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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7화 〉 하얀 고래의 발자취 (Epilogue)

* * *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스킬 중 최고 레벨이 정확히 몇이었더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이 연금술 스킬이 최고 기록보다 몇 단계 더 높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내 연금술 스킬이 3레벨 초반이고… 데이지는 5레벨이었지?’

최상급 힐링 포션을 홀로 만드는 그녀의 레벨이 5레벨이다.

레벨 9의 연금술 스킬.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성능을 보일지 기대되었다.

갈수록 올리기 힘들어지는 것이 바로 스킬의 레벨이지만, 정비례로 위력의 상승 폭 또한 커지니까.

거대한 기연이었다.

용사에게 먹인 ‘불로의 비약’.

내 성장 속도를 높여 준 ‘풍요의 정수’.

노화를 늦춰주는 효과의 ‘생명의 씨앗’.

혈귀의 힘을 얻게 해줬던 ‘진조의 혈정’.

불로의 비약 제작법에 이어, 9레벨 스킬까지 공짜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아니.

전설의 연금술사 트리스 메기스투스가 가는 길 섭섭지 말라고 챙겨 주는 작별 선물이다.

거절할 이유가 있을까?

나는 곧바로 시스템 창의 [예] 버튼을 눌렀다.

­ 띠링!

[’연금술 Lv 9 ­ 트리스 메기스투스(가장 위대한 알케미스트)’를 각인 중입니다!]

[로딩 중…]

“엇? 찬영님! 손에 들린 그거…”

멜이 신기한 눈으로 내 손에 들린 머리핀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솟아난 지 모를 빛무리가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기억 시리즈’에 스킬을 각인할 때면 전부 이렇게 화려한 식으로 각인 되는 걸까?

아니면 9레벨이라는 그 위력만큼 각인해야 할 용량이 크기에?

손에 잡히지 않는 빛 안개는 머리핀 안쪽으로 깃들었다.

퍽 화려했다.

겉보기가 무척 그럴 듯했기에,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새로 떠오른 시스템 창을 읽기 전에는.

­ 띠링!

[’기억의 조각’에 허용된 각인 된 용량을 초과했습니다!]

­ 띠링!

=

[!경고!]

기억 시리즈는 등급별로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정해져 있습니다!

선택하신 스킬을 온전히 각인하기 위해선 더 높은 등급의 기억 시리즈가 필요합니다!

대안 탐색 중…

각인 스킬 및 아이템 효과가 일부 변경됩니다.

스킬의 형태를 ‘완성형’에서 ‘습득형’으로 변경 중…

스킬 정보 압축 중…

.

.

.

완료!

‘연금술 Lv 9’ → ‘연금술 Lv 6 ~ 9’

=

“아니… 천계가 만든 거라면서. USB도 아니고, 용량이 왜 정해져 있어?…”

솔직히 인정 못 할 바는 아니다.

이룬 업적에 비하면 과한 보상이긴 하다.

연금술 스킬이 아닌 어떠한 스킬이라도, 레벨이 9나 되면 지금의 내겐 치트키다.

만약 내가 성장욕이 크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느 세계에서도 먹힐 정도의 힘을 얻었으니, 더이상 힘들게 노력하지 않고 안주해버릴 확률이 높으리라.

내가 SF 세계관 소설을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싱글 게임의 초반 캐릭터에게 극후반에나 얻을 수 있는 OP(over power) 아이템을 쥐여주면…

한 번도 죽지 않고 클리어할 확률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니까.

‘시스템 AI는 절대 피하고 싶은 상황이겠지…’

하지만, 기대를 주었다가 이리 빼앗아 가니 실망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만족해야 하나?

6레벨 스킬만 해도 내가 가진 어떤 스킬보다 높긴 하다.

­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기억의 조각 ­ 각인 완료

종류: 장비

레벨: ­

효과: 스킬 계승

상세:

‘기억 시리즈’ 중 하나.

장비 소유자는 각인 된 스킬을 얻습니다.

아이템을 장착 해제 시, 장비로 얻은 효과를 잃습니다.

현재 각인 된 기억 ­ [연금술 Lv 6 ~ 9]

장착 즉시 ‘연금술 Lv 6’을 얻습니다.

