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31화 (31/57)

〈 31화 〉 과외선생과 여학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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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가 그리워질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복학 신청서를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 군대를 전역하고 거의 2년 만에 돌아온 학교는 감회가 새롭다.

캠퍼스의 풍경은 변한 게 없이 활기차다. 막상 통학하던 시절에는 수업 듣기 싫다, 과제 하기 싫다, 발표하기 싫다... 하면서 짜증을 내곤 했지만, 돌이켜 보면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서 고등학교 시절에 얼마나 노력했던가.

이젠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고, 이제부터라도 성실하게 학교에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생각보다 시간이 남는데... 기왕 온 김에, 동아리방도 들렀다가 갈까...’

동아리 방에 무언가 특별한 용무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입대 하기 전에 두고 갔던 물건들이 제대로 있나 확인도 할 겸. 혹시나 반가운 얼굴을 만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 동아리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덜컹...! 끼익..., 끼이이익... 끼릭. 끼익ㅡ!

동아리 방문은 불쾌한 삐걱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내가 군대 가기 전에 상태와 똑같다. 힘을 잘못 주면 그대로 문짝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을 고치지 않고, 2년 동안 계속 써왔던 건가....

군대 안에 있을 때는 시간이 정말 느리게 흘러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고, 사회는 정말 빠르게 변해서 내가 과연 다시 나가서 적응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는데. 정말 놀랍게도 변한 게 그다지 없었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말이다.

...

“선생님... 아니 선배, 다녀오셨어요?”

동아리방에는, 풋풋한 얼굴과 작은 키와 가슴, 귀여운 목소리까지. 대학교가 아니라 중학교에 데려다 놔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듯한 소녀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동아리에 저런 후배가 있었던가?

“그... 미안한데…. 혹시... 누구였더라...?”

“설마 저를…. 잊어버린 거예요? 너무한데...”

나는 그녀를 이전에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는지, 떠올리기 위해 곰곰이 기억을 곱씹어 보았다. MT? 학교 행사? 대체 어디에서...

그 순간.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떠오르며, 뇌리를 강타한다.

“서... 설마... 예림이?”

“맞아요. 이제야 떠오른 거예요?”

“대체... 네가 왜 여기에….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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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맞겠지? 아파트가 시설이 굉장히 좋네.’

과외.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 괜찮은 학교를 나온 대학생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우면서도, 수입이 짭짤한 아르바이트.

친구들 중에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던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 손으로 돈을 벌어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이런 근사한 시설의 아파트 단지에 들어와 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면서, 내심 부러움을 느꼈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적에, 학원도 다닌 적 없고 과외를 받은 적도 없이. 오직 인강에만 의존해서 공부해 왔는데. 대학에 들어와서도 편히 놀지 못하고, 이렇게 일을 해야 하는데.

이런 곳에서 사는 학생은,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도 부모님이 대신 내 주실에도, 방학 동안 용돈으로 해외여행도 마음껏 다니고 하겠지?

...

바깥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신기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전해 받은 집 주소의 초인종을 누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어머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맞아주었다.

“어머나, 과외 선생님이 벌써 오셨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림아! 새로운 선생님 오셨다!”

“아! 진짜... 언제 또 새로운 사람을 부른 거야. 과외받기 싫다니까!”

“얘! 너는 선생님 앞에서 말버릇이 그게 뭐야! 아하하...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아직 철이 없어서.”

“아뇨. 괜찮습니다. 원래 애들이 다 그렇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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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고, 그 심정을 나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오냐오냐하면서 자란, 전형적인 부잣집 딸 같아 보였다.

까칠한 표정과 당돌한 말투. 부모님에게 반항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선생님. 혹시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불러주세요.”

...

“저기요... 그냥 놀면서 대충 시간만 때우다 가시면 돼요. 어차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니까.”

“그럴 순 없어. 난 이미 너희 부모님께 과외비를 선불로 받았는걸.”

