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화 〉 히어로 앤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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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진] “대참사를 막아선 히어로” 알고 보니 일반 시민?
금일 14시, 한강공원 인근 거대화 능력자의 테러로 인해 3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가 공식적으로 집계되었다.
당일 사고 발생지에는 주말을 즐기러 나온 시민이 거리를 채웠기에 자칫하면 백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사건이었…
중략
…놀랍게도 크나큰 인명 피해를 막아선 주인공은 CSTO 소속 히어로가 아니었다.
마침 근처를 다니던 일반 시민 박찬영 씨는 몸을 날려 테러범을 막아선 끝에, 성공적으로 제압해내었다.
(사진)
* 거대화한 빌런과 맞서는 박씨
히어로를 지망하고 있다 밝힌 박찬영(23) 씨와 그의 친구 장혁(23) 씨는 거대화한 빌런이 시민에게 위협을 가하자 대피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제압을 결심했다.
마침 신체 강화 계열(박씨)과 버프 계열(장씨) 능력을 지닌 두 시민 영웅은 좋은 호흡으로 추가 피해 없이 빌런을 막아섰다.
이내 CSTO 소속 히어로가 합류하며 테러범은 송치되었고, 금일 한강공원 테러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사진)
* 왼쪽부터 박찬영·장혁 씨
박씨는 “이번에는 운이 좋아 잘 풀렸으나, 앞으로는 권고대로 히어로에게 제압을 맡긴 뒤 대피를 우선하겠다.”, “변을 당하신 분들께 애도를 표한다.”라는 등 겸손한 모습을 보이며 주변인들의 박수를 자아내었다.
1시간 전 CSTO(국제초능력테러대응기구) 한국지사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능 테러 집단 ‘삼도천(三?川)’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테러의 여파에 닿은 건물에 있던 23명의 시민은 무사히 대피하는 것에 성공했었으며, 추가적인 인명 피해는 없다고 경찰은 설명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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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후후후. 괜찮게 뽑혔죠?”
쭉 늘어진 기사를 거기까지 읽었을 때.
수화기 너머에서 조금 어색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음… 잘은 모르지만 이슈가 된 건가요?”
“이슈? 당연하죠! 메인 페이지에 걸렸잖아요?”
큼직한 실적을 세운 제이는 티 나게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현재 제이가 소속된 워싱턴 포스트 및 해외 언론에서도 꽤 화제가 된 건 물론이고,
그 소속사에서 이 기삿거리를 한국 언론사 쪽에 비싸게 팔아넘겼나보다.
아마 제이에게도 추가 수당이 나오려나?
“예상외로 댓글에 호평 일색뿐이네요. 일단 피해자가 나오기는 했으니, CSTO한테 대응이 모자라다 욕하는 사람 한둘은 분명 있을 줄 알았는데.”
“네에? 그런 건 ‘악플’이잖아요. 누가 감히 그런 댓글을 남기겠어요?”
“…아하.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기사로 다시 한번 돌렸다.
커다랗게 화면을 차지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유순해 보이는 청년 한 명.
그리고 거인보다 더 빌런같이 보이는 남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얼굴을 내거는 걸 허락해 줘서 고마워요. 찬영씨 마스크 덕 좀 본 것 같은데요?”
“하하…. 너무 띄워주시면 낯간지러운데요. 기자님.”
“에이. 기자님이 뭐예요? 그냥 편하게 ‘제이’라 불러요.”
“그게 편하다면야… 알겠어요. 제이.”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콧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당장 우리는 기자와 취재 대상일 뿐인 관계였지만,
그녀는 명백히 나와 거리를 좁히고 싶은 듯 보였다.
제이는 꽤 괜찮은 미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그러고픈 마음이 전혀 없다.
차마 그녀의 앞에서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내 주변 사람들이 워낙 미인인지라, 사소한 손색이 눈에 잡히고 만다.
장담컨데 제이 또한 나와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 크게 만족할 것이다.
히어로와 친분이 있다는 건, 모든 사람의 선망을 받기에는 충분한 일이니까.
물론 그녀더러 진지한 관계가 되자 한다면 망설임 없이 수락하리라.
허나 그건 내게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친구 관계보다 연인 관계가 끈끈할 테니 계산적으로 따져 그쪽을 더 선호할 뿐.
“으음… 이 기사를 시작으로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긴 하지만… 월간 탑 토픽을 차지하기엔 조금 애매할지도?”
“제이, 설마 거기까지 기대하고 있었어요? 너무 욕심 같은데요.”
