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마법소녀와 졸개(1)
* * *
“나는 악당들로부터 시민과 도시의 평화를 지키는 마법 소녀 스티아라! 악당들은 용서하지 않는다!”
“크으읏...! 마법 소녀 스티아라! 또 나타났구나! 하지만 오늘은 마음대로 안 될 것이다! 새로운 무기를 준비해왔으니 말이지!”
“제아무리 비겁한 수를 준비해 왔어도! 마법 소녀는 절대로 패배하지 않아!”
...
“엄마! 나도 마법 소녀 변신 세트 갖고 싶어!”
아이를 데리고 있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돼, 그건 너무 비싸. 그리고 얼마 지나면 쑥쑥 커버려서 입지도 못하게 되잖니, 조금 있다가 간식 사줄 테니까 참으렴.”
“으응... 알았어.”
모녀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촬영 현장에서 멀어져 간다.
...
솔직히 변신 세트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비싸다. 진짜 마법 소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내주는 드레스와 마법 봉, 액세서리까지 합쳐서 수십만원에 달하니까. 사달라고 해도 선뜻 사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아이가 좀 더 자라면 보통 물리적으로 변신 세트를 못 입게 되는 것 보다 이른 시기에, 마법 소녀를 유치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마법 소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되는데, 마법 소녀와 악당이 도시 한 복판에서 싸우는데 경찰이나 군인들은 뭐 하고 있는 것이며, 왜 싸우는데 방해되는 치렁치렁한 장식이 잔뜩 달려있는 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싸우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마법 소녀는 그저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어른들이 숨겨왔던 불편한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지만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요즘에는 키덜트라고 부르는, 성인이지만 어릴 때의 동심을 간직한 사람들의 구매력 덕분에 우리들의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주식회사 매직컴퍼니에서 일하는 사원이다. 촬영이 있는 날에는 이렇게 촬영 보조를 하고, 없는 날에는 마법 소녀 관련 상품 기획과 판매, 유통관리를 한다.
엑스트라 졸개들을 대량으로 출현시켜야 하는 일이 있으면 직접 검은색 쫄쫄이를 뒤집어쓰고 싸우러 나가기도 해야 한다.
물론 현실의 그녀는 마법도 못 쓰고 괴력도 없으니까 마법 소녀에게 달려들었다가 나가떨어지는 건 전부 연기다. 휘두르는 척 하는 주먹에 맞고 내동댕이쳐져야 하는 건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오늘도 마법 소녀는 악당들로부터 거리의 평화를 지켰다!”
“촬영 끝...!”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끝났나 보다. 하지만 나는 아직 퇴근할 수 없다. 사무실로 돌아가서 영상 편집을 마쳐야 하니까.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프로그램을 찍는 사람이 일에 찌든 사회인이라는 게 아이러니하다.
타닥...탁...타닥...탁... 딸깍 딸깍 딸깍.
“응? 하아... 오늘도 야근해야 되겠네.”
오늘 촬영분 영상을 돌려보다가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다. 야외 촬영을 구경하던 모녀의 뒷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건 그녀들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지 않은 내 잘못도 있지만, 애초에 카메라에 비춰지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잘못 설정한 카메라맨의 잘못이 더 크다.
다행히 요즘에는 포토샵으로 이런 걸 감쪽같이 지울 수 있어서 다시 찍어야 하는 불상사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는 점은 변함없다.
“김 대리! 퇴근 준비하는 중인가?”
“아뇨. 아직 일이 남아서, 야근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그럼 이 자료 좀 유정 씨에게 전해주고 오게.”
“예 알겠습니다.”
부장님에게 받은 종이 뭉치에는 라고 쓰여 있었다. 굳이 내용물을 열어 보지는 않았다. 내가 전해 받은 건 심부름 역할뿐이니까. 다행히도 아직 그녀는 1층에 있었다.
마법 소녀 스티아라, 실제 이름은 신유정. 붉은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 푸른색 콘택트렌즈, 프릴과 가짜 보석이 라인을 따라 박혀있는 드레스 같은 옷까지. 퇴근 시간에 가까워졌지만 그녀는 아직 마법 소녀 차림새였다.
“유정씨 부장님께서 이걸 전해달라고 하셨는데...”
“차기 마법 소녀 기획물 자료? 이게 뭐죠?”
“글쎄요...”
...?
그녀가 있는 사무실 테이블에 자료를 놓고 나가려던 그 순간. 우리가 있었던 장소는, 사방이 흰색 벽으로 가로막혀 있고 가운데에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는 이상한 방으로 변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죠? 주변이 갑자기 세트장 같이 변했는데.”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하아…. 미치겠네. 진짜 모르는 거 맞아요?”
그녀는 거친 말투로 나를 쏘아 붙였다. 그러나 나도 진짜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그 순간 우리는 침대 옆에 있던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잠시동안 침묵에 빠졌다.
