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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298) (298/310)

〈 298화 〉 지구 *

* * *

“아무리 생각해도 함정 같은데…”

적당히 매물 좋은 국산 중고차 값만 내면, 1년 전 출고한 무사고 외제차를 준다니?

심지어 주유를 포함한 관리는 전부 그가 해준단다.

내가 감당해야 할 건 오로지 차량 보험료뿐.

갓 면허를 땄기에 외제차 보험료가 부담될 법 했지만,

다른 유지비가 전혀 나가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눈살을 찌푸릴까?

너무 좋은 조건이라 도리어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강형철의 바보 같은 웃음을 보면 또 헷갈려온다.

정말 지혜 한 조각 없어 보이는 얼굴이라, 이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솔직히 차를 뽑으려는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내게는 시스템이 보상으로 준 마나 동력의 바이크가 있지 않은가?

비록 번호판이 없는 놈이라 대놓고 탈 수는 없다 한들, 급할 때는 충분히 쓸만하다.

아무리 내 잔고가 넉넉하다곤 해도 차가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다 보니 낭비는 꺼려졌었다.

하지만…

이런 거저 주는 거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선 그와 약속을 잡았다.

연습 도중에 스치듯 하는 잡담 말고,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만나는 것이 진행이 빠르니까.

­ 부웅.

그렇게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던 중.

저 멀리서 하얀색의 GT(Grand Tourer)카 한대가 다가왔다.

진하게 칠해진 썬팅이었으나,

내 눈으로는 차를 자랑할 생각에 신이 난 강형철을 볼 수 있었다.

이윽고 차가 내 앞에 멈춰 섰다.

2도어로 이루어진 문 중, 운전석 쪽의 문이 열리며 강형석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평소의 후줄근한 그와 동일 인물이라곤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차려입은 채로.

“많이 기다렸어?”

“…이거에요?”

“후후후. 생각보다 잘 빠졌지?”

강형철은 자랑스레 보닛을 텅텅 두들기려다가,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허공에 손을 토닥였다.

나는 그러든 말든 끌고 온 차를 차분히 살폈다.

일단 제조사명이 ‘페’나 ‘람’으로 시작하는 그 유명한 스포츠카는 아니었다.

내게는 다행인 이야기였다.

몇몇 사람들은 스포츠카는 관종만 타는 차라고 생각하곤 하니까.

개인적으로도 높은 성능을 위해 많은 편의를 포기한, 스포츠카 특유의 날렵하고 가벼운 느낌을 선호하지 않았다.

반면에 이 차는 스포츠카와 같은 2도어긴 하지만,

중후한 고급스러움과 스포티지 함이 꽤 그럴듯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차의 전장(앞 범퍼부터 뒤 범퍼까지의 길이)은 일반적인 세단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허나 전조등 및 라디에이터 그릴 등등… 전체적인 디자인이 상당히 취향이었다.

또한 방금 차가 움직이는 것을 봤던 때, 정작 운전대를 잡으면 묵직한 맛이 있으리라 예상됐다.

차의 무게가 많이 나가는 걸까?

“이 차… 뽑은 지 1년이나 됐다고요?”

“하하하! 그거 새 차 같다는 말을 돌려 한 질문이지?”

“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관리 잘하셨네요.”

“그러엄!! 전문가는 다르다고!”

강형철이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자칭했지만, 차의 상태를 보면 일부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이어 휠조차 광이 나는 것이 아무리 봐도 1년 이상 굴린 차가 아니었다.

과장 하나 없이 한 달 전에 출고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아무리 조건이 달려 있다고 한들…

이 차를 그 가격에?

직접 보니 한층 깊은 의문이 생겨왔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흩어도 큰 흠집이 난 곳이나, 부품을 교체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타 봐야 알겠지만 외견상 침수차 같지는 않고…

당장 이 차에 한해서는 무사고가 맞는 것 같았다.

특히 번호판의 경우는 유심히 살폈다.

그가 이번 거래로 날 속이려고 한다면, 수작질을 부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그곳이니까.

허나 번호판은 손댄 흔적 하나 없이 매끈했다.

음…

자동차 매매 계약서를 봐야 확신하겠지만, 아무래도 내 의심은 기우였나 보다.

“뚜껑 열리게 생겼는데… 오픈카?”

“없어 보이게 오픈카가 뭐냐? 컨버터블, 따라 해봐 컨버터블!”

이 차의 지붕은 금속 소재가 아닌 천 소재. 소프트탑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하얀색의 차체와, 검은색의 루프가 괜찮게 어울렸으니까.

