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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화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 치이이익.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소리란, 이 고기 굽는 소리를 말하는 것이리라.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마음의 안정을 원할 때는 고기를 먹으라는 유명한 명언도 있지 않은가?

“…고깃집이라…”

에일린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혹시 고기는 싫어하나?
원작에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에일린 선배는 고기 안 좋아하세요?”

“아니! 그럴 리가! 그냥… 후배님이 밥을 사준다길래 당연히 파스타 집 같은 곳을 상상했지. 보통 옷에 냄새 배는 거 싫어하잖아?”

“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종종 우리 사이에 있었던 남녀 역전 세계의 인식 차이에서 발생한 이질감인 것 같다.

슬슬 에일린도 내가 특이한 가치관을 가진 남자라는  점차 인정하고 있었다.
나를  세계의 남성상에 맞출 생각 따윈 없으니, 이대로  나라는 사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네.

“에트나 선배도 고기 싫어하진 않으시죠?”

“없어서 못 먹지! 하물며 소고기인데… 흐흐!”

처음에는 학생답게 돼지고기나 먹으려 했다.
하지만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다.
결국 내 마음이 이끌린 곳은 소고기였다.

생각해보니 에일린은 꽤 부잣집 딸 아닌가?
질 낮은 고기는 누린내가 심하다며 입에 안 맞을 가능성이 있었다.
원작에 미식을 즐긴다는 묘사는 없었으나, 가능성이 없진 않으니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에일린의 성격상 내색하지 않고 먹겠지만…
그래서야 그녀들에게 밥을 사주는 의미가 퇴색되어버리고 만다.

“그… 후배님. 소고기, 정말 괜찮겠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저 돈 많아요.”

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 세계에서 내가 가진 재산은 매일같이 소고기를 먹어야 다 쓸 수 있을 수준이었다.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에서처럼 내가  흘려 번 돈도, 실제 지구의 돈도 아닌 만큼 부담도 느껴지지 않고.

“음… 그래도 연하의 남자에게 얻어먹기엔 소고기는  과한데…”

“사실 제가 먹고 싶기도 했어요. 고기는 이미 불판에 올라갔는데, 그냥 마음 편히 드세요. 옆의 에트나 선배처럼.”

“헉! 나?”

사랑스러운 눈으로 소고기가 익어가는 걸 감상하던 에트나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선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래.
이렇게 티 나게 좋아해야 사주는 사람도 보람이 있지 않은가?
에일린처럼 부담을 느껴 하면 사주는 쪽도 미안해진다.

“…얘는 너무 생각이 없는 거고.”

“보기 좋지 않나요? 저희 셋 중 가장 맛있게 먹어줄 것 같고.”

“그럼 적어도 집게라도 넘겨줘. 내가 구울게.”

“절대  됩니다. 에일린 선배, 고기 한 번도 안 구워 봤잖아요.”

“……큼.”

고기는 내가 굽고 있었다.
물주가 고기를 굽는다니?
평소 내 사상과 반대되는 행동이지만…
이런 반 장난식인 사상보다는 소고기를 안 태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 둘한테 맡겼다면 태웠을 거야. 확신할 수 있어.’

이들 역시 처음에는 물주가 고기를 굽게 두지 않겠다는 듯 내게서 집게를 빼앗았다.
그리고, 에트나와 에일린이 어색한 움직임으로 불에 올리지도 않은 시뻘건 생고기를 가위로 자르려고 했을 때.
나는 순식간에 깨달았다.
이 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고기를 구워본 적 없다는 것을.
세상 어떤 사람이 생고기를 가위로 자르려 드나?

“슬슬 먹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적당히 익어 보이는 것들 위주로 먼저 집어 먹죠.”

맛있다는 것을 제외한 소고기의 큰 장점은, 금방 익는다는 것이다.
 말에 기다렸다는 듯 에트나가 날렵하게 움직여 소고기 한 점을 집었고…
에일린에게 저지당했다.

탁!

“악! 에일린?  때려!”

“야. 후배님은 고기도 사주고, 직접 구워 주기까지 하는데, 니 입만 입이냐?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으윽…”

“으휴. 이 짐승 새끼.”

