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36화. 옐로우 게이트.(6)
* * *
"....아, 거, 테러하기 딱 좋은 날이네."
뱀이 미끄러지듯이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을 향해 걸어간다.
화르르륵.
퍼어엉!!
내 머리위로는 3조가 쏘아 보내는 각종 공격마법들이 날아다녔고, 목표물에 적중한 마법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을 터뜨렸다.
쉬이이익!!
스산한 소리를 내며 나의 꼬리들이 혀를 날름거린다.
.....우선 이곳 자체를 독으로 가득 채워야겠어.
코끝으로 전해지는 혈향이 더욱 짙어졌다.
어느덧 각종 짐승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편의 지옥도를 만들어내는 최전방에 도착한 것이다.
이능 몬스터인 청표범때문인지,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초반과는 다르게 차츰차츰 뒤로 밀려나고 있는 라이칸들이었다.
흉포한 울음소리를 처음과는 달리 겁을 먹은 강아지와 같은 울음소리가 조금씩 새어 나오는 라이칸들을 보자니, 이미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것 같았다.
....우선 분위기를 환기시켜야 해.
" 【독구름】, 【독구름】, 【독구름】, 【독구름】"
나는 일부러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모두가 나의 마법명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공포감에 찌든 녀석들을 위해 더욱 큰 공포감이나, 그와 비슷한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일깨워 분위기를 흔들 생각이었다.
"........!!!"
"크르르릉...?"
조금씩 뒤로 후퇴하던 라이칸들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지며 커다란 물음표를 만들어내었다.
"야, 야 이새끼야!!! 너, 너 미쳤어?!!! 과, 광역마법은 같은 아군한테도...."
이진하였다.
얼음 마법으로 몬스터하나를 얼려버린 그가 거칠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뭐, 이런 미친새끼가....뒤질거면 너 혼자 뒤져, 이 개새..."
이를 빠득 갈며 나를 노려보는 이진하였고, 내 주변에 있던 라이칸들이 크르릉 거리며 언짢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뒤지라고..? 말 한번 잘했네. 지금 이 짐승 새끼들 보이지? 당장 앞으로 달려나가서 몬스터들을 막아도 모자랄 판에 뒤로 슬금슬금 빠지면서 꼬리를 말고 있는 거 안 보여?"
"......그, 그건...."
사이비의 말에 이진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가장 선두에서 몬스터들을 저지시켜야 할 라이칸들이 겁은 먹고서 자리를 이탈하는 바람에 몬스터들이 너무나 쉽게 3조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과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 짐승 새끼들이 후퇴하면, 어차피 다 뒤질 텐데. 몬스터들한테 뒤지나, 내 독에 뒤지나 결국 다 뒤질 거잖아? 한심한 새끼들."
....씨, 씨발...
확실히 녀석의 말대로였다.
라이칸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서 이탈을 하게 되면, 분명히 그 끝은 정해져 있었다.
"병~신들. 주인을 지켜야 할 개새끼들이 먼저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꼬라지하고는."
".......!!!"
......저, 저 미친 새끼 도대체 무슨 말을...
녀석이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이진하였다.
....아, 아무리 그렇다지만, 라이칸 녀석들도 분명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고!! 이 미친 새끼야!!
그 순간.
"크르르르릉...!!"
"크르륵...캬오오올!!!"
녀석의 주변에서 피를 흘리며 후퇴하고 있던 라이칸들이 일제히 녀석을 노려보며 서슬 퍼런 울음소리를 내는 모습이 이진하의 눈에 들어왔다.
당장에라도 녀석을 그 날카로운 이를 이용해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 그 표정이야. 물론, 대상은 잘못됐지만."
".......!!"
"크르르르릉..?"
"그 기세로 가서 물어 죽이란 말이야. 이 새끼들아. 왜? 저 몬스터새끼들은 무섭고, 동료를 버렸다는 죄책감은 안 무섭냐?"
"..........."
"........끼잉..."
"선택은 너희가 해라. 너희가 안 나서면, 나라도 나서서 저 좆같은 새끼들한테 테러라도 하고 뒤질 거니까, 그래야 덜 억울하지. 어차피 뒤질 건데."
침묵이 흘렀다.
분명히,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수많은 훈련생들이 힐끔힐끔 시선을 던지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저벅저벅.
녀석이 제 할 말만 뱉고 나서 뜨거운 피가 튀기는 곳으로 걸어간다.
