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35화. 옐로우 게이트.(5)
* * *
"짐승형 몬스터. 숫자는 대략 200. 살고 싶으면, 무기 쳐들어."
나는 말을 마치고선, 【탐(?)】의 힘을 끌어올렸고, 곧 나의 몸에서 검은색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스으으으읏
검은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스산한 소리를 내었다.
"뭐, 뭐야? 갑자기..."
"그, 그러니까...척후조도 가만히 있는데...무슨.."
내 주변에 있던 몇몇 훈련생들이 불신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진하가 맨 앞에 있는 척후조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말이 사실이야?"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고, 척후조 녀석들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하아...
이진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혹시 아까 네 여자친구 일 때문에 아직도 기분이 상해있다면, 내가 대신 사과할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장난칠 생각은...."
"자, 빨리 준비들 하자고."
"어, 어...그래야지. 성격은 이상해도, 뭔가 있는 놈이니까."
"맞지. 맞지. 먹이사슬 정립때도 그렇고, 선배들한테 쿠데타 일으킨것도 그렇고 평범한 놈은 아니잖아."
이진하의 말을 끊고서 곳곳에 퍼져있는 레드문 훈련생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전투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지금 도대체 뭐하는...."
당황한 얼굴의 이진하였다.
이진하가 황당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그는 곧 백인장인 표지안과 한설화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리던 찰나.
다른 레드문의 훈련생들과 마찬가지로 조용히 얼음으로 이루어진 검을 만들어내는 한설화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도대체.... 설마 저 놈의 말을 믿는 거야? 대체...왜...?
황당함과 의문으로 가득찬 마음을 진정시키며 뱀 눈 녀석을 바라보았다.
......아무리봐도....얼굴 말고는 볼 게 없는 것 같은데...
이상한 일이었다.
뱀 눈을 가지고 있는 녀석의 말 한마디에 레드문의 훈련생 전체가 들썩이며 움직이고 있었으니..
.....분명, 레드문 아카데미는 한설화가 간판 아니었던가?
......뭐, 힘숨찐? 그런 건가...? 일단은 속는 셈 치고 이 흐름에 올라타야겠어.
그렇게 생각을 마친 이진하는 최대한 담담한 척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전원 전투준비!!!! 1조와 2조는 맨 앞에서 대기하고 3조와 4조는 지원을 해줘!!"
명령을 내리고 3조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이진하가 다시금 고개를 돌려 사이비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와는 다르게 저 뱀 눈 녀석이 레드문 아카데미의 실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얼굴 뚫어지겠다. 이 새끼야.
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진하였다.
.....그나저나 내 영향력이 이정도였나...?
뭐, 특별한 의리나 우정이라기보단,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경고가 섞인 말에 레드문 아카데미의 훈련생들이 일제히 전투준비를 하는 모습은 내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줬다.
....전부 나를 싫어하는 것 아니었나? 아니면...운명이 바뀌게 되면서 호감도까지 변화가 있던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나의 말 한마디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녀석들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약간은 간질간질거리는 느낌이랄까.
사이비가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사이비 본인은 지금 레드문 아카데미에서 떠오르는 핫 루키이자, 최악의 세대들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고압적이기만 하던 선배들에게 처음으로 이를 드러낸 반항아였으며, 그 선배를 아주 압도적으로 짓밟아버린 문제아였다.
그리고 그런 사이비를 따라 신입생들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사건으로 인해 나이와 선배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진정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실현되었다.
최악의 세대, 문제아...이러한 호칭이 사이비와 모든 신입생들에게 붙어버린 이유 중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이비였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언제부턴가 신입생들 사이에서 사이비라는 이름이 유행처럼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의 가슴속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는 사이비였다.
물론,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아니,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온다!!
한시아를 등 뒤로 숨긴 뒤,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엄청나게 큰 진동과 발소리가 귓가를 강하게 때리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
쿠쿠쿠쿠쿵!!
마치, 미로 전체가 흔들리며 무너지려는 것 같을 정도의 진동이 지면을 통해서 느껴졌다.
"대, 대장!!! 앞에 모, 몬스터가!!!!"
본대와 조금 떨어져서 척후 활동을 하고 있던 척후조 녀석들이 부리나케 뛰어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지, 진짜 였어..."
누군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주변에 있던 훈련생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전투가 코앞인데, 앞이나 보지그래?"
".....어, 어? 알았어..."
이 녀석들처럼 말을 하진 않았지만, 저 앞에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몇 개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진하, 표지안, 한설화.
그중에서 특히나, 이진하는 묻고 싶은 게 많은 듯 입술을 꾹꾹 깨물며 내게 복잡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무슨 남자 새끼가 저런 그윽한 눈빛을... 으음? 슬슬 보이기 시작하네.
