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12화. 먹이사슬 정립.(4)
* * *
"D 클래스 훈련생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도록!!"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4개의 클래스 중에서 가장 바닥을 치고 있는 D의 의지를 가진 훈련생들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흔들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D의 모습에 다른 클래스의 훈련생들이 한껏 조소를 머금었다.
"아, 이거 봐야 해? 눈만 버릴 텐데...."
"으휴...이 열등한 것들....도대체 레드문에는 어떻게 들어왔나 몰라."
"푸...푸풉!! 야, 그래도 원래 싸움은 좆밥들 싸움이 제일 재밌어. 크큭."
무대로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반응이 쏟아져 나왔고,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말하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D의 훈련생들은 점점 더 위축되어가고 있었다.
하긴..... 나 같아도 이런 한심한 모습을 봤다면, 똑같은 소릴했겠지....쯧쯧..한심한 새끼들...
혀를 차며 적당한 위치에 걸음을 멈추고서 자리를 잡았다.
이제 교수님의 시작 선언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됐는데....
【.......너 거기서 뭐하냐?】
나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심호흡을 하는 한시아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네, 네...? 뭐, 뭐하다니요...? 저,, 전투 준비 하는데요오오...??】
【아니, 그러니까...왜 내 옆에 자리를 잡냐고, 제일 먼저 죽고 싶은 거야?】
나의 냉랭한 말에 그녀는 뾰로통한 표정을 짓더니, 짐짓 기분이 상한듯한 얼굴로 말을 툭 던져놓았다.
【....흥! 그게 아니라, 팀을 맺자는 제안을 하려고 그런거거든요오?】
【....글쎄....딱 봐도, 전투에 소질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나는 이전에 보았던 그녀의 상태창을 떠올리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마력은 굉장히 높긴 했지만, 그 외에 모든 능력치는 꽝이었지….
【누, 누가 전투에 소질이 있대요?! 사이비님이 저를 지켜주시면, 제가 뒤, 뒤에서 사이비님을 지원할....】
【지원? 뭐, 버프라도 걸어주겠다는 거야?】
【....마, 맞아요....저, 저의 속성은 바람이에요....바람 마, 마법이 지원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그리고...또 저는....우, 운명이라는 고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이 능력은 제 마음대로.....】
더 들어볼 것도 없었다.
유일하게 졸지 않은 마법학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으로, 속성 중에서 가장 지원에 최적화되어있는 원소는 바람과 빛이라는 얘기를 들었었다.
.....바람과 독의 조합이라..... 밑질 건 없어. 어차피..한시아를 죽이는 것은 벌레를 밟아 죽이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으니, 한 번 해보자.
【좋아. 잘 부탁해. 파트너.】
【....저, 정말요?! ...우우.... 아, 알겠어요! 저야 말로 잘 부탁....】
"D 클래스의 먹이사슬 정립을 시작하겠다!!! 모두 싸워라!!!"
한시아가 전음을 마치기도 전에 교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D의 훈련생들이 하나둘씩 형태를 변화시키며 수인과 라이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나의 뒤에서 잔잔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지자 뒤를 돌아본 그곳엔 어느새 수인족으로 변해있는 한시아가 보였다.
그녀는 새하얀 백발 위에 토끼의 귀처럼...아니, 사막여우의 귀 같이 커다랗고 넓은 하얀 귀가 생겨났으며, 꼬리에는 복슬복슬 두툼하고 풍성한 하얀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 그런지, 나는 잠시 정신을 집중하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온통 새하얀 흰 눈을 뒤집어쓴 듯한 순수함과 청초함, 깨끗함, 등등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며 일종의 죄악감을 내게 선사했다.
.......저런 퓨어한 존재를 내가 가, 강간을 했다고....?
자신의 귀와 꼬리가 어색한지, 두 손으로 두 귀와 꼬리를 만져보며 어색한 웃음을 짓는 그녀였다.
........아, 아름다워.......
【다, 다시 한 번 더 세, 섹스를.....】
한시아의 모습에 매료가 된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나의 속마음을 그녀에게 말해버렸고…….
【꺄, 꺄아아아악!!!! 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 하시는 거에요!!!!】
한시아의 날카로운 비명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속마음에 꽤나 당황했다.
괜히 오른쪽 볼을 한 번 긁고서 그녀에게 머물러 있던 시선을 떼었다.
.....워, 원래 저랬나...? 뭐, 뭔가.....커진 것 같기도 한데.... 으음... 아닌가?
