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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 아카데미의 NTL 왕이 되다-16화 (16/102)

〈 16화 〉 15화. 한강진.(2)

* * *

"사이비라고 했나...? 하하....우리 아직 계산할 게 남았잖아? 그치?"

나의 몸속에 흐르는 차가운 피가 얼어붙는 듯 했다.

냉혈인이 아닌 빙혈인이 되는듯한 소름 돋는 감각에 쉴 새 없이 나의 이마에서 굵은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하, 하하...계, 계산이요오오??"

너무 긴장한 탓인지, 끝 음을 질질 끄는 한시아 특유의 말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풉!! 푸흐흐흣...】

머릿속에서 한시아의 전음이 들려왔고,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그래. 계산 말일세. 몇 일 전 어떤 찢어 죽여도 모자랄 개 벌레 잡종 성욕에 뇌를 지배당한 머저리가 나의 손녀를.....강...간...!! 크흠...입에 담기도 더러운 말이군. 아무튼, 나의 손녀에게 그 더러운 손을 뻗친 녀석이 있지."

".......하, 하하.....그, 그래요오오..?"

나는 당장에라도 손에 잡히는 누군가를 찢어 죽일듯한 한강진의 눈빛을 마주하지 못하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이 상황이 웃긴가 보지? 나의 손녀가 그런 더러운……."

"아, 아닙니다!!"

나는 몸을 흠칫 떨며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미 한강진은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듯했으니, 더 이상의 발뺌은 무의미했다.

.......뭐, 뭘 해도 죽겠지만, 이, 일단 대가리부터 박고...아니, 그랜절을....

어떻게 하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을 마친 나는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이사장님의 귀여운 손녀를 가, 강간 했...."

【임신이요!!】

나는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나의 죄를 고하고 있을 때, 들려온 한시아의 목소리에 의식의 흐름대로 그녀의 말을 필터링도 거치지 않은 채, 그대로 따라 말했다.

"이, 임신시키겠습니다!!!"

"............."

".............자, 자네 지금 뭐, 뭐라고....?"

"...네, 네? 이사장님의 귀여운 손녀를 임신 시키겠.....허억!! 읍!! 읍읍!!! 죄, 죄송합니다! 너, 너무 긴장해서 실수를...."

"........자네, 진심인가...?"

"네...네...진심으로 바, 반성하고..."

"좋네!! 그런 더러운 강간마와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며 나의 손녀를 지켜낸 녀석이니, 믿어도 되겠지...흠흠!! 그나저나……. 언제부터 좋아 한겐가? 둘은 이제 고작 만난 지 3일 일 텐데...?"

......이상했다.

분위기가 너무나도 이상했다.

나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한강진의 눈 속에는 나를 향한 신뢰와 귀여운 손녀를 빼앗겼다는 패배감이 섞여 있었다.

특히,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완벽하게 숨기지 못한 꽤나 들뜬 한시아의 얼굴이 나에게 너무도 이상한 기분을 선사했다.

"...내 말이 안 들리는 겐가? 언제부터..."

이판사판 개판, 공사판,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뛰어다니는 목숨을 건 굿판이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긴급하게 돌아가는 긴급 탈출 회로를 가동하며, 이 상황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씨, 씨발...일단 살고 봐야지.....

"...처, 첫 만남부터 입니다!!!! 시, 시아를 처음 본 그 순간...사, 사랑에 빠졌습니다!!!"

.....씨발... 사랑은 무슨.....한시아를 강간하고 싶다는 충동에 빠졌지....

나는 한강진의 눈빛을 당당히 마주한 채, 단단한 목소리로 크게 외쳤고 한강진은 그런 나를 아주 매서운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으으.....눈빛에 몸이 꿰뚫릴 것만 같아....

그 순간.

"좋네!! 으하하하하!!! 보통 사랑의 힘이 아니구만!! 아무리 조절을 했다지만, 나의 마력을 뚫고서 그렇게 큰 목소리로 사랑을 외치다니 말이야!!"

