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학생회장의 호출(1)
권력.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
대부분의 거대한 조직들은. 그 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자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우두머리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조직 내에서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인간에게 강력한 불이익을 내릴 수 있다. 따라서, 설령 반대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상당히 큰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상명하복대로 움직이지 않는 조직도 드물게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학교다.
교사나 교수라고 한들, 학생보다 계급상으로 위에 있는 것은 아니며. 엄밀히 따지자면 서로 간은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다. 고유의 권한으로 태도가 불량한 학생에게 성적을 낮게 매길 수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
학생 측에서 징계위원회에 회부시킬 수 있을 정도의 깽판을 대놓고 치지 않는 이상. 그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그 이상의 불이익을 줄 방법은 마땅히 없다. 요즘 같은 시대에 체벌 따위를 했다간, 그 이유가 어쨋건 간에 체벌을 한 쪽이 무조건 질타받게 된다.
하물며, 학생들 사이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는 모두가 평등한 관계. 다들 워낙 취업이나 학점에 신경 쓰다 보니, 애시당초 남이 뭘 하는지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다.
학생들에게 있어서 학생회 임원은, 권력자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력서에 경력을 하나라도 더 추가해 보고자 여러 잡일들을 도맡아 하기로 한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러러 봐주거나 하는 일도 없다.
...
그러나 그건 평범한 학교의 이야기. 우리 학교에서는 정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우리 학교 학생회는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조금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각종 교내 이권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결정할 권한, 인기 많은 강의에 신청하지 못한 학생을 추천해서 끼워 넣을 수 있는 권한, 심지어는 장학금 심사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까지. 그 외에도 기타 등등 셀 수도 없다.
그 정도로 막강한. 사실상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게 바로 우리 학교의 학생회. 감히 직원들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으며, 어떻게든 학생회에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기 위해 빌붙어 오는 거대한 무리 또한 거느리고 있다.
...
그리고 이 또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나는 그저 공부와 취미생활에 열중하면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학생회가 그런 권력을 휘두른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같은 학생인데 이건 좀 부당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지만. 감히 그 말을 입 밖에 낼 용기도 없었다.
교내에는 어떻게든 학생회와 연줄이 닿아보고자, 건너 건너 친분을 쌓는 친목 모임들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그런 모임과도 나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모임에도 관심이 없을뿐더러, 그쪽과 엮여있는 친구도 없다.
아니,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교내에 제대로 된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 자체가 없다. 어차피 이런 알량한 완장 놀음 따위, 졸업하고 나면 전부 없어질 허상에 불과한데. 뭐하러 그런 것에 열중하나 싶기도 했고, 어렸을 때 만난 친구가 진짜 친구지 뒤늦게 사귄 친구라고 해 봤자 나중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
사실은 이건 정신승리다.
나는 운동도 못 하고, 공부도 특출나게 잘하지 못하고, 사교성도 안 좋다. 그래서 그냥 친구를 못 사귀었을 뿐. 학생회가 교내 권력의 정점이라면, 나 같은 찐따는 최하위계층. 사실상 불가촉천민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뭐, 조금 외롭긴 해도 이런 학교생활이 마냥 불만스럽지는 않다. 괜시리 학생회에게 밉보이는 짓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불이익을 받을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거닐고 있었다.
복도의 맞은편에는, 거대한 인파가 눈에 띄었다. 저 정도로 거대한 무리를 짓고 몰려다닌다면 십중팔구 학생회겠지. 무엇 때문에 학생회가 이런 곳까지 직접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엮여서 좋을 건 없다.
나는 슬며시 옆으로 붙어서, 그 무리가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너희들 뭔데 감히 복도를 막고 그러고 있는 거야? 라고 말할 깡다구 따위는 없었기에.
“잠깐, 거기 너!”
그 무리의 가운데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키는 족히 170에 달해, 나와 맞먹는 수준이고. 연예인 못지않게 또렷한 이목구비, 큰 키만큼이나 흉악하게 튀어 나와 있는 가슴. 그러면서도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골반까지.