“놀면서 돈 버는 거, 개꿀이잖아요? 그러지 말고, 그냥 놀아요.”

“안돼.”

나는 그녀의 유혹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에게 공부를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무엇을 가르치기에 앞서, 공부할 마음이 들게끔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부잣집 딸이니까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고 겁주는 것도 소용이 없겠지. 요즘 세상에 학생을 윽박지르거나 할 수도 없다. 체벌은 더더욱 안된다.

...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내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 말문을 트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즐겨보는 영화나 드라마. 수험생으로서의 고민 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나와의 대화에서 흥미를 느껴 주었고, 이야기하며 웃는 시간도 많아졌다.

“진짜라니까? 그렇게 해서 내가 우리 동아리 행사를 혼자 이끈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아하하하... 뭐에요 그게.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그건... 오늘 수업을 끝마치면, 그때마저 들려줄게.”

...

확실히 이 방법은 효과적이었다. 자연스럽게 공부로 그 흐름을 넘길 수 있었다.

문제를 맞힐 때마다, 칭찬을 해 주면 기뻐하는 표정이 얼굴에 드러난다. 그렇게 처음에는 한사코 과외 받는 것을 거부했던 그녀를, 점점 공부에 흥미를 붙이도록 만든다.

모의고사 시험에서 지난번 보다 확연히 좋아진 성적표를 내게 들이밀었을 땐. 어머님에게 집 대신 카페에서 공부하겠다고 이야기해 둔 뒤, 사실상 데이트나 다름없는 즐거운 외출을 다녀오기도 했다. 나도 그런 시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예림이에게 절대로 사적인 감정을 품지 않았다. 그녀는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쳐줘 봐야 귀여운 동생. 어린아이. 그런 느낌이다. 외형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말투도 그렇다.

“선생님은 어디 학교 다녀요?”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우리는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의 어머님은 딸아이가 완전히 바뀌었다며, 내가 과외를 지속하는걸 원하셨지만. 다음 학기 이후 군입대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개학을 앞둔 마지막 수업 날. 그녀는 나에게 넌지시 물어왔다.

“나? xx 대학교 다니는데.”

“거기…. 공부 되게 잘해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죠?”

“그렇지. 네 성적으로는 택도 없어.”

“왜 그렇게 단정 짓는 거에요? 저번 모의고사에서 성적 엄청 많이 오른 거 봤잖아요!”

“에이. 10점을 맞다가 50점을 맞는거랑 50점 맞다가 90점 맞는 거랑 난이도가 똑같지 않지.”

“그럼 제가 선생님 다니는 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뭐 해주실 거예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진짜 그렇게 되면 네가 원하는 소원 하나. 뭐든지 들어줄게.”

“뭐든지요? 저 똑똑히 그 말 기억했어요. 두고 봐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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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나는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던 마지막 약속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전까지는 전혀 공부를 안 하다가 그제야 공부에 흥미를 겨우 느끼기 시작한 고등학생이. 피 터져라 입시에 매달리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제치고, 나름 알아주는 대학인 우리 학교에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방금 전 까지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정말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 그녀가 내 눈앞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직 선배…. 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데... 분명 진짜 제가 이 대학에 들어오면, 소원하나... 뭐든지 들어 주신다고 하셨죠?”

“아니…. 그... 그게...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애써 무시해 왔었지만, 그녀가 내게 마음이 있다는 것 정도는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관계가 깊어 지는 것은, 과외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서 선을 확실하게 지켰다. 우리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과외수업을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해서였으니까.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약속해놓고…. 이제와서.... 그냥 해본 말 이었다고요? 나한테 거짓말을 했던 거에요?”

“아니... 그건 아닌데…. 아... 알았어...! 어쩔 수 없네. 소원이 뭐야...? 말해봐. 너무 무리한 것만 아니면 들어 줄 테니까...”

“그건 말이죠...”

그러나 그녀는 소원의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다가와 동아리 방의 문을 잠근다. 이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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