.......사, 사랑의 힘 같은 게 아니야!!! 이 노인네야!!! 나는 지금 나의 목숨을 걸었다고!!! 씹....

"아...가, 감사합니다....하, 하하...."

"흠흠...!! 그래 자네의 마음은 확인했으니, 더 이상 젊은이들 연애에 간섭하지는 않겠네! 하지만....고운 내 손녀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한강진은 말을 잠시 멈추더니, 살벌한 눈빛과 함께 어마어마한 마력을 내뿜었고 그의 마력에 담긴 힘에 의해 이사장실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아주 거세게 흔들렸다.

­ 투콰콰아아아아!!!!

"내 모든 걸 걸고 맹새하지...절대 자네를 가만두지 않을 것일세."

­ 고오오오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것을 갈아 마셔버릴 듯이 주변을 향해 흉포한 기운을 내뱉던 마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꿀꺽.

간신히 목울대를 움직여 침을 삼킨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연신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자네는 이만 돌아가 봐도 좋네…. 아, 참! 그 더러운 강간마를 죽인 것은 눈감아줄 테니, 걱정하지 말게."

나는 축객령을 내리는 그의 말에 후들거리는 다리에 겨우 힘을 주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고개를 꾸벅 숙여 천천히 이사장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이사장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는 순간.

".....결코, 내 말을 잊어선 안 되네."

나는 순간적으로 "조, 존명!!" 이라고 대답할뻔한 입술을 틀어막고선,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인 뒤 이사장실을 빠져나왔다.

사이비가 이사장실을 나간 직후, 한강진은 나직한 한숨과 함께 자신의 두 손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의 손녀인 한시아와 손녀였었던 한설화를 바라보았다.

스무 살이 되어 성인이 되자마자, 자신 스스로 호적을 파내 남이 되어버린 한설화였지만, 한강진은 그녀를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설화는 여전히 자신의 귀여운 손녀였다.

두 손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건 순전히 한설화 그녀가 대화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 후우우...

한강진의 입에서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지만, 그는 곧 결연한 눈빛과 함께 두 손녀를 바라보며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한편, 까딱 잘못했다간 한강진의 손에 능지처참을 당할뻔했던 나는 이사장실을 빠져나온 뒤, D 클래스를 향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는 했는데.....이제 어쩌지...? 이사장 앞에서 그런 말을 내뱉었으니……. 조금만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바로 죽이려들 것 같은데..."

­ 하아..

멍청했다.

한강진이 내뿜는 강대한 마력과 내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공포심 때문에 터무니없는 말을 뱉어버린 상황...

".....씨....발.. 도둑놈이 제 발 저린 꼴이네."

아직 이병찬의 그녀들을 마주치지도 못한 상황에서 제대로 코가 꿰였다.

물론, 그녀들 중 한 명인 한설화와는 마주했지만….

"아....모르겠다... 한시아가 돌아오면 얘기를 해봐야겠어."

결론을 내린 나는 쓸데없이 밀려드는 복잡한 생각에 얼굴을 찌푸리고선,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하지만 한시아는 오늘의 강의가 모두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몇일을 내리 결석한 그녀의 상황에 나는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못 이기고는 이석훈에게 한시아에 대한 소식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몸이 안 좋은 관계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전부였다.

".......씨발...감히 말도 없이.....쯧."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의 깊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불안한 감정이 고개를 들며 나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그렇게 그녀는 일주일이 넘도록 레드문 아카데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평상시에 텔레파시 사용을 해준다는 조건으로 내걸었던 그녀와 나의 약속 날짜가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 하하... 뭐, 뭐냐...나 지금 먹버 당한 거?"

그녀가 없는 동안 나의 생활은 아카데미의 주 활동시간 대인 오전부터 오후까지는 밀린 잠을 보충하는 게 전부였고, 아카데미가 끝나면 곧장 훈련실로 들어가 자정이 넘어설 때까지 훈련만 하며 보냈다.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녀에 대한 분노가 착실하게 나의 훈련을 도와주었고,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또한, 나에 대한 D 클래스 훈련생들의 인식이 상당히 많이 변해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를 항상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바라보던 녀석들이 이제는 제법 나에게 다가오며 몇 마디씩 말을 걸기도 했다.

