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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화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야  사기꾼아아악!!”

- 퍽!

옆구리에 주먹이 부딪혔다.
내게 다른 스승이 생긴  알면 화낼 거라곤 쉽게 상상했지만…
들키지 않아도 화낼 거라는 건 생각 못 했네.

“데이지. 잠깐 진정…”

“진정은 개뿔!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해? 싸움질도 잘하고, 얼굴도 잘났고, 연금술 재능마저 타고났다고?! 이 씹… 그래! 너 혼자 다 해쳐먹어라아!!”

데이지가 연속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 주먹에는 분노가 절절히 담겨 있었다.
조금 안타까운 점이라면…
그녀의 주먹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가만 보고 있으면 무척이나 웃겼다.
내게 한참 어린 여동생이나 조카가 있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윽. 아파. 아파.”

“아프기는!  같은 애새끼 주먹이 아프냐? 어? 아파? 진짜 아프게 해줘?”

- 꼬집!

“악! 잠깐, 진짜 아파!”

옆구리가 꼬집히기 시작하자 데이지의 손을 잡고 떼어냈다.
꼬집는 건 반칙이잖아…

“으… 너 전력으로 꼬집었지! 잠깐 꼬집혔는데 아직도 화끈하네.”

“……”

얼얼해진 옆구리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
데이지는 내가 잡았던 자신의 손을 말없이 쳐다보며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난생처음 나비를 발견한 어린애 같아서, 참 순수해 보였다.
사실 저 소녀의 몸에 든 건 나랑 비슷한 나이의 성숙한 여인이지만.

“왜 멍하니 있어? 손에 뭐라도 묻었어?”

“…그냥. 나도 몰라. 이 재능충.”

“재능충이라니… 너무 그러지 마. 사실, 지금 네가 파악한 내 재능은 진짜 재능이 아니거든.”

“그게 뭔 돼지 풀 뜯는 소리야?”

“으음… 사정이 복잡해서 설명은  하지만, 곧 사라질 재능이란 뜻이야.  같은 진짜 천재랑 같은 선상에 둬선 안 된다는 뜻이지.”

“진짜 천재는 무슨…”

나는 시한부 천재다.
불로의 약을 만들 수준이 되면 연금술 공부를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지의 눈으로 보면 그리 가볍게 여길 수는 없으리라.
자신의 재능을 뛰어넘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사람 마음이란 것은 불평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그렇다고 상세한 해명은 힘들었다.
내가 비이상적으로 빠르게 연금술을 깨우치는 것을 이해시키려면, 천재라는 오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괜히 마음 쓰지 않았으면 좋겠네… 얘는 나를 질투하는 스스로를 역겨워하며 자기혐오에 빠질  같으니…’

투덜대는 데이지를 달래기 위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데이지는 정수리 부근을 상냥하게 쓸어주는 걸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건 억측이 아닌 진실이다.
과거, 그녀의 방에서 이야기할 때.
데이지가 간접적으로 싫지 않음을 표현했다.
올라가 있던 내 손을 쳐내지 않는 것으로.

평소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이런 스킨십에 욕을 뱉지 않았다는 건, 해달라고 응석 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 탁!

하지만 순식간에 거부당했다.
데이지는 머리 위에 올라간 내 손에 덜컥 몸을 한번 떨더니, 곧이어 부드럽게 쓸던 내 손을 쳐냈다.

“지,지금 뭐하자는 거야?”

“응? 위로.”

“위로할 일이 뭐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누가 위로를 이런 식으로 해?!”

“아니… 하지만 너 옛날에는 좋아했잖아. 펑펑 울면서도 내 손을 쳐내지 않았었고.”

“이,이…!! 어,언제적 이야길 꺼내는…!!”

데이지의 얼굴이 수치로 붉게 물들어갔다.
그날 속마음을 다 터놓았던 것이 떠올랐나 보다.

그때는 감정이 격해져서 스킨십을 허용 한 건가?
보통 사람이라면 그랬으리라고 생각했겠지만,
데이지의 경우는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당당하게 행동하려고 있는 힘껏 노력하니까.

아무리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정적으로 변했다 한들…
데이지 성격에 한번 허락한 걸 없었던 일로 하지는 않을 텐데, 살짝 예상외다.

“싫었으면 앞으로 안 할게. 너무 어린애 취급이긴 했나?”

“아니…  정도야 싫은 건 아닌데, 좀 말이라도 하고 하던가. 내 쪽은 깜짝깜짝 놀란다고.”

“깜짝 놀랄 일이  있어? 뒤에서 기습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너도 내가 손 올리는 거 뻔히 보고 있었으면서.”

“어… 그러게?”

데이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런 어리숙한 소녀가 불로의 비약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천재라니.
그야말로 세상이 놀랄 일이다.



*


“…야 에트나. 여기 환기는 하는 거냐? 여자 쉰내 나는데.”

“쉰내? 킁킁. 아무 냄새 안 나는데.”

“니 몸에서 항상 나는 냄새 말이야. 당연히 넌  느끼겠지.”

