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5화 〉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 * *
에일린은 후배의 눈을 쳐다보았다.
장난이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의 눈은 진지했다.
“꼭 그곳으로 떠나야 하는 거야?”
“반드시요.”
박찬영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의 익숙하던,
장난기와 따스함이 반씩 섞인 그의 목소리가 아닌…
결코 바꿀 수 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묵직하고 확고한 어조였다.
에일린은 예정된 이별을 뒤바꿀 수 없음을 예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후배가 연인을 사귀지 않기로 결심한 원인인 이 이별은…
에일린과 박찬영이 만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었으니까.
오래전부터 약속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연락도 안 된다니…”
그녀가 사는 세상은 단일 대륙에 단일 국가.
에일린에게 있어 ‘외국’이란 단어는 역사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다.
그런 만큼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깊은 숲속으로 가지 않는 이상 연락이 불가능할 리 없다.
“어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않아?”
“…죄송해요.”
“아무리 멀어도 괜찮아! 후배님이 이곳으로 오지 못한다면, 내가 그곳으로 놀러 다니면 되니까! 비록 자주는 못 가겠지만… 돈 좀 써서 텔레포트 게이트를 거치…”
“그런 문제가 아니라… 후… 역시 설명이 어렵네요. 제가 가는 곳. 평범히는 찾아올 수 없는 곳이에요. 선배님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다 마찬가지죠.”
에일린은 물론 어지간한 사람들도 가지 못하는 장소.
무슨 보안상의 이유로 국가가 주도해서 출입을 통제하는 구역으로 가는 걸까?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떠도는 인체 실험실 같은 삼류 소문 속 장소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곳에 끌려갈 정도로 후배가 위험한 인물이라면 이처럼 자유롭게 나다닐 리 없다.
잡아가도 진작에 잡아갔겠지.
무엇 때문에 이리 자유를 주나?
애초에 박찬영이란 사람은 여타 대학생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학생이다.
성격이 약간 특이할 뿐.
그의 부모는 좀 많이 특별하지만…
역사적인 규모라고 한들 사기꾼은 한낮 사기꾼이고,
재판을 받기도 전에 스스로의 목숨을 끊은 도망자들이다.
그들의 자식이 짊어져야 할 죄는 없다.
“만약 네가 떠나버리면… 우린 다신 볼 수 없는 거야? 서로 생사도 모른 채, 연락도 안 되고?”
“그건……”
후배가 잠시 망설였다.
결코 만날 수 없다면 즉각 대답을 했을 텐데 고민을 한다?
어쩌면 주기적으로나마 연락을 할 방법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에일린은 희망을 품고 후배를 바라보았다.
“…네.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기대는 부정당했다.
금방이라도 ‘그건 아니에요.’라고 말할 것처럼 보였던 후배가,
생각이 바뀌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기 때문이다.
“연락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요. 못해요.”
“정말?”
“설령 할 수 있다고 한들, 서로를 위해 안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어째서! 지금처럼 매일 만나진 못하더라도, 일 년에 한 번쯤… 동창회 같은 가벼운 느낌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잖아?”
“네. 친구 사이라면 반갑겠죠. 둘이 만나서 옛날이야기라도 하면 분명 즐거울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에일린. 단순히 친구 관계라면 몰라도… 저희는 서로를 친구로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잖아요.”
후배가 슬픈 눈으로 에일린을 바라보았다.
‘서로를’, 그 말에서 오는 의미를 평소의 에일린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미약한 분노가 그녀의 머리를 달구었기 때문이다.
방금 후배의 말을 해석해 보면…
에일린은 후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곁에 있어 줄 수 없는 박찬영으로서는,
최대한 빨리 자신을 잊어버리게 하고 에일린이 새 사랑을 찾도록 돕는 것이 옳다는 뜻이었다.
“필요… 없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혹여 그가 놀랄까 봐 언성을 높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억눌렀다.
허나 이가 갈리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자신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으라고?
원치 않은 배려다.
20년 만에 찾은 첫사랑이다.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면 지금으로부터 20년은 걸리리라.
에일린의 약점을 듣고서도 웃어넘길 정도로 특이한 성격의 남자?
작정하고 20년간 찾아보면 한둘쯤 있겠지.
하지만, 그는 박찬영이 아니었다.
좁다란 동아리실에서 에일린과 함께 시간을 공유한 그녀의 후배는 아닌 것이다.
