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20화. 불편함.
* * *
레드문 아카데미의 어느 마력 훈련실.
그곳에는 아주 차가운 인상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한 소녀와 10명의 남녀가 있었다.
차가운 인상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 한설화는 한쪽 벽면에 기대어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자칭 호위대라는 녀석들에게 일절 관심을 주지 않은 채, 훈련실 가운데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검은색의 스포츠브래지어와 타이트한 레깅스를 입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나직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아아....."
한설화는 마력 훈련을 위해 이곳에 들렸지만, 생각보다 집중이 잘 안 되는 탓에 그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작게 내뱉었다.
"한시아....`
자신의 의붓 여동생이자, 세상에서 가장 부러웠던 존재, 그리고 골드문 수석입학을 거절하고서 레드문 아카데미로 오게 만든 그 장본인.
그런 한시아와 만난 이후로 그녀의 미간은 좀처럼 펴질 생각이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블루 게이트에 진입해 돌아오지 못했을 때, 그녀는 한강진의 권유로 어느 한 젊은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그 부부는 바로 현재 한시아의 부모님이었다.
그들은 매우 몸이 약한 딸을 거의 병원에서 키우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한강진이 어린 한설화를 데리고 와 제 아들과 며느리에게 소개를 하며 입양을 권유한 것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의 그녀였지만, 일찍 철이 들었던 한설화는 친부모의 죽음에 가슴이 뻥 뚫려버린 듯한 공허함과 슬픔에 잠겨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한설화를 입양한 한성진과 김연아는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돌보며 커다란 관심과 사랑을 듬뿍 쏟아부었고, 그로 인해 한설화의 뻥 뚫려버린 가슴이 따뜻한 사랑과 추억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행복했었다.
너무나도 과분한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는 행복한 생활이 1년간 이어지더니, 곧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왔다.
쥐죽은 듯이 병원에서 평생을 살고 있던 작은 소녀가 이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 소녀는 바로 자신의 의붓 여동생인 한시아 그녀였다.
한설화는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함을 애써 무시하며 처음 보게 된 자신의 여동생을 꽉 끌어안으며 환영해줬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하지만 한설화의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태어나면서부터 7살이 되던 그 날까지 병원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몸을 가졌던 한시아가 이제는 일상생활 정도는 가능하게 됐다며 의사가 소식을 알려왔기 때문이다.
자신과 한 살 차이가 나는 여동생은 매우 낯가림이 심했고, 소심했으며 착해빠졌다.
그리고 태어났을 때부터 선천적으로 소리를 낼 수 없는 성대를 가지고 태어났다.
장애인이라고 생각했다.
결코, 그녀가 사랑스럽다거나 귀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만 쏟아지던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가로채 가는 도둑고양이로 보였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병원 생활을 보낸 한시아가 7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들의 품에 안기자, 부모님은 그 오랫동안 못 주었던 사랑을 전부 주려는지, 항상 말끝마다 한시아의 이름을 붙이고 살았다.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동생이라는 이유로, 같잖은 이유들을 들먹이며 항상 자신보다 한시아를 먼저 챙기는 부모님들이 미워졌다.
하지만 비록 어릴지라도 나약하지 않았던 한설화는 검술과 마법을 매일 같이 죽도록 연습하며 부모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노력들을 했다.
그리고는 아주 당당히 세상에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었고, 이 좁은 나라가 들썩일 정도로 많은 이들이 열광하며 환호했다.
쓸데없었다.
한설화가 바랬던 건 부모님의 온전한 관심과 사랑이었지만, 부모님은 잘했다는 말과 함께 절반의 사랑만을 그녀에게 주었다.
지쳤다.
아무리 그 어떤 노력을 해도, 그 어떤 업적을 세워도 부모님들의 완전하고 온전한 사랑을 관심을 독차지할 방법은 없었다.
한시아 그녀가 죽기 전까지는...
그렇게 1년…. 2년…. 10년이 흐르도록, 한설화는 그녀가 만족할만한 사랑을 끝내 얻지 못했고, 그에 대한 절망과 분노는 다름 아닌 한시아에게로 쏟아지며 터져 나왔다.
스무 살이 된 직후, 한설화는 집을 나서며 자신의 여동생인 한시아의 왼쪽 눈을 아주 깊게 베어버리고선 떠나가버렸다.
원래는 목을 베어버리려 했지만, 그렇게 한다면 부모님이 너무 슬퍼하실 것 같았기에 눈 한쪽으로 끝냈다.
그렇게 한설화는 문득 떠오른 옛날의 기억들을 떠올리고선 다시 한 번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더는 마력 훈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시아..... 두 번 다시 너에게 그 무엇도 빼앗기지 않을 거야...그 무엇도.`
아니, 오히려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라고 다짐한 한설화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새하얀 수건을 들고 대기하고 있는 호위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한설화가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파도가 일렁이듯이 춤을 추며 출렁거렸다.
스포츠브래지어를 입고 있는 그녀는 상체의 반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뽀얀 숨결을 바라보고 있던 호위대의 남 훈련생들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었다.
출렁출렁.
어느새 그들의 앞에 도착한 한설화가 맨 앞에서 자신을 향해 수건을 내밀고 있는 김민철을 바라보았다.
그는 일전에 한시아와 함께 행동하던 사이비라는 남 훈련생과 마찰을 빚은 적이 있는 A 클래스의 훈련생이며, 열렬한 자신의 추종자이기도 했다.
터업.
