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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309) (309/310)

〈 309화 〉 히어로 앤 빌런

* * *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각성을 마친 초기 상태의 이능은 고유하지 않다.

자신의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구적인 범위에 놓고 찾으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물론 상세히 따져보면 같은 능력이라도 힘의 크기 차이는 티끌이라도 존재하리라.

허나 동일한 분류로 묶는 것은 대부분이 가능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건 육체 강화 계열이었다.

절대적인 수가 많은 만큼, 이 능력의 최저치와 최고치는 꽤나 차이가 났다.

어떤 운 없는 사람은 모든 각성자가 기본으로 가지게 되는 튼튼함 정도의 사수한 육체 강화 능력을 얻기도 하지만…

반대로 어지간한 발현계 부럽지 않을 정도로 강인한 신체를 얻는 이도 있었다.

바로 내 경우가 그러했다.

“박찬영님? 세상에, 영구 활성화 계열이라 하셨죠? 축하드립니다! 이 정도면… 발현계 신체 강화 능력자를 기준으로 봐도 평균점 이상이시네요!!”

눈앞.

이능력 측정 기관 소속 검사원이 프린트해 온 결과지 시트를 보며 대단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발현 계열의 신체 능력자는 큰 폭으로 신체 강화가 가능하지만,

늦든 빠르든 시간제한과 쿨타임이 있다.

패널티가 있는 만큼 영구 활성화 계열보다 강력한 것이 일반적이다.

허나 이번에 검사하며 밝혀진 내 기본적인 신체 능력은 발현계 능력자의 평균을 넘나 보다.

검사원은 극히 희귀한 케이스를 보듯 나를 축하했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최상위권이 아닌 것이 불만이었다.

아무리 마나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검사에 임했다곤 한들, 고작 발현계의 평균에서 끝나다니…

내가 스텟 하나를 올리기 위해 하는 고생이 얼마인가?

“저 같은 경우가 드무나요?”

“정확한 퍼센티지는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영구 활성화 계열의 신체 강화, 동일 분류에 속한 능력자 중에선 손꼽히리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검사원은 신나서 이야기를 계속했으나, 저건 아무리 봐도 호들갑이었다.

저번의 거대화 능력자처럼 좀 강한 발현계 능력자라면 몇 번이고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마나를 쓰지 않고서는 상위권에서 노는 원소계 능력자를 결코 이길 수 없다.

특수한 경우라면 몰라, 몸 조금 튼튼한 거로 손에서 거대한 불길을 쏘는 놈들을 어떻게 이겨?

한계가 명확한 능력.

하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단점이 명확한 능력, 딱 내가 원하는 상황이네.’

내 능력이 도움도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해서는 안 된다.

장혁은 나를 필요로하며, 나 역시 장혁이 필요한 공생 관계.

그것이 목표였다.

“…건 물론이고, 박찬영 님의 경우는 능력 컨트롤의 정교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셔요! 으레 영구 활성화 능력자들이 거치는 근력 적응 기간도 필요 없으실 정도… 앗! 친구분도 측정을 마치고 나오시네요!”

검사원의 손끝에 향한 방향에서는 장혁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녀석 역시 며칠 전 각성한 거로 되어있는 나처럼 능력을 측정했기 때문이다.

여태 발현계 신체 강화 능력자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버프 계열이었으니, 능력 재측정은 당연히 필요한 과정이었다.

“뭐래?”

“문제는 없는데… 조금 걸리는 게 있어서.”

“응? 뭐가?”

장혁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가 어째서 그러한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지만, 전혀 모르는 척 되물었다.

“으음… 지금까지 밝혀진 버프계 능력 중, 나처럼 신체를 강화하는 계열이 발견된 적은 처음이래.”

“허, 네가 최초라고?”

“응. 대부분이 재생력 향상 버프에, 조금 나아가면 둔화나 졸음 유도 같은 디버프 계열이잖아? 엄청 드물기로는 화상 면역 부여 같은 속성 내성 버프가 있고.”

“그렇지?”

“가벼운 수준의 신체 활성화면 몰라, 이렇게 큰 폭으로 강화가 가능한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네?…”

얼떨떨한 표정.

그는 아직 자신의 손에 쥐여진 특별함을 실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허나 나는 알고 있다.

저 능력으로 인해 녀석이 얼마나 많은 현직 히어로들한테 듀오(duo)로 활동하자는 제안을 받는지.

“잘은 모르겠는데, 최초라면 엄청난 거 아니냐? 발현 초기부터 고유 능력이었던 히어로들은 죄다 이름 날리고 있잖아.”

