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화 〉 (19) 지구 *
* * *
작고 가냘픈 어깨가 긴장을 머금고는 파르르 떨어 대었다.
같이 침대에만 앉았을 뿐인데 숨이 벌써부터 거칠었다.
아마 눈앞이 팽팽 돌고 있지 않을까?
“다연씨.”
“…네! 네!”
“저희, 샴푸 냄새 똑같네요.”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말리지 않아 촉촉한 머릿결.
코를 가까이 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머리카락을 놓아주더라도, 손바닥에 남은 물기에는 내 것과 같은 잔향이 남으리라.
“……”
“풋. 너무 긴장하지 마요. 설마 제가 곧바로 시작하겠어요?”
“그렇…겠죠? 미안해요. 나 너무 익숙지 않아서…”
“풋풋해서 더 좋은걸요. 뭘.”
딱딱하게 굳어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고다연도 현재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연신 깊게 심호흡을 내쉬며 긴장을 풀려 노력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열심히 대답을 하는 것이 귀여웠다.
침대 위 나란히 걸터앉아, 정적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만 잡담을 이어갔다.
나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려 갖은 기색을 살피고 있었지만…
정작 고다연은 정면만을 바라보며 내 얼굴을 마주하길 어려워했다.
시작은 손부터.
모르는 척 그녀의 손 등 위에 내 손바닥을 덮자, 한창 말을 하던 목소리가 크게 흔들렸다.
허나 자신의 손등을 뒤집어 나와 손깍지를 끼는 주도적인 행동도 보여줬다.
어깨를 당겨 내게 기대게끔 했다.
처음의 고다연은 흡 하고 몸을 굳혔지만, 몇 초 뒤 힘을 풀고 편안히 기대었다.
그녀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움직임이 내게 선명히 느껴졌다.
“…정말 찬영씨랑 같은 냄새가 나네요.”
“제 머리 향 나나요?”
“이렇게 기댔으니까.”
드디어 고다연이 나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붉어 보이는 건 주홍색의 조명 때문만은 아니리라.
올려다보는 눈에는 콕 집어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것들이 휘몰아쳤다.
그녀 또한 내 눈에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서로의 동공을 마주 보았다.
그렇게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다, 나는 그녀를 향해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따로 신호가 없었음에도 기다렸다는 듯이 고다연의 눈이 살포시 감겼다.
부드러운 입맞춤.
깍지 낀 손에는 처음보다 힘이 더 들어가 있었다.
내가 준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준 것인지 헷갈려왔다.
털썩.
한쪽 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지지한다.
동시에 입을 떼지 않은 상태로 그녀를 쓰러뜨리듯 침대에 뉘었다.
평범한 사람이 입을 맞춘 상태로 털썩 누웠다면, 머리가 침대에 닿았을 때 서로의 앞니가 부딪히며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분위기가 완전 박살 나는 건 덤이고.
허나, 나는 평범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이런 섬세한 힘 조절에 자신이 있다.
그녀를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눕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는 중력의 힘을 체감하지 못하게끔 부드럽게 눕혔기에,
고다연으로썬 잠깐 내게 몸을 맡겼을 뿐인데 어느 순간 침대에 등이 닿아있는 신기한 경험을 겪었으리라.
“어,어라?…”
고다연은 자신의 위를 반쯤 덮친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깨달은 모양이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가 귀여워 코끝을 잠깐 쥐었다 놓았다.
그것으로 고다연은 얌전해졌다.
“편안히 누운 채로 키스 받아본 적 있어요?”
“……제게 찬영씨 기억에 없는 경험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하핫. 그건 그러네.”
나는 고개를 내려 다시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입술로 하는 키스가 아닌…
제대로 된 어른의 키스를.
아주 소량의 뜨거운 숨을 불어 넣으며 신호를 한 뒤, 혀를 밀어 넣었다.
혀를 깊숙이 넣어야만 간신히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작고 귀여운 혀.
지난주의 키스를 떠올리며 그녀의 입 안쪽을 찾아 헤맸다.
마침내 서로의 혀가 닿자, 고다연도 그제서야 멈칫멈칫 혀를 내뻗기 시작했다.
혀와 혀가 얽히기 시작한다.
그녀는 어색하지만 착실한 호응으로 키스를 받아들였다.
“츄웁…”
한창 열정적으로 혀를 섞던 중.
자세가 불편했던 건지, 아니면 그 밖의 이유 때문인지…
그녀가 키스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중 가장 많이 움직이던 것은 양손이었다.
‘가슴 쪽에 X자로 모은 게 어쩐지 미이라 같네…’
이렇게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리저리 방황하는 손을 잡아 내 목과 등으로 두르게끔 했다.
그녀는 얌전히 인도에 따라 나를 껴안았고, 덕분에 그녀의 가슴 쪽은 훤하게 열려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몸을 겹치며 서로의 체온을 나눴다.
