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4화. 한시아
* * *
【독화살】을 한 번 더 사용해서 나름대로 사용방법을 익혀가던 나는 그다음 마법인 【산성독】을 사용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독화살】때와는 다르게 오른손 한곳에 마력의 흐름이 집중되는 게 아니라, 마력의 흐름이 나의 전신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과는 다른 마력의 흐름을 느끼고선 조금 당황했지만, 마법마다 모두 사용방법이 다르며 필요한 마력의 양이 다르기에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분명히……. 분출하거나 내 신체에 뒤덮을 수 있다고 했는데.
"우선 먼저 분출시켜보자."
생각을 마친 나는 전신에 퍼져있는 마력을 오른손으로 집중시키고는 【산성독】을 사용했다.
그러자 쭉 뻗은 나의 손바닥에서 작은 블랙홀 같은 구멍이 생기더니, 그곳에서 콜라와 멘토스가 만날 때 생기는 현상처럼 거뭇거뭇한 초록색의 액체가 정면을 방사하듯이 뿜어져 나왔다.
치이익...
【산성독】은 5m 이상을 날아가고선 후두둑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고, 곧 무언가 타는 메케한 냄새와 함께 하얀색 증기를 만들어내었다.
".....오우.....좋은데?"
직접 맞아보지는 않았지만, 【산성독】에 직격당한다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생살이 타들어 가며 녹아내리는 고통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씨익
"아주 마음에 들어."
좋은 마법인 것 같았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무엇보다 상대방에게 확실한 고통과 공포를 각인시킬 수가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제 신체에 산성독을 둘러볼까…? 설마...내 마법에 내가 피해를 받진 않겠지...?
마법 설명에 자신의 신체를 뒤덮을 수 있다고 하니, 괜찮을 것이다.... 아마도.
반신반의하며 【산성독】을 사용하기 위해 전신에 마력을 고르게 퍼트린 나는 쉬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멀뚱히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나의 꼬리에 시선을 던졌다.
".....너도 내 신체의 일부잖아?"
고민은 필요 없었다.
전신에 곧게 퍼트린 마나를 두툼한 꼬리에다 집중시키기 시작했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마력을 발현시켜 【산성독】을 사용했다.
그러자 분출할 때와는 다르게 새하얀 비늘을 자랑하던 나의 꼬리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비늘의 틈 사이사이에서 조금 전의 【산성독】의 거무튀튀한 초록색의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흘러나온 액체는 나의 육중한 꼬리를 따라 계속해서 바닥으로 흘러내렸고, 산성독이 닿는 곳에서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증기가 올라왔다.
물론,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대충 보니까, 근접전이 특기인 상대를 카운터치는 마법인 것 같은데....아니, 애초에 마법 특성을 가진 내가 근접전으로 간다면 좋지 않아..."
그런 생각을 하며 고민에 빠져있을 때, 【산성독】을 흠뻑 뒤집어 쓴 나의 꼬리가 새빨간 혀름 날름거리며 내 얼굴에 바짝 다가왔다.
"......혹시?"
나는 길라잡이 튜토리얼에서 봤던 【뱀의 머리】라는 고유 능력을 떠올리고선, 바로 상태창을 열어 【뱀의 머리】의 능력을 확인했다.
【뱀의 머리】
신체의 어떤 부위라도 뱀의 머리를 만들 수 있다. 길이부터 굵기, 모양까지 자신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대충 보면 별로 대단할 것 없는 것 같지만, 길이부터 굵기, 모양까지 자신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글씨를 매섭게 노려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어쨌든 꼬리이기도 하고...뱀의 머리이기도 하니까, 되지 않을까.....?
되면 좋은 것이고, 실패한다고 해도 괜찮았다.
나는 훈련실의 벽을 바라보고는 이내 꼬리에 단단히 힘을 주고서 그대로 스트레이트로 주먹을 꽂아버리듯 뱀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꼬리로 강하게 꽂아버렸다.
콰아앙!!!
".......!!"
묵직한 진동이 짧게 훈련실을 뒤흔들었고,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한 꼬리를 이용한 공격에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움푹 들어가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강했다. 아직 다른 녀석들의 힘을 보지는 못했지만, 절대 약한 수준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쉬이이익!!
