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7화 〉 히어로 앤 빌런
* * *
21세기.
숨겨졌던 세계의 규칙 하나가 밝혀짐과 동시에, 인간은 초능력이라는 특별한 힘을 선물 받았다.
시간. 장소. 대상 등등…
어떠한 공통점도 없이 갑작스럽게 주어지는 이 초능력이라는 행운은,
그 높은 발현 확률 덕에 대부분의 사람이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여태 가졌던 것과 궤를 달리하는 거대한 힘.
당연히 시장 경제는 요동쳤고, 수많은 소란이 생길 것이라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
허나 세상은 고요했다.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상냥해졌다.
법보다 힘을 숭상하는 무리? 혼란에 빠진 세계? 세계적인 이능 범죄 조직?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나, 극히 드물었다.
이제는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는 사람조차 완벽히 사라졌으니…
얼마나 지루한 세상이 되었는지 말하자면 입만 아프리라.
‘그래! 너어어무 평화로워! …나같은 기자는 직장을 잃기 딱 좋을 정도로.’
그렇기에 문제였다.
어지간한 기사로는 관심을 끌지 못하니까.
워싱턴 포스트 소속의 기자 제이가 한국이라는 테러리즘 노출 국가로 자진해 발을 옮긴 이유기도 했다.
미국이란 나라는 안전 하나만큼은 확실히 보장 된 살기 좋은 나라지만,
토픽을 먹고 사는 기자에게 있어선 최악의 나라였다.
물론 이렇게 목숨을 걸지 않더라도 먹고 살 방법이 있긴 했다.
과거에는 특정 유명인의 별 것 없는 행동을 확대 해석하거나,
악의적이면서도 자극적인 제목을 지어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기사를 곧잘 내었다 했으니까.
하지만…
제이를 포함해서, 오늘 세계에서는 그 어떠한 기자도 그러한 짓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것은 명백한 ‘악행’이니까.
기사의 제목에 외곡을 넣지 못하는 이상.
경쟁은 정직해졌다.
수많은 언론사 중 누가 더 빠르게 특종을 쥐냐가 우위를 갈랐다.
그런 상황에 놓인만큼, 여태껏 내세울 성과 없던 제이에게 있어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콰아앙—!!
비록 한쪽이 비정상적으로 거대하다곤 하지만,
사람의 주먹과 턱이 맞부딪히며 났다기에는 믿기 힘든 소리가 대로를 울렸다.
도망치던 일반인과 같이 멍을 때리면서도 그녀가 카메라를 들어 올린 건…
아마 기자로써의 본능 때문일 것이다.
7층 언저리의 상가가 거인의 어깨에 스친 것만으로 철근을 드러냈다.
딱 절반만이 밟힌 자동차의 부속물은 도로 아래의 아스팔트와 뒤섞여 있었다.
그 무게감을 짐작하기엔 질릴정도로 충분한 광경들이다.
그런 거인이.
물리력에 의해 공중을 날았다 하면 믿겠는가?
“저,저거 떨어지면….”
제이는 잠깐 뒤 벌어질 참사에 얕게 두려워했다.
3초가량 중력을 이겨낸 거인이었지만, 그리 오래 거스르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면 거인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도망치던 사람들은 아마…
저 밟힌 차 안의 누군가처럼 핏물로 변하리라.
허나 제이의 걱정은 기우였다.
커질 때 그리 갑작스러웠듯이, 한창 날아가던 거인의 몸은 공중에서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결국 평범한 인간의 크기로 돌아가며 건물 사이에 가려져 제이의 시선 밖으로 사라졌다.
기이하게도 거인을 날려버린 남자는 마치 그리 될 것이란 걸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땅에 발이 닿자마자 작아진 거인이 날아간 곳을 향해 발을 박찼다.
“…앗! 이럴 때가 아니지!”
제이도 허겁지겁 남자의 뒤를 따라갔다.
위험할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제이가 목숨 귀한 줄 아는 기자였다면 한국으로 향하지도 않았으리라.
‘동양인… 아마 한국인이겠지? 근접전 선호. 따로 무기는 없었고… 능력은 신체 강화 계열? 그리고 다른 특징으론… 엄청 잘생김! 으으으으… 누구지? CSTO 한국 지사 소속 히어로 중 이런 특징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지?’
두 눈으로 직접 본 것은 물론,
그녀의 3개월 월급보다 비싼 카메라에 똑똑히 찍혔다.
빌런으로 추정 되는 까마득한 크기의 거인을 단 한번의 주먹질에 넉다운 시킨 것을.
강한 무력 뒤에는 명성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심지어 저 정도의 외모를 지녔다면 분명 그녀의 수첩 속에 반드시 기록 되어 있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달달 외운 리스트 속에서는 눈 앞의 남자와 일치하는 인물은 없었다.