최대 Lv 9까지 얻을 수 있으나, 아이템 정보 저장 용량이 부족해 Lv 7 이상의 정보는 요약본 형태로 담겨 있습니다.

장착자가 지식을 직접 체득해 내가며 스킬 레벨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 기억 시리즈

기억의 흔적 ­ 랜덤 대상의 랜덤 스킬

기억의 파편 ­ 선택 대상의 랜덤 스킬

기억의 조각 ­ 선택 대상의 선택 스킬

기억의 ?? ­ ??

=

“…그래. 완전히 정보가 날아간 것보다는 나으려나?”

Lv 9에 달하는 연금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귀중한 지식이다.

시스템이 없는 다른 평범한 이들은, 당연히 이런 고급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없다.

이 머리핀 안에 담긴 지식은 현재 유실된 것이 확실할 테니까.

나는 이것이 사라지지 않은 것에 만족했다.

온전하게 담지 못해,

착용자의 뇌 용량을 빌려야 하는 습득형 스킬.

대충 그 성능이 예상이 가지만…

직접 장착을 해보기로 했다.

한번 경험해 보는 것이 빠를 테니까.

나는 머리핀을 앞머리에 가볍게 껴보았다.

“앗! 그거 머리핀이었나요??”

“…멜, 너 머리핀이 뭔지 알아?”

“네? 너무해요!! 다,당연히 알죠! 물론 시골에서 자랐지만, 수도의 최신 유행에…”

“아. 아니, 널 무시한 게 아니라… 이 세상에도 머리핀이 존재하냐는 뜻의 질문이었어.”

“…더 이해가 안 가는데요… 그런데 그거, 아티팩트인가요?”

“아티팩트긴 하지. 어때, 좀 어울려? 킥킥.”

“어라? 새,생각보다 귀여운…데요? 항상 듬직하던 찬영님이, 의외로…! 이건 의외로…!!”

“……자,잠깐. 그만하자.”

머리핀을 한 185cm의 남정네를 징그러워하는 멜을 놀리기 위해 장난을 친 것이지만…

그녀의 콩깍지는 쉽사리 벗겨지지 않았다.

진지하게 이런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니, 쪽팔림이 몰려온 건 내 쪽이었다.

나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멜을 제지하며 한시라도 빨리 머리핀의 효과가 찾아오길 기다렸다.

그래야 벗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아!’

그때.

수많은 지식이 밀려 들어왔다.

입으로 발음하기도 힘든 연금 재료와,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제작법들.

뇌를 파고드는 이론의 농도를 현대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이건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수준이 아닌, 그 분야에 통달한 교수 이상의 수준이었다.

레벨 6의 연금술 스킬로 충분했다.

연금술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나를, 국가의 재산으로 여겨질 급의 전문 인력으로 탈바꿈시키는 데는.

내가 방금까지 9레벨은 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나?

9레벨은커녕, 8레벨… 아니, 7레벨만 되어도 오버 밸런스다.

확신할 수 있었다.

정보의 질이 아닌, 양만을 표현하려고 해도 입만 아프리라.

무척이나 체계적으로 잘 정리가 되어 머리가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혼란에 찰 정도의 방대한 양이었다.

‘…만약 9레벨의 온전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수도 있겠는데?’

시스템이 제약을 건 이유 중에서는 이것도 있었으리라.

내게 레벨 3에 달하는 기초지식이 있어서 이 정도였지…

문외한이 이 머리핀을 함부로 차면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데?

물론,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쳤다.

이 장비를 공격용으로 쓰지는 못한다.

머리핀을 채우는 것보다 그냥 주먹으로 패서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게 빠르니까.

‘그럼 다음 단계인 7레벨은… 아, 공부해야 한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머릿속에 교과서가 펼쳐졌다.

완전히 통달하게 해준 6레벨 이하의 지식과 달리 간단한 이론만 담겨 있어,

심화 과정은 소유자가 직접 연구를 하며 깨쳐가야 하는 듯했다.

문제집보단 이론서로 보였다.

개념 확인 문제만 있고, 한두 번 꼰 기출 문제는 담기지 않은.

그런데…

요약된 내용만 담겼음에도 그 양이 책장 하나 둘 수준이 아니었다.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했다.

