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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291) (291/310)

〈 291화 〉 지구 *

* * *

남자의 입술이 닿았음에도 고다연의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태까지와 달리 입 안쪽의 이빨만큼은 작게 벌어져 있었다.

만약 그가 바란다면, 한 발짝 더 나아간 키스를 받아들일 수 있게끔.

뒷머리에 손이 올라왔다.

도망치지 못하게 됐지만, 애초에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단둘이 남겨진 것만 같은 기묘한 감각.

입술에서 오는 촉감이 한층 선명해졌다.

‘나,나 입 냄새 안나겠…지?’

기대를 해서 그런 것일까?

실시간으로 입술을 맞대고 있음에도, 고다연은 계속해서 갈구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바란다고, 이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마음이 자꾸만 외쳐대었다.

그 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입을 맞춘 뒤로 5초.

짧다면 짧지만,

떨어진 불씨가 기름이 잔뜩 뿌려진 신문지를 잡아먹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민감한 신체 부위에 손가락이라도 찔린 듯 몸이 간헐적으로 움찔거렸고,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날숨은 거칠고 뜨거웠다.

애간장이 태워지는 경험이 처음인 고다연으로썬 그 티가 겉으로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속 깊숙한 곳에서 어서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외쳤지만,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고다연 스스로도 몰랐다.

조금 더 정확히는, 그 정체에 한정하자면 어렴풋 짐작은 갔으나…

어떻게 행동해야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먼저 행동할까 말까,

고다연이 몸을 집어삼킨 열기에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입을 맞추고 있던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읍…!”

아주 조그마한 움직임이었지만, 남자의 입술이 벌어졌음을 선명히 느꼈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고다연도 입술을 미약하게 벌렸다.

상대가 입술을 벌려버리니, 그와 입술을 딱 맞대고 있던 그녀도 입술이 벌어져 버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어쩔 수 없었다.

혀가 오가기엔 너무나 작은 틈이었지만…

서로의 숨결과 타액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기엔 충분했다.

더럽게 느껴지긴커녕, 점차 차오르는 충족감에 행복마저 느껴졌다.

남자의 등에 두른 손에 힘이 강해진 이유였다.

서로의 입술은 점차 벌어졌다.

정비례로, 오가는 타액과 숨의 양도 늘어갔다.

남자는 배려하기 위해선지 느긋하게 입술을 벌려 갔으나…

그녀로선 그것이 더욱 힘겨웠다.

차오른 만족감은 이제야 겨우 바닥을 적실 정도가 되었다.

채워지지 못한 공허가 이렇게 많이 남았지 않은가?

차라리 처음부터 맛도 보지 못했다면 모른다.

허나 굶겨 죽이지는 않겠단 듯 찔끔찔끔 주어지는 행복한 일체감이, 더욱 수렁으로 끌고만 갔다.

‘어서 저를…!’

차마 말과 행동으로는 표현할 수 없으니 속으로라도 남자에게 애원했다.

정작 어디까지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지 못하겠지만.

무엇보다 스스로를 수동적이다고 생각한다는 건…

이미 고다연 쪽이 입술을 벌리는 속도가 앞서 있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의 이빨마저 살짝 스칠 정도가 되었을 때.

뒷머리에 올려진 손이 그녀를 작게 쓸며,

상상해 본 적 없는 자극이 눈을 밝혔다.

“츄릅!….”

미끈한 무언가가 입술의 틈을 파고들었다.

그 숨이 턱 막히는 감각에, 감았던 눈이 번쩍 띄었다.

허나 눈꺼풀을 들어 올린 것도 잠깐.

눈을 감고 있던 남자의 속눈썹에 그녀의 속눈썹이 스치자, 화들짝 놀라 도로 눈을 질끈 감았다.

혹시 자신이 깜짝 놀라 눈까지 떴다는 것을 들켰을까?

어쩐지 부끄러움에 당황했으나, 생각은 뚝 끊겨 이어지지 못했다.

혀와 혀가 닿았기 때문이다.

‘흡! 새,생각보다?!’

첫 연애를 시작한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듯,

고다연 역시 연인의 키스가 어떠한 느낌일지 상상해 본 적이 있다.

그렇게 낸 결론은…

사랑하는 사람과 입을 맞춘다는 행위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 물리적인 자극은 별것 없으리란 것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은 없다.

매일 식사를 할 테니 혀와 입천장, 입술은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는 논리다.

하물며 얽히는 것은 혀.

조금 민감하다곤 하나 성기와는 거리가 먼, 식(?)을 위한 신체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 너무 긴장하지는 말자.

그래야 하는데….

분명 별 자극이 없어야 맞는데…….

“헤릅…. 츕…!”

왜 온몸이 남자의 색으로 차오르는 것만 같을까?

입 안쪽을 헤집는 뜨거움이 전신으로 번졌다.

정수리 끝까지 찌르르 울렸고, 심장을 아프도록 쥐었다 풀어줬다.