분명 무지성의 꼬리이건만, 마치 "나 어때? 존나 세지?" 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나를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리는 녀석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어줬다.
".....뭐지? 무지성이 아닌 건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헷갈리게 하네..."
뭐가 됐든, 좋았다. 꼬리를 이용해 공격과 방어를 함과 동시에 마법을 이용해 싸우면 될 것 같았다.
그때.
【마력이 상승했습니다.】
머릿속에서 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오....이렇게 마력이 오르는구나....재밌네...재밌어."
빈말이 아니었다. 내가 살던 지구에서는 초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재미없는 세상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도 아니고, 평범한 인간이었던 내가 이런 강력한 마법과 크리쳐의 힘을 사용한다는 게 너무 재밌었다.
"이병찬 이 양아치 새끼가...이 세상으로 와서 이런 힘을 얻고서 영웅이 돼서 수많은 여자를 따먹는다고? 어림도 없지...씨발 새끼.."
그 후로 나는 【독구름】 마법을 사용해보고선, 꼬리에 【산성독】을 두른 채 【독화살】을 사용하며 가상의 적을 만들어 전투 훈련을 반복했다.
그렇게 3시간가량을 훈련에 매진하자, 나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생각해보니까, 이곳에 와서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나는 훈련으로 인해 땀에 전 제복을 보고선 인상을 찌푸렸다.
"우선...뭐라도 좀 먹어야겠어……."
의식하게 되자 거대한 허기가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는 오늘 아카데미를 둘러보다가 훈련실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편의점이 생각났다.
어.....그나저나 내가 돈이 있나? 어떻게 사서 먹지...?
나의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매일 가지고 다니던 지갑이 이곳엔 없었기 때문에 매우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레드문 아카데미에서는 아카데미에 속한 모든 훈련생에게 한 달에 400만 원이라는 생활유지비를 주고 있습니다. 사이비님이 차고 계신 팔찌를 이용해 결제하실 수 있습니다.】
휴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는 400만 원이 들어있는 팔찌를 슬쩍 쳐다보고선 그대로 훈련실의 출입구를 열어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겨 하늘색의 간판이 환하게 켜져 있는 편의점에서 먹기 간편한 샌드위치를 2개 사고서, 편의점 앞에 늘어져 있는 간이 테이블에 앉았다.
우적우적 우걱우걱
짧은 시간 안에 샌드위치를 모두 해치운 나는 오늘 있었던 훈련이 20년의 내 인생에서 손꼽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고아로 살며 이병찬의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의미도 없는 삶을 살아왔던 나는 삶에 대해 별다른 의욕이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서 알게 된 하린과 교제를 시작하자, 20년간의 무의미한 인생이 차츰차츰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았다.
사실, 하린에 대한 감정이 정확히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녀와 있으면, 마음속 무언가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이었는지,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은 추악한 발버둥이였는지, 그저 호기심이었는지...
후우.....
"잘 모르겠어…."
이렇듯 나는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이 뭔지도 몰랐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다.
그건 바로...그녀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생각해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생처음 내게 호의로 다가온 그녀는 나의 마음 한 켠에 자리를 잡았고, 나의 물건…. 아니, 나의 소중한 무언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쓰레기 같은 이병찬에게 능욕을 당하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
하린의 생각이 갑자기 물밀 듯이 치고 올라오자,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
속에서는 화가 들끓기 시작했고, 만약 이병찬이 살아있더라면 몇 번이라도 그의 목과 심장에 칼을 쑤시고 찔러서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그 쓰레기 새끼는 이미 내 손으로 죽였지....하지만...!!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지. 큭.
나는 전력질주라도 한 듯이 세차게 두근두근거리는 심장에 손을 갖다 대고서 혀로 입술을 훑었다.
"너에겐 그녀들이 남았고, 우린 아직 계산할 게 남았잖아…. 응? 그치, 병찬아? 네가 내 것을 부쉈으니까, 나도 너의 모든 걸 부숴줄게."
저벅저벅
당장 내일부터가 아카데미 생활의 진짜 시작이었으니, 일찍 자두는 게 좋았다.
하루 동안 이병찬과 그의 패거리 4명을 모두 죽이고서, 이병찬의 운명을 빼앗아 차원 이동을 한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으으……. 적당히 할 걸 그랬나…."