이진하는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느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명, 말에 가시가 있지만, 두려움에 조금씩 이기적인 생존 본능을 뿜어대던 훈련생들의 명치를 때리는 아주 무자비한 말이었다.
차마 1조와 2조에게 후퇴하지 말란 말을 할 수도 없는 자신이었다.
이렇게 뒤에서 공격마법을 사용하는 자신도 피부가 따끔할 정도로 느껴지는 몬스터들의 살기에 두려움이 생겨날 정도인데, 차마 3조와 4조를 위해서 너희들의 목숨을 던져서 대열을 지키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본 녀석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일은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성질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해냈다.
자신도 말하지 못했던, 그 양심 없고 이기적인 말을...
그 간악한 뱀의 혀를 놀리며 독이 묻은 가시가 뻗친 말과 "좋은 표정이야."라는 약간의 당근 같은 말과 함께...
.....뭐, 뭐야...저 녀석... 서, 서윗뱀남 같으니라고...
어쨌든, 덕분에 패배감이 계속해서 맴돌던 분위기가 크게 흔들리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그의 말을 곁에서 직접들은 라이칸들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듯했다.
......그래. 녀석 말대로, 이렇게 뒤지나, 저렇게 뒤지나...살고싶다면...싸워야 해. 설령 그 생존확률이 한 자릿수라도..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진하가 결연한 표정으로 라이칸들을 향해 돌격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크르르릉!!!"
"캬아아아오우우울!!"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던 라이칸들이 허공을 향해 하울링을 내뱉더니, 터벅터벅 녀석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곧 녀석이 가볍게 달리기 시작하자, 그 뒤를 따르던 라이칸들 또한 속도를 올리며 녀석을 따라갔고….
"【독구름】!!"
녀석의 입에서 광역마법명이 흘러나왔다.
".......!!!!"
"야, 야 이 미친놈아!!! 지, 지금 라이칸들이 네 말대로 다시 전투에 합류하는데 다 된 밥에 재를...아니 독을 왜 뿌려!!!"
"......크르르...ㅇ?"
푸화아아아악!!!
내 뒤에서 이진하의 절망 어린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새끼들. 결국엔 올 거면서.
내 입과 꼬리에서 보랏빛의 【독구름】이 아주 자욱하게 뿜어지며 이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크릉?"
라이칸과 몬스터들이 한데 섞여 싸우고 있으니, 누가 몬스터이고 누가 아군인지 판별을 하기 힘들었다.
물론, 라이칸과 몬스터 두 녀석들 모두 황당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건 똑같았지만.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 마법이 알아서 피아식별을 할 테니.
"【무색 무취 무해】"
내 입에서 여태껏 사용하지 않았던 마법명이 흘러나왔고, 그 목소리를 들은 훈련생들이 모두 하나같이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나를 바라봤다.
상관없었다.
이제 곧 그들의 시야를 가리고 생명력을 조금씩 앗아갈 나의 독무가 그들의 눈앞에서 말끔하게 사라질 테니까.
"자, 드가자!!! 물어 죽여. 이 새끼들아!!"
내 앞에 보이는 멧돼지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며 크게 외쳤다.
"....크르륵...? 캬, 캬오오오오!!!"
"크르르르아앙!!!"
그러자 잠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라이칸들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커다란 포효를 내뱉으며 나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독화살】
끈적한 침을 뚝뚝 흘리는 녀석에게 【독화살】을 쏘아 보냈다.
퍼퍼펑!!
3발의 독화살이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멧돼지의 눈에 적중했다.
"꾸웨에엑!!"
콰아아앙!!
일미를 이용해 시력을 잃은 녀석의 머리를 아주 강하게 후려쳤다.
거대한 충격에 저 멀리 날아가며 벽에 처박히는 녀석.
【산성독】
치이이익..
모든 꼬리가 【산성독】을 뒤집어쓴 채, 내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콰아아앙!!
퍼어어억!!
나는 일미부터 삼미까지 녀석들에게 눈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고선, 나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드는 여우의 공격을 피해내고선, 그대로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 지면을 향해 강하게 내리꽂았다.
콰아앙.
그리고는 바닥에 처박혀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연신 휘둘렀다.
퍼억 퍽! 퍽! 퍼어억!
부르르르르..
잔경련과 함께 움직임을 멈추는 녀석.
여우 녀석의 숨통을 끊어놓자마자, 내 뒤에서 느껴지는 강한 살기에 재빨리 굴러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콰아앙!!