오히려 뚜껑을 닫고 있는 것이 더 보기 좋을 정도다.

“근데 이거 소프트탑이면 관리하기 까다롭지 않나요?”

“그러니까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거야. 널 무시하는 게 아니라, 자칫하면 수백 깨져. 운 없으면 천 단위.”

“어우….”

“그래서 어때. 괜찮지?”

“이거 모델명이 어떻게 되나요?”

“컨티넨탈 GT 3세대라고, 이놈의 스펙은…….”

기다렸다는 듯이 강형석의 차 소개가 시작되었다.

누가 디자인했고, 후방의 적재 공간이 어느 정도며, 최대 마력이 어쩌고 토크가 저쩌고……

솔직히 들어도 잘 모르겠다.

겨우 알아들은 건 출고가가 억대라는 것 정도.

하물며 옵션에 대한 설명까지 시작됐을 때,

이대로 있으면 해가 지겠다고 판단한 나는 한창 신나게 이야기를 풀어 놓던 그를 말렸다.

“내부부터 봐도 될까요? 조수석에 시승시켜준다고 부르셨으면서.”

“아! 내 정신 좀 봐라. 그랬지? 옆에 타봐. 내가 외제차 다루는 법도 알려줄게.”

“설마 운전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뭐어… 사실 예열이랑 후열 둘 다 필요 없는 놈이라, 그냥 급가속만 안 하면 되는 기본적인 수준이야. 아앗!! 그… 타기 전에 신발 털고 들어오고.”

“…….”

나는 조수석에 발을 넣다 말고 그의 권고대로 얌전히 신발을 털었다.

곧 내 차가 될지 몰라도, 당장은 그의 차니까.

“음? 앞 좌석 뒷좌석 합쳐서 4 시트이긴 하지만… 뒤쪽이 생각보다 엄청 좁네요?”

“사람 태우라고 만들어 둔 곳이 아니거든. 짐 두거나… 사실상 인테리어용. 나도 1년간 뒤에 누구 태워본 적은 한 번도 없네.”

저 뒷자리 전부가 인테리어용이라니…

역시 고급차의 세계는 효율로 따지면 안 되는 것 같다.

그때, 강형철이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아, 태울 수 있을지도?”

“네?”

“마른 여자 정도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예를 들면… 네 여친 다연씨? 뭐, 너는 뒤가 아니라 옆에 태우겠지만! 푸하핫!”

“형…….”

나오는 한숨을 내리눌렀다.

타인 앞에선 손잡는 것조차 쑥스러워하는 나와 고다연이다.

고다연은 연애에 숙맥이었고, 나는 숙맥을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우리를 놀려먹는 건 강형철뿐만이 아니라크루원 대부분이 하는 장난이었다.

실은 키스는 물론이고 얼마 전 첫날밤까지 가졌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그 뒷감당이 어떻게 다가올지 알기에 상상만으로 그쳤다.

“찬영아. 다 좋은데, 차 안에서는 하지 마라? 관리 내가 하는데, 냄새로 다 티 나?”

“아. 제발요.”

“큭큭큭. 당연히 농담이야. 내가 봤을 때, 너희 둘은 차를 돌려받을 때까지 진도를 못 나갈 것 같으니까.”

잡담과 함께 드라이빙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약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운전면허를 따기로 결심했다.

*

면허를 따기도 전에 차가 생겨버렸다.

차를 사고파는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매매 계약서를 쓰고, 동사무소에서 명의 이전만 하면 끝이었다.

내게 맞는 보험을 찾는 것이 귀찮기는 했으나, 강형철이 도와주었기에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대충 강형철이 지급액을 상환하면 차량의 소유권을 넘겨야 하는 등, 이미 동의했던 이야기에 대한 계약서도 만들었다.

허나 법조인의 조언 없이 단어만 그럴듯하게 사용한 계약서는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조금만 편법을 찾아봐도 이 계약서를 무시한 채 강형철에게 막대한 손해를 안겨줄 수 있으리라.

허나, 그가 나를 척지지 않는다면 굳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내게 자동차는 곧 사치품일 뿐이지 않은가?

이걸 빼앗겠다고 이미 무너져가는 강형철의 인생을 내 손으로 마무리하긴 좀 꺼려졌다.

자살이라도 해봐, 괜히 마음 쓰이지.

강형철은 머리가 좀 나쁘고, 약간 불효자일지는 몰라도, 지금의 내게는 좋은 호구… 아니, 좋은 형이다.