“아,아닌데? 내가 먹으려 한 게 아니라, 찬영이한테 주려고 한 거야! 지,진짜로!”

“…차,찬영이?”

에일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트나의 발언이 신경을 건드렸나 보다.

상황이 재밌긴 하네.
나랑 가장 친한 에일린조차 ‘후배님’이라 부르는데,
만난 지 얼마  된 에트나는 나를 아주 친근하게 불렀다.
에트나의 ‘찬영이’라는 발언, 예고도 없이  들어 오길래 나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다.

그렇다고  부를 호칭을 내가 정해준다?
그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을  같기에, 그냥 편히 부르도록 놔둘 것이다.

에일린도 그럴 용기가 있으면 날 찬영이라고 부르던가.
 상관없다.
날 슬쩍 보면서 입을 뗐다 말다 하는 것이, 그녀에겐 아직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지만.

“큼. 아무튼. 첫 고기는 후배님으로 정해져 있다고.”

“…나도 알거든? 자. 찬영아. 입 벌려봐.”

“어? 야, 잠깐 너 지금 뭐…”

에트나가 방금 가져간 고기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설마 직접 먹여 준다고?
분명  두 손은 집게와 가위로 인해 여유가 없긴 하지만…

일단 에트나의 눈빛을 볼 땐 흑심이 없단 건 알겠다.
저 욕망 어린 눈은, 내가 아닌 잘 익은 소고기를 향해 있으니까.
아마 얼른 내게 고기를 먹인 뒤, 자신도 소고기를 먹고 싶었기에 나온 생각 없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감사합니다.”

나는 찰나의 시간 동안 계산을 마친 뒤, 자연스럽게 입을 벌려 고기를 받아먹었다.
너무 오래 망설이면 상황을 깨달은 에트나가 무안해할 테니.
흑심이라곤 전혀 없는 행동을 나 홀로 의식해서 거절하기엔 그녀가 너무 순수해 보였다.
즐기기 위해 만든 자리에서 굳이 면박을 줄 이유는 없었다.

“어때? 맛있어? 맛있어?”

에트나가 내게 고기의 맛을 물어 왔다.
그녀는 바로 옆에서 자신을 냉기 어린 시선으로 가만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은 채 지긋이 보는 것이, 주위 온도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에트나는 나름대로 에일린의 눈치를 봐서 나부터 고기를 먹여준 것 같은데,
오히려 눈치 없는 행동의 대표적인 예시가 되어 버렸다.

금발.
건강미 넘치는 신체.
무방비한 옷차림에, 살짝 그을린 피부까지.
남성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을 즐기는 여우같이 생겨 놓고서는,
그 실상은 눈치라곤 전혀 없는 바보에 연금술 오타쿠다.

‘학생회까지 들어와 있다 했지? 의외로 학업에 엄청 성실하고.’

그렇다고 챙겨줘야 할 연하 느낌이냐?
그건  아니었다.
연금술을 가르쳐 줄 때는 기댈  있을 정도로 믿음직스러웠기에.
참 알쏭달쏭한 사람이다.

- 꿀꺽.

나는 입안에 있는 고기를 전부 삼킨 뒤 에트나에게 맛있다며, 너무 질겨지기 전에 빨리 먹으라고 권유했다.
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에트나가 행동했다.
고기를 집고, 소금을 찍고, 입안으로 가져가는 것까지 대략 1초.
평소 훈련을 하는 건가 싶을 정도의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흐학! 뜨,뜨겨!”

“…병신.”

에일린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저딴 것’에게 질투를 하는 것도 우습다고 여긴 모양이다.

- 힐끗. 힐끗.

에일린이 어색하게 고기를 집어 먹으면서  눈치를 봤다.
그녀의 시선 동선은 하나의 규칙을 띄었다.
불판 위의 고기. 자신의 젓가락. 마지막으로  입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뻔하게 읽혔다.

‘에일린도 나한테 먹여주고 싶은가 보네.’

에트나는 흑심이라곤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거절하지 않고 받아먹은 것이다.

