】
푸른색의 빛이 떨어지며 몸을 휘감았다.
【사, 사이비님!!!】
한시아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로 달려와 거친 숨을 토해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마력량을 생각하며 마법을 사용하란 나의 말은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이곳저곳 버프마법을 사용한 듯하다.
【괘, 괜찮으세요?!! 어, 어떡해...상처가....】
한시아가 부산을 떨며 데리고 온 빛 속성 마법을 익히고 있는 훈련생을 쳐다보았다.
"....아, 으응...치, 치료할게..."
곧 그 훈련생의 손에서 하얀빛이 흘러나오며 나의 상처를 감싸기 시작했고, 간질거리는 느낌과 함께 나의 상처가 치유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진정해. 다른 애들에 비하면,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 그치만.....후우....】
모든 능력치가 올라갔다는 알림을 들은 몇몇 훈련생들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훈련생들의 대부분은 그런 알림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이번 전투로 인해, 사망한 훈련생들도 많았고, 그에 못지않은 심각한 상처를 입은 녀석들도 많았기에.
"야, 현수야!! 빨리 이쪽으로 와!! 여기부터 치료해줘!!"
"히, 힐러!! 여, 여기 사람 죽어!! 빠, 빨리.."
특별 보상이 내려졌든, 60초 후에 정령지기가 소환되든지 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이 옐로우 게이트가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인원 한 명 한 명이 굉장히 소중했기에, 4조의 인원들이 발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듯 뛰어다니며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이진하와 블루문 아카데미의 훈련생 몇몇이 심각한 얼굴로 전투로 인해 사망한 훈련생들의 손목에 차있는 팔찌들을 수거하고 있었다.
사망한 군인의 군번 줄을 가져가듯, 훈련생들에게 주어지는 아카데미의 팔찌를 수거했다.
....정신 차려야 해. 자칫하면 나도 정말로 죽을 수 있다..
사망한 훈련생들의 팔찌를 챙기며 사상자의 인원을 파악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그때.
【정령지기가 소환됩니다.】
전혀 반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으으으...
먼지가 바닥을 쓸어내리는 소리와 함께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더니, 이내 벽에서 유령처럼 어떠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두 갈래로 나누어진 괴상하게 생긴 모자, 하얗다 못해 창백한 피부, 마치 상어의 이빨처럼 아주 뾰족뾰족하게 훤히 드러난 치아, 종아리와 팔목 부분이 펑퍼짐한 빨간색의 점프슈트, 섬뜩하기 그지없는 괴상한 화장을 보고 있자니, 한가지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른다.
........광대....?
짐승과도 같은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쭈욱 찢어진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존재는 모두가 훤히 알고 있는 광대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했다.
물론, 일반적인 광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괴상한 웃음소리와 섬뜩한 외모,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킬킬킬킬킬...
"........!!!"
"...과, 광대...?"
내 옆에 서 있던 훈련생의 입에서 광대란 말이 흘러나왔고, 광대의 모습을 한 정령지기를 바라본 누군가는 평소 광대 공포증을 앓고 있는지,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그 순간.
과.....?
정령지기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의문의 소리를 흘렸다.
".........."
....과? 과? 과?
.......뭐라는 거야...이 새끼는...
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정령지기 녀석이었다.
.......어? 잠깐...나를 보는 게 아닌 것 같은.....
내가 아니었다.
정령지기의 시선은 내 옆에 있던 훈련생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과, 과과과과과과과!!!!! 제가 광대라고요?!!!!!!!! 킬키킬킬킬킬킬....!!! 광대!!! 광대!!! 과아아앙대애애애!!!!!
오싹.
정령지기의 입이 더욱 찢어지면 그 잔혹해 보이는 미소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듯 했다.
"......으, 으어어.....으으...."
내 옆에서 정령지기를 바라보며 "광대"란 말을 입에 담았던 훈련생의 몸이 덜덜 떨린다.
쑤우우욱..
정령지기의 목이 기린과도 같이 늘어난다.
그러더니,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진한 살기를 뿜어냄과 동시에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슈우우우욱!!!
"으으...으어....자, 잠깐..!!!!"
자신의 죽음을 미리 깨달은듯한 훈련생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을 쳐보지만.
콰드드득!!!
