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화 〉 히어로 앤 빌런
* * *
눈앞의 상점창을 닫았다.
소설 진입 전, 미리 해금에 둬야 하는 기능 하나를 구매하기 위해 상점창을 가장 먼저 불러온 것이다.
카르마 소모가 꽤 컸지만…
아직 여유분은 많기에 아끼지 않았다.
또한 내가 판단하기를 이 기능은 반드시 해금이 필요한 기능이다.
‘다음은 소설 진입창인가?’
히어로 앤 빌런.
옛날 판타지 소설에서 반짝 유행했던 능력자 액션 장르다.
특이 사항으로는 배경 설정이 조금 신박하다는 것이 있지만,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생겨나고 빌런과 히어로가 대치하는 구도는 여타 소설과 같았다.
과거에는 얻을 수 있는 기연에 비해 위험도가 높다고 소설 진입을 미뤘다.
현대 배경이다 보니 판타지스러운 물품 수가 적을 수밖에.
다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소설을 정상적으로 완결 짓기만 해도 ‘히어로 앤 빌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능들이 내 상점창에 등장한다는 정보를 알지 않던가?
심지어는 목표로 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띠링!
=
[소설 진입]
테라포밍 [完]
현재 상태: 에필로그(Epilogue) 진행 중
하얀 고래의 발자취 [完]
현재 상태: 에필로그(Epilogue) 진행 중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37화 연재 중단. 작가 필명: 이정도면가능이지
현재 상태: 연재 중
히어로 앤 빌런 45화 연재 중단. 작가 필명: q1w2e3r4
현재 상태: 연재 중
=
망설이지 않고 ‘히어로 앤 빌런’을 소설 진입창에 등록했다.
이로써 내가 동시 진입 가능한 미완결 소설의 빈칸 2개는 전부 매워졌다.
이젠 두 번째 질문이 내 앞을 막아섰다.
어떤 상태로 소설에 진입할 것인가?
테라포밍 때처럼 본신?
아니면 하얀 고래나 게임 속 아카데미와 같은 비중 없는 엑스트라에 빙의?
이번엔 둘 다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방금 상점창에서 먼저 기능을 구입한 것이었다.
=
[최초 진입 옵션을 선택해 주십시오.]
본신으로 진입 (선택 가능)
엑스트라로 진입 (선택 가능)
주·조연으로 진입 (선택 가능) NEW!
주인공으로 진입
=
띠링!
[’주·조연으로 진입’이 선택되었습니다.]
주·조연.
그것도 주인공과 꽤 밀접한 인물로 빙의해야 한다.
메세지와 함께 등장인물 선택창이 주르륵 등장했다.
그 전부가 소설을 읽으며 몇 번이고 봤던 이름들이라 무척이나 새로웠다.
내가 이들의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다.
기존 엑스트라로 진입은 성별이 다르면 선택이 불가능하지 않았던가?
허나, 주·조연의 경우는 다른가 보다.
나온 이름의 절반은 확실하게 여성이었다.
물론 여자를 선택한다고 내가 정말 여자가 되는 게 아니라,
여태 그랬던 것처럼 남자인 내 몸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 뿐이란 걸 어렵지 않게 예상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정말로 선택할 수 있는지.
현재 내 총합 점수도 알아볼 겸, 궁금증도 해소해볼 겸…
가장 엮이면 안 될 인물의 이름을 선택했다.
마침 여성이기도 했고.
=
[주·조연 선택 중…]
● 은서연님의 점수
사회적 위치(CSTO 소속 요원 및 공헌 1위 히어로/ 2,500) + 영향력(특급/ 9,000) + 성별(일치하지 않음/ 1,000) + 경제력(억만장자/ 2,000) + 무력(규격외/ 5,000)……
총합 23,150점
● 박찬영님의 점수
외모(군계일학/ 1,000) + 무력(초신성/ 2,000) + 경제력(매우 부유함/ 550) + 사회적 위치(천년 왕국의 귀인/ 1,500) + 기타(직업: 밤피르(вампир)/ 200)……
총합 5,700점
=
[선택하신 인물의 종합 점수를 뛰어넘지 못했으므로 빙의할 수 있지 않습니다!]
“…택도 없네.”
기존에 비해 점수가 많이 늘었음에도, 절반조차 만족하지 못했다.
허나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었다.
은서연은 저 세계관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강한 인물.
아마 ‘히어로 앤 빌런’의 주·조연 중 가장 많은 점수를 요구할 테니까.
어차피 이 여자로 빙의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빙의하기로 정해 둔 사람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혹시 점수가 부족하다면 어쩌자 하는 걱정 따위는 없었다.