한시아의 수인 상태를 생각하며 묘한 찝찝함에 입맛을 다시던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이 새끼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니, 이 새끼들은 왜 자기들끼리 싸울 생각은 안 하고....
D의 나약한 의지를 이어가고 있는 훈련생들은 모두 하나같이 수인과 라이칸으로 변하고서, 천천히 나를 포위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히, 히끅!!】
그러한 그들의 매우 놀란듯한 한시아의 딸꾹질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 씨발....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아무리 모두에게 호감도가 바닥이라지만……."
괜스레 이병찬 새끼가 좆 같아졌다. 자신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이 모든 이들의 호의를 받으며 영웅이 될 운명이라니.....
"..... 아니, 오히려 잘 됐어. 세상에 나의 우수한 수컷 페로몬과 강함을 널리 알려야 했었는데...."
크르르르르...
그르르르 캬오오....
"오히려, 절호조다. 이거야.
살기가 진하게 묻어있는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녀석들이 제법 가까워졌고, 곧 녀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와 한시아를....아니, 정확히는 나 한 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이미 녀석들이 나를 포위했을 때부터, 모아둔 마력을 소모해 일미와 이미를 【산성독】으로 흠뻑 적셔놓았다.
그러자 녀석들의 새하얀 비늘이 번들거리며 광택을 내었고, 녀석들의 굵은 몸에서 【산성독】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녹이며 하얀 증기를 피워올렸다.
치이이익...
쉬이익!! 쉬이이이이...!!!
【야, 나는 됐으니까, 일단 내가 사용하는 독 속성 마법에서 네 몸이나 잘 보호해.】
독 속성의 마법은 참 사용하기가 까다로웠다.
뭐, 다른 마법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독 속성의 마법은 아주 조금 미량을 흡입하는 것만으로 피해를 줄 수 있었는데, 마법의 사용자는 피아식별을 해도 마법은 피아식별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모든 마법사들은 항상 주변의 환경과 상황들을 생각해가며 마법을 써야 했다.
생각을 마친 나는 바로 일미와 이미를 이용해 녀석들의 입에서 까무잡잡한 【독구름】을 아주 자욱하게 뿜어대었고, 그와 동시에 오른손을 들고서 다른 마법을 사용했다.
【독화살】
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마법명에 내 손의 주위로 10개의 【독화살】이 생성되었다.
캬아아아악!!!
그때, 공중으로 튀어올라 나를 덮치려는 거대 원숭이 라이칸을 향해 3개를 쏘아 보냈고, 나머지 7개의 【독화살】을 독무 속에서 달려오는 그림자를 향해 쏘아보냈다.
퍼퍼퍼펑!!!
타격데미지가 그리 강하지 않은 【독화살】은 아마 크게 타격을 주지 못했겠지만, 애초에 나도 살상을 바라고 사용한 마법이 아니었다.
그저 잠시라도, 녀석들을 돌진을 저지시키기 위함이었다.
내가 쏘아 보낸 독화살이 원숭이 라이칸의 가슴팍을 두드리며 풍선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가슴에 독화살을 직격당한 녀석이 크게 괴성을 질렀는데, 자세가 처음과는 달리 많이 흐트러져 불안해 보였다.
"가라."
나는 시꺼먼 보라색의 【독구름】을 내뱉고서 대기하고 있던 일미를 이용해 원숭이 라이칸을 아주 강하게 후려쳤다.
퍼어어억!!
캬아아우우우!!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저 멀리 날아가 훈련실 벽에 부딪힌 원숭이 라이칸에게 시선을 거둔 후, 독무를 뚫고 나에게 짐승의 아가리를 들이미는라이칸들을 마주했을 때.
【바람의 힘, 바람의 가호, 바람의 축복!! 그리고 전 바람을 이용해서 제 주변의 독구름을 몰아내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시아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뒤를 이어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기이한 활력과 힘이 내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게 느껴졌다.
【바람속성의 지원 마법은 일반적으로 대상자의 모든 능력치를 소폭 상승시켜주고, 속도를 대폭 상승시켜줘요!!】
......놀랍네....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했지만.... 이 정도면 합격점이야...아니, 아주 마음에 들어.
안 그래도 나는 마법 특성을 가지고 있어, 육체적인 능력이 특별할 게 없었다.
....하지만...이 정도의 지원마법이라면, 근접전을 벌여 라이칸을 압도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 녀석들의 공격은 피할 수 있겠어.
촤아아악!
"크읏....병신...전투중에 딴생각을 하다니..."
