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 하얀 고래의 발자취
* * *
머리로는 알고 있다.
‘연금술을 배우기 위해 수도에 남는다’는 이야긴,
데이지 자신의 곁에 남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녀가 아는 이 남자라면 분명 다른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데이지의 옆을 지키려 들 것이다.
‘하지만… 요 한 달 사이에 생각이 변했을 수 있잖아.’
지난 한 달간 데이지는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지식을 공유한다는 것 자체도 새로웠지만, 그 대상이 대상 아닌가?
인생 최초로 마음을 터놓은 이.
그녀가 자신 있고 좋아하는 분야.
여태 다양한 주제로 나눈 토론은, 더없이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너무나도 열정 있고 재능 넘치는 학생이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제자 상을 지닌 원석.
스승 된 입장으로써 재미가 넘칠 수밖에.
그러나…
‘얘는 힘들거나 짜증나진 않았을까?…’
정작 남자 쪽은 즐거워했냐고 물으면, 데이지는 대답을 망설일 것이다.
그는 연금술을 공부하며 싫은 내색 따윈 전혀 비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남자는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결코 드러내지 않는 고지식한 성격을 지녔다.
겉으로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웃으며 데이지를 대했지만, 실은 하루의 휴식도 없이 진도를 나가는 그때의 상황에 지쳐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데이지는 작게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입에 발린 칭찬이라도 몇 번 해줄 걸 그랬다고.
아무리 가능한 한 빠르게 공부를 가르쳐야 하고, 그가 이상적인 제자 상을 지녔다고 한들…
적절한 보상과 휴식은 교육의 필수 요소였다.
초보 스승인 데이지는 이제서야 그 사실을 눈치챘다.
“응. 3일 뒤. 단장도 부단장도, 다들 짐 싸느라 바쁘더라.”
“……”
과연 남자는 떠날까?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데이지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혹시 그가 남는다고 말한다면, 데이지는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용을 써야 하리라.
하지만…
만일 그가 떠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데이지는 그를 잡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일 텐데, 추한 년으로 남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어?’
귀찮고 쓰레기 같은 성격을 지녔지만,
그래서 곁에 있기 질려 떠나버린다고 한들,
호구 같은 성격의 그가 차마 데이지를 경멸하지 못하고 ‘불편한 친구’ 정도로만 기억해 준다면…
데이지는 그것으로 만족할 자신이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의 기억 속에 친구로 남은 것이니까.
이미 나이에 맞지 않는 어리광은 한번 부렸다.
그리고 남자는 ‘불로의 약’을 만드는 방법을 전부 습득함으로써 그 어리광을 전부 받아주었다.
또다시 어리광을 부리는 건, 데이지에겐 불가능했다.
이 이상의 짐을 남자의 어깨에 얹기엔…
이미 그가 과할 정도로 좋아져 버렸다.
‘…어,어디까지나 사람이 좋다는 의미로!’
생각이 깊어졌던 탓일까.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 데이지의 얼굴에 분노가 자리했다.
그녀는 외면하거나 숨기고 싶은 속내가 있을 때면, 이를 분노로 포장하려 하는 딱한 성격을 가졌기에.
“야, 데이지. 너 왜 표정이…”
“뭐! 내 표정이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남자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제야 데이지는 상황을 눈치채곤, 헛기침하며 표정을 바로 고쳤다.
“…화났어?”
하지만 남자는 데이지의 표정을 확인한 뒤였다.
그는 쓰게 웃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연히 데이지는 화가 나지 않았다.
반대로…
불안감과 체념만이 들 뿐이었다.
그가 이런 식으로 쓴웃음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그녀의 곁에 남아 줄 것이라는 확답을 미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째서 화가 났냐고 물어보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데이지는 어렴풋이 이 이야기의 결말을 예감했다.
“사실, 나도 슬슬 용병단을 나오려 했는데… 사정이 하나 생겨버려서.”
“…사정?”
“응. 내 연인이… 용병을 그만두는 게 상상이 안 가거든. 같이 용병단을 나오자 권유하려 해도, 울먹이며 곤란해할 게 뻔하니까 도통 못하겠더라.”
데이지의 얼굴이 미약하게 굳었다.
연인이라면 그 노을빛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걸까.
과거 연금 공방에 잠깐 들렸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남자는 그녀와 연인이란 것을 제 입으로 말하기까지 했다.
그가 소아 성애자라는 것을 해명하던 중.
‘…그러네. 얘한텐 연인이 있었지. 호구 주제에…’
박찬영이 말한 그 ‘연인’은 데이지가 떠올린 크리스가 아닌 자넷이었으나,
어찌 되었든 상황 자체를 이해하는 것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에게 연인이 있고, 그 사람 때문에 용병 단을 나올 수 없다’, 이 정보가 가장 중요했으니까.