그는 ‘히어로 앤 빌런’이란 초능력자투성이 세계에서, 몇 없는 무능력자니까.
=
[주·조연 선택 중…]
● 서정우님의 점수
경제력(모은 돈이 소량 있음/ 100) + 무력(일반인/ 0) + 나이(동일/ 0) + 성격(냉정/ 130) + 영향력(비범/ 1,000) + 평판(좋지 못한 시선/ 50)……
총합 1,450점
.
.
.
=
[서정우님으로 빙의가 가능합니다! 빙의하시겠습니까?]
예상대로 어렵지 않게 빙의할 수 있었다.
문제가 딱 하나 있다면 ‘서정우’의 영향력 점수가 내 예상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 걸렸으나…
이내 알아서 답을 찾았다.
이 세계관 배경이 워낙 영향력에 민감하기도 하고,
서정우는 주인공의 유일한 친구가 아닌가?
영향력이 높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신뢰가 쌓여있는 친구로서 주인공에게 접근하기.
조금 오차가 있었으나 계획의 큰 줄기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수락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눈앞이 흐려지며,
붕 뜨는 감각이 몸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
“찬영아!”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릿속에 몇 번을 시뮬레이션 해봤던 소설의 도입부.
나는 성공적으로 ‘히어로 앤 빌런’의 세계에 빙의했다.
“나 결정했어! 남들은 어울리지 않다 욕하겠지만… 역시 나는 히어로가 될래!”
뒤를 돌아보니 해 질 녘 노을을 등진, 참으로 험악하게 생긴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내게 말을 건, 원작 속 묘사대로라면 ‘친구에게 말을 건’ 인물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 장혁이리라.
띠링!
=
[이름] 장혁
[직업] 학생
[힘] 21 [민첩] 18
[체력] 23 [지능] 13
[기교] 20 [매력] 8
[정신력(마나)] 17
[특성] 『긍정적』『근묵자흑』
=
=
『긍정적』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을 타고 났습니다.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도 쉽사리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정신 공격 저항 15%
매혹·기절·공포·혼란 저항 15%
상태이상 ‘좌절’ 영구 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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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묵자흑』
성향이 선에 치우쳐 있으나, 때 묻지 않은 백지에 더 가깝습니다.
만일 주변에 악인들만 가득하다면 서서히 성향이 악으로 물들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성향적인 부분에서 끝이 아닙니다.
그에 대한 예시로,
주변에 재능 있는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장 속도가 빨라집니다.
주변에 나태한 이가 많으면 자신 또한 의욕이 사그라듭니다.
좋은 스승을 곁에 두기를 추천합니다.
주위 환경에 따라 특수한 효과 및 디버프 획득
* 획득에 특별한 조건이 필요한 특성입니다.
=
나와 비슷한 키의 근육질.
짙은 갈색의 피부.
한쪽 눈썹은 거대한 흉터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보기만 해도 과거의 그가 겪었을 고통을 짐작게 하는 그 흉터는,
이마를 넘어 머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커다란 흉터.
그가 강제로 짧은 스포츠 컷을 하고 다니는 이유다.
상처에 짓눌린 쪽의 머리가 자라지 않아, 조금만 머리를 길러도 한쪽 머리가 휑해 보일 테니까.
‘…원작 묘사대로 악당처럼 생겼네… 내 예상보다 훨씬….’
덩치에 이은 흉터에,
저 삼백안 역시 그를 위험한 인물처럼 보이게 하는 것에 한 몫을 차지하리라.
장혁은 처음 만난 누구라도 쫄게 만드는… 참으로 ‘악당 같은’ 인상을 지녔다.
그나마 활짝 웃고 있었기에 덜 위험해 보이긴 했다.
다만 눈동자만은 순수하기 그지없어, 그가 지닌 특성의 설명은 거짓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뭐야. 박찬영? 왜 멍하니 허공만 봐? 거기 뭐 있어?”
“…아. 미안해. 뭐라 했더라? 너 진로 정했다고?”
“하하. 역시 안 어울리지? 사실 내가 생각해도 그래. 나는 사교성도 별로 없고….”
장혁이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외모만 아니었다면 참으로 순박해 보이는 행동이긴 했다.
그가 사교성이 없는 이유는 장혁 본인에게 있지 않다.
세상이 그를 따돌리는 것이다.
고작 악당같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고전적이네.’
조금 오래된 설정이다.
아주 옛날에나 유행하지 않았던가?
눈매 좀 나쁘고, 머리 좀 노란색이라고 전교생이 두려워하는 잘 이해가 안되는 환경 속에 놓인 주인공이.
지금 와서야 깨달은 건데, 조금 억지 같은 설정이다.
어떤 정신 나간 학교에서 불량스러운 외모를 가졌다고 전교생이 기피해?
