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3화. 레드문 아카데미
* * *
기숙사를 향하는 남학생들의 뒤를 따라 걷던 나는 복도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서 밖을 바라보았다.
"......장관이네."
나도 모르게 진심 어린 감탄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보기만 해도 아주 시원해 보이는 에메랄드빛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꽤나 큰 도시가 보였다.
그리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표정을 지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고 있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풋풋한 분위기가 이 도시를 감싸는 것 같았다.
"지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다른 것 같기도 하고....도대체 이곳이 어디지..?"
그 순간.
【NO.198231241차원은 사이비님이 떠나온 지구와 굉장히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차원입니다.】
의아함이 담긴 나의 혼잣말에 반응한 듯 머릿속에서 길라잡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인공지능인 건가? 뭐, 됐어. 우선 이곳에 대해 좀 알려줘."
나는 말을 하며 창문 밖의 풍경에서 눈을 뗀 뒤, 발걸음을 옮겼다.
【NO.198231241차원은 보통의 다른 이세계와는 달리, 마법과 크리쳐의 힘이 공존하는 세계입니다.】
".....마법은 알 것 같으니까, 건너뛰고 크리쳐...? 크리쳐에 대해서 알려줘."
【크리쳐는 이 차원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난 힘을 의미합니다. 태어나면서 정해지는 특정 동물의 힘을 일부 사용할 수 있으며, 자신의 특성에 따라 인간과 동물을 섞어놓은 수인족의 외형이 되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을 섞어놓은 라이칸의 외형이 되기도 합니다.】
"수인족? 라이칸? 보다 인간에 가까우냐 아니면, 짐승에 가까우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건가?"
나는 알쏭달쏭한 길라의 말에 설명을 요구했고, 길라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보통 수인족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특성은 마법이며, 라이칸의 외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특성은 신체 강화가 일반적입니다.】
"으음...나는 특성이 마법이었으니까, 수인족에 포함이 되는 건가? 이게 수인족의 모습이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보통 뱀의 크리쳐를 가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수인의 형태입니다.】
"그래? 그런데 아까 우리 반에 있던 녀석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모두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거야? 설마.... 우리 D 클래스의 녀석들은 모두 평범한 인간인 거야?"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크리쳐의 힘을 지닌 학생들이었습니다. 수인이나 라이칸의 형태를 유지할 시 지속적으로 마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다니는 게 일반적입니다만, 마력의 양과 질이 뛰어나며 마력과의 친화력이 좋은 사람의 경우, 수인이나 라이칸의 형태를 마력의 소모가 없이 24시간 내내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럼 나는 후자에 속하는 거네? 지금도 이렇게 꼬리인지, 뱀의 머리인지 모를 것을 항시 달고 다니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게 길라와 얘기하며 걷다 보니 기숙사에 도착했고, 나는 내 손에 들려있는 207호라 적힌 키카드를 슬쩍 보고선 2층으로 올라가 나의 방 앞에 섰다.
띠로링
키카드를 갖다 대고 방안으로 들어온 나는 앞으로 내가 사용하게 될 기숙사의 방을 둘러보았다.
아주 깔끔해 보이는 신축 원룸 같은 고급진 느낌에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나는 매우 푹신해 보이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엄청 푹신하네. 레드문 아카데미라고 했었지? 돈이 썩어나나 보네. 일개 학생에게 이런 고급스러운 침대와 방을 제공하다니….
태어나면서부터 고아였던 나는 항상 가난이란 그늘에 허덕이던 생활을 해왔었기에, 너무나도 푹신 거리며 고급미를 뿜뿜 뽐내는 침대를 바라보자 제일 먼저 돈 생각이 났다.
"...뭐,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수인과 라이칸의 형태 유지에 관해 얘기했습니다.】
"그래.. 거기..이 차원에 대한 건 그 정도면 된 것 같고...이 학교, 학교라고 해야 하나? 레드문 아카데미는 어떤 곳이지?"
【사이비님이 다니게 될 레드문 아카데미는 일종의 군사기관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투와 마법에 재능이 뛰어난 스무 살 이상의 남녀들을 훌륭한 헌터로 키우기 위한 기관이며, 그 중 레드문 아카데미는 블루문 아카데미, 골드문 아카데미와 자웅을 겨루는 대한민국 최고의 3대 아카데미입니다.】
"...잠깐. 대한민국? 여기는 정말 패러렐월드 인 거야?"
【평행우주론적으로 본다면.....맞습니다.】
"호오... 같은 지구인데도 이렇게 다를 줄이야...으음...계속해서 설명해줘."
【대한민국 최고의 3대 아카데미...즉, 레드문, 블루문, 골드문 아카데미는 독도에서 20km 떨어진 위치에 자리 잡은 인공섬 위에 설립되었으며, 이 섬의 이름은 아카랜드입니다. 아카랜드에는 레드문, 블루문, 골드문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모두 모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아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3대 아카데미의 순위는 골드문이 1위이며, 2위가 블루문, 3위가 레드문입니다. 즉, 사이비님이 다니게 될 레드문 아카데미는 아카랜드에서 가장 서열이 낮고, 사이비님이 배정받은 D 클래스는 레드문 아카데미에서 가장 등급이 낮은 학생들이 모여있는 클래스입니다.】
장황한 길라의 세세한 설명이 끝이 나자 나는 길라에게 수고했다며 말을 하고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했다.
우선...이곳은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는 곳 같은데……. 강해지는 걸 우선순위로 둬야겠어…. 양쓰(양아치 쓰레기) 이병찬의 그녀들 또한, 어떤 인물일지 모르니까 강해져야 해. 그 년들을 겁탈하고 따먹으려다 내가 뒤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대충 생각을 정리한 나는 방문을 열고서 기숙사 건물을 빠져나왔다.