그가 간질이는 것은 입 안쪽인데, 마치 몸 안쪽 구석구석을 핥는 듯한 느낌이다.

행동은 물론 생각까지도 석상처럼 굳었다.

그저 가만히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손바닥을 남자의 가슴에 대었다.

밀어내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품에 안긴 채 지탱할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닿은 것이다.

두근­, 손을 타고 강인한 박동이 느껴졌다.

천 한 장 너머로 느껴지는 남자의 맨살은 이상하게도 자극적이었다.

“츄…. 헤흑…. 하우웁!”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재차 얽히려 드는 혀를 마중했다.

댐이 무너지듯 닥쳐오는 충족감에 발가락이 꼼지락거렸지만,

어차피 남자는 눈치채지 못할 거란 생각에 지금을 느끼는 것에 집중했다.

남자가 자신의 것이 된 것 같았다.

자신이 남자의 것이 된 것 같았다.

마음에 실체가 있었다면 터진 지 오래 아닐까?

고다연 스스로도 존재를 몰랐던 소유욕이 행복한 비명을 질러대었다.

“츄웁…! 프하?”

그때.

남자가 입술을 떼었다.

고다연은 차오른 숨에 헐떡이며 올려다보았다.

한창 만끽하던 중이었는데.

“하아…. 하…. 왜,왜애…? 앗!”

고다연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그리고 방금 자신의 목소리에 너무나도 선명한 안타까움이 담겨있다는 것을 깨닫자,

몽롱하던 정신이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음을 느꼈다.

왜 입술을 떼냐니?

그건 마치 다시 혀를 섞어달라는 애원 같지 않은가.

무의식적인 어리광이었지만, 그렇기에 방금의 안타까움은 숨김없는 본심이다.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갔다.

“…왜 이렇게 귀여워요. 다연씨.”

“네? 네에? 아니, 그게 아니라….”

변명을 하기도 전에 남자의 품에 안겼다.

여태까지 그와 나눴던 가벼운 포옹이 아닌, 깜짝 놀랄 정도로 진한 포옹이었다.

고다연의 몸을 두른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강력하게 유혹하는 무언가를 꾹 견뎌내듯이.

“읏….”

살짝 고통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았다.

남자가 그녀를 이만큼이나 사랑하고 있다는 뜻 같아서.

지금만큼은 이 답답함이 조금 더 이어졌으면 했다.

“후으…. 몰랐는데, 이렇게 꽉 안는 것도 너무 좋네요….”

“아. 제발…. 참고 있는데 자꾸 유혹하지 마요. 나 약속 못 지킬 것 같잖아.”

“그,그건… 안되는…데…….”

마지막에 가서 힘이 너무나 빠졌다.

이래서야 거절이 거절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고다연은 고쳐 말할 수 없었다.

만족한 줄 알았던 심장이 다시 재촉을 시작했다.

디딜 수 있는 곳이 한 발짝 더 있단 걸 깨달아 버렸기에.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갈증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 애매한 거절마저도 유혹같……. 아니, 아니다. 제 눈이 돌아갔나 봐요. 지금은 무얼 들어도 전부 유혹으로 들리는 걸 보면.”

“그…러나요?”

“쉿.”

고다연이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남자의 조언대로 조용히 있으면 사고는 나지 않으리라.

그러면 남자는 약속을 지킬 테고, 고다연 또한 본래의 계획대로 아직 한 걸음을 남겨둘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녀 또한 사고가 나길 바라고 있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감성이 몸을 집어삼킨 지 오래.

지금 남자가 그녀를 밀어 넘어뜨린다면 절대 거부하지 못한다.

조금 더 서로를 알게 되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녀는 스스로를 이성적인 상태라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은미도 관계를 가져도 이상할 것 없는 연애 일수라고 했잖아?’

자신은 은근히 남자를 바라고 있고, 남자 또한 그녀를 원하는 마음을 견디기 위해 이토록 꽉 끌어안고 있다.

억지로 버티려고 드는 것이 바보 같지 않을까?

‘이성적인’ 고다연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말이 전부 유혹으로 들린다 했다.

그렇다면…

그녀가 무엇을 말하더라도, 그러니까 조그마한 애정 표현이더라도, 어마어마한 유혹이 된다는 뜻이리라.

“…방금 저희가 한 게… 진짜 키스… 군요.”

“다연씨?”

“기분 좋았어요. 엄청 만족스러울 정도로. 찬영씨는… 어땠…어요? 만족했나요?”

“하하. 만족이라….”

남자의 목소리는 열기에 끓고 있었다.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폭발물을 보는 기분.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이 넘어갔다.

고다연은 계속해서 입을 뗐다.

한번 터지기 시작한다면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이왕이면…

감정적이게 됐으니, 평소에는 못하던 솔직함을 꺼내는 일은 한결 쉬워지지 않았을까?