이를 확인한 즉시 머리핀을 벗었다.

평생을 매달려 공부해도 늙어 죽는 것이 빨라 보였으니까.

“아앗! 왜 벗으세요? 귀여웠는데, 계속 끼고 다니시지!!”

“…제발…”

“으음… 아쉽지만… 그래도 귀한 아티팩트처럼 보이는데, 가끔은 끼실 거죠?”

“아니. 아마도.”

“네?! 어째서!”

“방금도 끼고 싶어 낀 게 아니라, 시험 삼아서 낀 거거든?”

만약 머리핀의 효과가 온전한 스킬을 안겨주고, 그것으로 끝이라면 종종 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소유자의 노력과 재능에 따라 성장시킬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럼, 이걸 내가 가지고 있기엔 너무 아까웠다.

아무래도 머리핀의 주인은 따로 있는 듯하다.

특성이 보증해 준 나의 아군.

항상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유능한 연금술사.

그 속 늙은 꼬맹이의 기뻐하는 얼굴을 또 한 번 볼 수 있을 것 같다.

*

­ 툭.

“오다 주웠다.”

“……뭐?”

데이지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시선은 앞에 놓인 머리핀으로 향해 있었다.

‘기억의 조각’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이 액세서리는,

그 이름에 비해 너무나 특색 없는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길바닥에서 나뒹구는 걸 주운 것처럼.

그러니 데이지가 보일 반응은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오다 주운 걸 왜 나한테 줘? 다시 바닥에 버려.”

“…이런. 실패한 농담이었네.”

남자는 그리 말하곤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데이지는 방금의 말이 농담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장난을 걸고, 그녀는 한 템포 늦게 반응한다.

함께 보냈던 일상 사이에 종종 있었던 풍경이었다.

데이지는 눈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사교적인 부분에선 무척이나 약했기 때문에.

하지만 데이지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방금까지만 해도 마음을 좀먹던 공허감.

평생 겪어본 적 없는 슬럼프가 남자의 얼굴을 본 뒤로 깨끗하게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머리도 맑아진 것 같고?…’

좋은 게 좋은 것이겠지.

데이지는 생각을 뒤로하고 머리핀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뭐야?”

“머리핀. 일단 껴봐.”

“뭐어? 머리피인? 그걸 내가 왜.”

“…그래. 그랬지. 아무리 생각해도 넌 제 손으로 액세서리를 낄 것 같지 않으니, 그냥 내가 끼워줄게.”

“야아! 뭐,뭐하는…!!”

남자는 그리 말하곤 데이지의 앞으로 걸어왔다.

또한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손바닥 위에 올렸다.

데이지가 방심한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로선 기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그 거리감도 거리감이지만,

머릿결이 상하지 않도록 소중히 머리핀을 끼워주는 건…

당하는 입장에선 무척이나 얼굴이 달아올라 버리는 행동이었으니까.

“잠깐…! 그리고 그거 주운 거라며! 더럽잖…”

“안 더럽거든?! 그건 농담이라고 했잖아…”

“그으으, 믿을 테니 일단 떨어지…라고!”

데이지는 끙끙대며 남자를 밀어냈다.

허나 그 근력이 무척이나 약해서 움직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가 못 이긴 척 뒤로 물러나 주었다.

의자에 앉은 그녀.

그 앞에 서서 머리핀을 끼워주려던 남자.

당연히 데이지가 손으로 밀어낸 신체 부위는 가슴 쪽일 수밖에 없었다.

예상도 의도도 하지 않은 신체 접촉이었지만,

남자의 따뜻해 보이는 외견과 다르게 무척이나 단단한 육체의 태동을 느낄 수는 있었다.

‘아까부터 우울증과 무기력증이 도지더니… 드디어 이딴 미친 생각까지 하는구나.’

자신이 했으리라곤 믿기지가 않는 생각.

데이지는 그것을 슬럼프의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손에 남아있는 감촉을 억지로 털어내며.

“데이지 너, 방금 내 몸 만졌다고 손을 턴 거야? …꽤,꽤하네. 장난인 건 알지만 가슴이 좀 아팠어.”

“조,좀 씻고 다녀. 더럽잖아!”

