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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9화 〉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 * *

시스템의 상점창에는 다양한 물품이 있다.

여러 가지 잡화부터 시작해, 희귀한 재료, 기상천외한 무기, 심지어는 스킬까지 판매한다.

그런 상점창의 수많은 항목 중 가장 중요하게 살펴야 할 부분을 뽑으라면…

단연코 ‘기능 상점’이다.

기능 상점은 초기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비어있던 직업칸을 ‘밤피르(вампир)’로 채웠을 때.

마치 프롤로그는 끝났다고 말하는 것처럼, 숨겨져 있던 다양한 기능들이 상점창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줄지어진 기능들을 발견하곤 잠깐 신났었는데.’

하지만, 그 기능 모두가 미친 듯이 유용하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를 완결 지으며 보상으로 받은 ‘카르마 → 재화 변환’기능이 그렇다.

언뜻 들으면 상당히 유용할 것만 같은 기능이지만…

막상 쓸만한 상황을 떠올려 보려면,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 없다.

내게 있어서 카르마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재화를 카르마로 변환시킬 수 있는 기능이면 좋을 텐데.’

만약 반대였다면 어땠을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시스템 제작자의 입장에선 올바른 선택이었다.

소설 속 차원의 재화를 카르마로 바꿀 수 있다?

장담하건대,

나는 분명 신분을 위장한 채 온갖 강도질과 절도를 일삼았을 것이다.

무한한 카르마의 확보는, 내가 상종 못 할 쓰레기가 되는 대신 받는 대가로 충분했으니까.

결론은 이렇다.

‘카르마 → 재화 변환’기능처럼 그 활용처가 애매한 기능의 경우, 귀중한 카르마를 내고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하물며 대부분의 가격은 기본이 만 단위던데…

누구라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 카르마면 신규 스킬을 전투력에 영향을 줄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기에.

“상점창.”

­ 띠링!

당장 눈앞에 진열된 기능들을 봐라.

슬롯에 설정한 의상으로 순식간에 바꿔주는 ‘아바타’ 기능.

언제 어디서라도 불러낼 수 있는 가상 메모장을 가지게 되는 ‘메모장’ 기능.

버프나 사용 아이템의 지속 시간이 끝날 때마다 자동으로 재사용해 주는 ‘매크로’ 기능.

…나한테만 들리는 노래를 틀어주는 ‘백그라운드 뮤직’ 기능? 이런 건 왜 있어?

아무튼 그 대부분이 있으면 분명 좋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대체 가능한 기능들 아닌가?

그러한 이유로 나는 기능의 구입을 미뤄왔다.

그중에서도, 내가 절대 사지 않으리라 다짐한 기능이 몇 가지 있는데…

바로 연재 중인 소설에서 ‘사망 시’ 효과를 발휘하는 기능들이 그렇다.

만약 그 기능들을 카르마까지 줘 가며 해금하게 된다면,

조금만 힘들어도 ‘그냥 죽고 다시 시작할까?’라는 생각을 품게 될까 봐.

‘잠깐 방심해도 금방 나태해지는 게 사람이거든.’

내가 ‘백하민’으로 살았을 때 뼈에 사무치도록 새겨진 교훈이다.

그러므로 난 모든 세계를 죽지 않고 완결을 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목숨이 한 개인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다른 소설 속 차원의 원주민들처럼.

그런 내게…

‘사망 시’라는 조건이 붙은 기능이 필요할까?

“필요하지. 지금은.”

과거에는 절대 필요 없다며 코웃음 치며 기능 설명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난 그 기능 중 하나가 필요했다.

“사망 시 보유한 아이템 하나를 가지고 회귀하는 기능… 이건 아니고. 사망 시 정신적 후유증 완벽 제거… 이것도 아닌데? 젠장, 어디 있는 거야.”

다음 페이지.

그리고 다음 페이지.

빼곡히 줄지어진 기능을 끊임없이 넘기며, 언젠가 스치듯 봤었던 기능을 찾아 헤맸다.

제발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니기를.

제발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스쳐 간 이 기능이 실제로 존재하기를!

그렇게 한참을 뒤지던 중.

나는 하나의 기능 이름을 보곤 다음 페이지로 넘기려던 손을 멈추었다.

“…찾았다.”

­ 띠링!

=

[기능]

이름: 동반 회귀

레벨: 1

효과: 과거로 돌아갈 때, 동반자 한 명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상세:

연재 중인 소설에서 사망하며 과거의 시점으로 돌아갈 때.

혹은 그 밖의 시스템 기능에 의해서 과거로 돌아갈 때 사용 가능.

해당 세계관의 주민 중 한 명을 ‘동반자’로 지정합니다.

동반자는 시스템 보유자와 마찬가지로 회귀 이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중히 사용하세요!

‘동반자’가 우호 관계가 아닐 시,

혹은 ‘동반자’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할 시,

큰 변수가 되어 소설의 난이도가 더욱 상승할 확률도 존재합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회귀한 이유를 궁금해할 테니까요.

가격: 30,000 카르마

[구매하기]

=

그 밖의 시스템 기능에 의해서 과거로 돌아갈 때, 이건 분명히 ‘리셋’ 기능을 의식하고 적어 놓은 문구가 분명하다.

테라포밍 세계관의 ‘몽환의 구슬’같이 아이템을 이용한 회귀에는 사용하지 못하는 기능이지만…

별 상관없다.

쓰더라도, 어차피 한번 쓰고 말 생각이니까.

