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무녀와 오타쿠(1)
* * *
“아잇 씻팔...!”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
나는 요즘 히어로즈 사가 라는 모바일 미소녀 수집형 RPG 게임을 즐기고 있다. 요즘 모바일 게임계에서 수집형 게임이란, 업적이나 트로피 따위를 모으는 게 아닌 다른걸 의미한다.
게임마다 약간의 차이점은 있겠지만 공통된 요소라고 하면 뽑기. 열심히 해서 모은 재료로 캐릭터를 해금하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미소녀를 돈을 내고 뽑기를 돌려서 뽑는다. 그래서 이른바 '가챠 게임' 이라고도 불린다.
그깟 데이터 쪼가리를 뽑는데 거금을 쏟아붓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뽑았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계속 플레이하게 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캐릭터는, 얻어봤자 별 감흥이 없다. 나는 뽑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못 뽑았다는 데서 오는 우월감이 좋은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꽤 오랜기간 츠바키 라는 캐릭터가 픽업으로 올라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싶이 일본계 캐릭터. 부적을 이용해서 싸우는 전형적인 무녀 컨셉의 캐릭터다.
그녀는 성능도 출중하지만 나는 그보다 외모와 성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요즘에는 이런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가 잘 안 나오는 추세라서 차별화되기도 했다.
마침내 그녀를 뽑을 수 있게 된 오늘. 나는 그동안 이벤트 참여 등으로 획득했던 뽑기권을 몽땅 털어 넣어서 뽑기를 돌렸다. 그러나 꽝이나 다름없는 수많은 쓰레기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 공짜로 뽑을 생각을 해서는 안 되지...’
여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을 전부 다이아 충전에 사용해서, 다시 한번 돌려봤지만.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이번 달 생활비를 아슬아슬한 수준까지만 남기기로 하고, 다시 한번 뽑기를 돌린다.
돌릴 때마다 펼쳐지는 화려한 눈요기 연출은 이미 안중에도 없이 스킵버튼을 연타했고. 그저 결과물에만 관심 있었다.
...
그러나 끝끝내 츠바키는 나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거의 '천장'에 다달았다. 천장이란, 돈을 많이 쓰고도 원하는 걸 뽑지 못한 이들을 위한 게임사의 최소한의 배려로. 확정적으로 원하는 걸 선택 할 수 있는 쿠폰이다.
물론, 천장으로 획득 한다는 건 기대하던 확률로 뽑는 것 보다 훨씬 비싸게 주고 얻는다는 의미. 사실상 패배를 인정 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렇다곤 해도 천장이 없어서 기약 없이, 뽑을 때 까지 계속 돌려야 하는 게임보다는 낫지만.
‘하아... 진짜 다음 월급날까지 라면만 먹으면서 버티고, 천장까지 달려봐야 하나….’
침대에 쓰러지며 무심하게 스마트폰을 내던졌다. 침대 위라서 액정이 깨지거나 고장 날 염려가 없다는 걸 알고 던지긴 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진짜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 순간. ㅡ 침대의 감촉이 변했다. 화들짝 놀라 일어서자, 바뀐 건 침대뿐만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었다.
‘뭐지? 여긴 대체 어디지? 그리고...’
그곳엔 그녀. 무녀 츠바키가 있었다.
굉장히 잘 만들어진 코스프레 의상 따위를 입고 나온 소녀가 아니다. 나는 상당히 조예 깊은 오타쿠로서, 옛날에 동인 관련 행사를 다녀본 경험에 의해 알 수 있다.
전문 코스프레 팀이 SNS에 올려대는 사진을 보면 그림을 찢고 나와 현실에 강림한 캐릭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거의 보정 빨. 잘 만든 코스프레 의상이라도 실제로 직접 보면 애매한 퀄리티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길게 늘어뜨린 흑발 생머리, 크고 맑은 눈동자, 화장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도 선명한 분홍색의 입술과 뽀얀 피부.
동양미인 특유의 단아한 분위기가 흘러나온다. 순백색의 무녀복과 강렬한 붉은색 치마의 조화까지.
저건 틀림없는 본인이 확실했다. 일러스트와 똑같..., 아니 실물이 훨씬 더 낫다.
어안이 벙벙해져 감상만 하고 있던 도중에 어색한 침묵을 깨고 먼저 츠바키가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 그리고 저건 뭐죠...?”
츠바키가 손가락으로 가르킨 맞은편에는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방]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내가 알고 있는 성우의 연기와 똑같았다. 그리고 당연히 일본어인데, 어째서인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도 한글로 쓰여있는 저 팻말을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듯 하다.
이 상황이 신기하긴 하지만, 그렇게 크게 놀랍스럽지는 않다. 어차피 세상에는 이해가 안 되는 일 투성이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손해가 전혀 없는 흥미로운 상황이니 말이다.