“그치. 당장 1위 히어로이신 은서연 님만 해도 고유 능력이시고….”

“근데 왜 텐션이 그리 낮냐? 엄청난 행운을 쥐어 놓고. 표정 좀 펴라. 네 얼굴로 그러면 주변 사람들 겁먹잖아.”

“…큼. 어… 확실히 좋은 건 맞는데… 내 능력에 조금, 걸리는 점이 있어서?”

“걸리는 점?”

장혁이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 보았다.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을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너한테 처음 버프를 써 줬을 때 기억나?”

“그 빌런을 제압할 때?”

“맞아. 그때 넌 분명…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무력을 보였…잖아? 발을 한번 박찬 것만으로 하늘을 날았고.”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내가 보인 힘은 확실히 초월적이었다.

“거의 네 능력 덕이지만.”

“그래! 그 부분이 애매하단 거야! 왜지? 난 분명 그때랑 똑같이 능력을 썼는데, 왜 그때처럼 어마어마한 폭으로 강화가 안 될까?”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게 열심히 표정 관리를 하면서, 속으로는 장혁을 응원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생각해 봐.

“내게 버프를 줬던 그때만큼 효율이 안 나와?”

“비교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물론 아직까진 꽤 의미 있는 성능이긴 한데… 그때에 비하면, 심할 정도로 약화 됐어.”

“어… 당연한 거 아니야? 난 이제 신체 강화 능력자잖아. 아마 네 능력이랑 중첩 돼서 시너지가 난 것이겠지.”

장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저 멀리서 장혁의 시트지를 보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검사원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나도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하고 검사원분들 중 너랑 비슷한 능력을 지닌 사람한테 버프를 걸어 봤는데….”

“……여전히 그때의 효율이 안 나왔어?”

“응.”

장혁이 도무지 원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만들었다.

그가 혼란에 빠진 것은 당연하다.

그때의 난, 놈의 버프만 받은 것뿐만이 아니라…

마나로 인한 신체 강화에 혈귀화까지 더해져 내 무력을 끌어 올린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모르는 척을 했다.

장혁이 생긴 것과 반대로 꽤나 머리가 굴러가는 덕에,

내 계획은 생각보다 훨씬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럼 간단하네.”

“간단…하다고?”

고민하고 있는 장혁에게 가볍게 말했다.

슬슬 그의 생각을 내가 ‘만들어 둔’ 정답으로 유도해야겠다.

“너는 내 능력이 정확히 뭔지 짐작 가는 게 있는 거야? 혹시 소모성 능력이라던가… 아니면 충전형? 아! 어쩌면 위기 상황에서 능력이 극대화되는 걸 수도 있…”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어제 능력을 썼던 조건을 재현하면 간단히 가능성을 좁혀낼 수 있잖아? 장소나 시간, 그리고 능력을 쓴 대상 같은 것.”

“재현?”

“그래. 뭐… 네 말대로 목숨이 위험한 극단적인 상황이 원인일 수도 있는데… 그건 지금 시험하기 힘드니까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보자고.”

시간대가 그때와 같아지려면 아직 반나절이나 남았고, 빌런을 마주친 한강 공원은 이곳에서 꽤 떨어져 있다.

하지만 당장 이 자리에서 재현 가능한 조건은 하나 있다.

바로 버프를 썼던 대상.

“나한테 다시 한번 써봐. 어제처럼.”

“설마 그런 간단한… ……아니. 알겠어. 해보자.”

웃으며 부정하려던 장혁이었지만,

한 번쯤은 실험할 가치는 있다는 걸 깨달았나 보다.

녀석이 진지하게 턱을 쓸기 시작했다.

“검사원님! 혹시 근력 측정 다시 한번 가능할까요??”

가장 측정 범위가 높은 장비로 부탁했다.

안 그래도 꽤 강한 근력을 지녔던 내가 버프까지 받을 예정이란 이야기를 듣자,

주변이 한층 분주해지며 나를 어떠한 장소로 안내해주었다.

“이건 자동차 충돌 테스트를 할 때의 물리력을 재는 장비인데… 기증받았어요. 지금 저희 시설에 있는 측정 장비 중 가장 큰 범위까지 기록 가능한 놈이기도 하고요.”

강철로 만들어진 벽이라 해도 다름없는 중장비였다.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보다 더 두꺼운 철덩이의 골렘조차 부순 경험이 있지 않던가?

“준비해. 버프 쓴다?”