“내 차…… 아! 이제 네 차구나. 아무튼, 그럼 면허 딸 때까지는 주차장에 넣어두게?”

“네. 어쩔 수 없죠.”

“면허증 없으면 아파트 주차장 등록도 못 할 텐데… 오픈카라 비 오래 맞으면 안 돼서, 무료 야외 주차장도 안되고. 서울의 실내 주차장은 죄다 돈 받지? 으으…. 너 돈 좀 깨지겠네.”

“아뇨. 괜찮아요. 집에 차고가 있어서.”

“…차고? 차고라고? 외국 드라마에서 보던 단독 주택의… 그 차고?”

“차고라고 해도 많이 좁아요. 지금까지는 창고로 쓰고 있긴 했지만, 며칠 전에 미리 치워뒀죠.”

강형철의 눈이 깜빡인다.

항상 쪼들려 사는 그에게 있어서 개인 차고란 잘 와 닿지 않는 것이었나보다.

“…너 서울 살지?”

“당연하죠?…”

“서울에… 단독 주택?”

“저 대신에 주차해줘야 하니 오셔야 하실 텐데, 곧 보게 되지 않을까요?”

이미 크리스에게는 지인 한 명이 방문할 예정이니 방에 숨어 있어 달라 이야기를 해뒀다.

오래는 있지 않고 잠깐 있다 갈 것 같으니,

굳이 테라포밍 세계에는 가 있을 필요는 없다는 말도 함께.

나를 대신해 주차까지 해줬다면 적어도 물 한잔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은 주차만 해주고 갈 낌새지만, 높은 확률로 집 안에 들이게 되리라.

얼마 뒤.

내 예측은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됐다.

그는 내 집을 보고는 입을 작게 벌린 채 감탄했다.

“차고… 차고라… 너는 외제차 테러 걱정할 일은 없겠네.”

“외제차 테러요?”

“있어. 부럽다는 이유만으로 천 루프를 커터칼로 긁고 가는 미친놈들이.”

강형철이 차의 천장을 툭툭 치며 말했다.

다행히 겪어본 적은 없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는 듯하다.

일단 그를 집 안에 들이긴 했지만…

가볍게 물만 얻어 마시고 대강 집 구경을 마친 강형철은 떠났다.

오래 있기도 뭐 했다.

조금 친하다 한들, 남자 둘이 한 집에 모여서 뭘 해?

“운전 감사했어요. 차 깨끗이 쓸게요.”

“네가 쓰는 몇 년 동안 나처럼 관리하라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까, 그냥 너무 더럽지 않게만 써줘. 네 집이 잘 정돈 된 걸 봐서는 큰 걱정은 안 들긴 하네. 그럼, 나 간다?”

“네. 조심히 가세요.”

현관문이 닫혔다.

그리고, 방의 문이 열렸다.

크리스였다.

“진짜로 금방 가네?”

“응. 일 이야기는 밖에서 다 끝내고 왔거든. 그냥 바로 보내기 뭐해서 잠깐 들린 거야.”

그러고 보면 그녀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 집에 드디어 차가 생겼다는 것을.

내가 있는 차원 지구는 아니더라도, 그녀는 현대인이었다.

그런 만큼 차를 보여줬을 때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이끌고 차고로 향했다.

“뭐야? 응? 창고에 뭐 있어?”

“뭐가 있기는 하지.”

“거미 나온 거야? 잡아주면 돼?”

“크리스… 거미는 나도 잡을 수 있어….”

그렇게 끌려 나온 크리스가 마주한 것은 멋들어진 차 한 대였다.

방금 세차까지 끝내고 와서 빛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비,비,비싸 보이는 차… 이거 누구… 거냐고 물으면 눈치가 없는 건가?…”

“맞아. 내 거야. 엄청 싸게 샀어. 중고…지만?”

“설마 방금 왔다 갔던 그 사람한테?”

“응.”

크리스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차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땅이 넓은 외국에서는 모두가 개인 자동차를 가질 만큼 흔하다지만…

부자 동네에 가면 흔히 비싼 차를 볼 수 있는 우리와 달리, 그녀가 어렸을 적 이런 차를 직접 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썬팅이 진해서 너도 탈 수 있을 것 같네.”

“정말?! 한번 타보고 싶어! 태워줘!”

“안타깝지만 면허증이 아직 없어서.”

크리스의 눈이 아쉬움으로 변했다.

그 아쉬움은 나중에 함께 여행을 가기로 약속한 것으로 달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함께’라는 것에 그녀가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대략 3명 정도 생길 수도 있지만,

그건 아직 크리스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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