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8화 (8/57)

〈 8화 〉 메이드와 도련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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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한껏 긴장하고, 고풍스러운 장식이 되어있는 나무문을 노크한다.

“들어와라.”

낮고 굵게 깔리는 목소리. 이 목소리만 들어도, 온몸이 자연스럽게 긴장이 되고 숨을 편히 쉬기가 힘들다.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집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 더미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오래간만이구나.”

“네. 다녀왔습니다. 아버지.”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왔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전혀 반갑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들을 거의 3년 만에 다시 만난 것 인데도 말이다.

지금도 흠…. 하는 소리를 내며 서류를 바라보고 있다. 내 안부는 안중에도 없는 건지.

“네가 이제... 몇 살이지?”

“갓 스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성년이 되었구나. 영지를 이어받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하도록 해라.”

아버지와 아들 간의 대화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딱딱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좋은 영주일지는 몰라도. 좋은 아버지는 절대 아니다. 심지어 내가 말해주기 전까지는 내 나이조차 모르고 있다.

그는 나에게 애정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나를 아들이 아니라 후계자로 취급하고 있다. 아니, 자신의 기술을 물려주는 일개 대장장이조차 후계자에게 이것보다는 애정이 있을 것 같다.

“본격적인 준비라 하시면...”

“제왕학과 통계학 같은 공부를 가르쳐줄 가정교사를 불러주겠다. 네가 다녔던 아카데미라는 학교에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들이겠지.”

... 역시 그의 머릿속에는 영지와 가문에 관한 것뿐이다.

나는 아버지와 이곳이 싫다. 으리으리한 저택과 넓은 영지. 그런 것들은 멀리서 바라보면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지만, 나에게 이곳은 감옥이나 마찬가지.

어렸을 적부터 엄격하게 예의범절과 행동거지를 훈육 받는 건 너무나도 견디기 어려웠다. 여기에는 놀만 한 장소도 없고, 공감대를 나누고, 웃고 떠들며 같이 지낼 수 있는 친구도 없다. 오직 아버지의 압박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나날들뿐.

그런 나에게 있어서 아카데미는 도피처였다. 기숙학교를 다닐 수 있게 허락 받은 것도 요즘 귀족 자제들이 아카데미에 많이 다니기 때문에, 앞으로 영주가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 인맥을 쌓아두어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설득한 덕분이었다.

“후우...”

좋아 결심이 섰다.

“아버지, 그것에 관해서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냐.”

품속에서 나는 종이 2장을 꺼내 아버지의 책상에 공손하게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게 제 성적표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마법에 특출난 재능이 있습니다. 정령 마법, 소환마법, 연금술…. 같은 종목들의 성적은 재학 내내 최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

“특히 원소 마법은 전교 1, 2등을 다투는 성적입니다. 반면... 수학 같은 과목은 거의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영지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마법 재능 따위는 필요 없다.”

“그리고 다른 한 장은, 마법과 교수님의 추천서입니다. 영재 때부터 엘리트 마법교육을 받은 것이 아닌데도, 이 정도라면 궁중 마법사가 될 수도 있을 정도로 놀라운 재능이라 하셨습니다.”

“본론만 말해라.”

“저는 차기 영주가 아니라, 마법사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안 된다.”

“아버지…. 그렇지만... 이런 재능을 썩히는 것은...”

"전란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영민들을 지키는 건 일개 한 명의 마법사가 아니라, 훌륭한 영주의 지도력이다."

“그러나...”

"우리 가문은 700여 년간 대대로 이 땅을 지켜왔다. 영민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냐."

"양자를 들여서 후계자로 세워주시면..,"

"아니. 믿을수 있는건 오직 혈연 뿐이다."

말문이 턱 막혔다. 아버지는 내가 영지를 이어받지 않는걸 허락해줄 생각이 없다.

무책임하게 소식도 없이 잠적해서 아버지와 연을 끊을까 하는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내가 갑자기 없어지면 영민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마음의 짐이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

“정 네가 영지를 이어받기 싫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너도 이제 성년이니. 빠르게 결혼해서 자식을 낳는 것이다. 내가 너무 빨리 늙어 죽지 않는다면, 손자가 영지를 잇게 할 수도 있겠지. 원한다면 다른 귀족 가문과 정략결혼을 주선해주마.”