키가 2m는 넘어 보이는 침팬지 종류의 몬스터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자신이 부숴버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타타탓.
빠르게 도움닫기를 한 뒤, 공중으로 튀어 올라 녀석의 목을 두 손으로 잡은 뒤에 그대로 니킥을 얼굴에 꽂아넣었다.
콰직.!
뼈가 함몰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지는 침팬지.
【탐(?)】과 【운명】으로 인해 31%나 증가한 나의 능력치는 주먹과 발에 마력을 살짝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살상무기가 되었고, 손과 발에 걸리는 족족 녀석들의 뼈와 머리, 심장을 박살 내고 있었다.
퍼억!!
안면이 함몰되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녀석의 얼굴을 발로 강하게 밟아준 뒤, 주변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치열한 접전이었다.
확실히, 이곳을 가득 채운 나의 독으로 인해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느려졌고, 중간중간 몸을 부르르 떨며 피를 토하는 몬스터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라이칸들이 자신보다 약한 피식 대상의 동물을 사냥하듯이 경동맥이나 머리를 물어뜯으며 포식자로서의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라이칸보다 훨씬 더 뛰어난 포식자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능을 사용하는 청표범이었다.
.......저 녀석들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결국, 또다시 제자리걸음이야.
물론, 한설화와 표지안이 각각 1마리씩 맡으며 제법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듯했으나, 나머지 3마리가 말썽이었다.
녀석들은 정면으로 나설 생각은 없는 듯, 몬스터들속에 숨어있다 라이칸들의 빈틈을 노리며 그 날카로운 이빨로 공격을 해왔다.
뒤를 힐끔 돌아보니, 이진하는 훈련생들을 통제하며 지친 얼굴로 얼음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한 마리를 맡아주면 좋겠는데....아무리봐도 무리겠지...?
통제하랴, 공격하랴, 도저히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의 몸과 입을 보니, 부탁을 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뭐, 그래도 괜찮아. 이제 어느 정도 이 통로에 【독구름】이 가득 찬 것 같으니까….
먹이사슬 정립 때 아주 큰 효과를 보았던 그 마법을 꺼낼 차례였다.
왜 굳이 힘들게 내 손으로 찾아가서 죽여야 한단 말인가.
서로 죽이도록 놔두면 될 것을.
【광기의 환각】.
난전이 펼쳐지고 있는 전투에서 정말 유용하다 못해 사기적인 성능을 보이는 마법.
......이능 몬스터도 껴있으니, 평범한 거로는 안심이 안 돼. 이참에 그걸 한 번 사용해보자.
제법 많은 마력량에 여태껏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그 능력치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도력... 도력이라...분명, 마력에 비해 가볍고 빠르다고 했는데...어떤 방식으로 그 특별함이 나타날까...?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게 훨씬 좋다.
"【광기의 환각】."
나의 양손에서 연보라색의 빛이 흘러나왔고, 곧 그 빛은 짙게 깔린 독무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제 동족상잔만 기다리면서 적당히 녀석들을 죽이면....
그 순간.
콰드드득!!
얼음의 이능을 가지고 있는 청표범 한 마리가 옆에 있는 악어의 모습을 한 몬스터의 목 쪽을 아주 강하게 물었다.
".............!!!!"
.....뭐, 뭐야...아, 아직 마법을 사용한 지 5초밖에 안됐는데…?
쩌저저저정!!!
청표범의 송곳니에 가죽이 푹 뚫린 악어 녀석이 얼음가루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 순간 곳곳에 퍼져있는 몬스터들에게서 내가 바라던 그림이 연출이 되었다.
"캬아아아악!!!!"
촤아아아악!!!
콰드드득!!!"
좀 전까지는 라이칸 vs 몬스터 였다면, 지금은 라이칸 vs 몬스터 vs 미쳐버린 몬스터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씨익.
....아아, 그래. 이거지. 마치 나의 교묘한 이간질로 인해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죽이는 이 상황!!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입술과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스윽.
새빨간 혀로 나의 입술을 훑었고, 또다시 새로운 국면이 찾아온 상황에 어리둥절해 하는 라이칸들에게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말했다.
"퇴근."
".....크르륵...?"
"퇴근하자고. 수고했다."
나는 미련도 없이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서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 아직도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 있던 라이칸들이 말 잘 듣는 개처럼 나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었다.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나 보자 이 말이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