“……그 테러리스트가 사실은 움직이는 시체였다는 걸 밝히기만 했다면 거뜬했을 거예요.”
원작에서는 나와 주인공을 구하기로 되어있던 히어로 한나리.
그녀는 CSTO 소속 요원으로써 언론에 공개 가능한 정보 범위를 제한했다.
조금 막 나가는 기자 제이라도 차마 CSTO를 거스를 순 없었다.
좋은 기사를 쓰는 것보다 한국에서 테러리스트를 몰아내는 것이 우선이란 것을 제이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대가로 제 번호를 받아 갔잖아요? 아. 방금 건 좀 잘난 체 같았나.”
“하핫. 전혀요! 사실 이 번호로 만족해요.”
“기사 잘 써줘서 고마워요. 다음에 일 있으면 연락할게요.”
“네! 찬영씨도 입시 준비 열심히 하세요! 그리고 일없어도 연락해도 돼요.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던데, 편하게 편하게 지내자구요.”
끊어진 전화기를 바라보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점검했다.
일단 내일 오전부터는 바쁘다.
능력을 측정하고 참고인으로서 출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급한 불은 이 세계에 들어온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오늘 내에 끄는 것이 맞다.
*
해가 완전히 진 밤.
목적지는 내 신분증에 적힌 거주지와 꽤 먼 거리였다.
그래도 하드모드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마력 바이크 덕분에 어렵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차원이지만 서울의 지리는 원래 세계와 같아 다행이다.
중학교 후문 옆 일방통행 도로로 발을 옮기면 내가 찾아가는 인물이 자주 가는 돼지 국밥집이 나오고,
벽면에 산새가 그려진 아파트를 지나치는 방향으로 기준 잡아 걷는다.
그리 하염없이 걷다 보면 골목의 막다른 길에 닿는데, 바로 눈앞에 아파트라기보다는 빌라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어울리는 건물이 보이게 된다.
특징은 없다.
낡았으며, 평범하다.
원작 속 묘사와 똑같다는 뜻이었다.
끼익.
나는 빌라의 주민인 것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들어갔다.
몸이 건물 안에 완전히 들어갔음에도 천장 위 고장 난 방향 센서는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하고 어두운 그대로였다.
아무래도 장소를 잘못 찾은 건 아닌 것 같다.
연식이 너무나 오래되어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건물.
밀폐된 복도에는 사람이 들어오면 발소리가 울려야 했지만, 내 발밑은 고요했다.
‘고요한 발자국’을 활성화 시킨 것에 그치지 않고 ‘디시빙(Deceiving)’으로 얼굴마저 바꾸었다.
스킬로 바뀐 얼굴을 만지작거려 보았다.
누구의 얼굴을 빌렸냐면, 이강인의 얼굴을 빌린 상태다.
녀석은 꽤 생기긴 했지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면 많이 사납게 생겼단 말이지?
이처럼 악당 같은 짓을 할 때 의외로 어울렸다.
‘닳는 것도 아니잖아? 어차피 넌 이곳에 없으니 좀 같이 쓰자.’
1층. 2층. 3층.
그리고 4층.
아직 위 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지만, 4층이 맞다.
두세 걸음이면 끝나는 조그마한 복도를 지나 403호의 앞에 섰다.
‘……인기척은 없는데.’
귀를 돋구어 보아도 들리는 것은 없었다.
문고리를 잡고 잠깐 고민해 보았다.
이대로 돌입할까?
지금 내가 찾은 곳은 삼도천과 관련 있는 곳이 아니다.
위험하지는 않으리라.
아니, 생각해보면 위험할 수 있기는 한데…
이 안에 함정이 있을 확률은 무척 낮았다.
‘걔는 자신을 미끼로 함정을 파는 타입은 아니니까. 그럴 능력도 없고.’
매일같이 수련하는 육감도 아무런 경종을 울리지 않고 있다.
어느 정도 확신이 서자, 망설이지 않고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
의외로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나는 재빠르게 안으로 들이닥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조그마한 집.
그래봤자 어둠은 내 시야를 방해하지 못한다.
허나,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하. 눈치채고 튀었나?”
집은 넓지 않다.
부엌과 합쳐진 거실과 겨우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 고시원 크기의 침실이 끝이다.
한눈에 들어왔기에 사람이 없단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물며 깨끗이 정리된 탁자 위에 얇게 먼지가 쌓인 것이, 하루 이틀 자리를 비운 건 아닌가 보다.
