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수인 검투사와 관리자(1)
* * *
이곳은 제국 최대규모의 콜로세움. 유흥거리를 통해 민중들이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자는 전대 황제의 계획에 따라 건설되었다.
무려 관중을 2만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에 연일 좌석이 꽉 찬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시설들을 자랑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검투사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면서 그 어두운 이면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검투사는 자진해서가 아니라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로 팔려 와, 가축 같은 처우를 받는다.
제대로 누울 수도 없는 좁아터진 철창에서 갇혀서 지내며, 식사는 뭉친 덩어리를 개밥그릇에 담아서 넣어주고, 씻는 것도 철창 안으로 대충 물을 뿌려서 씻긴다.
패배하고 죽는 게 차라리 나을 정도로 끔찍한 환경. 아무리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검투사도 이곳에서 오래 갇혀 있다가는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휴우.”
나는 복도 청소를 마치고, 시간이 살짝 남아서 창문으로 콜로세움 내부가 내려다보이는 관계자 전용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결투를 보면서 눈치껏 시간을 때우는 다른 직원들도 몇 명 있었다.
이런 절망적인 환경에서 검투사들이 유일하게 그동안 쌓여왔던 스트레스와 공격성을 발산할 수 있는 건 오직 결투 할 때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위한 아주 미약한 희망이 있다. 10연승을 하면, 이곳에서 해방 해주고 제국군의 지휘관으로 임명 된다는 것.
그러나 연승을 하면 할수록 상대하는 적들이 말도 안 되게 강해지기 때문에. 실제로 해방된 검투사는 내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10여 년 일하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번 코너는 미노타우로스와 고양이 수인 토로의 대결입니다! 베팅 마감 시간 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주세요!”
음성 증폭 마법이 사용된 해설자의 목소리가 거대한 콜로세움을 가득 메울 정도로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그녀는 내가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검투사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민첩성으로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덩치의 적들을 상대로 활약하며 현재 7연승을 기록 중이다.
“크으~ 저년 따먹히는 거 보고 싶네. 저렇게 체구가 작은 년들이 그만큼 꽉 쪼이는 맛이 일품인데.”
“너는 수인보고 꼴리냐?”
“나는 씹가능이지~ 그리고 내가 저년 여기 들어올 때 구멍에 뭔가 숨기지는 않았나 검사했었는데, 처녀막이 있었다고!”
“뭐? 처녀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런데 고양이 수인도 처녀막이 있었나?”
“내가 똑똑히 봤다니까. 못 믿겠으면 내기해!”
“하지만 미노타우로스한테 박히면... 처녀였든 아니든 그냥 찢어지면서 피가 나올 것 같은데.”
직원들 사이에서 오가는 천박한 내용의 대화. 그러나 여자 검투사가 패배하고 공개 능욕을 당하는 것도 콜로세움의 주 콘텐츠 중 하나이다. 강간당하면서 처녀혈을 흘리는 것 조차, 구경거리로서 소비된다.
수많은 사람이 그걸 보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내고 콜로세움에 입장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콜로세움이 운영되고,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거니까, 우리는 그것을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다.
...
“3...2...1... 결투 시작...!”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미노타우로스는 구속에서 풀려나자마자 굉음을 지르면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수인족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종족. 족히 3m는 넘어 보이는 키의 괴물과 그 절반도 안 될 것 같은 그녀의 체구 차이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사실 콜로세움의 결투는 그 자체로 수준이 매우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일부러 이렇게 체급이 안 맞는 상대끼리 붙이기도 하며, 남자 검투사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특히 여자 검투사들의 싸움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들이 결투할 때 지급받는 방어 구는,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다. 어깨와 허벅지만 장착할 수 있고, 정작 가슴, 배, 성기 등은 보호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옷도 입을 수 없이 훤히 드러나 있는 형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자 검투사들은 밖에서 상당한 실력을 지녔더라도, 자신의 몸이 구경거리가 된다는 치욕스러움 때문에 제대로 실력을 내지 못한다.
“토로 선수! 미노타우로스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단 한대도 공격이 적중당하지 않고 능숙한 솜씨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르다. 광분해서 달려드는 미노타우로스의 맹공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
“#$@$%^&&%$@#@^$$@^%%$@$!%!%#^$!”
