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完]
* * *
“후우…”
이번이 열하고도 일곱 번 째.
근 800 스텟에 달하는 막대한 마나를 쏟아붓고,
지구로 가서 회복하고 오는 작업을 반복한 횟수다.
놀랍게도 아직 할당량을 반도 채우지 못했다.
이미 질릴 정도로 많은 마나를 빨아들인 이 마법진은,
배부름을 모른다는 불교 신화 속 아귀라도 된 것 마냥 적당이라는 단어를 잊은 듯했다.
전설 속 연금술사는 드래곤 하트라는 놈으로 대체했다던 이마나량.
세상의 몇 없는 보물의 힘을 빌려야 겨우 만족시켰던 그 조건을, 고작 인간의 힘으로 대신하고자 하니…
펼쳐진 길이 고생길인 건 너무나 뻔할지도.
‘마법진의 설계 작업은 머리가 아팠지만, 마법진 활성화 작업은 좀 지루하네. 그렇다고 집중이 끊겨서는 안 되고…’
첫 실전이지만 긴장은 하지 않았다.
안젤리에게 ‘구름나무 차’를 얻어 마셨기 때문이다.
마법진 제작은 특별한 재료 소모가 들지 않기에 몇 번 실패해도 괜찮기는 했지만…
이왕이면 한 번에 끝내고 싶었다.
만약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지금까지 지구에서 회복을 위해 보낸 시간들이 허사가 되니까.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길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로서는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우웅…
하염없이 마법진의 제작에 온 집중을 쏟고 있던 도중.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소음 없이 고요했고, 더 없이 몽환적인 빛이었다.
오래전, 멜과 함께 꼼꼼히 조사했던 그 마법진처럼.
드디어 마법진 제작에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내가 지구에서 마나를 47번째 회복하고 왔던 때였다.
“좋아! 첫 번째 단계는 완료됐고…”
이제 본격적인 재료 합성에 들어가야 했다.
지금부턴 실수하면 안됐다.
한번 사용한 재료들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사실, 생각보다 걱정이 앞서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연금술에 쏟아부은 시간은 모두 오늘을 위한 노력이었다.
하물며 ‘그’ 데이지가 내게 합격 판정을 내려줬을 정도다.
데이지의 눈을 믿는 만큼, 자신이 없을 수가 없었다.
딱히 에트나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데이지의 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니,
오늘 작업을 할 땐 이 세계의 첨단 연금술 장비를 사용해도 되긴 한다.
자동으로 온도를 맞춰주는 솥이나, 설정한 RPM으로 재료를 뒤섞어 주는 놈들.
허나…
‘손에 익지도 않은 걸 실전에서 사용하는 건 좀 그렇지. 새로 난 길보단, 옛길로 가라는 속담도 있고.’
장비를 사용해 봐야 1시간은 단축되려나?
그럴 바엔 그냥 내가 수백 수천 번 연습한 대로 하는 것이 옳다.
근거 있는 자신감.
솔직히 말해서 내가 실수할 확률보다,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킬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장비를 잘못 조작하거나.
꿈틀꿈틀!
인벤토리에선 무생물체인 재료를 꺼내고,
아공간에서는 단단히 제압해 뒀던 숨이 붙어있는 재료를 꺼내었다.
‘후… 실수만 하지 말자.’
커다란 솥 안쪽,
끓어오르는 기포의 개수까지 헤아리겠단 마음가짐으로.
술렁이는 표면에 이는 모든 파문을 파악하겠단 각오로.
있는 힘껏 집중력을 날 세웠다.
*
띠링!
=
[소설 속 마법 아카데미]
현재 완성도 31%
현재 사망 횟수 0 (Perfect!)
열린 결말.
연재 중단과 다를 바 없음.
소설을 완결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
완성도.
1%, 내려갔네.
확실히 에일린, 에트나와 이별을 한 지 시간이 꽤 흐르긴 했다.
딱히 상관은 없었다.
32%나 31%나 낮은 건 매한가지니까.
‘이제… 완결 버튼만 누르면 되네.’
모든 상황은 순조롭게 돌아갔다.
불로의 약을 연성하는 과정 중 실수 하나 없었고,
이론으로도. 또 외견상으로도 트리스 메기투스의 실험실에서 보았던 광경과 똑같았다.