첫 만남.
깊게 각인 되었던 날 선 얼굴.
우연히 그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되며 솟은 연민과 흥미.
어렵사리 친구가 된 후부터 보여주기 시작한,
그 냉기 서린 표정만 하던 이와 동일인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다양했던 표정들.
동아실에 들어갈 때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반겨주는 인사.
모르는 척 순진한 얼굴로 그녀를 놀리던 장난.
다른 여자와 가까이 붙은 걸 보면 차오르는 추잡하고 질척한 감정.
의외로 어른스러운 면모와, 연하의 남자치고는 신기할 정도로 기대고 싶어지는 등.
시간으로 따지자면, 고작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이다.
허나 에일린은 인정했다.
그녀는… 이것들을 사랑했다.
저 모든 추억에 반해 있었다.
이젠 그가 아니면 안 될 정도로.
“…마음이 아프네. 누구도 아닌 너한테 이런 배려 받아버리면.”
“미…안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정말 만나지 못하니까.”
“그렇…구나.”
에일린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자취방 안.
지금 둘의 사이의 거리는 언제든 손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으나,
나중이 되면 오늘을 무척 그리워할 날이 올 것이다.
에일린은 그날이 다가오는 것이 무서웠다.
“그럼… 떠나기까지 얼마나 남은 거야? 일 년? 반년?”
“…머지않았어요.”
“정확…히는?”
“슬슬… 일주일 좀 넘게 남았네요.”
“일…!”
일주일.
에일린은 혀가 굳었다.
솔직히…
에일린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여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막 전공을 정한 2학년.
게다가 박찬영은 같은 학교의 후배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할 날이 2년 정도 남았다는 뜻이기에,
너무 우유부단하지만 않으면 그의 생각을 돌릴 가능성이 없진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 만큼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박찬영과 달리, 코앞까지 다가온 이별에 완전히 무방비했던 에일린이었기에 더더욱.
‘서,설마?!…’
에일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반드시 떠나야 하는 이유.
아무리 캐물어도 어디로 가는지 말해주지 않던 이유.
그가 향하는 곳에선 평생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이유.
모든 정황은 한가지 가능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후,후배님. 너 설마…!”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에일린은 말을 삼켰다.
두려웠다.
혹시 이 질문을 했을 때, 그녀의 상상이 옳단 대답을 들어버린다면…
확정되어 버린다.
그때는 정말 이 세상에서 후배가 사라지는 걸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다.
필사적으로 모른 척하고 싶었던 에일린이었지만…
단서는 가설이 되었고, 가설은 현실이 되어 덮쳤다.
그녀의 후배인 박찬영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다.
‘저리 건강해 보이는 후배님이… 죽는다…니…? 아니지?’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죽어버린 자는 연락도, 돌아오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먼 곳에 있다.
미래를 위해 영상과 편지 정도는 남길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자가 이승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다.
후배가 말하던 상황과 딱 들어맞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인에게 ‘나 곧 있으면 죽는다’라는 말을 하기엔…
그녀의 후배는 너무 상냥했다.
분명 그라면 최대한 상황을 돌려 말할 것이다.
가령 연락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평생 떠난다는 이상한 변명을 한다든지.
‘그러고 보면…?’
에일린이 알고 있는 후배가 동아리실로 등교를 하는 이유.
범죄자 부모를 두었기에 다른 학생의 시선이 두려워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후배는 어땠는가?
에일린의 세미나를 자진해서 견학하고 싶어 했고, 초면의 이성 선배를 전공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친해지려 들었다.
하교 때나 에트나의 실험실로 향할 때처럼, 동아리실 밖으로 나가야 할 때도 위축된 느낌 없이 어깨를 펴고 복도를 다녔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낌세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설마…
왕따가 두려워서 동아리실로 등교를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시한부의 소중한 삶을 정규 수업에 허비하기 싫었기 때문이라면?
“일주일… 일주일하고 조금 남았다고 했지?”
“…네.”
“젠장, 젠장…!!”
좀 전에 들었던 시간과 변하지 않은 일주일이란 기간이지만,
와닿는 무게감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다르게 느껴졌다.
일주일.
에일린은 후배를 앞에 둔 채 욕설을 뱉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답답함에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걸 깨닫지 못했다면.
일주일 뒤 떠나는 그를 마중하고, 먼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 생각하며 살아갔다면 훨씬 마음이 편했겠지.