“그럼 너도 수도를 떠나겠네? 3일 뒤.”
아무렇지 않은 듯 묻는 것에 성공했다.
데이지는 그런 자신이 대견했다.
방금의 질문을 하기까지 꽤 거대한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긴장 때문인지 숨이 약하게 막혀왔다.
데이지는 모르는 척 남자를 흘겨보았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데이지의 질문에 긍정했다.
‘후으… 그야 그렇겠지. 연인이랑 친구 중 하나를 택하라면, 죄다 전자를 택할 테니까.’
예상하긴 했으나, 현실이 되어 다가오자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올 뻔했다.
데이지는 ‘마음’이란 것이 심장에 위치해 있음을 실감했다.
방금 그녀의 마음이 찢기듯 크게 아파왔으니까.
심장 쪽이었다.
“아. 오늘은 작별 인사구나? 너도 떠날 준비 하려면 이래저래 바쁠 것 아니야. 용병단에서 막내라고도 했…”
“아니. 조금 달라.”
괜찮은 척, 별것 아닌 척, 억지로 웃음 지어 하던 데이지의 말은 끊어졌다.
남몰래 입 안쪽 볼살을 깨물며, 발아래의 나무판자 주름을 세고 있을 때.
스윽.
그녀의 머리에 손이 얹어졌다.
크고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이.
“……뭐야.”
“데이지. 너 연금 공방에 계속 남을 이유, 이제 없지 않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오래전부터 공방을 떠나려고 결정했었다.
데이지는 헨리가 부담스러웠으니까.
하지만 계획에 박찬영이란 사내가 껴들며 많이 변화했던 탓에,
방금까지만 해도 그 계획은 잊혀지고 있었다.
가장 최근까지 데이지가 그렸던 미래는…
남자의 곁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자신이었으니까.
“언제, 어디로 떠날지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지만. 근데 그게 왜?”
“아무 계획도 없으면, 나랑 같이 가자. 세상 구경도 할 겸.”
“무,뭐?”
데이지는 작게 입을 벌렸다.
남자는 이리 말한 것이다.
연인과 친구, 둘 중 하나를 골라라?
그럼 난 모두를 선택하겠노라고.
그야말로 욕심 많은 선택이다.
그래서 그답기도 했다.
범인은 허황한 것이라 여기는 이상향을, 그는 진심으로 손에 넣으려 드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나보고 용병단에 들어 오라고?… 진심이야?”
“하하하! 아니. 넌 싸움 같은 거 못하잖아? 그냥 따라만 다녀. 우리가 전투에 나설 때는 캠프나 숙소에서 기다리던가 하면 되고.”
“그게 무슨…”
안 그래도 어린애의 외견.
그래서야 짐덩이 밖에 안된다.
용병단의 인물 중 누가 그녀의 합류를 반길까?
아마 남자의 연인조차 데이지를 좋은 시선으로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장담하는데, 용병 일이 어린애 장난이냐면서 욕 엄청 처먹을걸? 나 같은 애새끼 달고 다닐 만큼 일이 좆밥같이 보이냐고.”
“그렇겠지. 자기들은 목숨 걸고 하는 생업인데, 누구는 고아를 챙기는 등 위선질을 부리는 꼴이라니… 나 같아도 눈에 거슬리겠다. 한동안 뒷담화를 질리도록 듣지 않을까?”
“…아,알고 있었어?”
“여러 번 말했지만, 나 눈치가 없는 축은 아니야.”
그는 이미 선택에 대한 대가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은 데이지의 마음을 울렸다.
동료와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한이 있다고 한들, 데이지와 함께하고 싶다는 뜻이었으니까.
‘…정신 차려.’
거절해야 한다.
그녀는 얼마 안 가 사라질 몸.
남기고 가는 자는, 필연적으로 남겨지는 자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무엇보다…
데이지는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 보다, 남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야 이 개자식아. 나만 손해 보는 장사잖아. 이득이 하나도 없는데 무슨.”
“이득?”
“그래! 이득! 이 공방에 남으면 다리에 물집 잡힐 일도, 눈칫밥 먹을 일도, 혹시 모를 죽음의 위기도 없는데. 내가 왜 따라가야 해?”
데이지는 안도했다.
오늘따라 표정 연기가 유독 잘 되고 있었다.
무의식 역시 오늘이 인생 중 가장 실패해선 안 되는 때라는 걸 깨닫고 있는 걸까?
남기고 떠났으면 좋겠다.
연인과, 동료들과,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주 가끔식 그녀를 떠올려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니 내 말에 반박하지 말고… 멀리 가버려.’