관중석에서는 토로를 향한 야유와 비난이 쏟아진다. 여 검투사의 싸움은 대게 이렇다. 미노타우로스 쪽에 베팅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녀가 범해지는걸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이 훨씬 많다.
마찬가지로 훤히 노출된 미노타우로스의 거대한 자지는, 평범한 인간 남성의 팔뚝만 한 크기에 버금간다. 살짝 휘어져 있으면서 혈관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는 흉악한 형태. 저 거대한 물건에 박힌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 순간, 미노타우로스가 창을 높게 들어 찌른 회심의 일격이 이번에도 빗나가고, 자세가 무너져서 그대로 자빠져 버렸다. 이제까지 피해 다니기만 하던 그녀는 단검을 아래로 향하고 높이 뛰어올라 내려찍….
퍽
으려다가 갑자기 공중에서 추락했다. 저 공격이 성공했으면 그녀의 승리였을 텐데, 자세히는 못 봤지만 관중석에서 날아온 무언가를 맞은 듯 하다.
ㅡ쾅!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미노타우로스 근처에 쓰러져 주먹을 맞고 튕겨져 나온다. 관객들은 그 모습에 환호하고, 그녀는 어떻게든 굴러서 다시 자세를 잡는다.
곧이어 미노타우로스는 전속력으로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피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 그녀도 이제 이렇게 끝인 건가... 생각하던 찰나에.
순식간에. 그야말로 눈 하나 깜짝할 사이에, 승부가 났다. 오히려 쓰러져 있는 건 그녀가 아니라 반대였다. 반짝하고 눈부신 금속의 궤적이 스쳐 지나간 직후, 단 일격에 그 거대한 덩치를 제압했다.
“야 이 #$%%@#$$#^$!$% @#$@#$@@#$아 #@$@#%@#”
관중들의 비아냥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검투사 대기실을 향해 뛰었다. 그녀는 장비를 반납하고 알몸이 되어 철창으로 다시 들어갔다.
여자 검투사들은 철창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수치스러운 자세로 묶이는 구속구를 착용해야만 한다.
명목상으로는 허튼짓하는걸 방지한다는 이유지만, 실상은 직원들의 눈요기를 위해서다. 가랑이를 한껏 벌리고 중요 부위를 노출하는 자세로 고정시킨다.
그녀는 저항하거나 불쾌해하는 기색도 없이, 양팔과 다리를 내밀고 순종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나도 그녀의 몸 상태를 자세히 바라볼 수 있었다. 온몸에는 상처가 가득했고, 길게 늘어뜨린 은발 머리카락과 곳곳에 나 있는 털들은 그녀의 눈동자 색처럼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 있다.
“그래그래... 그대로 가만히 있으라고.”
이내 다 묶인 그녀는 여간 불편한 자세가 아닐 텐데도, 그대로 스르륵 기절하듯 잠들었다.
...
나는 왜 그녀를 보려고 헐레벌떡 뛰어왔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던 그때. 갑자기 주변이 변한 것을 깨달았다. 온통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이상한 공간.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묶여있는 그녀와 침대. 그리고...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보다, 그녀를 편하게 해줘야겠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게는 열쇠가 없어서 비록 구속구를 풀어줄 방법은 없었으나, 그녀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침대로 옮겨주었다.
양다리 사이를 강제로 벌리게 만드는 봉 때문에, 똑바로 눕히기란 불가능했다. 그래도 그녀가 최대한 편한 자세가 될 수 있게끔, 베개를 세워서 몸을 비스듬히 기댈 수 있게 해주었다. 어찌나 피곤했던지, 이렇게 하는데도 깨어나지 않는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잠시나마 그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
그리고, 나는 출구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역시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인가. 조금 전 까지 수많은 관객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아름다운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그녀와 섹스를 한다는 것. 그걸 마다할 남자가 어디 있겠냐마는,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으…. 으음... ? 여긴 어디지...? 그리고 너는...?”
내 얼굴을 알아보는 건가. 근데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밥을 건네주고, 물 뿌려주는 일을 하기는 했지만, 그녀는 얼굴 말고 나에 대한 아무것도 모른다.
“그…. 그게...”
설명하려니까 말문이 턱 막혀서, 그냥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문구를 들어서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무언가 체념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했다.
“그런 거였나. 어차피 각오는 하고 있었다. 강제로 당하며 울부짖는 거든, 쾌락에 빠져서 앙앙거리는 거든. 어떤 연기도 괜찮다.”
...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