심지어 변한 건 방뿐만이 아니었다. 내 옷은 어느새 졸개들이 입는 검은색 쫄쫄이가 되어 있었고, 그녀의 드레스 치마 길이는 확연하게 짧아졌으며, 하트 무늬 장식과 보석들은 분홍색으로 변해 있었다.
“하아…. 씨발 진짜. 이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겠네.”
“...네?”
“이젠 하다 하다. 마법 소녀한테 성인 비디오를 찍으라고 하고 자빠졌어.”
“아니 저는 진짜 모른...”
“아니 아까부터 모른다 모른다 그 소리만 계속할 거에요? 이것도 아까 그 차기 마법 소녀 기획물 어쩌고 일환이겠지. 하다못해 내 동의는 받고 촬영을 시작해야 할 거 아니야 나 참…. 진짜.”
그러나 나는 진짜 모른다는 말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마법 소녀가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에 졸개와 함께 들어 왔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성인용 비디오 기획이 분명해 보인다.
“이 씨발 내가 아주 만만하지? 나랑 같이 데뷔했던 1세대 마법 소녀들은 다 은퇴했는데 나만 다른데 불러주는 곳 없어서 이 나이 처먹을 때 까지 계속 마법 소녀 하고있는게 아주 우습지? 요즘 5살짜리 애들도 나보고 아줌마라고 부른다던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그녀는 대체 누구보고 들으라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되는대로 욕설을 쏟아놓고 있다. 화낼만한 상황이기는 하다. 이젠 성인 비디오나 찍으라는, 완전히 퇴물 취급을 당했으니 말이다.
...
아이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마법 소녀를 유치하게 여기게 되는 것처럼, 마법 소녀를 연기하는 배우들도 그렇다. 무명 배우라도 마법 소녀로 데뷔하면 빠르게 인기와 인지도를 얻을 수 있지만 오래 지속하기는 어려운 배역이다.
일단 10대 초중반 소녀를 연기해야 하다 보니, 얼굴에서 나이가 느껴지면 곤란하고. 배우들도 오래 연기하다 보면 부끄럽고 자괴감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마법 소녀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자주 교체가 되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스티아라는 독보적이다. 벌써 데뷔한 지 7년이나 지났는데 캐릭터는 나이를 먹지 않으니... 자기 나이의 절반쯤 되는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서는 안타까운 말 이지만, 타의적으로 그렇게 오랫동안 마법 소녀를 연기해 왔다면 피해 의식이 쌓일 만 하다.
“이 개새끼들아! 진짜 섹스하기 전까지는 안 열어줄 생각이야?"
사방에 출구가 없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맞은편 벽을 쾅쾅 치면서 소리쳤다.
그 심정은 십분 이해 하면서도,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진짜 몰라서 억울했다. 그리고 여자가 저렇게 쌍욕을 하면서 화 내는 모습을 난생 처음봐서 무섭다. 그런 감정들이 공존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하아…. 씨발 진짜... 내가 진짜 마법 소녀였으면 싹 다 날려버리고 싶네.”
한참을 벽을 두드리며 온갖 감정을 쏟아내던 그녀는, 지쳤는지 그제야 멈추고 나를 노려본다.
“그래서... 어쩔 거예요?”
“그... 글쎄요... 섹스를 해야 되겠죠...?”
“아니, 뭐 지시사항이라도 받은거 없냐고요.”
“죄송합니다. 저도 그 기획서를 전혀 읽어보지 못해서.”
“나 참 진짜….”
그녀의 짜증을 받아 내 줘야만 했다. 기획서를 읽어 보지 않은 내 잘못이니 할 말은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진짜 그녀와 섹스를 할 수 있는건가? 하는 기대감도 부풀었다.
솔직히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성인 비디오를 보면서, 미모의 여배우와 섹스를 하는 남자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봤을 것이다.
성인 비디오도 요즘에는 정말 다양한 컨셉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는 여배우가 간호사, 선생님, 여경 역할을 코스프레 하는 비디오도 있다.
여배우의 배역에 따라 남배우도 환자, 학생 등의역할을 연기하게 된다.결국 기승전섹스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제 느낌만 낼 뿐인 의상 이지만, 성적 판타지를 만족 시켜 준다.
하지만 이건... 고퀄리티 코스프레가 아니다. 실제 마법 소녀를 연기하는 그 배우가 진짜 여배우가 됐다. 그리고 나는 남배우... 언제나 마법 소녀에게 달려들었다가 한방에 나가떨어지는 졸개의 쫄쫄이...
“크흠... 그... 그러면... 마법 소녀가 악당 졸개에게 붙잡혀서 강간당한다는 시나리오는 어떨까요.”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것밖에 없는 것 같네요. 어쩔 수 없죠, 강간해 주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