마치 이 시대의 미인상의 표본을 전시해 둔 것처럼 아름다웠다. 다만 그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듯한 분위기. 압도적인 카리스마 또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감히 내가 말을 걸어선 안될 것 같은 존재,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인간. 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즉시 대답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어버버 거리도 있었다.
“이따가 강의 다 끝나면 학생회실로 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무리는 슝 하고 사라졌다. 그녀는 무심하게 갈 길을 갔을 뿐이지만, 나는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내가 뭔가 학생회에게 밉보일 짓이라도 했나? 대체 왜 학생회가 나 같은 놈을 찾는 거지?’
당연히 강의를 받는 도중에도, 강의 내용에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찼다. 차라리 도망쳐 버릴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진짜로 그랬다가는 어떤 불이익이 닥쳐올지 상상조차 안 가서, 너무나도 두렵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중앙동 3층. 학교생활을 하면서 지금껏 이곳에 올 일은 없었다. 당연히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그런 장소일 줄 알았는데.
학생회실 문은 쓸데없이 거대했다. 마찬가지로 중앙동에 위치해 있는, 이곳까지 오면서 봤던 교직원 실이나 다른 문들보다도 훨씬.
크기에서부터 우리 학교에서 학생회가 가지는 막대한 힘과 위용이 전해져 온다. 그 앞에 선 내가 반대급부로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완전히 압도되어 주눅 들게 된다.
즉시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와중에, 문 옆에 붙어 있던 인명부를 발견했다. 그저 이름만 쓰여 있는 게 아니라 사진과 이름이 조직도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학생회장을 중심으로 밑으로 뻗어 나가는 조직도는, 학생회의 조직도라기 보다는. 회사의 그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학생회장 채은성]
“잠깐... 이 여자는... 설마... 아까 전에 날 불렀던 그...?!”
나는 조직도 꼭대기에 있는 사진을 바라본 순간, 뒤통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은 받았지만, 설마 나를 부른 게 학생회장이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압박감과 불안감은 더더욱 커져만 간다.
“크으윽... 학생회장이... 어째서 나를...”
그러나 마냥 이렇게 문 앞에서 죽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용기를 짜내서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익
“윽... 눈부셔, 뭐지?”
겨우 문을 열고 들어간 학생회실 내부는 온통 주변이 흰색으로 가득했다. 흰색 벽지나 도배 따위가 아닌, 순수한 하얀색. 업무를 볼 수 있는 테이블이라던지, 의자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있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은 가구.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어? 뭐야?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주변 풍경이 바뀌었어...?”
그리고 그곳에는 아까 전에 봤던 그 여자. 학생회장 채은성이 있었다, 또한 주변의 풍경에 적잖이 당황한 건 그녀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어... 저... 아까 부르셔서... 왔는…. 데…”
“음... 그래. 왔구나... 근데 이 상황이... 갑자기...”
그 순간 우리는 침대와 함께 덩그러니 놓여있던 문구.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을 발견했다. 이곳이 학생회실이 아님은 분명해 보였고, 어느샌가 내가 들어왔던 그 거대한 문조차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가뜩이나 불려온 것만 해도 좆됐다 싶었는데, 이 상황에 대해 얼른 해명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다.
“저... 저...! 그... 그게... 죄송하지만... 저는 이 상황이... 도저히 어떻게 된 건지...”
“어? 으... 음... 뭐... 그래...”
“저는 이 이상한 장소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부디 믿어주세요...”
“으응... 뭐, 그렇겠지. 뭐 괜찮으려나. 그런데 널 부른 용건에 대해서 말인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내가 이 장소와 관련이 없다는 걸 이해해준 모양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난생 학생회실은커녕 중앙동과는 엮일 일이 없었던 내가 어떤 함정을 설치 했을 리는 없다는 것쯤은 유추할 수 있을 테이니.
그녀의 빠르고 냉철한 상황 파악과, 관대한 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쉬려던 찰나, 이어진 그녀의 말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그게... 용건이.. 내 섹스 연습 상대가 되어 주었으면 해.”
“네?! 뭐라구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