“츕… 하웁…!”
키스를 하던 중 서로의 가슴이 맞닿은 적이 없던 건 아니다.
허나,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건 속옷과 목욕 가운이 끝.
하물며 나의 경우는 상반신이 반쯤 드러났으니, 그녀에겐 내 피부의 촉감이 온몸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것을 유도한 것이긴 하다.
몸을 요령 있게 움직이며 내 몸에 걸쳐진 목욕 가운을 내렸다.
등에 가녀린 손이 올라와 있기에 마치 그녀가 나의 가운을 서서히 벗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의 그녀라면 화들짝 놀라 가운을 다시 입혀줬겠지만…
지금의 고다연은 자극적인 키스에 정신이 팔려서 온 신경이 혀로 집중이 되어있다.
결국 상반신에서 가운이 전부 흘러내렸음에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가녀린 팔이 두른 것은 목욕 가운이 아닌, 실오라기 하나 없는 내 등이다.
“츄르릅… 후하. 하아. …흐아앗?!”
침이 번져 반들반들해진 입술을 떼자 그녀의 눈꺼풀도 다시 올라갔다.
한창 숨을 몰아쉬다,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키스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려져 있던 내 상반신이 어느 순간 알몸이 되자 당황한 것이다.
“키스하던 중 저절로 내려갔어요. 다시 입을 필요는… 없겠죠?”
“읏…!”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손이 내 맨살을 만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하지만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시선도 내 상체에 고정되었다.
다행히 숨겨야 할 정도로 못난 몸은 아니었기에, 그녀가 마음껏 구경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는 안도하기도 했다.
미약하게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 분명한 과거의 그 사건 때문에 많이 걱정했는데…
심각할 정도로 거부감이 남진 않았나 보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내 상체를 흩고 있었다.
그런데 나만 보이는 건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길래, 손을 그녀의 어깨를 향해 옮겼다.
목표는 고다연의 어깨에서 반쯤 걸쳐진 저 목욕 가운이었다.
스윽. 턱.
하지만…
한창 조심스럽게 움직이던 내 손은 저지당했다.
손목을 보니 한 쌍의 작은 손들이 움켜쥐고 있었다.
나를 안고 있던 그녀가 다급하게 내 손을 막아선 것이다.
“다연씨?”
“자,잠깐만…!! 으으… 조금 시간을…”
“지금 보고 싶어요.”
“흐읍…!”
“안 되나요?”
“……”
부드러운 애원에 내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조금씩 풀려갔다.
손이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양손을 치우고 고개를 픽 돌린 채, 무방비한 상태로 내 아래에 누웠다.
물기에 젖은 새하얀 목덜미가 훤히 드러나 입을 맞추고 싶어지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가운부터.
나는 그녀의 몸에서 가운을 점차 벗기기 시작했다.
매번 일부분만 보였던 쇄골이 완전히 드러나고,
격렬히 춤 출 때만 가끔 볼 수 있었던 배꼽이 훤하게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쳐다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양손으로 몸을 가렸다.
그 행동이 더욱 나를 자극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나밖에 없을 테니.
완전히 알몸인 것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조금씩 보였었던, 순백색의 속옷이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레이스가 많거나 일부분이 시스루인 등 성적인 포인트가 곳곳에 존재하는 속옷은 아니었다.
청초하고 풋풋한.
그러면서도 라인이 예쁘게 드러나는 여친 속옷의 정석이었다.
하얀색 속옷이 얼마나 관리하기 까다로운지는 유명하니…
왜 오늘 갓 구매한듯한 하얀 속옷을 입었는지는 말해야 입 아프다.
“속옷, 너무 감동인데요. 그 마음씨가.”
“워,원래 있던 건데요!! 평소에도 이런 것 자주 입고…!”
“그랬나요?”
거짓말.
운동량이 많은 그녀기에, 평소에는 어지간해선 스포츠 브라나 탱크탑을 입는 그녀다.
허나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야 평소 그녀의 속옷에 무척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들켜버리지 않는가?
슬슬 몸이 단 나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이 새하얀 목선이 아까부터 내게 오늘의 흔적을 남겨달라 유혹하는데, 참기가 너무 힘겨웠기 때문이다.
적당히 합의를 봐서 아침이 되면 지어질 정도로만 키스 마크를 남기기로 했다.
“꺗! 가,간질…… 으?…”
처음에는 웃으면서 간지러워했던 고다연이지만, 내가 입을 계속해 맞출수록 말수가 줄어 들어갔다.
야릇한 느낌이 드는 조명.
서로 알몸이 된 상반신과, 이를 밀착하며 느껴지는 상대의 체온.
쪽 쪽 하는 질척한 소리에 더해…
은근히 몸을 간질이는 촉각까지.
애무의 시작이었다.
아름다운 속옷의 역할은 여기까지.
손을 등으로 돌려 브라의 후크를 순식간에 풀었다.