데이지를 위해서는 아니지만, 그를 위해서.
“하하핫! 맞네! 이득… 이득이라!”
하지만 데이지의 바람은 닿지 않았다.
갑자기 폭소를 터뜨린 남자는, 허리를 숙여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다.
“역시 나랑 같이 가자. 데이지.”
“그러니까 내게 이득이…!!”
“날 따라오는 대신에, 그 대가를 줄게.”
그리 말하면서 그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한 개의 포션 병이었다.
병은 투박했다.
그 안에 있는 액체도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투명하고, 양도 적었다.
“이걸 준다고? 이게… 뭔데?”
“독약!”
언젠가 데이지가 그에게 힐링 포션을 먹이며 했던 거짓말을,
이번에는 남자가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
역시 겉보기만 봐서는 모르려나?
나를 정신 이상자를 보듯 쳐다보는 데이지를 보곤 생각했다.
독약이라 말한 건 회심의 농담이었는데…
아무래도 통하지 않았나 보다.
하긴…
데이지에게 ‘불로의 비약’이란 제시간 내에 제작이 불가능한,
자신의 생 안에 볼 수 없는 약이란 인식이 박혀 있으리라.
그런 만큼 눈앞에 들이민 이 병 안에 불로의 비약이 들어있다곤 상상도 못 하겠지.
“독약? 아무리 생각해도 필요 없을 것 같은…”
“큼. 독약은 농담이야. 사실 다른 약이지.”
“다른… 약?”
“그 전에, 내 최초이자 마지막 소원 한 개만 들어주라.”
“…일단 들어 보고. 무작정 따라 오라는 건 거절 할 거니까. 그래서 소원이 뭔데?”
“내가 이 병에 든 것을 말해줬을 때, 의심하지 않고 믿어줘.”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존재해선 안 되는 물건이다.
그런 만큼 밑밥을 깔아 둘 필요가 있었다.
믿기 힘든 기적이니까.
데이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진지한 것이, 장난은 아닌 듯했다.
“…한 번 정도는 네 말이 얼마나 납득 안 가는 말이라도 믿어준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그 말, 지금 지킬게.”
“믿어 준다는 거야?”
“무엇이든.”
믿는다고 말했겠다?
그녀는 한번 말한 건 최대한 지키려 드는 성격이다.
지금의 그녀는, 사실 내가 폴리모브한 드래곤이라고 해도 믿으리라.
그제야 내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생겼다.
“부,불안해. 그 표정, 평소 나를 깜짝 놀래킬 때 짓던 표정인데.”
“킥킥킥. 놀래키는 건 비슷하려나?”
“도대체 뭐길래…”
나는 데이지의 머리에 얹은 손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이젠 포장지에 감춰진 선물을 풀 시간이다.
“이 병 안에 든 것, 완성된 불로의 비약이야.”
“……뭐라고?”
“너 죽지 않아도 된다고.”
그녀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표정으로 농담이지? 하고 물어 왔지만, 나는 잔잔히 웃으며 진심임을 내비쳤다.
데이지의 시선이 천천히 약병으로 향했다.
나는 그녀에게 병을 내밀었다.
이건 이제 그녀의 것이니까.
데이지가 내게서 병을 건네어 받았다.
혹시 손을 떤 데이지가 떨어뜨릴 수 있었기에,
병을 쥔 그녀의 손 위에 내 양손을 포개어 덮었다.
데이지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손…?”
“떨어뜨릴까 봐. 고생해서 만든 거니까, 소중히 다뤄줘.”
“어… 그…”
“확인해 봐.”
그녀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뚜껑을 열었다.
무색. 무취. 무미. 물과 비슷한 수준의 점도.
불로의 비약에 대해선 나보다 더 자세히 아는 그녀인 만큼, 당연히 알고 있는 특징들이었다.
“이거… 어떻게?”
“오. 진짜인 건 믿는구나?”
“미,믿기로 했으니까.”
“그럼 묻지 말고, 내 눈앞에서 마셔줘. 그거 마시는 거 봐야지 오늘 푹 쉴 수 있을 것 같거든.”
띠링!
=
[이름] 데이지
[직업] 연금술사
[힘] 4 → 3 [민첩] 3
[체력] 3 → 2 [지능] 32 → 33
[기교] 41 [매력] 23
[마나] 71 → 77
[특성]
* 특이사항
획득한 정보에 의해 일부 정보가 해금되었습니다!
불안정한 불로의 비약을 마셨습니다.
실시간으로 신체가 붕괴 중에 있습니다.
미각과 후각은 이미 사라졌고, 현재 청각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더 상세한 내용 확인은 ’상태창 레벨3 이상’ 혹은 ‘캐릭터 정보 상세 확인’기능 필요.]