그리고 D 클래스의 먹이사슬 정립 결과는 당연히 내가 1위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팀을 이뤘던 한시아는 당당하게 2위를 차지했다.

이석훈의 말로는 바람 마법을 다루는 마력 활용 수준이 상당히 수준급이라고 말했다.

­ 쉬이이이익!!!

­ 콰아아아앙!!!

일미와 이미로 내려친 훈련실의 벽에서 큼지막한 돌덩어리와 돌가루들이 우수수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오늘은 이쯤 해둘까?"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을 10분 남기고 있었다.

나는 땀으로 번들거리며 끈적이는 내 몸을 바라보고는 훈련실에 마련된 샤워실로 향했고, 따뜻한 물로 훈련으로 인해 쌓여있던 땀과 먼지, 피곤함을 씻어냈다.

그리고는 훈련실 건물을 벗어나 기숙사로 향하는 도중….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나름 애타게 찾아다니던 한시아가 내 눈앞에 떡하니 서 있는 게 보였다.

".........하아 .....뭐냐. 너?"

나는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안도감과 기분을 애써 누르며 무표정을 유지한 채 물었다.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한시아에게 나름대로 열이 받아있던 나는 그녀와 나를 연결하고 있던 텔레파시를 끊어버렸기에, 그녀는 촤악 가라앉은 눈빛으로 천천히 수화를 하기 시작했다.

..........씨발....백날 그러고 있어봐라. 내가 알아듣기나 할 것 같아?

­ 저벅저벅

나는 수화를 하고 있는 그녀를 잠깐 바라보고선, 시선을 떼었고 일부러 천천히 발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그리고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한설화의 표정을 떠올리고선, 최대한 한설화와 똑같은 표정을 흉내 내며 한시아의 곁을 지나쳤다.

"......!!!"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무표정으로 한시아의 옆을 지나가자, 매우 놀란 그녀가 커다랗게 떨리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일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나는...

........쯧...아 좆같아.....

그녀를 만나면 똑같이 버려지는 느낌을 돌려주겠다고 찌질한 다짐을 한 나는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어째선지 모르게, 그런 순간이 왔음에도 느껴지는 건 시원한 쾌감이 아닌 심장을 옥죄어오는 좆같은 기분이었다.

­ 까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내 입밖으로 흘러나갔다.

....아, 모르겠다.

빡센 훈련에 온몸이 피곤했다.

한시아고 나발이고, 잠부터 자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를 지나치며 기숙사를 향해 걸어가려던 그때.

­ 터억.

나의 손을 잡는 그녀의 작은 손이 느껴졌다.

"...........?"

나는 말없이 살짝 고개를 돌린 후에 그녀를 바라보았더니, 그녀는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다급하게 손을 움직이며 수화를 펼치고 있었다.

그때.

"내 귀여운 손녀딸을 울린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걸세." 라고 말한 한강진의 목소리가 떠오르는듯했지만, 나는 한강진의 얼굴을 대충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 두근두근.

갑작스럽게 한시아와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야... 도망가... 강제로 당하기 싫으면...."

그때처럼 머릿속에서 "저 여자를 강간해라."라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건 나의 의지고, 나의 마음이며 바램이었다.

그 순간.

­ 덥석.

나는 나의 허리를 껴안은 채, 나의 명치 사이에 얼굴을 파묻은 한시아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 도리도리.

그녀는 나에게 얼굴을 파묻고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이젠 진짜 나도 몰라.

­ 쉬이이이익.

나의 입에서 거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분명 도망치라고 했다.】

나는 점점 부풀어 오르는 나의 자지를 그녀의 명치와 가슴 사이에 갖다 대며 말했고…. 한시아는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어차피...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도망 못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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