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엘프여왕의 항복(2)
* * *
내가 전선에서 황도로 복귀할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한 달 뒤였다. 전쟁은 끝났지만, 병사들을 내버려 둔 채, 장군만 홀로 귀환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조교사들에게 신체를 개발 당하면서도 여전히 그때 그 결의의 찬 눈빛을 유지하고 있을까?
화려하기 그지없는 개선식 행사, 역사서에 내 이름이 남게 되었다는 명예, 장군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광... 내 머릿속은 그런 것 보다도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리하여 황도에 도착하자마자 그녀가 끌려갔다고 전해지는 지하감옥을 목적지로 삼은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
"여기인가."
야밤에 도착하게 된 지하감옥은 그 입구부터 으스스했다. 인간들의 수명보다 훨씬 긴 기간을 탁 트인 대수림에서 살아왔을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깊고 어두운 장소.
지하감옥의 경비원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접수원은 내가 들어와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무언가 서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알리시아를 보러 왔다..."
"...! 지금은... 면회가 안되는 시간…. 인데..."
"안되나?"
"아... 아닙니다! 드... 들어가십시오."
그제서야 입고 있던 화려한 갑옷을 보고 깜짝 놀란 접수원은 쉽사리 나를 들여 보내주었다. 태만한 태도로 근무를 서고 있던 경비들 사이에서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른다.
전쟁터에서 불시에 순찰을 나갔을 때, 이렇게 졸고 있는 병사를 발견했다면 크게 혼을 내며 주의를 줬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 보다도 중요한 게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지하로 깊게 내려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고, 발소리는 메아리쳐서 크게 울린다. 등불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에 의존해 계단을 내려간다.
확실히 지상과 통하는 입구가 이곳 하나라면, 설령 죄수들이 대량으로 탈옥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경비만으로도 밖까지 나가는 걸 손쉽게 저지할 수 있을 듯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태만한 병사를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제국의 지하감옥은 이름값을 하는 장소였다.
"알리시아는... 어디에 있지?"
"지하 11층의 독방에 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 2중 철문을 열고 도착한 장소는 척 봐도 일반 죄수를 가두는 곳과는 달라 보였다. 조교사로 보이는 남자 서너명은 노트에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었고, 벽에는 그녀의 조교를 위해 사용될 각종 음구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저기... 혹시...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그녀에게서 항복을 받아낸 3군사령관 알렉스다. 용무는...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
남자는 나를 보고서는 한껏 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질문해 왔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이건 월권행위. 그때야 그녀가 내 포로나 다름없었으니 마음대로 대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지만. 감옥으로 넘겨진 이상 그녀는 내 주관이 아니다.
"알리시아는 지금... 한창 자위를 하다가 잠들었습니다. 하복부에는 음문이 새겨지고, 양 유두와 클리토리스에는 저주받은 피어스가 끼워졌습니다. 그리고 식사에 포함된 꾸준한 미약 섭취로 인해 현재는 조교 받기 이전보다 성감은 3배, 성욕은 6배 증진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에 꾸준한 신체 개발을 통해서 이를 각각 10배, 30배로 늘리는 게 최종 목표이며... 지금까지 진행 상황은 순조롭습니다."
"그런가..."
그는 나의 눈치를 보며 그녀에 대한 정보와 조교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여전히 마음은 저항하고 있지만, 개발되어가는 신체에서 느껴지는 쾌락을 서서히 받아들이며 타락해 가는 그녀를 느긋하게 감상하는 것도 즐거운 여흥이 되겠지만...
"내가 그녀를 범해도 괜찮은가?"
"그... 그게..."
방금전까지 술술 말하던 그는 말문이 턱 막혔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곤란해하는 모습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그의 옆에 있던 다른 조교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서 말한다.
"죄송합니다... 그건... 곤란합니다. 오해와는 다르게... 원래부터 음란한 성질을 타고난 여자가 아니라면... 무턱대고 여자를 범해서 자지에 환장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애타듯이 괴롭혀서... 성욕을 끓어오르게 만들고...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스스로 자지를 조르게 만들 때까지는..."
"그리고 체력 문제도 있고..."
조교에 관해서는 그들이 전문가겠지. 그러나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이걸 받게나."
"이건... 뭐죠? 헉...!"