정령지기의 아가리가 마치 나의 꼬리들처럼 쩌억 벌어지며 그 날카로운 이빨로 훈련생의 얼굴을 삼켜 목을 잘라내었다.
순식간이었다.
촤아아악!!
내 얼굴로 피가 튀었고 따끈따끈한 액체가 나의 얼굴을 타고서 밑으로 흘러내린다.
"..........!!!"
"꺄, 꺄아아아악!!!!"
"씨, 씨발.....뭐, 뭐냐고...."
덜덜덜덜...
훈련생들의 공포와 동요가 공기를 타고서 내 폐를 강하게 찌르는 것 같았다.
두근두근.
정령지기의 목이 빠르게 쏘아지던 그 순간.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내 옆에 있는 훈련생이 처참하게 목이 잘려나갔음에도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
콰득!! 콰드득!!
훈련생의 두개골과 얼굴을 섬뜩한 소리와 함께 우걱우걱 씹어먹는 녀석.
주변이 너무나도 조용했다.
비명과 욕설이 들렸던 것도 잠시, 조금 전만 해도 자신의 전우였던 훈련생의 처참한 말로를 지켜보던 훈련생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다.
콰득! 콰득!!
그저, 녀석의 식사 아닌 식사를 바라보며 그 생생한 소리를 실시간으로 듣고 있을 뿐.
......이, 이것이 정령지기....
신비롭고 순할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진 정령지기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공포 그 자체였다.
.....차라리....살인광대라는 말이..아니, 식인광대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어.
꿀꺽.
저도 모르게 목울대가 꿀렁인다.
흠칫.
침 넘어가는 소리가 그렇게도 컸을까, 머릿고기를 열심히 씹으며 음미하고 있던 녀석이 두 눈만 살며시 움직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무나 섬뜩한 광대분장과 피를 뚝뚝 흘리며 기괴한 미소를 짓고 있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 주먹이 쥐어진다.
킬킬킬킬....다, 당신!!! 다다다다다, 당신 누, 누누누누눈에도 제가 과, 과과과과광대로 보입니까? 킬킬킬킬킬...
기린의 목처럼 길게 늘어나 있는 목을 서서히 움직이며 나의 얼굴을 향해 얼굴을 들이미는 녀석.
두근두근.
덜덜덜...
심장이 거세게 뛰고 아주 강하게 꽉 쥔 주먹이 조금씩 떨려왔다.
나의 머리 위에서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떠 있는 녀석의 머리통이었다.
뚝....뚝...뚝...
녀석의 입가엔 아직 미쳐 다 삼키지 못한 머릿고기의 잔해가 잔뜩 걸려있었고, 그 톱날 같은 이빨에서 흐르는 피가 내 얼굴과 콧등으로 떨어져 내렸다.
킬킬키킬킬!!! 대, 대대대답은요오오? 다, 다다다다다당신도 제가 과, 과과과광대로 보이...
저릿저릿.
말을 뱉으면서 동시에 살기까지 나에게 쏘아 보내는 녀석에 더는 대답을 지체하다간, 나의 목이 금방이라도 뎅강 썰려 나갈 것 같았기에 녀석의 말을 끊고서 대답했다.
"......정령지기."
녀석이 머리의 위치를 낮춰 나와 눈높이를 맞춘다.
마주한 시선.
그 광기가 가득한 눈동자가 나의 두 눈을 바라보며, 바쁘게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그, 그그그그래요!!! 저, 저저저저는 바로 과, 과과과광대가 아닌 정령지기.....
할짝.
녀석의 혀가 그 톱날 같은 이빨을 훑었고, 왠지 모르게 아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쑤우우우욱.
기린과도 같던 목이 줄어들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정령지기.
그리고는 이내 나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날카로운 손톱으로 자신의 이빨에 낀 머릿고기를 쑤시며 치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 하아....
가슴 깊은 곳에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미, 미친.....자, 장난이 아니야....바, 방금 죽을 뻔 했던 거야...
슥 슥..
천천히 나의 양팔에 돋아난 소름을 문지르며 미친 듯 뛰고 있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
이곳에 있는 그 어떤 훈련생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각 아카데미를 대표하는 표지안, 이진하, 한설화까지 모두 벙어리라도 돼버린 듯, 몸이 굳은 채로 저 미친 광대새끼...아니, 정령지기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
.....아마, 녀석들도 광대의 공격을 두 눈으로 쫓지 못했겠지....급이 달라....우리가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야...