또한 어깨의 새하얀 브라끈을 부드럽게 내리기 시작했다.
숨이 달은 고다연이 연신 몸을 움찔거렸다.
목덜미에서 쇄골로 입맞춤의 장소를 옮기며 속옷을 벗겨나갔다.
막기 위해서인지 나의 어깨를 짚은 손이 있었지만, 그대로 손만 짚은 채 가만히 있었을 뿐.
내 행동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속옷이 완전히 벗겨졌다.
부끄러워서 눈을 질끈 감은 그녀를 위해 곧바로 가슴을 건들지는 않았다.
다만…
언제라도 떠올릴 수 있게 기억해 놓겠다는 듯 눈에 새겼다.
나를 위해 준비했던 속옷만큼이나 뽀얀 살결.
가쁘게 숨이 오갈 때마다 오르락 내리길 반복하는 언덕.
그리고 사이사이 여진처럼 잔물결을 일으키는 출렁임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녀와 함께했던 연애의 나날이 스쳐 지나가며…
몸의 전율을 일게 하는 광경이었다.
“하아. 상상 이상으로 예쁜데.”
“너,너,너무 보면 안 돼…!”
가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린 그녀의 팔을 슬며시 치웠다.
그제야 봉긋하게 솟은 가슴이 제 모습을 전부 드러냈다.
그 색깔만으로 자극에 무방비하다고 말해주는 귀여운 열매 두 개 또한.
연분홍빛의 그것은 너무나 때 묻지 않아 보여, 어떤 손길도 겪어본 적 없다는 걸 알 수밖에 없었다.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가지고 놀면…
분명 귀여운 신음이 내 귀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내 손바닥의 굳은살이 혹시 이 부드러움을 상처 낼까,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살결을 손에 담았다.
이것으로 멈추지는 않았다.
아까의 입맞춤.
목덜미, 쇄골에 이어…
이제는 유두까지.
곧,
향기로움이 입 안 가득 퍼졌다.
“흐,읏! 빨면… 힛? 이상,한…”
거칠어진 숨결.
나를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목소리로 짐작해 봤을 때 열기에 씐 눈을 하고 있지 않을까?
작은 손바닥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그 손길을 느끼며 가운을 완전히 벗어 버리기 시작했다.
나의 것도. 그녀의 것도.
머릿속에서 가운이라는 존재를 지웠다.
가운 주머니에 넣어둔 편의점 콘돔만을 챙긴 채.
“안 되…는데… 하읏! 자,잠깐… 너무 간지럽… 등골이…!”
혀로 몇 번 굴렸을 뿐인데, 자극에 익숙지 않은 유두는 잔뜩 단단해지고 말았다.
더욱 애무하기 수월해진 것은 당연하다.
이빨을 사용하지 않고 혀와 입술로만 스치듯 애무를 계속했다.
그것으로 원하는 반응을 얻기에는 충분했다.
이제는 반보 더 나아갈 때다.
나는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 올려서, 침대의 정중앙으로 옮겼다.
“꺗?! 무,무겁…!”
“안 무거워요.”
귀여운 걱정은 입술에 입을 맞춰주는 것으로 지워버렸다.
이제는 침대에 걸터앉다 누운 것이 아닌, 정자세로 침대에 눕게 되었다.
슬슬 고다연의 얼굴에 긴장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제 본방이 코앞으로 다가왔단 걸 느낀 것이다.
그녀를 안아 옮길 때 등에 깔린 목욕 가운은 챙기지 않았다.
브라와 세트인 것이 분명한 팬티가 드러났다.
준비해준 그녀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감상은 나중으로 미루자.
골반 쪽 팬티 끈 사이에 손가락을 넣었다.
움찔,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말이 없어진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팬티를 내렸다.
당장은 내게 음부가 보이지 않는다는 안심이 생겨 거부감이 조금은 내려간 듯 했다.
‘그래도… 여전히 무섭긴 하나 보네.’
그녀가 완전히 알몸이 된 이후.
어깨가 긴장을 머금은 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춰 줘도, 따뜻하게 말을 건네도 그 떨림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긴장이 안 풀려요?”
“…괜찮아요. 긴장 안 했어요.”
“정말?”
“으…… 사실 조금 긴장했는데,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잖아요. 다들 처음은 이런 식일 테고…”
고다연이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어깨는 떨렸다.
역시…
솔직히 기한을 정해주지 않으면 한도 끝도 없이 기다려야 할 것 같았기에 일주일이란 시간을 정해주긴 했다.
허나 고작 일주일 만에 트라우마를 딛고,
마음 깊숙한 곳의 모든 것까지 내게 허락해 줄 만한 각오는 전부 세워지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억지로 끌려온 건 전혀 아닐 것이다.
마음의 상당수는 내 쪽으로 기울었기에 오늘 쉬었다 가겠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것이겠지.
일부에 불과할 정도의 부족한 각오는, 자신이 감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