나는 품속에서 보따리를 꺼내 건네주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온통 금화. 여기 있는 사람 숫자대로 나누어도 일개 조교사의 임금으로는 십여년을 일하며 거의 쓰지 않고 저축만 해야 만져볼수 있는 돈. 나는 이 돈으로 그들을 매수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결국에는 그녀는 조교가 완료된 이후에, 귀족과 유력자들 전용 창부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군인이라고 해도 나 정도 되면 그녀를 사 먹을 자격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가격도 이보다는 훨씬 싸겠지만….
그러나 아직 쾌락에 굴복하지 않은 그녀를 맛볼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뿐이다. 그것도 황제보다 먼저. 당연히 그녀가 처녀는 아니겠지만, 여기 있는 조교사들도 모형자지나 음구로는 몰라도 감히 그녀에게 실제 자지를 넣어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가 직접 그녀를 마차까지 끌고 간 이유도, 모욕을 주고 내가 패배시켰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혹여나 혼란을 틈타 그녀를 범하는 자가 있을지도 몰라서였다. 내 눈앞에서 감히 그런 짓을 했다간 즉결처형 됐겠지만, 이미 더럽혀진 몸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
"... 좋은 시간 보내십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내가 이곳에 왔다는 건 비밀로 해주게. 감옥 입구에 있는 접수원과 경비에게도 조금 나누어주고 입단속 시키고."
"네 알겠습니다!"
그들은 빠르게 계단을 올라 사라졌다. 나는 건네받은 열쇠로 철창의 문을 연다. 녹슨 금속의 불쾌한 마찰 소리가 귓가를 긁는다. 곤히 잠들어 있던 그녀 또한 그 소리에 반응한다.
"머…. 머야...? 꺄아아아아악...!"
아직 비몽사몽한 그녀의 머리채를 억세게 쥐어 잡고 끌어올렸다.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지하감옥이지만, 희미한 조명만으로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까지. 서로의 눈이 마주친 그 순간. ㅡ
"윽...!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털썩.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밝은 곳으로 나가면 순간적으로 눈이 너무 부셔서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인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작스럽게 시야가 밝아졌고 주변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이... 이년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뒷걸음질 치며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 들었다. 마법에는 문외한인 나지만. 갑자기 우리가 있던 장소가 지하감옥에서 이런 이상한 장소로 변했다는 것은 마법임을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젠장... 경솔했다. 당연히 감옥에 들어갈 때 마법봉인 술식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서 전혀 경계하지 않았는데...'
이런 곳에서 죽는다면 목격자도 없다. 그녀가 내게 복수하기 위해 비장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거라면, 스스로의 경솔한 판단으로 그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
그러나 그렇게 칼을 들고 대치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공격도 날아오지 않았다. 내가 극도로 긴장해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체감하고 있는 건가? 설마 나를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서 고위력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서서히 시야는 밝아짐에 적응해 주변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곳에는 공격하기는커녕, 나와 마찬가지로 멍한 상태에 빠진 그녀와 침대. 그리고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아... 알렉스...? 당신이 어떻게? 그리고... 여긴...?"
"뭐... 뭐야. 그렇게 된 거였나. 큽....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나는 검을 도로 집어넣고 성큼성큼 다가갔다. 이 상황은 아마도... 들어본 적 있다. 마법 봉인술식에 당한 사람은 영창이든 무영창이든 인위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모든 방법은 차단당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가지고 있던 마나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봉인당 한지 얼마 안 된 자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때나, 어떤 것을 매우 간절히 바랄 때. 체내에 있던 마나가 그것에 반응하여 방출되는 경우가 있다. 극히 드문 일이고, 그 위력도 대단치 않아 간과했던 사실이지만...
"자... 잠깐...! 다가오지 마세요!"
"왜 그러지? 나를 원하고 있지 않나."
한 달여 간의 철저한 조교 끝에. 복수가 아니라, 섹스하고 싶다. 라는 간절한 외침에 그녀에게 남아있던 마나가 반응해서 이런 이상한 공간을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철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조교사밖에 없었을 테고, 워낙 어두워서 내가 잘 안 보였을 테니. 그 짧은 시간 동안 상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다.
'그녀가 그렇게 간절히도 섹스를 원하고 있었다면... 바라는 대로 해 줘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