【이제 곧 보일 거야. 혹시 모르니까, 절반의 마력은 항상 남겨둬. 바보처럼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서 버프마법 걸고 다니지 말고.】
【후우...후하아...네, 네..!! 며, 명심할게요....】
그 순간.
지면을 울리는 진동과 발소리가 점점 더 커지다 못해 이 공간을 부수는 것 같았고, 곧 어둠 속에서 노란빛을 내뿜는 몬스터의 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조, 2조!! 라이칸으로 형태변화 해!!! 4조!! 1조와 2조에게 버프 마법 걸어주고!! 3조는 공격마법을 준비해줘!!"
"캬오오오오올!!!!"
"크르르르르르응..!!!"
"바람의 가호!!! 바람의 축복!!!"
"대지의 가호!! 대지의 힘!!"
"빛의 축복!! 성스러운 빛!!!"
갖가지 동물들의 형태를 한 라이칸들이 허공을 향해 흉포한 울음소리를 내질렀고, 형형색색의 빛들이 터져나가며 라이칸들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캬아아아아아우!!!"
"그르르르륵..."
두두두두두다.
이제는 몬스터들의 모습이 두 눈으로 담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3조!!! 공격!!!!"
이진하의 명령이 떨어졌다.
"불화살!!!"
"물폭탄!!!"
"전기 사슬!!!"
몬스터들의 사살과 돌진을 저지하기 위해 이 파티에서 가장 강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 3조의 손에 공격 마법들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화르르륵 콰아아앙!!
" 퍼어어엉!"
" 파지지직!!"
"꾸웨에에엑!!"
"캬아아아아아!!"
불꽃이 터져나갔고, 몬스터들의 육체가 터져나갔다.
"3조 다시 캐스팅 시작해!! 1조, 2조!! 돌겨어어억!!!!"
【얼음 칼날】을 사용해 도마뱀과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의 목을 날려버린 이진하가 소리쳤다.
" 캬아아아아오!!!"
이진하의 명령이 떨어지자, 집을 지키던 개처럼 대기하고 있던 라이칸들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촤아아악!!
콰득..!!
라이칸과 짐승의 모습을 한 몬스터들이 한데 섞여 어우러지며 새빨간 피가 허공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먹이사슬 정립 때도 느꼈지만, 정말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를 이용해 상대의 배를 가르고 경동맥을 물어뜯는 원초적인 싸움이었다.
이족보행을 하는 라이칸과 사족보행이 기본인 짐승형 몬스터의 싸움.
두근두근.
심장이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
콰드득!!!
검은색의 털을 가진 늑대 라이칸이 자신과 똑같은 붉은 늑대의 목을 깊게 물고선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찌지지직..!!
붉은 늑대의 가죽이 찢겨지는 소리와 함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늑대 라이칸은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크르르르르..."
그 순간.
타타타타다닥!!
푸른색 털을 가진 표범 한 마리가 벽을 타고서 빠르게 달려왔고, 뒷다리에 힘을 주어 늑대 라이칸의 목을 물어뜯었다.
"캬아아아아우우우!!"
"그르르릉..."
....이, 이런 미친!!
정확히 경동맥을 물린 것 같았다.
【절대 앞으로 나오지 말고, 너 자신만 신경 쓰고 있어!!!】
한시아에게 명령을 내리듯이 말 한마디만을 남긴 나는 어느새 그 푸른 표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타타타탓.
.......젠장 미로가 좁아서...시간을 맞출 수가 없다!!
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3조 때문에 제때에 맞춰서 늑대 라이칸을 구해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뚫을 수 없다면, 넘어간다!!
【탐(?)】의 힘과 한시아의 능력인 【운명】으로 인해 나의 모든 능력치는 31%가 증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충분히 3조 녀석들을 넘어설 자신이 있었고, 넘어서야만 했다.
타앗!!
빠른 속도로 달려가던 난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서 허공을 향해 뛰어올랐다.
화아아악!!
그 순간 속력이 어찌나 빠른지, 허공으로 올라가는 순간 매서운 공기의 저항을 받아야만 했다.
자신들의 위로 검은색 그림자가 지나가자 당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3조 녀석들이 보였지만, 녀석들을 신경 쓸 틈은 없었다.
내 목표는 저 푸른 표범이었으니까.
일미부터 삼미까지 모든 꼬리를 뒤로 크게 젖힌 뒤에 내 눈에 표범 녀석이 보이자 아주 빠르게 앞으로 쏘아 보냈다.
".....그르르릉..?"
휘이익!!
꼬리가 스트레이트 펀치처럼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녀석을 향해 날아갔다.
퍼어어어억!!!!
.....쯧...
녀석의 몸과 머리를 노렸지만, 눈치를 챈 녀석이 재빠르게 물고 있던 라이칸의 목을 놓은 채 점프를 하는 바람에 간신히 일미가 녀석의 다리를 공격할 수 있었다.