정말로 사람 한둘 때려눕힌 전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모가 첫인상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곤 해도… 현실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외모만 보고 그 누구도 가까이하지 않는 건.’
아무리 길거리에 초능력 테러범이 돌아다니는 세계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몸이 바뀌기 전.
추악하게 생겼던 ‘박찬영’은 그 외모보다 성격 때문에 기피 대상이 됐으니 말 다 했다.
그 ‘박찬영’조차 처음 다가와 준 사람이 한둘은 있었단 뜻이다.
이렇듯 오해를 받았다고 한들, 시간이 흐르면서 장혁의 올곧은 성격이 밝혀지는 것이 정상이다.
보통이라면.
허나…
이 세계는 좀 다르다.
‘히어로 앤 빌런’ 세계에는…
친구나 지인을 아주 신중히 사귀어야 하는 특수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러니 그에게 친구는 소꿉친구인 내가 유일하다.
원작상에서도, 이 유일한 신뢰 관계라는 매력적인 위치는 꽤 오랫동안 유지된다.
내가 굳이 ‘주·조연으로 진입’ 기능을 개방한 이유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나는 네가 히어로 할 줄 알았어. 잘 어울리는데 뭘.”
“그,그래? 빈말이라도 고맙네. 큼.”
“마침 잘 됐다. 나도 히어로 하려고 했거든. 아무래도 우린 고등학교 동창으로 인연이 끝날 게 아니라, CSTO 영웅 학교까지 이어지려나 보네?”
“……뭐? 너도 영웅 학교를? 무슨…소리야? 넌 무능력자잖아.”
“안 그래도 알려주려 했는데, 나 어제 각성했거든.”
담담한 내 말에 싱글거리던 장혁의 미소가 경악으로 뒤바뀌었다.
또한 도대체 무슨 능력을 얻었냐며 허둥지둥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미리 준비해왔던 대답을 돌려주었다.
“별것 아니더라. 너랑 비슷한 신체 강화야. 그런데… 너처럼 발현 계열이 아니라 상시 발동형.”
“상시 발동형! 그리고 나랑 같은 신체 강화?! 측정은!! 측정은 끝났어? 등급은 몇으로 나온 거야??”
“어제 각성했는데 벌써 했을 리 없잖….”
콰아앙?!!
그때.
한두 블록 떨어진 골목에서 큼직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나는 당황한 척을 했지만, 실제로 당황하지는 않았다.
원작을 읽어 앞으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는 훤히 알고 있으니까.
“사,사고인가?! 아니면 빌런?”
나는 차분히 당황하고 있는 장혁을 돌아보았다.
주인공인 장혁의 이능, 신체 강화.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신체 능력을 높은 폭으로 강화한다.
사실 모든 각성자는 얻은 능력과 별개로 근력과 체력이 조금씩 강화된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
능력 자체가 신체 강화인 장혁의 무력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어어어??!!
“장혁! 저기 봐. 아무래도 빌런인 것 같은데?”
“젠장! 일단 도망치자!”
30M 이상 떨어져 있음에도 고개를 들어 봐야 했다.
좁은 골목 어귀.
노을을 반사하며 주홍빛을 내는 콘크리트 건물의 모서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그 자리를 대체한 건 거대한 인영이었다.
“어,어디까지 커지는 거야?!”
놈이 몸체를 불리는 것이 끝났을 때.
곁에 선 7층 언저리의 상가는 흙먼지 속 인영의 어깨까지밖에 닿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등장한 놈의 크기는 내가 봐온 그 어떤 적보다 거대했다.
나와 장혁은 혼비백산하는 인파에 섞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허나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우연히도 주인공이 향하는 방향은 저 거대한 빌런이 향하는 방향과 같다.
만화에서 나오는 거인의 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행동은 다 거짓이었다.
곧 우리는 따라 잡힌다.
쿠웅!! 쿵?!
“무슨…! 고작 두 걸음 만에?!”
거인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다가오자 장혁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아무래도 이능을 써서 도망칠까 고민하는 듯 보였는데, 차마 나를 두고 혼자 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저건 착함을 넘어선 멍청함이다.
우리를 짓밟는 것까지 대략 다섯 걸음.
나름 시간이 넉넉해 보이고, 피하려 들면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앞으로 두 걸음 뒤 거인이 갑작스럽게 앞으로 점프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저 빌런. 우리를 비롯해 곁에서 같이 도망 중인 이 수십의 인간을 배로 깔아뭉개 죽이는 것이 목적이다.
원래라면 여기서 나와 주인공은 위기에 처하고,
CSTO에서 활동 중인 히어로에게 구함을 받는 것이 1화까지의 줄거리다.