거기에 훈련으로 쌓인 피로까지 섞여서 몰려오니, 당장에라도 내 방에 있는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피곤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왔던 길을 돌아가며, 기숙사로 향하던 찰나.
아카데미의 출입구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골목길에서 거친 욕설을 내뱉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씨발년이!! 누가 죽이기라도 한데? 말도 못하는 좆같은 장애인년이 뒤질라고!!!"
욕설의 수위가 굉장히 높았고, 목소리에 담긴 흥분도 또한 굉장히 높았다.
"으음?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나는 최대한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욕설이 들려오는 골목길을 향해 다가갔다.
기숙사에 걸려있는 통금시간 때문인지, 아카데미 주변은 매우 조용했고 주변에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선 아무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랬지!! 이 씨발 장애인 새끼야!!"
짜아악!!
거친 욕설과 함께 살가죽을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로 보아 100%...아니, 1000000% 뺨을 때리는 소리가 확실했다.
부우욱! 부욱!!
어느새 골목길에 거의 도착한 나는 무언가가 찢기는 소리와 계속해서 거친 말을 내뱉는 남성의 목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분명……. 들은적이 있는 목소리야.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골목길에 도착하자, 고개만 살짝 내민 채 골목길 안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 다 했더니……. 까만 덩어리 새끼구나."
누군가를 향해 욕을 내뱉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늘 D 클래스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던 새까만 덩어리 새끼였다.
"꼭 병신들은 어딜 가도 그렇게 병신 티를 내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나는 덩어리에게서 시선을 떼고서, 녀석에게 깔아뭉개진 채 한쪽 눈으로 진주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주 새하얀 백발과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오고 가며 지나쳤던 여성들과 달리 굉장히 깡 마른 몸매를 소유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는 신체 곳곳에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백발과 깡 마른 몸매, 붕대, 마지막으로 왼쪽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안대까지 합쳐지니 누가 봐도 병약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부우욱!!
덩어리의 손이 안대녀의 하얀 티셔츠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며 찢어버렸고, 뜯겨나간 옷의 사이로 새하얀 그녀의 피부와 순백의 브래지어가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아...하악.....씨, 씨발년...가슴은 작아도 존나 섹기 쩌네....하아!!"
덩어리 새끼는 잔뜩 흥분했는지, 아주 다급하게 자신의 허리띠를 풀며 바지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안대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분명 표정이나, 흘리는 눈물을 보면 강간당하는 것 같은데….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거지?
보통 여성이 이런 일을 당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외치는 게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하지 마세요!!!" 와 비슷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그때.
"크흐흐흐...이 씨발년아...사실은 너도 좋은 거지? 이 우람한 자지 좀 봐라!! 어때? 크흐흐흐...아 참!! 장애인년이라 말도 못하지? 크크크…. 신음소리를 못 듣는 건 좆같지만, 그래도 뭐 이렇게 삐적 마른년이면 조임은 좋지 않겠어? 크크크"
녀석은 말을 하며 뜯긴 옷 사이로 자신의 시커먼 손을 집어넣었고, 곧 아주 작은 사이즈의 순백의 브래지어 속에 자신의 손을 집어넣었다.
"크흐!! 으허....걸레 같은 년 조그마한 게 있을 건 다 있네! 왜 이렇게 말랑말랑 한 거야? 크크크"
덩어리 새끼가 안대녀의 가슴을 주무르든, 말든 녀석의 목소리는 지금 내게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내게 들려오는 목소리라고는...
『으흐흑....제, 제발 그만해!!!』
『제, 제발....누, 누가 좀 도와주세요!!! 흐흐흑...』
『시, 싫엇!! 제, 제발 좀.... 아, 안 돼!! 도와주세요!! 제발... 제....』
울음기가 가득한 여성의 목소리가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의 속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고, 덩어리 새끼의 밑에 깔린 그녀가 하린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하......마침 잘 됐어... 이 좆같았던 기분을 어따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응? 참 타이밍이 좋네? 응?"
나는 참으려 해도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누르지 못하고 흘리며 녀석을 향해 걸어갔고, 내 꼬리에서 쉬이익! 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