“더럽기는… 너 내가 얼마나 자주 씻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그가 무척이나 청결하다는 건 알고 있다.

세상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데이지 역시 용병의 위생에 대한 편견을 가졌었다.

그리고, 눈앞의 이 남자는 그 편견을 아주 박살을 내 버렸다.

하지만 그 사실은 비밀로 했다.

항상 남자에게 장난을 당하기만 한 그녀지만,

지금이 유일하게 복수를 할 상황인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흥! 난 냄새를 못 맡아서 모르지만, 누가 알아? 네 몸에서 악취가 나고 있을지!”

“오. 그렇게 나오시겠다?”

“왜, 반박 못 하겠지? 증명을 못 하니까! 후후후.”

데이지의 표정에 미소가 감돌았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가슴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슬럼프가 왔었던 것은 까맣게 잊고, 데이지는 무척이나 신이 난 얼굴이 되었다.

“나는 학자거든! 증거 없이 설득할 생각을 버리라고? 킥킥!”

“음… 이건 비밀로 하려 했는데… 데이지. 가끔 너한테서 이상한 냄새 날 때가 있다? 땀 냄새 같은.”

“…거,거짓말. 안 믿거든?”

“안 믿어도 상관은 없는데… 주로 머리카락에서 좀… 사실, 아까 네게 머리핀을 끼워주려 할 때도 약간…?”

“무,뭐?! 진짜? 정말로?”

­ 벌떡!

허나 이어진 한마디에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발은 한 걸음 뒤로 옮겼다.

혹시 다가갔다가 그가 불쾌한 냄새를 느끼곤 얼굴을 찌푸린다면…

데이지로썬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하하하핫!! 농담이지 당연히!!”

“…너,너 이 개자식이…!”

“푸흐흡…!! 너 방금 식겁할 때 표정이… 하하하!”

“가만 안 둘 거야!!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참지 못하고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데이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아파하는 척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유의미한 타격은 주지 못했다는 것이 진실이다.

“…큼! 이 머리핀, 정말 주운 거 아니지?”

데이지의 손바닥에 올려진 조그만 머리핀.

특별함이라곤 없어 보였다.

눈으로 남자를 째려보았다.

장난이 많아도 너무 많은 남자다.

일단은 선물로 보여도, 의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하네. 이런 귀한 게 바닥에 돌아다닐 리가 없잖아?”

“귀한 거? …아하! 알겠다. 직접 만든 거야?”

“이야. 내가 직접 만든 거라고 귀하다 말해주네?”

“너,너 자꾸 이상한 곳으로 이야기 돌리기야?!”

“풋. 미안. 미안. 직접 만든 건 아냐. 이제 방해 안 할 테니까, 슬슬 차봐.”

“……에휴. 그래.”

데이지는 한숨을 쉬며 머리핀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이대로 차지 않고 바라만 본다면 남자가 억지로 채우려 들 것이다.

조금 쪽팔리더라도…

차라리 제 손으로 차는 것이 나으리란 판단이었다.

­ 딸깍.

“그래. 찼다. 이제 뭐!”

“꽤 어울리잖아? 하긴, 넌 딱 봐도 미래가 기대될 정도로 귀엽고… 안 어울리는 게 이상하지.”

“미,미쳤어?! 이,이상한 칭찬은 저리 치우… ……응?”

“오. 왔나 보네?”

“어,어어?”

머리핀을 차고 조금 시간이 흐르자, 소리 없는 폭풍이 몰아쳤다.

남자의 경우와 다르게 기초 지식에 빈틈이 없던 데이지.

그렇기에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자의 때보다 몇 배는 더 혼란에 찼지만.

“어때. 마음에 들어?”

“……이거… 도대체 뭐야?”

데이지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최선을 다해 가다듬으며 물었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물건이었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신물이었다.

데이지는 남자를 올려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대답은 무척이나 가볍게 돌아왔다.

언젠가 귀족을 적대하기까지 하며 그녀의 복수를 대신해 줬을 때처럼.

언젠가 그녀에게 불로의 약을 먹이며 삶을 되찾아 줬을 때처럼.

“그냥 선물.”

이번에도, 그는 너무나 가볍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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