분명 그녀의 후배도 그걸 바랐기에 자신이 시한부라는 걸 이야기해 주지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깨달은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생명이 꺼져가는 소중한 시간 동안 에일린과 함께하기를 선택했다.
여행을 다니며 세계 곳곳을 구경하거나,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음에도.
그녀가 별생각 없이 흘려보냈다, 오늘에서야 소중함을 깨달은 요 한 달간의 추억들은…
도대체 이 후배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얼마나 에일린을 소중히 여겨주고 있었을까?
“후배님. 있잖아. 내 도움이 필요한 게 있어?”
“네? 도움이요?”
“응. 난 사실상 후계자라서, 내 집안의 힘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거든. 혹시 도움이 필요하게 되면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말해줄래?”
“어… 갑자기?”
“갑작스럽지만, 언제든 편하게 도움을 구해도 돼.”
“으으음…… …진지하게 생각해 봐도, 지금은 없네요.”
“…그래?”
“나중에라도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할게요. 제가 도움이 필요한데도 꼭꼭 숨기는 고지식한 타입은 아니잖아요? 뻔뻔하게 힘을 빌려달라 말하면 또 몰라도.”
“맞아… 후배님은… 그런 성격이지.”
에일린이 직접 자랑한 적은 없지만, 그녀의 집안이 특출나다는 건 전교생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은 박찬영 역시 알고 있었다.
병의 치료를 에일린 및 에일린의 가문이 도와준다면 가능성 있냐를 넌지시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에는 ‘소용없다’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무력감이 에일린을 지배했다.
“큼. 크흠! 그럼… 이젠 어떻게 하실 건가요?”
“…으응?”
“알다시피 선배님은 제 생각을 바꾸는 것에 실패했어요. 왜냐하면, 전 반드시 일주일 정도 뒤에 떠나야 하니까.”
“……그렇지. 나 방금 차인 거구나…”
충격적인 진실에 뒷전으로 밀려 있던 고백의 결과가 떠올랐다.
에일린은 결국 그의 생각을 돌리지도, 원인을 해결해 주지도 못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대로 저희… 어색한 사이가 되는 건가요?”
후배가 어색한 얼굴로 에일린의 얼굴을 힐끗거리며 살폈다.
그 모습이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워, 웃음이 그려졌다.
무척이나 서글픈 웃음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차인 주제에 좀 뻔뻔한 부탁을 할게.”
“부탁?”
“응. 네가 떠나기 전까지만 곁에 있어도 될까?”
적어도 곁에 있고 싶었다.
가능하면 마지막 모습까지 보고 싶었지만,
그가 허락해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더.
영원히 이별할 사람과 더 깊은 인연을 쌓는 건 무식하고 바보 같은 행동이라 생각한 그녀지만,
에일린은 기꺼이 무식하고 바보 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뻔뻔한 부탁 맞네요. 이걸 부탁하려고 방금 선배의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얘기하라고 한 건가요?”
“음… 그럴지도?”
“그런데… 정말 그래도 돼요?”
“뭐가?”
“저랑 더 친하게 지내는 것.”
지금 죽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자신을 걱정해 준 건가?
에일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당연히 환영이긴 한데, 너무 제 형편 좋은 이야기 같아서요.”
“왜…”
“왜냐니… 선배님은 절 보기 죽도록 어색하실 테고, 게다가 전 곧 떠날 사람이잖아요. 정 붙이면 더 아파지니까.”
“……”
“애초에 선배님보고 고백을 하지 말라 했던 이유도… 이렇게 거절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럼 저희 사이가 멀어지잖아요? 그게 싫어서였죠.”
“……그런… 이유였어?”
“네. 조금 쪽팔리지만, 맞아요. 요 한 달간 꽤 즐거웠어서.”
에일린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고백하지 말라 눈치를 줬던 이유가, 사실 그녀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니?
비록 연애적인 방향은 아니라고 한들…
참, 이처럼 충격적인 반전이 있었을 수가.
상상도 못 했다.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왜,왜 울고 그러세요. 잠깐 손수건이…”
“아니야. 괜찮아. 첫 실연이라 좀 놀라서 그런가 봐.”
눈물을 멈추기 위해 허벅지까지 꼬집어가며 노력했지만,
몸에 후배의 커다란 손이 닿자 전부 소용이 없어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에일린의 어깨에 올려진 그의 손은 따뜻했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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