하지만…
저쪽은 아무리 봐도 흑심이 아주 가득   같은데?

아무래도 그녀가 고기를 내게 먹여  낌새가 보이면,
집게를 내려놓고 스스로 고기를 집어 먹으며 먹여줄 타이밍을 내주지 않는 미니게임이라도 해야 할 듯싶었다.
내가 또 반응 속도에는 자신이 있지.

“그냥 보이는 고깃집을 들어 온 건데, 나름 괜찮네요?”

“그러네. 가게도 깔끔한 편이고.”

고기.
그것도 마블링이 잘 박힌 소고기를 먹다 보니 땡기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우린 지금 미성년자지? 술을 먹을 수 있으려나?’

솔직히 안될 것 같았다.
왜냐하면, 마악관은 대학인데도 고등학생처럼 교복을 입고 있거든.
아무리 그래도 교복을 입고 술을 마시는  안 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후배님은 주량이 어떻게 돼?”

“…술?”

“아. 아직 안 먹어 봤어? 먹을 수 있게 된 지 반년도 안됐으니까.”

에일린이 상당히 어색한 몸짓으로 술을 시켰다.
신분증을 요구하는 사장님에게 당당히 학생증을 보여주는 것이,
이 세계에서도 20살이면 술을 마실 수 있나 보다.

‘오… 그렇게 개떡 같은 세계는 아니네.’

그나저나…
난 술을 시키는 것에 동의한 적도, 마시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이성과의 식사 자리를 술자리로 만드는 수법.
어디서 많이 본 수작질이다.

‘아까 술을 시킬 때 부자연스러운 몸짓과, 지금  눈을 피하는 것을 보면  수작질에 익숙하진 않은 것 같고… 이건 그거네. 인싸 친구들한테 어깨너머로 배운 거.’

그냥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역시 내심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술을 즐기는 타입은 아니지만, 소고기는 못 참지.
게다가 술자리 특유의 분위기 자체는 선호하기도 하고.

“선배님들은 술 잘 마셔요?”

“난 그냥 보통이야. 힘들면 알아서 조절해서 마시는 타입?”

“큭큭. 빈틈 없는 것이 에일린 선배 답네요.”

한 번쯤 취한 모습이 보고 싶어졌지만,
매우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내 직감이란 신뢰할만한 종류의 것이었으니.

“에트나 선배님은?”

“난 많이 안 마셔 봐서  모르겠어…”

술자리 자체를 많이 가지질 않았는지, 에트나는 자신의 주량을 모르는 듯했다.
일단 겉보기엔 상당히  마시게 생겼긴 했는데…
워낙 그녀에게 느낀 반전이 많았어야지.
그 무엇도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고민하던 그때.
사장님이 소주병을 가지고 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손목 스냅  번으로 병 안쪽에 회오리를 만들었다.
지구의 술자리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행동을 하는 이유는 나도 모르지만, 다들 하기에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걸 하지 않고 병을 따면 벌칙주를 마시게 되니까.

그런데…
이 세계가 지구가 아니란  잠깐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 후배님?”
“찬영이 너…”

“아.”

상황을 눈치챘을 땐, 이미 에트나와 에일린의 시선이 완벽한 회오리를 품은 술병으로 향해 있었다.
저 둘 입장에서의 나는…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몇 개월 안  후배였지?

“와아… 회,회오리가 20초 넘게 돌고 있어…? 찬영이 너 고수구나?…”
“후배님… 설마 고등학교 때, 마셔 봤어?”

“아니, 이건 그게 아니라… 오해입니다.”

“거짓말! 오해치고는 너무 자연스러웠는데? 병을 눈으로 보지도 않고 그냥 휙! 하더니, 짜잔!”
“응… 이틀에 한 번은 술을 마시는 내 친구가 겹쳐 보였어…”

“……”

에트나가 소주 광고라도 찍는 것처럼 술병을  손으로 들고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덕분에  이상 잡아떼기가 힘들어졌다.
몸에 익은 술자리 버릇이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결코 예상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기도 전인데 벌써 어지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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