그리고 그 목숨을 빚진 히어로를 CSTO 영웅 학교에서 선생으로 보기도 하고.
그러나…
“젠장!! 따라잡히기 직전이야!”
“…내가 발을 막아볼게. 너는 먼저 가!”
정의로운 병신 연기 좀 할까?
달리기를 멈추며 말했다.
나는 원작과 다른 노선을 걸을 것이다.
아니, 그를 넘어 원작 루트를 완전히 뒤집어엎을 예정이다.
미래 지식을 활용 못 하게 되는 건 조금 아쉽지만,
그래야만 내 목적을 이루는 것에 수월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기연도 몇 없는 세상.
사사로운 건에 욕심 부리면 큰 고기를 잡지 못한다.
타악!
“박찬영!! 너 미쳤어?! …윽 뭔 힘이, 너 각성했다는 게 진짜였… 아니 그게 아니라 우선 도망쳐!!”
단숨에 신체 강화를 활성화 시킨 장혁이 내 손목을 잡아채고 도망치려 들었다.
버티려 해봐도 내 몸이 느릿하게 끌려갔다.
역시, 내 몸에 마나를 불어 넣어 신체를 강화하지 않고서는 능력을 활성화한 장혁의 힘을 이기지 못하는 듯 보였다.
“큭! 너 당장 다리에 힘 빼라! 부러뜨리기 전에…!”
“잠깐. 네 능력, 혹시 다른 사람한테도 쓸 수 있냐?”
“내 능력을 다른 사람한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 ……어어? 될 것 같기도 한… 어어? 뭐야??”
장혁이 빌런을 봤을 때보다 훨씬 더 당황했다.
지금의 그는 깨닫지 못했지만…
사실 장혁의 신체 강화 능력은 본인에게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진정한 역할군은 버퍼다.
그것도 원소계 각성자가 근접전에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강력한 능력의.
사실상 그의 버프를 받은 히어로는 이능을 두 개 가진 것이 되니, 훗날 어마어마한 러브 콜을 받게 된다.
이건 15화 부근에 나오는 주인공의 각성씬에서 독자의 뽕맛을 채워주며 새로 얻는 정보기는 한데…
원작 노선을 포기했으니 그런 건 빠르게 건너뛰자고.
쿠우웅?!!
“뭐해! 가능하면 어서 나한테 걸어!”
내 강한 경고에 장혁이 얼떨결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는 강인한 힘이 내 몸에 깃드는 것을 느꼈다.
멈추지 않고 마나도 몸 전체에 불어 넣었다.
그 양을 측정할 수조차 없는 마나의 파도가 내 근육을 집어삼켰다.
마침 시간도 해 질 녘.
곁에 선 장혁에게 동공이 붉어진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은 뒤,
아우성치던 혈귀화를 활성화했다.
“크,윽. 하핫!”
“괘,괜찮아? 일단 쓰긴 했는데… 이거 부작용이 있을 수도….”
“아냐. 괜찮아. 딱 좋아. 후우우….”
발을 구르면 땅이 울부짖고,
손을 휘저으면 강풍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감히 전능을 생각하게 하는 막대한 힘.
지금이라면…
어쩌면 그 용사에게조차 근접전으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이 들었다.
슬슬 점프 자세를 잡는 거인을 노려보았다.
한 방.
딱 주먹질 한 번에 끝낸다.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다리에 힘을 준 뒤,
있는 힘껏 땅을 박찼다.
콰아앙???!!!
시간이 길게 늘어진다.
거대한 소리를 내며 공중에 뜬 내게 수많은 시선이 모인다.
멍하니 내 뒷모습을 보는 장혁.
사방으로 도망치던 일반 시민들.
기삿감에 목말라 거대한 카메라를 거인에게 들이대는 외신 기자.
저 먼 하늘에서 급히 날아오는 히어로.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는 거인에,
…근처 건물의 옥상에 서 있는 가면 쓴 괴인까지도.
‘누구지?’
후우욱!
체감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거인과 가까워지는 속도는 빨랐다.
눈이 마주친 수상하기 그지없는 괴인을 오래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흩어졌던 상념을 하나로 모았다.
일정권 (一??).
가장 강한 타이밍에, 가장 강하게 때릴 수 있는 주먹질.
마나가 손안에 깃들었다.
“그,어어어??!”
거인이 입을 벌려 날아오는 나를 맞이했다.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놈의 턱을 바라보는 것에 집중했다.
점점 가까워지다가, 놈의 외침이 피부에 닿았을 때.
똥꼬에 힘을 꽉 주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SMASH!
콰아앙??!!
“이런 개 미친!!”
괴인의 가면 안에서 경악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으며,
거인의 몸은 공중에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