나의 얼굴을 갈라버릴 듯 휘둘러진 개의 형상을 한 라이칸의 발톱을 가까스로 피해냈지만, 완벽히 피해내지는 못했다.
주륵
나의 왼쪽 뺨에서 뜨거운 액체가 밑으로 흘러내렸다.
볼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고통에 입술을 한 번 깨물었고, 곧 나는 왼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총 모양을 만들었다.
커르르르 컹??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개새끼에게 겨눈 뒤.
"쵹!"
마법명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효과음을 입으로 내었다.
그 순간, 나의 검지 끝에서 아주 뾰족한 무언가가 쉭 하고 쏘아져 나가며 개새끼의 눈에 박혔다.
【마비독】이었다.
살상능력은 없지만, 상대방의 신경과 근육을 마비시켜, 움직임을 봉쇄하는 마법이었다.
아주 적은량의 마력으로 최대의 효율을 뽑을 수 있는 【마비독】은 상대방들을 빠르게 무력화시켜야 할 때 정말 좋은 마법이었다.
물론, 두꺼운 가죽을 피해 연약한 피부나 부위를 맞출 수만 있다면....
현재 이 곳은 일미와 이미에게서 뿜어진 【독구름】으로 인해 무대의 90% 정도가 짙은 보라색의 독무로 가려져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
나는 개의 형상을 한 라이칸이 마비독으로 인해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자, 한시아에게 "어디, 구석에 잘 숨어있어." 라고 전음을 날린 뒤, 독무 속으로 몸을 숨겼다.
"크르르르르....커헉! 크윽...어, 어서 이 독구름을 빨리 걷어내라 크르르..."
녀석들은 나의 모습을 놓치고선, 슬슬 【독구름】으로 인한 독이 올라오는지 기침을 토해내며 나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슬슬 독무가 옅어질 때 즈음, 다시 한 번 일미와 이미를 사용해 【독구름】을 사용해 거의 한 치 앞도 안보일 만큼 진한 독무를 다시 만들어내었다.
"켁!! 켁!!.....야, 빨리 바, 바람 속성 마법을 이용해서 이, 이것 좀 날려버... 으아아악!!!"
퍼어억!!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훈련생들에게 현명한 명령을 내리는 녀석을 일미로 강하게 후려쳤다.
"에이...이제부터 본방인데, 그러면 쓰나..."
씨익.
사실, 녀석들이 계속 명령하게 내버려둬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녀석들은 나의 【독구름】을 절대 몰아내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후우.....다른 바람속성을 가진 훈련생들의 마법은 제가 최대한 막아볼게요.】
안전한 곳에 몸을 숨겨, 바람을 이용해 독무가 무대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거대한 바람으로 이루어진 돔을 만들어낸 한시아가 나의 지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바람속성의 훈련생들 먼저 제거하는 게 낫겠어.`
혹시 모를 변수나, 한시아, 그녀의 마력이 언제까지 버텨줄지는 미지수였기에, 나의 【독구름】을 유일하게 카운터 칠 수 있는 바람속성을 가진 훈련생들을 모두 처리해야 했다.
"아, 아니, 씨발!!! 부, 분명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왜...안 없어지냐고...바, 바람의 흐름!!!"
연신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를 내는 훈련생들 사이에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꾸준히 바람 마법을 이용해 【독구름】을 몰아내려는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쉬이이익!!
나의 입에서 뱀의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의 독무로 인해, 나조차도 시야 확보가 어려웠지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날름
공기중에 퍼져 있는 녀석의 냄새를 나의 야콥슨 기관이 감지를 했고, 피트기관으로 인해 녀석들의 위치가 아주 훤히 보였기에....
마치 적외선 카메라나 열화상 카메라를 끼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 있었네?"
"히, 히익!!! 누, 누구...켁! 켁!! 세요..?"
대답은 필요 없었다.
퍼어억.
그렇게 바람속성 마법을 사용하는 훈련생들을 찾아다니며 처리하기를 몇 번....드디어 모든 바람속성을 가진 훈련생들을 처리했다.
"후우....슬슬 마력이 아슬아슬한데? 얼른 끝내야겠어."
씨익.
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하급 독 속성 마법】에서 가장 마력 소모가 크며, 다수와의 싸움에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마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광기의 환각."
마법명이 흘러나왔고, 나의 왼손에서 연보라색의 음울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이곳을 꽉 채우고 있는 【독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제발 날 실망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을 내뱉은 나는 다시 일미와 이미를 휘두르며 D의 훈련생들을 무자비하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