“찬영씨는, 갈수록 제 마음을 차지하고 있어요. 지금 와서는… 엄청 커다란 공간이네요. 갑자기 사라지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버릴 정도.”

“드,듣기는 너무 좋은데… 그 이야기 지금 해야 하나요?”

“그래도 당장 하고 싶은 걸 어떡해? 저도 신기해요. 제가 누군가를 이렇게나 좋아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해봤는데…”

“…저도요.”

“응. 사랑해요.”

그리 말한 고다연은 남자의 쇄골에 얼굴을 묻었다.

역시 이 말은 이럴 때마저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포근한 향기가 폐 속을 채우는 감각은 만족스러웠다.

“……후우. 이때다 싶어서 절 괴롭히시는 것 같은데… 그러다 저 못 참게 되면 후회해요?”

“아닐…지도?”

“지도?”

“…….”

아무리 그래도 너무 대담했는지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대답을 미뤘다.

원래 계획은 은근한 티만을 내려 했으나, 남자가 넘어 올 기색이 보이지 않자 안달이 나버렸다.

그래도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몸을 두른 남자의 팔에 떨림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그녀를 들어 침대로 옮길까 하는 망설임이 느껴졌다.

고다연은 순한 양처럼 남자의 품에 기대었다.

남자가 한 약속을 믿고 있다는, 그가 어떠한 번뇌에 빠졌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어필을 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 기댐이 또 다른 유혹이 되리란 걸 알고 있기에 한 행동이다.

­ 쪽.

이마에서 느껴진 부드러운 감촉에 의문을 품었을 때.

남자가 포옹을 풀었다.

그리고는 한 발짝 떨어지며, 체온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방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딱 좋았던 상온이 무척이나 싸늘하게 다가왔다.

아무리 봐도 그녀의 의도는 실패했다.

이대로 들어 옮겨지리란 고다연의 각오는 무색해진 것이다.

남자는 멍하니 앉은 고다연의 눈을 마주 봤다.

“풋. 제가 왜 키스를 그만뒀겠어요?”

“네?”

“시간 봐요. 이제 준비하고 출발 안 하면 댄스 연습에 늦습니다.”

“……어어? 왜,왜 벌써 시간이?”

“그야, 그 정도로 오래 키스했으니까요.”

시계는 벌써 약속 시각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제서야 고다연은 자신의 입술이 얼얼함을 깨달았다.

깊은 감정의 교류가 시간마저 잊게 만든 것이다.

“미안해요. 솔직히 말해서 약속을 지키지 못 할 뻔했지만… 주말. 커플 두 명이 동시에 당일 통보 결석을 하게 된다면 다들 눈치챌걸요?”

“앗…!”

“저희가 평소에 불량했다면 우연이란 변명도 되는데, 성실해도 너무 성실했어야지. 이다음은 오늘 못하겠네요.”

“……그,그런데 왜 제가 아쉬워할 거란 전제인가요?”

“하핫.”

속내가 모두 들킨 것만 같아 수치가 밀려왔다.

그럴 확률은 무척 낮겠지만, 설마 유혹이었다는 것이 들켰을까?

“저는 어지간해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타입이라서요. 방금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었지만… 아무튼.”

“…치.”

조금 울적해져 고개를 휙 돌렸다.

그는 그런 고다연의 볼을 잡고, 부드럽게 원위치로 돌렸다.

“아니면…… 제가 다연씨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나요?”

남자가 고다연과 눈을 맞췄다.

평소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웃음만 보이던 그가 지었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나운 얼굴을 한 채.

‘찬영씨… 저런… 저런 표정도 할 줄 아셨나?’

깜짝 놀랐다.

호랑이를 앞에 둔 토끼처럼 얼어 붙어버렸다.

그 동공에 억눌린 소유욕과 정복욕. 그리고… 성욕.

이리 마주 보는 것만으로 와닿는 건 아주 미량에 한정할 텐데, 실제로는 얼마나 커다란 욕구를 인내하던 것일까?

고다연은 가슴이 미친 듯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가라앉았던 숨결이 살짝 거칠어졌다.

이런 유혹에도 넘어 오지 않을 만큼 내게 매력이 없나, 하는 감춰뒀던 속상함이 단번에 날아가 버렸다.

소극적인 유혹은 효과가 있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다만, 남자의 인내심이 범상치 않을 뿐이었다.

“자기 절제가 무슨… 어떻게 찬영씨가 못났던 자신을 단시간에 바꿀 수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 저라도, 오늘 다연씨는 감정에 휩쓸리신 것 같으셔서 넘어가지만… 두 번은 없습니다.”

“두 번…이라면?”

아직 이성이 절반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 탓에 생각만으로 그쳐야 할 것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말에 담긴 감정은 긴장이 대부분이었지만, 가려진 곳에서는 기대 또한 담겨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눈치챈 듯했다.

그는 날카로운 그대로 웃음을 지었다.

스치듯 고다연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댄 뒤, 나직이 말했다.

“다음 주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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