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수인 아카데미의 NTL 왕이 되다-23화 (23/102)

〈 23화 〉 22화. 불편함.(3)

* * *

"사랑해......"

집착을 넘어선 그 무언가의 감정을 아주 진하게 담고 있는 한설화의 목소리가 이 공간을 가득 채워나갔다.

".........."

나의 정신을 갉아먹는 무언가가 나의 머리를 헤집고 다니며 내 스스로 사고를 못 하도록 만들었다.

불쾌하고 찐득거리는 강력한 의지가 무방비 상태인 나의 정신을 그대로 공격하며 무언가를 나에게 강제로 주입하기 시작했다.

..........으으으.....커허억...!!

뾰족한 무언가로 나의 뇌를 계속해서 찌르며 자극을 주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고통과 감각 사이사이에 끈적하고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담긴 목소리가 섞여 들어와 나의 정신을 송두리째 잡아 흔들기 시작했다.

『사랑해. 여보.』

『우리는 서로를 그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그 사실은 아무도 몰라야 해. 우리의 사랑을 위해서.』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아니, 슬픔이 가득 담긴 애처로운 한설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에 대한 경계심과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나였지만, 어째선지는 모르겠으나 한설화 그녀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슬픔과 울음기가 가득한 그녀의 아픈 목소리를 껴안아 입을 맞춘 뒤, 보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그녀를 위로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후훗...착하네. 자, 이제 여보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줄게.』

­ 끄덕.

『나와의 사랑을 숨기고서, 한시아 그 애의 곁에서 항상 머무르면서 보듬어주고 사랑해줘.』

『그 애가 여보를 더욱더 사랑하게, 여보에게 더 깊게 빠져들게 만들어야 해....여보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몸으로.』

­ 끄덕.

『그렇게 그 얘가 여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그때가 찾아오면...』

『우린 영원히 하나가 되어 세상에 우리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알릴 거야.』

『그러면, 그 얘는 하루하루를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절망하며, 나의 이름을 부르짖겠지.』

『그 얘가 그랬듯, 나도 그녀의 모든 걸 빼앗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거야.』

『잘할 수 있지, 여보?』

"......물론이지, 사랑해. 설화야."

『후훗...나도 사랑해. 여보.』

­ 쭈우웁..쪼옥...츄릅.

그 한이 맺힌 목소리를 끝으로 나의 입술과 혀에서 상큼한 사과의 향과 함께 부드럽고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 츄릅...츄릅...쪼오옥...

거부할 수 없었다.

그 어떤 젤리나 푸딩보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그 입술과 혀는 나의 심장을 거세게 뛰게 만들었고, 나의 차가운 피를 뜨겁게 만들었다.

『...후훗...이제 그 얘가 올 시간이야.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킨다면, 내 모든 건 전부 여보의 것이 될 거야.』

한설화가 양손으로 자신의 커다란 가슴과 사타구니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 쭈우욱.

나는 멍한 눈으로 한설화의 입술과 내 입술이 떨어지면서 생겨난 길게 늘어지는 침을 바라보았다.

...조, 좀 더...

그때.

【강력한 정신에 대한 간섭을 감지합니다.】

【고유 능력: 차가운 피와 심장이 발동됩니다.】

【고유 능력: 【차가운 피와 심장】으로 인해 모든 정신계열의 공격들을 무시합니다.】

【정신에 대한 간섭이 사라집니다.】

최면이나, 수면내시경을 직접 겪는듯한 몽롱함과 흐릿했던 사고가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너무나도 또렷하고 맑은 정신이 나를 일깨웠다.

.......하아..... 이게 무슨.....

정신이 맑아짐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한설화의 말을 듣고서 뭔가에 홀린듯 대답하던 나의 모습과 그녀가 뱉어냈던 모든 말들이 서서히 나의 기억 속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에 대한 간섭....? 설...마 정신계열의 고유 능력이나 마법을 익히고 있나?

지금의 상황을 봐서는 확실해 보였다.

어느새 한설화는 자신의 몸을 주무르던 손을 이용해 푸른색의 원피스를 곱게 정돈하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가만히 눈을 감고서 앉아있었다.

나는 나의 고유 능력인 【차가운 피와 심장】으로 인해 가까스로 그녀의 꼭두각시가 될뻔한 상황을 피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 미친년이.....

속으로 한설화의 대한 욕설을 하고 있던 찰나.

­ 드르르륵.

동아리실의 문이 열리며 한시아와 이석훈이 함께 들어왔다.

곧 한시아는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생수 하나와 치료실에서 받아온 소화제 한 알을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바로 복용을 했다.

【이제 좀 괜찮아졌으니까, 얼굴 좀 펴.】

그녀가 가져온 약을 먹었음에도 시종일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 씨익.

나의 밝은 미소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한시아가 작은 웃음을 지었다.

【다행이에요. 어, 얼마나 놀랬는지....】

제법 밝아진 표정으로 말을 하는 한설화를 보고선, 한설화가 나에게 뱉어냈던 말을 의식한 나는 최대한 한시아를 애정이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쓰담쓰담.

그러자 무표정한 얼굴로 나와 한시아를 바라보던 한설화의 얼굴에 아주 작은 표정변화가 일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에 맞춰 내가 행동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지,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곧바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얼음여왕은 무슨....관음증 환자지, 저게.... 무슨 얼음여왕이야..

지금 당장은 한설화 그녀의 계획대로 움직여 줄 생각이었다.