방안에만 있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날씨였다.
건물을 빠져나온 나는 내 팔목을 감싸는 얇은 은팔찌에다가 마력을 살짝 불어넣었다.
그러자, 내 의지를 따라 곧 팔찌에서 선명한 홀로그램이 생성되어 내 눈앞에 레드문 아카데미의 건물 위치들이 세세하게 알려주었다.
"호오... 확실한 건 내가 살던 지구보다 더욱더 기술이 발달한 것 같은데?"
손가락으로 공중에 떠 있는 홀로그램을 콕콕 찔러보던 나는 이내 레드문 아카데미의 모든 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과연 군사기관이라고 설명한 길라의 말이 틀린 게 아닌 듯, 레드문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건물은 각종 훈련실이었다.
체력 훈련실, 마력 훈련실, 가상 훈련실, 등등 수많은 훈련실이 존재했고, 그 훈련실들을 이용하는 수많은 훈련생들이 있었다.
그 훈련생들은 대부분 오늘 레드문 아카데미에 식구가 된 1학년들이 아니라, 2학년, 3학년 선배들인듯했다.
제복 상의 심장 부근에 그려진 붉은 달의 자수 옆에 붉은 별이 2개, 3개씩 보였기 때문이다.
1학년인 나는 당연히 붉을 달 옆에 붉은 별 1개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던 나는 나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그들을 보고서 "역시 모든 사람들이 나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이구나."라고 중얼거리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할 것도 없는데, 나도 훈련이나 하러 가볼까?"
방안에서 세웠던 계획은 `우선 강해지자` 였기에, 그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었다.
"으음...분명 내 특성이 마법이었으니까, 마력 훈련실로 가야겠지…?"
처음 경험하게 될 마력 훈련에 괜히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걸음을 옮기던 나는 어느새 마력 훈련실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훈련실 출입구에 달린 락도어에 팔찌를 갖다 대자 피슈욱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출입구가 열렸다.
화아아아아
훈련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공기가 변했다.
매우 가볍고 산뜻했던 조금 전과 달리, 훈련실을 꽉 채우고 있는 공기는 아주 무겁고 묵직했으며, 친숙했다.
.....뭐지? 이 이질적인...아니, 뭔가 그리운듯한 이것이 마력인 건가?
잠깐 나를 경계하며 신경질을 내는듯한 녀석이 어느새 나의 주위로 푹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 마력을 느끼며 재밌다는 표정으로 내 몸에서 마력을 떼어내려고 할수록, 마력은 더욱 촥하고 달라붙어서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뱉을 때마다 호흡을 통해 내 몸으로 전해지는 마력이 느껴졌다.
지구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시원하고 포근한 아주 친숙한 이 감각이 싫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고 싶을 정도로 굉장히 좋은 기분이었다.
훈련실 중앙으로 걸어간 나는 그대로 털썩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지구에서 보았던 몇 개의 소설들을 떠올리고선 가부좌를 틀었다.
"일단...오기는 했는데...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던 내게 타이밍 좋게 길라의 설명이 들려왔다.
【마력 훈련은 딱히 정해져 있는 게 없습니다. 사람들은 각각 종이 다른 크리쳐의 힘을 지니고 있기에 저마다 모든 훈련법이 다른 게 일반적입니다. 가만히 명상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신체를 격하게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마력을 흡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 고마워. 그냥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마력 훈련이 된다는 거지?"
【그렇게도 마력을 흡수할 수도 있지만……. 무언가에 정신을 집중하여, 이른바 무아지경에 가까운 집중력을 높게 끌어낼수록 더욱 많은 마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으음? 그럼 이곳에서 마법을 훈련해도 되는 거야?"
【.....일반적인 보통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시전자와 이곳의 마력이 충돌을 일으켜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지만……. 사이비님이나 마력과 친화력이 높은 사람들을 한정으로는 굉장히 효율이 높은 마력 훈련방법입니다.】
"……. 잘됐네. 근데 나는 마법을 모르는데? 오늘 상태창에도 마법에 관한 건 전혀 안 나와 있었다고…."
확실히 오늘 봤던 나의 상태창은 물론 고유 능력의 확인까지 마쳤지만, 마법에 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보유 마법의 확인은 상태창이 아닌, 보유 마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유 마법창이라고 생각하시거나 말씀하시면 됩니다.】
씨익
길라의 똑똑한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은 나는 틀었던 가부좌를 풀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유 마법창."
【보유 마법】
【독(?)속성】
【독화살: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에 독을 담아 발사한다.】
【산성독: 산성독을 분출하거나, 자신의 신체 부위를 산성독으로 뒤덮는다.】
【독 구름: 마력을 입에 모아 독 구름을 내뱉는다.】
"으음?....뭐야? 3개나 있었잖아…?"
일말의 고민도, 망설임도 없었다.
"독화살."
나의 입에서 마법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쭉 뻗어진 나의 오른손으로 마력이 모이는 게 느껴졌고 보라색의 무언가가 생겨나더니 점점 화살의 형태를 갖추어갔다.
이윽고 오른손으로 향하던 마력의 움직임이 평소와 같은 정상적인 흐름을 보이자 나는 발사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파앙!
공기가 부르르 떨리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고정되어 있던 보라색의 마력 화살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퍼엉!
빠르게 쏘아져 나간 독화살은 목표를 찾지 못하고 훈련실 벽에 부딪혔고,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보라색의 액체인지, 기체인지 모를 것들을쏟아내며 사라졌다.
"타격으로 상대방을 죽이는 것보다는 맞히고 나서 터져나갈 때 퍼지는 독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쪽이려나?"
흡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나는 그대로 손을 들어 다시 한 번 마법명을 외쳤다.
"독화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