=
나는 그녀의 상태창을 보며 말했다.
저 특이사항, 과연 불로의 비약에 의해 덮어질 수 있을까?
붉은 실타래는 덮어진다 말해 주었지만, 그녀의 생명이 달린 만큼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시라고? 지금? 하지만…”
“네가 학자인 건 알겠는데, 분석할 생각은 하지 마. 며칠은 걸리잖아. 너 지금 실시간으로 청력이 사라지고 있다?”
“……”
내 손이 그녀의 손 위를 덮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병을 이끌어, 그녀의 입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이런 나의 재촉에, 데이지가 얼떨떨하게 입술을 병 입구에 대었다.
그래. 그렇게.
천천히.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액체가 데이지의 목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상태창으로 돌렸다.
상태창의 내용이 변동 되며,
시스템 음이 귀를 울렸기 때문이다.
띠링!
=
[이름] 데이지
[직업] 연금술사
.
.
.
* 특이사항 [NEW!]
현재 ‘불로의 비약’을 마셔 모든 상태가 고정되었습니다!
더이상 스킬과 마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스킬의 성장이 영구적으로 멈춥니다.
스텟의 성장이 영구적으로 멈춥니다.
육체의 성장 및 노화가 영구적으로 멈춥니다.
생식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됩니다.
수면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됩니다.
=
덮어 씌워졌다.
눈 씻고 찾아봐도 기존에 있던 ‘불안정한 불로의 비약’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그녀의 상태는 고정되었다.
이걸로, 데이지의 몸을 갉아 먹던 붕괴는 멈추었다.
“어때? 몸 상태는?”
“…자,잘 모르겠어. 근데 이거 정말…”
“불로의 비약 맞아. 그런데… 너에게 말해줘야 할 부작용이 있어.”
나는 어렵사리 입을 뗐다.
솔직히 감내하더라도 생명이 우선이긴 하지만,
그녀가 겪어야 하는 부작용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불로의 비약을 먹인 사람으로서 이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부작…용? 이미 사라진 오감은 돌아오지 않고, 키가 안 자라거나 마나가 안 쌓이는 거? 그건 이미 알고 있는데…”
시스템이 없는 그녀에게 스킬의 성장이 멈추는 부작용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말한 부작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대부분의 성장이 멈추는 거지. 그리고 넌…”
“나?…”
“넌 이차 성징이 아직 안 왔잖아. 이대로 성장이 멈췄다는 건… 그…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뜻이 되니까…”
데이지는 생리를 하기 전에 ‘불안전한 불로의 비약’을 먹었다 했다.
여자인 그녀에게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됐다는 진실이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나는 남자니까.
많이 충격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걱정스런 눈으로 데이지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데이지는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응?”
“이제 와서, 아이를… 풉… 큭큭…”
“…데이지?”
“하하핫! 그리 울 것 같은 눈으로 보길래 무슨 부작용인가 했더니, 상상해 본 적도 없는… 푸흡…!”
나는 꽤 당황했다.
데이지가 이렇게나 폭소하는 건 처음 봤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에 그녀가 이런 식으로 대놓고 웃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녀는 항상 속마음을 꼭꼭 숨기려 드니까.
적어도 내 눈치로 보건대, 새로운 삶을 얻어서 이리 기뻐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만큼 내가 터무니없는 걱정을 했단 뜻이겠지.
젠장, 억울하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선 불임 사실을 무척 충격적으로 다루잖아?
막 슬픈 BGM 깔리면서 여주인공이 온 세상을 저주하고.
그래서 그게 보통인 줄 알았다.
…쪽팔리네.
“넌, 너는, 진짜, 하핫!! 이, 호구새,끼. 남 걱정밖에 못 하는! 푸하하핫!!”
내가 눈을 감고 한숨을 억누르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귀에 시스템 음이 울렸다.
띠링!
왜 시스템 음이?
새로운 변동 사항은 없어야 할 텐데?
난 혹시 모를 부작용이 나타났나 싶어서 황급히 데이지의 상태창으로 시선을 돌렸고,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을 마주했다.
=
[이름] 데이지
[직업] 연금술사
[힘] 3 [민첩] 3
[체력] 2 [지능] 33
[기교] 41 [매력] 23
[마나] 77
[특성] 『구원받은 자』 [NEW!]
.
.
.
=
구원받은 자.
비어있던 데이지의 특성창에,
새로운 특성이 등장했다.
“하하핫! 이 이이, 호구! 진짜 호구! 킥킥킥!!”
나는 눈물이 맺힌 채 시원하게 웃고 있는 데이지를 바라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