내가 모르는 둘 사이의 과거도, 앞으로 닥쳐올 한설화의 계획도 모든 걸 제대로 알아내기까지는 그녀의 꼭두각시가 되어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또한, 한시아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임무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한설화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대도 내가 진행하고 싶었다.

완벽한 나의 것으로 만들어, 내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버린다니....그것이야 말로 인생의 진리, 남자의 로망이니까.

"자, 모두들 모인 것 같으니까, 적당히 동아리 활동에 대해 설명을 하겠다. 우리 책과 다도 동아리는....."

동아리의 고문인듯한 이석훈의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 주를 알리는 시작이자 신입생들의 적응기간이 끝난 다음 날인 월요일 아침.

지금부터 약 2주간, 2학년 선배들과 함께 진행하는 일대일 맞춤훈련이 시작된다.

이 훈련 기간 동안 2학년 선배들은 신입생들의 개인 담임교수라 불릴 정도로 자신이 맡은 신입생에 대한 통제권을 아주 강하게 쥐고 있었다.

이 기간만큼은 그 어떤 교수님도 2학년 훈련생들의 교육방식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물론, 너무 심한 인격모독이나, 불필요한 성적 접촉 등등 그냥 넘어가기 힘든 부분은 교수님들이 재량껏 판단하여 그때그때 주의를 주거나 심한 경우, 아카데미 자체에서 근신이나, 퇴학 등의 징계를 내리기도 했다.

나를 비롯한 1학년의 모든 훈련생들은 교수님들의 지시를 따라, 어느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 장소는 바로 아카데미 뒤편에 마련된 특별 훈련실이었는데, 그 내부에는 2학년의 모든 훈련생들이 굉장히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아주 각이 잘 잡힌 대형을 이루며 2층에서 후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우. 분위기 한 번 살벌하네.

싸늘한 적막이 감도는 훈련실의 내부 상황을 맞이한 1학년 훈련생들이 교수님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교수님들 역시 훈련실로 들어서는 순간 2학년 선배들과 똑같은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묵묵히 1학년 훈련생들을 1층에 대충 던져놓을 뿐이었다.

­ 웅성웅성.

평소보다 더욱 엄격한 교수님들의 행동과 2층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선배들을 보며 불만 또는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혼잣말들을 내뱉는 1학년 훈련생들이었다.

나 역시 한 명의 교수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고선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고, 그런 내 뒤를 한시아가 총총 걸어오며 따라붙었다.

【..와아아....부, 분위가 한 번 정말 무, 무섭네요....】

【그러게....사람...아니, 후배 죽이겠다....눈빛들 봐라.】

한시아, 그녀의 말 그대로였다.

훈련실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1학년 훈련생들에게선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는데, 그 소리를 생생하게 라이브로 듣고 있는 선배들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가고 있었다.

..........하아....도대체...왜... 분위기 파악을 못하냐....? 지금은 누가 봐도 조용히 해야 할 타이밍 아니야?

눈치 없이 듣기 거슬리는 먹먹한 웅성거림을 끊임없이 배출해내는 나의 동기들의 지능 수준이 궁금했다.

......병신들. 이러다 또 한소리 듣겠지.

그 순간.

"여기 놀러왔어?!!!!! 모두 아가리 안 닫아?!!!!"

...........정답이었다.

2층에서 후배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선배들 사이에서 단단히 화가 나보이는 듯한 남성의 굵직한 목소리가 훈련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

정말 피곤한 녀석들이었다.

실력이 없으면 눈치라도 좋아야 하건만, 아무리 봐도 저 머러저리들은 평범함에 휩쓸려 나가며 아무런 업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세월에 묻힐 엑스트라들이었다.

.........뭐. 소리친 건 짜증나지만....덕분에 조용해졌네.

이제서야 사태를 파악하며, 쉴 새 없이 나불거리던 주둥아리를 닫으며 이리저리 눈을 굴리는 녀석들이었다.

잠시 후, 마지막으로 A 클래스의 훈련생들이 들어오고선, 대충 아무렇게나 자리를 잡자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교수님 한 분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입을 열기 시작했다.

"흠흠!! 모두들 알겠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약 2주간 일대일 맞춤훈련을 시작한다!!! 현재 시각 9시 30분!! 정확히 2시간 30분이란 시간을 주겠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 2층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는 선배 중 한 명과 팀을 이뤄라!! 만약, 12시까지 팀을 이루지 못한 훈련생이 있다면, 이번 훈련과 게이트 실습 훈련의 평가는 전부 최하점을 받을 것이며, 이 두 훈련에서 방출될 것이다!!!"

희와 비.

미리 준비가 되어있는 훈련생들은 2층의 누군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아무런 계획도 대책도 없는 훈련생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초점이 없는 눈으로 2층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2층을 올려다보며 조금은 난감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아, 이런 건 잘 못 하는데...

차라리 누군가와 싸우면 싸웠지, 온갖 아부가 섞인 말로 선배들의 똥고를 핥고 비위를 맞추며 간택 당하기를 바라며 마냥 기다리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쯧...그래도 어쩌겠어. 까라면 까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죽어도 선배들의 비위를 맞춰주기 싫다면, 다른 방법을 써먹어야 했다.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물론, 일이 잘 풀릴지, 안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이 세상은 넓고 또라이는 많았다.

그리고 그 또라이는, 또라이 보존 법칙에 의해 사람이 모여있는 무리에 한 명씩은 꼭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 현재 내가 알기로는 이곳에는 최소 2명의 또라이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나와 한설화였다.

.......제발. 낚여라...

또 다른 또라이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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