...

“아닙니다 아버지. 나가보겠습니다.”

...

“크아아아악...! 이 좆같은 집구석!”

내 방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가 있는 방까지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크기로 소리를 질렀다.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책임감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똑똑똑...

“도련님 들어가겠습니다.”

“누나, 미안한데 나 지금 혼자 있고 싶어. 나가줘.”

흰색과 검은색이 적절하게 조화된 메이드 복을 입은 여자가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녀의 이름은 엠마. 단둘이 있을 때는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긴 하지만 친누나는 아니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시종 들 중에서 유일하게 내 또래인 그녀는 고아가 되어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다가 아버지에게 거두어졌다고 한다.

반가운 얼굴이지만, 아버지와의 대화 직후에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먼 길 오셨으니 피곤하실 텐데, 짐 정리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목욕물을 데워놨으니...”

“아 필요 없으니까 나가라고!”

“아.., 알겠습니다.”

...

“내가 무슨 짓을...”

곧이어 극심한 후회가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해 버렸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나도 감정이 격해지면 권위로 찍어누르려는 성향이 종종 튀어나온다.

그렇게도 싫어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게, 자괴감이 든다.

‘누나한테 사과하러 가야겠다.’

내 방에서 쫓아내 버린 그녀를 찾기 위해 문을 연 순간, 내가 알고 있던 우리 집 복도가 아닌. 전혀 다른 이상한 공간이 펼쳐졌다.

사방이 흰 벽에 둘러쌓이고 가운데에는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이상한 방. 그리고 그곳에는 누나가 있었다.

“누…. 누나? 여긴 대체 어디야?”

“도련님? 그 모습은 대체?”

...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내 기억 속의 모습과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아니 뭔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더 어려 보이는 듯한...

그 순간 나는 불현듯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시야가 낮아져 있었다. 키뿐만이 아니다, 목소리도 얇게 변해 있었다.

어려진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둘 다, 서로 처음 만났던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

굉장히 당황스러운 상황이긴 하다만, 일단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아까는 내가 정말 잘못했어. 미안해 누나.”

“아니에요. 도련님. 저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고개 숙여 정중히 사과를 전했다. 아무리 심한 말을 했다고는 하지만, 시종과 도련님이라는 관계 특성상. 이렇게 고개 숙이는 건 오히려 귀족 자제로서 명예가 실추되는 거라고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친누나는 아니지만, 그녀는 힘든 유년 시절에 버팀목이 되어줘 왔던 각별한 사람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쌓인 유대감은 신분의 격차를 초월한다. 그래서 진심을 다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 순간, 낮아져 있는 시야에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나무로 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섹…. 크흠. 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 ...?”

곧이어 그녀도 그 문구를 발견하고, 우리는 어색한 침묵에 빠졌다.

지금까지는 그녀를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고 나니, 신체의 차이가 눈에 확 띈다.

내가 상대적으로 엄청 꼬맹이가 된 것 같은 느낌. 키도 그녀가 훨씬 크고. 2차성징도 오지 않은 나의 앳된 몸에 비해 훨씬 성숙한 모습이다.

...

크흠흠...

의식하지 말자. 누군가의 유치한 장난일 테니까. 겨우 사과했는데 분위기가 정말 어색해서 미쳐버릴 것 같지만, 일단 여기서 나가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다.

“이... 일단 출구를 찾아볼게.”

일단 눈으로는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눈을 감고 명상하며 순환되는 마나의 흐름을 느껴보았지만, 밖과는 완전히 단절된 장소처럼.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설마... 밀폐된 장소인 건가?’

그 순간. 말도 없이 누나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저는... 도련님이 원하신다면 밤 시중을 드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굳이 이렇게 나갈 수 없는 방…. 같은 상황을 연출하지 않으셔도, 그냥 도련님 방으로 편하게 불러주시면 ..."

“아니. 아니…. 아니.. 그건 진짜 오해야... 이건 진짜로 내가 만든 상황이 아니라...”

추억 속의 그리운 모습과 기꺼이 밤 시중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태도 사이에서 인지 부조화가 일어난다. 오해는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솔직히 나도 남자로서 이 상황이 꼴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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