이제는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녀석은 내가 오는 것을 봤나 보다.
바로…
미래시(???) 능력으로.
“젠장. 원래 예언자나 미래를 보는 귀찮은 능력을 가진 놈들은 초반에 죽여놔야 하는데….”
원작 기준 30화쯤 지나서 CSTO 측에 합류하게 되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나는 삼도천 쪽에 적을 둘 것이니, 이 가난한 예언자와는 적이 아닌가?
완전히 빌런으로 돌아설 예정이면 또 몰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겉으론 히어로 유망주를 연기해야 한다.
그런 두 얼굴을 연기하는 데 있어서 예언자는 최악의 상대나 다름없다.
내가 흑막인 걸 들킬 확률이 너무 높잖아?
“…그렇다고 걔의 능력이 전능하단 건 전혀 아니지만….”
예언자는 자신이 눈으로 볼 미래만을 알 수 있다.
미래에 그녀가 없는 곳에서 벌어진 일들은 모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는 전부 아는 것도 아니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뜬금없이 무작위로 선정된 미래가 보이고는 한단다.
즉, 녀석이 평생동안 내가 흑막이란 걸 모르게 한다면 계획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다.
‘가장 깔끔한 건 미리 죽여 놓는 건데, 하필이면 자신이 죽는 미래를 본 건가.’
제약이 너무나도 많은 능력.
발동되더라도 보이는 미래는 대부분이 잠을 자거나 일생 생활을 하는 자신이다.
그럼에도 미래시라는 초능력은 유용하다.
이 결론에 반박하는 이는 한 명도 없으리라.
딸깍.
빈집이라는 것이 확정되었으니 불을 켜보았다.
집안은 허탕 친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단 하나, 바닥을 굴러다니는 종이를 빼고.
스윽.
“…뭐야. 혹시 편지?”
설마가 맞았다.
편지에는 삐뚤어진 손글씨가 늘어져 있었다.
나는 차분히 글을 읽어 나갔다.
어째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어떻게 제가 사는 곳을 찾았고, 또 무슨 연고로 죽이려 드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어떠한 오해를 하신 것 같군요.
훗날 저희는 같은 편에 섭니다. 저는 적이 아닌 아군이라고요!
어지간하면 대면한 상태로 설득을 시도해보겠으나…
저를 참 살벌하게도 죽이시더군요.
당신이 악행을 쌓길 겁내지 않는 특이한 종류의 사람이란 건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런 자와 둘이 보기에는 제 심장이 너무 작네요.
너무 분노하지는 말아주세요.
저희는 머지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그때 다시 대화를 나누도록 하죠, 굴라(Gula).
“하…. 아군이 된단 소리는 뭐고, 굴라는 또 누군데. 설마 나?”
이 편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를 기만하는 것 또한 아닐 것 같다.
그 예언지는…
조금…
어리숙하니까.
당장 편지만을 보면 멍청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녀석이 삼국지 덕후라서 그렇다.
삼국지에 나오는 현명한 전략가의 말투를 모방하는 것이다.
꽤 이야기를 길게 풀어 편지에 적어놨으나….
그냥 겁먹어서 하나 있는 재산인 집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아마 지금쯤 주린 배를 부여잡고 노숙을 하고 있지 않을까?
안타깝다.
그러게 내 손에 순순히 죽었으면 고생할 일 없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지금 내 얼굴은 원래 얼굴이 아닌 이강인의 얼굴인데?”
녀석이 본 미래 속의 난 이강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집에 들이닥치기 전에 스킬을 사용했으니.
또한 나는 삼도천에서 활동할 때 이강인의 얼굴을 계속 빌릴 예정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강인의 얼굴을 한 나를 녀석은 이름이 아닌 ‘굴라’라고 불렀다.
정확한 건 아직 모르겠으나…
아직 녀석은 ‘박찬영’과 ‘굴라’ 사이의 연관성을 모르고 있는 걸까?
“그런데 대체 왜 아군이라 날 부른 거지… 이 세계에서는 녀석이 CSTO에 스카웃 되지 않는 건가?”
첫날부터 원작이 너무나 비틀린 나머지 감도 안 잡힌다.
결국 예언자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타래’를 쓴다면 현재 녀석이 있는 위치를 알 수 있겠지만…
솔직히 이런 곳에 그 귀한 소모품을 쓰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어차피 녀석은 개인적인 무력도, 단시간 안에 조력자를 찾을 수단도 없다.
그러니 조금 정도는 그 명줄을 붙여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