이제 상자에 넣어 보관해 둔 미완성 상태의 불로의 약을 이 마법진 중앙에 두기만 하면…
10,000일 뒤.
자동으로 완성될 것이다.
중간에 내가 해줘야 할 것?
아무것도 없다.
설계가 그러하니까.
가끔 들어와서 혹시 모를 불법 침입자가 있는지만 살피면 되는 것이다.
나름 집 내부에 침입자 방비를 무서울 정도로 해두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냥 방치해 둘 수는 없지 않은가?
“……”
띠링!
=
소설을 완결 맺은 후에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한 번 더 고민한 뒤 결정해 주세요!
정말로 완결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
이제 이 긴 여정의 끝이 보였다.
내 눈앞에서 빛나고 있는 이 ‘완결’ 버튼만 누른다면.
비록 패널티를 좀 받겠지만…
데이지를 구할 수 있어진다.
하지만, 손은 선뜻 움직여지지 않았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미련이 남있기 때문이리라.
“에일린…”
마지막 순간 내게 보였던 그 눈물 맺힌 미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꽤 아플 정도로 낙인찍혀 있는 것이, 씁쓸히 웃으며 장담할 수 있을 정도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키스를 참는 것이 고작이었다.
만약 내가 감정에 못 이겨 에일린의 입술을 빼앗았다면, 그땐 정말 개새끼가 되는 거니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에일린의 곁에 있어 줄 순 없었다.
이미 한참 전에 한 결정.
이제 와서 흔들리지 않는다.
난 결국,
그녀를 남기고 떠난다는 결정을 되돌리지 않을 것이다.
‘에일린. 아무래도 너와 난… 맺어질 수 없나 봐.’
내 목적은 소설의 완결 지으며 따라오는 ‘배속’이라는 추가 기능.
내겐 이 기능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완결 이후의 차원은…
배속이라는 추가 기능이 생기지만,
설령 내가 죽더라도 더이상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진다.
더이상 젋은 시절의 에일린을 영원히 볼 수 없어진다.
괜찮다. 어차피 이를 인지 하고 한 작별 인사다.
그러니 미련은 좀 남았으나, 후회는 없다.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바라건대…
그녀가…
오래 괴롭지 않기를.
띠링!
[소설,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가 완결되었습니다!]
[완결 정산 중…]
띠링!
=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완결 정산]
*소설 난이도
쉬움 보상 변화 없음
*소설 길이
단편 보상 하향 小
*소설 완성도
31% 보상 하향 中
*엔딩 구분
열린 결말, 연재 중단과 다를 바 없음 보상 하향 大
*사망 횟수
0회 보상 감소 없음
*추가 가점
노 데스(PERFECT 클리어) 보상 상향 大
[박찬영님의 최종 평가] 도망자
=
=
퍼팩트 클리어 특전으로 보상이 크게 상향되었습니다!
[10,000 카르마 지급]
[3레벨 이하 스킬 레벨업 권 x1]
[’카르마 → 재화 변환’ 기능 해금]
=
완결 보상들이 손에 들어왔다.
적당한 카르마와 스킬 레벨업 권.
게다가 새로운 기능 해금까지.
모두 기대 이상의 보상이다.
게다가…
띠링.
[소설 완결로 인해 상점창에 새로운 물품이 추가되었습니다!]
이 세계의 마법사들이 쓰던 마법까지 상점창에 등장했다.
에일린의 경우만 떼어 놓고 이성적으로 바라본다면, 얻은 것이 더 많은 상황이다.
그럼…
‘아기 천사가 그토록 경고한 패널티는… 뭐지?’
그런 나에게 대답을 해주듯,
시스템 창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붉은색으로 점칠 된, 소름 돋을 정도로 불길한 분위기를 풍기는 경고 창이.
띠링!
=
[!경고!]
완성도 50% 이하.
이야기의 맺음이 정상적으로 지어지지 않음.
시스템 보유자의 의지가 없음이 확인됨.
위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도망자 패널티’를 받게 됩니다!
세 가지 중 AI가 도망자를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은 맨 마지막 조건입니다.
시스템 보유자의 포기 의향.
‘도망자 패널티’는 정상적인 엔딩일 땐 받지 않습니다.
그 엔딩이 열린 결말, Bad 엔딩, Sad 엔딩이라고 할지라도요.