털썩.
목을 물어뜯기고 있던 라이칸 녀석이 두 무릎을 꿇고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힐러!!! 여기 부상자가 있....."
목에난 상처를 꾸욱 눌러 지혈을 하며 힐러를 찾던 내 눈이 쉴 새 없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나의 공격을 피해낸 청표범이 다른 라이칸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는데, 그 청표범의 몸에서 한기가 뿜어지며 허공에 서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쩌저저저적!!
이윽고 무언가 얼어붙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표범에게 물린 라이칸 하나가 얼어붙더니 쩌정거리는 소리를 내며 얼음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이능 몬스터....
나의 입에서 절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비단, 그 광경은 본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듯, 곧 3조에 속해 있는 훈련생 한 명이 경악성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능 몬스터야!!!! 여, 여기에 이능 몬스터가 섞여 있다고!!!"
분명, 피가 튀기고 뜨거운 숨이 곳곳에서 뿜어지는 전장이었지만, 그 한마디로 인해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뭐, 뭐?!! 이, 이능 몬스터라고?!!!"
"....씨, 씨발...무슨 게이트 초입부터 이능 몬스터냐고....무슨 난이도가..."
두려움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던 훈련생들의 사기가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캬오오오오..
크르르르륵...
몬스터들 사이로 청표범 네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
".....이, 이능 몬스터가 5마리......"
상황이 안 좋았다.
공기의 흐름을 바꾸지 않는 이상, 훈련생들의 사기는 더욱 떨어질 것이었고 전투는 더욱 힘들어질 게 뻔했다.
까득.
내 엄지를 입 안에 넣고 강하게 씹었다.
그러자 따끔한 통증과 함께 입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고, 긴장감으로 인해 조금씩 떨려오던 몸이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아....역시, 첫 실전은 쉽지않네.. 너무 긴장했어.
"야, 얘 아직 숨 붙어있으니까, 빨리 힐러들한테 데려가."
"어, 어? 으응..."
근처에 있는 3조 녀석에게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라이칸 녀석을 넘겼다.
【시아야. 나 버프 좀.】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사, 사이비님...?】
【나 믿지? 절대 안 죽을 테니까, 부탁해.】
【...하아...아, 알겠어요...사, 사이비님이 이런 곳에서 죽으실 분은 아니니까요...후하...바람의 가호, 바람의 축복. 바람의 힘.】
한시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에게로 따뜻한 듯 시원한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고 곧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한시아의 힘과 감정이 느껴졌다.
능력치, 속도 상승과 함께 다치지 말고 어서 빨리 끝내고 자신을 안아달라는 그러한 감정까지 고스란히..
독 속성의 하급 마법 8개를 모두 익힌 난 지금까지 7개를 사용했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1개의 마법을 사용할 때였다.
지금까지는 주로 개인플레이를 해와서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대규모 파티플레이를 하고 있는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내가 알기로는 독 속성이 워낙 희귀하다 보니, 신입생 중에서도 독 속성을 가지고 있는 훈련생은 나를 포함해 3명이 전부라고 들었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은 마법과는 거리가 먼 라이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마법의 특성을 가졌지만 가진 재능이 뛰어나지 못해 하급 마법 3개를 습득한 것이 전부였다.
모든 마법이 그렇지만 특히나 독 속성은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중독을 시켜서 이렇게 좁고 아군이 많은 공간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같은 아군을 죽이는 살상마법이 되기도 했다.
【무색 무취 무해】: 시전자가 만들어 낸 독에 의지가 깃들어 시전자의 의지대로 피아식별을 할 수 있다.
독 속성 하급 마법의 마지막 마법인 이 마법을 습득한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지만.
【뱀의 심안】을 이용해 독 속성 하급 마법을 모두 습득한 나는 같은 아군을 죽이는 역적이 아니었다.
적들을 무참하게 죽이는 영웅이고, 화학전의 대가, 생화학테러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씨익.
숨기려 해도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저벅저벅.
이상한 기분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이능 몬스터의 출현에 쪼그라들던 심장이 다시금 활짝 펴지며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야, 어, 어디가...? 바, 방금 못 들었어? 이능 몬스터가...."
상처를 입은 라이칸을 넘겨받은 3조 녀석이었다.
"으음? 뭘 당연한 걸 물어?"
"....당연하다니..?"
"이전 세계에서는 해 볼 수 없던 범죄 한 번 저질러보려고."
"버, 범죄...? 도대체 무슨...."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날 바라보는 녀석을 힐끔 쳐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테러."
".......?"
"화학테러 하러 갈 거야."
대답은 필요 없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내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직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방을 향해 걸어갔다.
기분도 좋고, 컨디션도 좋고, 피가 튀기는 이 전장도 좋고, 아무튼 다 좋았다.
"....아, 거, 테러하기 딱 좋은 날이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