구경을 하기 위해 모인 검사관과 장혁이 안전 라인이 그려진 뒤쪽까지 한참을 물러섰다.

나는 언제든지 써도 좋다는 의미로 팔을 벌렸다.

그리고…

전날 깃들었던 충만한 힘이 다시금 신체를 채웠다.

후욱!

뜨거운 기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싶다며 아우성을 쳤다.

비록 해가 지지 않아 혈귀화는 쓰지 못하지만…

금강수(?手)로 단단해진 일정권(一??)의 위력이라면 장혁의 의문을 해결하기엔 충분하리라.

굳게 쥐인 주먹을 장전하듯 뒤로 당겼다.

발끝은 육중한 철근이라도 매단 듯 단단히 몸을 지탱했고, 반쯤 뒤틀어진 상체는 신호하는 그 순간 주먹을 쏘아내기 위해 온 신경이 날카롭게 솟아 있었다.

조급하지 않게. 근육 한올 한올까지 마나를 불어 넣으며 정성 어린 일격을 준비했다.

이윽고, 그 어느 때보다 준비된 한 번의 주먹질이 완성되었다.

실은 이렇게까지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기는 소설 속 세계 아닌가?

주인공이 능력 측정할 때 무조건 나오는 클리셰가 없으면 섭섭하지.

꿀꺽.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그 작은 소음을 신호 삼아…

나는 벼려진 최선을 기폭 시켰다.

­ 콰아아앙────────!!

실내를 몰아치는 바람이 터지는 경악을 막아섰다.

뒤에 선 사람들이 내 주먹으로 인해 벌어진 광경을 눈에 담을 수 있는 건,

아마 이 모래 먼지가 조금 가라앉은 뒤가 될 것이다.

철 덩어리를 쳤을 텐데 왜 먼지바람이 이냐고?

“벼,벽이….”

“이게 말이 돼?!”

“망…했….”

측정 장비였던 무언가가 두 번 다시 써먹을 수 없을 정도로 완파된 것은 물론이며,

뒤로 날아가다 벽에 부딪혀 박살 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실내에 있음에도 시원한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뒤에 선 직원들의 하얗게 변한 얼굴을 보니, 뒷감당 생각에 도저히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원래 장비가 방 중간에 설치되어 있었으니, 족히 15M는 날아갔다고 봐야 했다.

저 두터운 외벽이 없었다면 더 멀리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혈귀화까지 썼으면 인명피해가 생길 뻔했네….’

농담이 아니라 기둥을 잘못 건드렸다면 건물이 무너질 가능성조차 있었다.

그래도 어제 거인을 공중에 띄웠던 주먹보다는 조금 부족한 것이,

혈귀화 스킬을 쓰냐 안 쓰냐가 꽤 큰 차이를 발생시키나 보다.

하지만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장혁을 보니, 증명하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나는 어깨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네 능력이 극대화되는 조건. 내 생각에는 첫 시도 만에 찾아낸 것 같은데… 넌 어때?”

“……나도 찾은 것 같아.”

“우리가 꽤 합이 잘 맞긴 하지? 큭큭.”

“하하…. 나도 그리 생각은 해왔는데, 설마 잘 맞는 게 성격에서 끝나지 않을 줄이야.”

끙끙 앓던 문제의 정답이 이리 간단하다는 것에서 온 허탈감 때문일까?

장혁은 꽤 유쾌해 하면서도 살짝 멍해 보였다.

‘성공…이네. 적어도 1단계는.’

이로써 버프 능력이 나를 한정해서 어마어마한 효율을 보이는 현상을 꾸며내는 것에 성공했다.

이 특별한 시너지를 무시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위력이 아닌가?

나는 홀로 서면 그저 그런 능력을 지닌 영웅에 불과하고, 장혁 또한 나와 함께할 때 가장 빛날 수 있다.

이미 격 따윈 없는 친구 사이.

함께 히어로를 목표로 하고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니 당연히 듀오를 결성하리라.

녀석은 시간이 갈수록 나를 신뢰하며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어린 시절 외모에 편견을 가지지 않고 유일하게 다가와 준 친구이자,

믿고 등을 맡기던 히어로 파트너가…

실은 흉악한 테러리스트였다는 걸 알게 되면 어찌 될까?

또한, 나와 함께 히어로 활동을 했던 것들이 모조리 ‘삼도천’의 활동을 돕는 간접적인 행동이었다면?

그때도 그는…

과연 『긍정적』이라는 특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붉은 실타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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