그럴 확률은 너무나 낮겠지만, 설마 일반인인 것일까?
탁탁탁탁!!
다행히 달리기는 자신 있었다.
앞으로 넘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제이가 가진 능력이었으니까.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이능이나, 기자 생활 중 나름 유용하게 써먹는 중이었다.
몸을 쓰러지듯이 앞으로 기울이고, 능력에 의해 넘어지지 않는 그 미묘한 상태를 균형 감각을 이용해 유지한다면…
평범한 사람의 달리기 속도의 1.5배는 낼 수 있었다.
“…러니까, 정말로 CSTO 소속이 아니라고? 거짓말 아니야?”
“원하신다면 모든 신원 조회에 협력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진짜 같네. 그렇다면 더더욱! 너는 얌전히 나를 기다렸어야 해. 난 늦지 않을 수 있었어. 네가 얼마나 위험한 행동을 한 지 알고 있을까?”
“죄송합니다. 이놈이 앞으로 눕듯이 뛰려 들길래…. 급해서 그만.”
“그건…… 나도 봤어. 그리고 그걸 포함해서 난 늦지 않을 수 있었단 이야기야. 목숨이 여러개도 아니고, 어떻게 일반인이…!”
빌런을 무찌른 남자는 하늘에 떠 있는 누군가에게 혼나고 있었다.
다행히 그 ‘누군가’는 제이가 외워 둔 프로필 속에 있었다.
‘한나리? 저분은 활동 반쯤 은퇴하고 사관학교의 선생으로 있지 않나? 하긴, 연락을 받고 출동했다기 보다는 마침 우연히 근처에 있었다고 하는 게 더 그럴듯한 속도였지.’
제이는 그 둘의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평화롭게 대화를 나누는 둘의 옆, 바닥에 반쯤 박힌 알몸의 남자가 몸을 버둥대고 있었다.
제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짓누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력함의 대표로 뽑히는 원소 계열.
그 중에서도 제압에 특화 된 기체 제어 능력이었다.
누구의 능력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당장 한나리를 보면 바람을 밟은 듯 공중에 떠 있지 않던가?
“도착해서 보니 바닥에 박혀 있길래 조금 걱정했는데… 이 이름 모를 범죄자, 다행히 몸 하나는 튼튼한가보네. 아직도 힘차게 반항을 해대고.”
“아뇨…. 죽어 있습니다.”
“…뭐어? 무슨 소리야? 당장 버둥대고 있잖아.”
“으음.”
남자가 곤란스러운 얼굴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한창 꿈틀대는 빌런을 내려다 보았다.
“방금까지 제가 제압을 하고 있을 때. 맥박이 안느껴졌거든요. 숨결이나, 체온 같은 것도 전혀 없었고.”
“…설마…. 이거 움직이는 시체라는 뜻이야?”
“저도 좀 당황스럽네요. 잡아놓고 보니 시체일 줄이야.”
“시체… 시체…. 설마, 젠장.”
갑자기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한나리가 주변을 휙휙 돌아 보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빌런이 격렬히 반항하던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순식간에 영혼을 빼앗긴 것처럼.
둘의 대화를 엿들은 제이로써는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어쩐지 소름이 돋는 장면이었다.
한나리는 고요해진 범죄자를 보고는 명백하게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봐 너. 혹시… 주변에서 가면 쓴 사람 본 적 없…어?”
“…아니요. 못 봤습니다.”
“그래? 젠장. 일단 알겠어.”
입술을 한번 아플정도로 깨문 한나리가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지도 않고 번호를 재빠르게 누르며 남자를 향해 말했다.
“아! 정보 제공 고마워! 큰 도움이 될 거야. 난 전화 좀 할테니, 아직 가지 말고 근처에 있어줄래? 물어볼 게 더 있거든.”
“혹시 친구한테 전화 좀 해도 될까요? 혼자 두고 와버려서….”
“상관 없어! 아! 여보세요? 나 한나리인데,”
그 뒤에 한나리의 통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공기층을 분리하며 소리를 차단한 것이다.
그제야 제이는 건물 뒤 숨겼던 몸을 슬며시 꺼내기 시작했다.
대충 급한 불은 수습한 것 같으니…
이제는 기자의 본분을 다할 차례다.
이건 특종이 될 것이 분명하다는 감각에,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는 남자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갔다.
“거기 남성부운!! 혹시 짧게라도 인터뷰 가능하실까요?!”
“누구시죠?”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온 워싱턴 포스트 소속 기자, ‘제이’라고합니다! 평범히 외신 기자라고 하죠? 만나서 반가워요.”
씨익 웃으며 악수를 건네었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두셋 죽은 것만으로 소란이 이는 평화로운 세상이다.