한설화는 자연스럽게 그가 준 수건을 받고선, 고도의 집중력으로 인해 흘러나온 몸의 땀을 살살 닦기 시작했다.
희고 가느다란 목선부터 조금의 움직임만으로도 출렁거리는 가슴과 가슴골까지 천천히 닦아내고 있던 그녀는 자신이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두 눈을 자신의 가슴에 고정한 김민철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벌레 같은 놈...`
그의 두 눈에 담긴 더러운 욕정은 보기만 해도 질렸으며, 마치 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듯한 더러운 기분을 그녀에게 선사했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는 않았다.
하등한 그 무엇에게 일일이 감정을 소비하며 무의미한 행동을 할 수 없었기에….
"......따라오지 마."
그게 전부였다.
이들은 나의 한마디에 죽고 사는 멍청한 하루살이였으니까, 긴말은 필요 없었다.
그렇게 한설화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는 그들을 내버려둔 채, 자신의 유일한 취미를 즐기기 위해 그 빵빵하고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씰룩이며 천천히 훈련실을 빠져나갔다.
※
【...하아... 시간 아까워 죽겠네.】
나는 짜증이 잔뜩 담긴 전음을 한시아에게 보냈다.
【....그, 그러게요...이 황금 같은 주말 아침에 동아리 모, 모임이라뇨...저, 정말 아카데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흐헤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해라…….
누가 봐도 기분이 좋아....아니, 한껏 들뜬 기색이 역력한 한시아였다.
계속해서 쫑긋거리며 살랑이는 두 귀와 바닥에 먼지를 쓸듯이 빠른 속도로 살랑거리는 복슬복슬한 꼬리는 누가 봐도 그녀가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부러 천천히 한시아의 뒤에서 걷고 있던 나는 쉴 새 없이 씰룩거리는 그녀의 엉덩이를 보며 침을 삼키다 보니, 어느새 목표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동아리고 나발이고....씨발... 확 덮쳐서 깔아뭉개고 싶네...
【자, 그럼 문 열게요오오?】
한시아 특유의 말투로 전음을 보내온 그녀는 손에 힘을 주어, 책과 다도라는 동아리명을 가지고 있는 동아리의 부실 문을 확 열어젖혔다.
드르르륵.
꽤나 아날로그적인 문소리가 들리면서 동아리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고, 나와 한시아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마주하고선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로 굳어있었다.
........저, 저년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건데?
내가 느낀바, 한시아와 굉장히 사이가 안 좋은....아니, 불편한 사이였던 것 같은 한설화가 동아리 부실에 홀로 고고하게 앉아있었다.
덜덜덜덜...
나의 배와 가슴에 닿은 한시아의 등에서 제법 커다란 떨림이 전해져왔다.
".....아이...씨....쯧....나와. 동아리는 무슨...걍 하지마..귀찮아 죽겠네..."
나는 최대한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런 동아리 따위는 애초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하지만 한시아 그녀에게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한시아는 점점 더 심하게 몸을 떨며 자신의 왼쪽 눈을 가린 안대에 그 희고 고운 손을 갖다 대었다.
또다…. 또 그때처럼 겁먹은 강아지처럼 미련하게 행동하는 한시아를 보고 있으니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야. 따라 나와."
나는 더는 한시아를 한설화와 같은 공간 안에 둘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렸고, 그 즉시 그녀의 손을 잡고서 걸어왔던 길을 돌아가려 하는 찰나.
"........앉아."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한설화가 그 매끄러운 각선미를 자랑하는 다리를 꼬고서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았냐? 어따대고 명령질이야?"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었다.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은 한시아 덕분에 텐션이 낮아진 상태에서 나와 한시아를 내려다보듯이.....아니, 이건 마치 인간 이하의 무언가를 보듯이 바라보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설화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
한설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지그시 한시아를 바라보고 있을 뿐.
【따라 나와. 갑자기 마법 연구회에 들어가고 싶어졌어. 아직 늦지 않았....】
【.......드, 들어가요....괘, 괜찮으니까....】
한시아는 여전히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나의 손을 잡고선 나를 이끌며 동아리실로 발을 들여놓았다.
저벅저벅.
나와 한시아의 발소리 외에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와 한시아가 한설화 그녀와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자 여태껏 아무런 감정도 전혀 드러나지 않던 한설화의 얼굴에서 아주아주아주 작은 미묘한 표정변화가 일어났다.
나의 얼굴은 한시아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일미와 이미는 한설화를 아주 집요하고 세세하게 바라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뭐,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스윽.
한설화의 고개가 아주 살짝 움직이며 나와 한시아가 맞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는 것을 정확하게 일미의 눈으로 포착해냈다.
......호오...? 요년봐라...
한시아와 한설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한설화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하아....왠만해선 이 능력 안 쓰고 싶었는데... 관음중 환자가 된 것 같다니까.....큭...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곧 얼음인간 같은 차가운 표정과 분위기를 지닌 한설화의 마음속을 읽어낼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네가 그렇게 얼음공주 코스프레 해봤자....나는 안 속는단 말이지.....너의 그 차가운 심장을 하나도 빠짐없이 쏙쏙 파헤쳐줄 테니까, 딱 대 이년아.
【뱀의 심안】
나의 두 눈이 잠깐 지끈거리는 고통에 찌푸려졌고, 그것도 잠시 나는 내 머릿속에 들려오는 한설화의 속마음을 듣고선,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미친년.....그녀는 미친년이었다.
.......이, 이거 완전 미친년 아냐.....또라이 같은 년......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