‘3만 카르마 정도면… 지불할 만하지.’

에일린과 달리 난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

내가 반한 건,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에일린이다.

내가 원하는 건, 동아리실에서 함께 웃고 떠들었던 에일린이다.

다른 무엇보다…

그녀가 나를 잊지 않았으면 했다.

“……”

이 기능을 구입한다면 그건 분명 더 없이 이기적인 행동이다.

내가 ‘리셋’ 기능을 사용하는 건, 이 세계 기준으로 27년이 흐른 뒤이기 때문이다.

27년.

짐작이 잘 안 갈 정도로 긴 세월이다.

그럼… 날 잊으려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가 남긴 기억으로 인해 고통받으리란 것이다.

차라리 전부 잊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편할 수도 있을 텐데…

내 이기심 때문에,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름다웠어야 할 첫사랑을 이런 식으로 망쳐버린 것에 대해서.

[기능, ‘동반 회귀’를 구입하였습니다!]

*

찰랑.

조그마한 병 안에 든 액체를 한번 흔들어 보았다.

특별한 점도를 지니진 않았다는 듯, 액체는 자연스럽게 내 힘에 출렁거렸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액체다.

아무런 색도,

아무런 향도,

아마 아무런 맛도 나지 않을 것이다.

물과 혼동될 정도로 유사한 외견을 가졌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이놈의 정체를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아무리 평화로운 세계라고 한들 순식간에 분란이 일 것이다.

권력자들이 그 무엇보다 바라는 것이 바로 수명이니까.

­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완성된 불로(?)의 비약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더이상 노화가 진행되지 않음.

상세: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탐을 내는 불로의 비약.

그 완성품입니다.

.

.

.

* 제작자 ­ 박찬영

* 제작자의 주관이 들어가지 않은 합성 방법으로 제조되었습니다. ‘추가 효과’나 ‘패널티’가 없습니다.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 현재의 ‘아이템 정보 확인’ 레벨로는 정상적인 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준 높은 물건이지만, ‘제작자’ 버프를 받아 일부 공개되었습니다!

* 시스템 보유자가 제작자이기 때문에 ‘세계관 귀속’ 아이템 제약이 사라집니다.

=

전에 봤던 것과 설명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제작자인 탓도 있고, 상세 보기 기능을 쓰지 않아서도 있다.

아무튼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비약의 성능을 파악하는 것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성공했네. 제작.”

예상대로 내가 만든 불로의 비약은 세계관 귀속 아이템에 포함되지 않는 듯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약이 든 조그만 병을 아공간 안에 집어넣었다.

데이지에게 이 비약을 가져다주는 건 좀 나중으로 미루자.

지금은…

­ 스윽.

주변을 차분히 흩어 보았다.

수상쩍은 빛을 내뿜는 마법진에 더해, 오랜 기간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소복할 정도로 쌓여 있지만…

굳이 시간을 들여 치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곧 리셋 시킬 거니까.

2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 집에 누군가가 출입한 흔적은 없었다.

다행히 집 주변에 이웃에게 큰 관심을 가지는 오지랖 넓은 사람은 없었나 보다.

‘혹시 리셋을 하면 완성된 불로의 비약도 초기화되려나?’

예전, 리셋 기능을 보자마자 떠올린 생각이다.

재료도, 지식도, 설계도도, 심지어 깃들어진 마나 조차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원산지는 분명하게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라 해야 옳으리라.

하지만…

결국 비약이 만들어진 것은 이 세계.

‘Made In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럼 정말로 리셋을 하게 되면 불로의 비약은 원재료의 상태로 회귀 되는 걸까?

사실 어렴풋이 대답을 예측하긴 했지만, 좀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안젤리에게 직접 물었다.

답은 내 예상과 같았다.

‘아니오’.

기능 설명에 명시되어 있듯이,

리셋 기능이 회수하는 건 오로지 ‘완결’과 관련된 보상뿐이다.

완결 아닌 완결을 하며 얻은 부당한 이득만이 사라진다 했다.

즉.

사라지지 않는 건 불로의 비약뿐만이 아니다.

이 세계에서 일반 퀘스트를 해가며 모은 카르마.

스킬을 수련하며 획득한 숙련도.

운동을 하며 성장시킨 스텟은…

리셋을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다.

“기능의 이름은 리셋이지만, 진짜로 시간을 돌리는 건 아니란 말이지.”

지금 당장 리셋을 해도 무방했다.

그러나 즉시 리셋을 시키지는 않았다.

대신, 걸음을 옮겨 현관으로 향했다.

끼이익.

27년간 한 번도 열린 적 없던 현관문이 녹슨 마찰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연갈색의 기다란 머리카락.

의외로 질투심 많은 미녀가 떠오른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큰 탈은 없었으려나?

날 아직 기억해 줄까?

혹시…

과거로 돌아가는 걸 바라지 않는 건 아닐까?

이미 그녀에게 많은 죄를 지은 나다.

차마 에일린의 의사조차 확인해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그녀의 27년을 없었던 일로 할 수는 없었다.

만약,

만약에 에일린이 과거로 가는 걸 바라지 않는 낌세라면…

나를 전혀 반기지 않는 분위기라면…

얌전히 그녀의 앞에서 사라져 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영원히.

나름의 각오는 마쳤다.

불안한 마음 반, 기대되는 마음 반으로.

이제는 나보다 확실하게 나이가 많아진 그녀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안젤리보다 훨씬, 훨씬 어리니 이제와서 나이를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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