척 봐도 오늘 사건에서 그정도의 희생자는 난 것 같고,
하마터면 수십 단위의 사상자가 날 뻔한 사고이다.
그런 대형 사고에서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 건 다름아닌 일반인?
하물며 마스크까지 된다.
이건, 바보가 보더라도 특종감이었다.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그냥… 히어로 지망생이죠.”
“히어로 지망생!”
제이는 경악했다.
악수를 받아줬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을 소개한 말 때문이다.
설마 싶었는데 정말로 일반인일 줄이야.
심지어 히어로 지망생이란다.
‘…잠깐. 잠깐만.’
강인한 무력.
서양인도 호불호 없을 듯한 외모.
게다가 오늘 있었던 일을 잘 포장하면 보기 좋은 미담이 된다.
꿀꺽, 현재 자신 앞에 놓인 행운을 깨달은 제이는 긴장했다.
생각해 보니까 특종따위는 안중도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 이야기가 잘 흘러 간다면…
그녀는 70억의 일반 시민이 그토록 바라는, 히어로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일류가 될 것이 확실시 되는 원석의.
*
놈이 시체인 줄은 나도 몰랐다.
원작에서는 한나리의 손에서 벗어나 도망치는 것에 성공하니까.
어쩐지…
팔이 한짝 떨어져 나가도 고통에 몸부림치긴 커녕 개의치 않고 도망쳤다는 식으로 서술 되더니,
이러한 비밀이 숨겨져있었나보다.
한 사람은 두가지 능력을 보유할 수 없다.
이 시체는 덩치를 불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심장이 멈춰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을 해설할 수 있는 상황은 몇가지로 좁혀진다.
그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시체를 조종하는 능력인가?’
미간이 좁혀졌다.
상상만해도 강력한 능력이다.
단순히 시체를 조종하는 것이면 몰라, 설마 조종하는 시체의 능렦까지 사용할 수 있다니?
이래서야 두가지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만약 동시에 여러 시체를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들의 능력을 모조리 쓸 수 있다면…
‘설마 소설 내 숨겨져있던 최종 보스야?’
한나리는 가면을 언급했다.
연상 되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 가면 쓴 괴인.
눈치로 보아하니…
한나리는 그러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누군지 알고 있나보다.
소리를 차단해 놓은 한나리의 입술을 유심히 살폈다.
그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여 방심한 채 숨김 없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게 독심술 능력 따위는 없지만, 한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지만을 체크하면 된다.
바로…
‘아! 나왔다! 삼도천(三?川).’
명백히 착각은 아니었다.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나리의 입에서 ‘삼도천’으로 추정 되는 입모양이 적어도 여러번 나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나누는 강의 명칭이지만, 한국에 사는 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한 단어다.
한국을 테러리즘 노출국으로 만든 강력한 범죄 집단의 이름이 바로 삼도천(三?川)이니까.
유명세와 반대로 정확한 인원이 몇인지는 베일에 감춰져 있다.
아주 유명한 두세명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소설 ‘히어로 앤 빌런’은, 빌런 조직 삼도천과의 대적이 주 된 스토리를 이룬다.
안타깝게도 모든 비밀이 공개되기 전에 연재를 중지했기에 나 또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가면 쓴 괴인 역시 삼도천 소속이란 것이다.
대충 그렇지 않을까 예상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한나리의 반응을 보니 예상이 들어 맞은 것 같다.
‘괴인이 있던 곳을 밝히지 않길 잘했네.’
모든 것을 입다물고 있으면, 부검 전까지 내가 이 거인 빌런을 죽인 것이 되니 최소한의 정보는 말했으나…
가면 쓴 수상한 사람이 근처 건물의 옥상에 있단 정보는 의도적으로 숨겼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능력은 하나.
아까 본 삼도천 소속 괴인의 능력은 높은 확률로 시체 조종일테니, 당연히 본체의 전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놈이 도망치는 속도보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나리의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이 빠르리라.
혹시 녀석이 예비용 시체를 준비해 두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다면, 소설의 최종 보스로 짐작되는 놈을 오늘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괴인의 위치를 숨겨줬느냐?
간단하다.
바로, 내가 삼도천(三?川) 입단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아군은 지켜줘야 하잖아?
“과연! 목숨을 걸고 시민들을 구해주시다니, 지망생이라고 본인을 소개해 주셨지만… 제게 있어선 이미 한 명의 ‘히어로’ 같았습니다! 생명을 빚진 일반인의 대표로 박찬영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하하…. 기자님, 절 너무 띄어주시는데….”
“겸손하기까지! 혹시 사진 한 장 괜찮을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아무튼.
지금은 명성을 얻는 것이 우선이다.
내가 원작을 180도 비튼 이유 역시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나와 친해지고 싶어 안달이 난 이 기자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삼도천과의 접선까지는… 아직 짧은 여유 시간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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