그 짙은 살기를 받아내야 했던 몸이 아직도 저릿저릿하게 울리며 욱신거렸고, 등 뒤는 식은땀으로 인해 축축하다 못해 완전히 젖어버린 것만 같았다.
.......이, 이게 옐로우 게이트.....정령지기....
죄, 죄죄죄송합니다아아? 오, 오오오오래 기다리게 해버려서.....킬킬킬킬..!!
손톱으로 이빨에 낀 이물질을 제거하던 녀석이 돌연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지만,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릴 때마다 고개가 180도 돌아가며 매우 기괴한 모습으로 훈련생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히, 히이익...!"
마치,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연출에 훈련생들이 정령지기의 시선을 피한다.
지, 지지지지집중!!!! 제, 제제제누누누눈을 피하시면....
녀석이 말을 끊고선 주위를 둘러본다.
꿀꺽.
주, 주주주주죽여어어어!!!! 뇌, 뇌뇌뇌를 파서 음미하고....누, 누누눈알은 사탕처럼 쪼옥쪼옥.....혀, 혀혀혀는 잘 말려서..최고급 유, 유유유육포로...
뚝...뚝..
끈적한 침이 녀석의 턱을 흘러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녀석의 말 한마디에 더는 시선을 피하는 훈련생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몸을 억지로 붙잡으며 쉴 새 없이 떨리는 두 눈동자를 정령지기에게로 고정하는 훈련생들이었다.
조, 조조조좋아요!!! 이, 이이이제야 대화를 하, 하하하할 수 있겠군요..
녀석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우, 우우우우선 자, 자자자기소개부터....제 이, 이이이름은 오, 오오오오올데스 하라마, 마마마만타 랍니다다다다.
"............"
괴상한 이름이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름이 제법 긴 것 같았다.
.....오오오오올데스 하라라라라란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진짜 중요한 건, 이 정신 나간 광대 새끼의 임무를 성공하거나,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내게 생각지도 못한 녀석의 말이 들려왔다.
녀석이 한 훈련생을 가리켰고, 예의 그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거, 거거거기 당신..!!! 제, 제 이이이이이르르르름을 마, 마마마말씀해주세요오오오.?
씨이익.
녀석의 미소가 더욱 짙어지며 가로로 길게 뻗어져 나갔다.
지목을 받은 훈련생은...
".어, 어..어? 이, 이름......"
덜덜덜덜....
훈련생의 몸이 학질이라도 걸린 듯 크게 떨린다.
훈련생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고, 주변에 있는 훈련생들을 향해 도움의 눈길을 보낸다.
그러자 한 훈련생이 자신이 없는듯한 표정으로 귀띔을 해주려던 찰나.
콰드드득!!!
털썩.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귀띔을 해주려던 훈련생의 몸이 바닥으로 털썩 무너져내렸다.
"히, 히이이익!!"
물론, 지목을 당한 훈련생 또한 바닥에 주저앉았고, 공포심이 가득한 두 눈으로 목이 잘린 훈련생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킬킬킬킬킬.....제, 제 이이이르르르르은요오오오?
고개를 180도 회전시켜 지목당한 훈련생의 얼굴을 바라보는 정령지기.
쪼르르르르..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그 훈련생은 너무나도 큰 공포심을 이기지 못하고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렸다.
"......흐으윽...사, 살려줘...사, 살려주세요효.....흑..."
트, 트트트틀렸습니다...!!! 제 이이이름은 흐으윽...사, 살려줘...사, 살려주세요효.....흑...가 아니에요오오? 킬킬킬...
"...아아....하....하하하....하하하핫!!!"
정신을 놓아버린 훈련생이었다.
이미 다른 훈련생들은 그 훈련생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고개를 돌리거나, 두 눈을 질끈 감고서 그 참혹한 광경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쩌어어어억!!!
녀석의 아가리가 크게 벌려지며 그 날카로운 이빨이 훈련생의 머리를 집어삼킨다.
킬킬킬킬....자, 자자자잘 먹겠습니다아아아...?
또 하나의 꽃이 새까만 무저갱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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