어쩌면 모바일 가챠게임에 돈을 쏟아붓고도 그녀를 뽑지 못한걸 불쌍하게 여긴 신이 내려준 선물 같은 게 아닐까.
“저기... 아무리 둘러봐도 출구가 없는데. 어떻게 하죠?”
“글쎄,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걸.”
츠바키의 미모는 평소였더라면 매력적으로 느껴졌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가 내 돈을 갈취해갔다는 생각에,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잘못한 건 그녀가 아니라 뽑기 확률을 극악하게 만들어 놓은 게임사다. 그래도 짜증 낼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럼 나는 한숨 잘게, 혹시 나갈 방법을 찾게 되면 알려줘~”
“당신도 같이 방법을 생각해 봐요!”
게임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인간과 함께 이런 이상한 장소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나도 일단 대체 누가 나를 이런 곳에 떨어뜨렸는지 생각하고, 누군가가 이 상황을 전부 촬영하며 즐기고 있는 건 아닐지 의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츠바키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가 게임캐릭터라는걸 알고 있다. 상식적인 상황이 아닌 만큼. 아마도 진짜 섹스하기 전까지는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무심하게 침대에 누웠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껏 여유로운 척했다.
나라고 해서 이곳에서 몇 날 며칠이고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여기엔 먹을 것도 없고, 아르바이트도 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이렇게 허세를 부리고 있다 보면 그녀가 먼저 섹스를 제안해 오겠지.
그 정도 돈을 썼으면 당연히 나와 줘야 할 뽑기가. 끝까지 안 나와주고 돈만 먹었다는걸 되갚아 주기 위해서라도. 그냥 평범하게 섹스를 하고 헤어지기는 싫었다.
그녀가 먼저 안달 나서 섹스를 조르는 상황을 즐기지 않을 수 없다.
...
“저기... 일어나 주세요...”
깜박 잠에 든 나를 츠바키가 흔들어 깨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를 찾는다는 건, 혼자서는 나갈 방법을 못 찾았다는 뜻이다.
“저는 여기서 빨리 나가야만 해요. 저희 무녀 가문은 대대로 신사에 봉인된 요괴들을 감시해 왔어요. 만약 제가 이렇게 자리를 비운동안 요괴들이 풀려나기라도 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에요. 그래서...”
아아. 게임스토리인가. 뭐 어찌 됐든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뭐?”
“그... 관계를.... 해주시면...”
필사적으로 부끄러움을 참아가며 부탁하는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그러나 고작 이 정도로 용서해줄 생각은 없었다.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는데?”
“섹스... 해주세요...!”
...
“처음 만난 사람과 다짜고짜 섹스를 할 리가 없잖아?”
“남자…. 분들은 다들…. 그런걸 좋아하시지 않나요?”
“그거야 뭐, 사람마다 다르지. 나는 지금은 별로 섹스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걸.”
“부탁드립니다!”
츠바키는 머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 그녀 입장에서도 이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처음 본 남자에게 섹스를 부탁하는 상황은 충분히 굴욕적이겠지만. 좀 더 놀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말 뿐만으로 되겠어? 좀 더 정중하게 '몸을 써서' 부탁하면 내가 그러고 싶은 기분이 들지도 모르는데.”
그 순간, 츠바키는 침대 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로 자지를 꺼내서 펠라치오를 해주려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한국식 절이 아닌, 일본에서 도게자 라고 불리는. 굉장히 무리한 부탁을 할 때 하는 행동.
그러나 나는 이걸 원한 게 아니었다. 다소 노골적인 표현을 사용했는데도 진짜 무슨 뜻인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애써 부정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제발 섹스를 해주세요...”
"어어.., 그러지 말고 일어나. 그렇게 나오면 오히려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리잖아. 나를 흥분 시켜 보라는 뜻이었다고."
...
“츄파…. 응…. 하앗…. 츄웁…. 우응…. 하읏”
그 순간. ㅡ 그녀가 다짜고짜 입을 맞춰왔다. 촉촉한 입술이 내 입술 위에 포개어진다. 입속은 따스하고, 혀는 부드럽게 달라붙어 온다.
"응…. 츄웃…. 쮸웁... 푸하...”
끈덕진 키스 이후 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이 떨어지자, 서로간에는 침으로 연결된 가느다란 실이 늘어진다.
츠바키는 곁에 앉아 가녀린 손으로 내 바지 위에 손을 얹었다. 바지 위에서도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팽팽하게 발기되어있다. 그리고 어깨에는 마찬가지로 옷 위에서도 볼륨감이 확연히 느껴지는 그녀의 가슴이 닿는다.
“저... 어때요? 이 정도면 하고 싶은 기분이 좀 드셨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