만약 개연성과 완성도만 충족된다면,
오히려 HAPPY 엔딩보다 더 큰 보상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소설 속 세계는 가상의 세계가 아닙니다.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엑스트라마저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생명입니다.
손 놓고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적어도 고난을 이겨 내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면,
도망자 패널티는 받지 않습니다.
* 혹시 퍼팩트 클리어(노데스)까지 포함되었나요?
무한한 기회가 주어져 있음에도, 한 번의 죽음이 두려워 세상을 버린 비겁자로 간주해 가중 처벌됩니다! (2배)
=
=
도망자의 패널티 Lv 2
최종적으로 얻는 카르마가 20% 차감됩니다.
최종적으로 얻는 스킬 숙련도가 20% 차감됩니다.
최종적으로 얻는 스텟 경험치가 20% 차감됩니다.
=
“미친 이게 무슨…”
모든 성장이 4/5로 줄어든다고?
상상 이상으로 강력한 패널티에 식은땀이 흘렀다.
게다가 패널티 차감은 가장 마지막 연산으로 들어간다.
만약 패널티 레벨이 10이 되는 순간…
차감되는 퍼센티지는 100%.
내 성장은 완벽히 막힌다는 뜻이다.
마치 불로의 비약을 먹은 용사처럼.
각오는 했지만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그러나 이미 벌어져 버리고 만 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니,
감수할 수밖에 없다.
띠링.
하지만, 뒤를 이어 올라오는 시스템 문구에…
나는 그만 허탈하게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도망자 패널티’ 확인. ‘리셋’ 기능이 무료로 해금됩니다!]
=
[리셋]
이 기능은 ‘도망자 패널티’가 적용 중인 완결 차원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모든 완결 보상을 반납합니다.
상점창에 해금된 해당 세계관의 물품 역시 잠금 처리 됩니다.
대신,
해당 소설의 ‘완결’ 상태를 ‘연재 중’으로 되돌리며, 최초 진입 전으로 되돌립니다.
(진입 옵션 재선택 가능.)
또한 그 세계로 인해 받았던 ‘도망자 패널티’가 소멸합니다.
* 완결 보상을 이미 사용했다면, 사용하기 전으로 되돌립니다.
* 상점창에서 구입한 그 세계관의 물건도 자동 환불처리 됩니다.
=
=
*TIP*
[도망자 패널티]
성장의 강력한 족쇄인 ‘도망자 패널티’.
이는, 언제든 돌이킬 수 있습니다.
한 차원에 대한 모든 것을 초기화시키는 [리셋] 기능을 통해서요.
시스템 AI는 당신이 한 세계를 영원히 포기하도록 두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재도전하도록 기회를 열어주고,
인격적으로 성장할 길을 제시해 줄 것입니다.
진행이 고통스럽고 힘겨운 세계관일 수도 있습니다.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겨내려는 의지를 보여주세요.
설령 그 도전이 Bad 엔딩으로 끝난다 할지라도,
시스템 보유자가 의지를 실행으로 옮긴다면…
‘도망자 패널티’는 절대 받지 않습니다.
=
“하… 하하…”
리셋이라…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래.
맞는 말이지.
이 시스템의 목적은, ‘박찬영’의 인격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
그렇게 생각해 보면…
시스템 AI가 내 성장을 방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
‘포기하면 이렇게 강력한 패널티가 있어!’라고 경고를 한 뒤,
제대로 된 도전을 다시 해보라는 노골적인 권유를 하면 또 몰라도.
그러니까 방금처럼.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내가 이걸 어떻게 예상하냐…’
세계를 포기했다 간주 되면, 완결을 지어도 재시작 할 수 있다?
이런 걸 예측하면 그건 돗자리 깔아야지.
그쯤 되면 예언자나 다름없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지만, 싫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들 리가 없다.
“킥킥. 에일린. 아무래도 너와 난… 맺어져야 하나 봐.”
그토록 감성적인 이별 장면을 찍어 놨는데…
사실은 이별이 아니라니?
가슴이 무척 아렸던 만큼 의미 모를 웃음이 새어 나온다.
Open 엔딩? Sad 엔딩? Bad 엔딩?
아니.
내 인생만큼은 해피 엔딩이 제일 좋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잖아.
난 행복하고 싶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