“뭐? 거,거짓말 하지 마! 나한테서 언제 그런 냄새가…”

어느 때와 같이 에트나의 작업실에서 연금술을 배우고 있었다.
전과 달라진 점은, 우리 둘을 밀실에  수 없다는 이유로 에일린이 참관을 요구했다는 것.
아무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걱정하나 보다.

사실 나랑 에트나 둘만 밀실에 있으면 정조가 위험한 건 에트나 쪽이긴 한데…
어찌 됐든 누구 한 명은 위험한  마찬가지니 난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기 중 도움을 받는 이상 에트나와 계속 밀착을 해야 했고,
하물며 둘만 있게 되면 핑크빛 공기가 되는 건 어쩔  없어질 테니.

“킥킥. 후배님도 이상한 냄새 나지? 남자한테는 느껴지지 않는, 여자 특유의 쉰내.”

“저,정말 나? 지금까지 참아왔던 거야? 아니지? 응?”

울먹이며 나를 돌아보는 에트나.
그런 그녀의 뒤에는 에일린이 내게 열심히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를 놀리는 데 협조해달란 뜻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후각은 연금 공방에 떠도는 대부분의 냄새를 잡아내었다.
하지만 ‘이상한 냄새’나 ‘쉰내’는 나지 않았다.
지금 솥에서 끓고 있는 재료의 독특한 냄새 때문이 아니더라도,
에트나의 몸에선 심신이 편안해지는 향이 났기 때문이다.

향수나 로션 특유의 강렬한 향은 결코 아니었다.
은은하게 퍼지면서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여성의 체향과 가까웠다.

그보다 여자의 쉰내란 무슨 냄새일까?
즐기기 좋은 체향이라고 부르면 또 몰라도, 쉰내는 잘 모르겠다.

“걱정 마세요. 하나도 안나니까.”

“정말로?”

“애초에 연금 공방은 하나같이 환풍 시설이 엄청 잘 되어있지 않나요? 연성을 하면 온갖 냄새가 가득 들어차니까. 쉰내 같은 사람의 체취가 남을  없죠.”

“…생각해보니? 마악관에 이곳보다 환풍 시설이 잘된 곳은 없는데, 냄새가 날  없잖아!”

아니. 난다.
그것도 이렇게 밀착해 있으면 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열기 앞에서 땀을 흘리게 된다면 에트나의 체취를 알게 될 수밖에.

‘사실대로 말하면 나한테 가까이 오려 하지 않을 테니 비밀로 해야지.’

 세계에서 여자의 땀 냄새란 그런 취급이다.
불결하고 더러운.
물론 지구에서도 연인도 아닌 여자의 땀은 비슷한 취급을 받지만, 상대가 미녀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다행히 남자인 나의 몸에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난 찝찝할 때마다 지구에서 샤워하고 오면 됐으니까.

“쳇.”

내가 어울려주지 않자, 에일린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언젠가 그녀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장난을 치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것도 정확히 그녀의 체향을 짚으면서.
짓궂은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그때.
끓고 있는 솥 안쪽, 점성 있는 액체를 끓일 때 치솟는 특유의 거품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연금술의 가장 중요한 단계가 끝났고 마무리만 남았다는 뜻이다.

우선 균일하게 유지하던 마나 주입을 중단했다.
솥 하나를 가득 채웠던 거품이 가라앉자 보인 건 바닥을 겨우 가릴 정도의 적은 액체였다.
이걸 꺼내 틀에 넣어 굳히면 젤리 형태가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완성품이다.

색과 냄새, 주걱에서 느껴지는 점도로 봤을 땐  실수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걸린 시간은?

‘17분 46초라…’

조금만 더 연습하면 데이지에게 합격점을 받아낼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결과물의 퀄리티는…
에트나가 평가해  것이다.

“와! 이 정도면 시중에서 파는 중화제에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겠는걸?”

“아직 굳히기도 전인데 그리 세세하게 판별 가능하세요?”

“후훗. 내가 이놈을 만들어 본 횟수를 세면 만 번은 훌쩍 넘을 거야. 감이 딱 오지!”

하루에 수십 수백 개도 만들어 봤다는 뜻이다.
에트나는 상냥하고, 데이지는 엄격한 편이니 퀄리티를 조금 더 끌어 올릴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데이지가 시중에 나도는 정도의 퀄리티로 합격점을 주진 않을  같거든.

“조금  연습해야겠네요.”

“와아…! 향상심이 대단하네? 네가 연금술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서 엄청 기뻐!”

- 스윽. 슥!

에트나가 기특한 어린아이라도 보는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와 키 차이가 20cm는 났기 때문에 발끝을 들어야 했지만.

‘음… 왜 데이지가 내 손을 쳐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보통은 내가 해주는 처지라서 잘 몰랐는데…
이거 생각보다 부끄럽다.
어쩐지 몸이 간지러워지네.

“에트나. 남자들은 머리 쓰다듬는 거 진짜 싫어한다.”

“헛! 그,그래?”

“머리 망가지는데 누가 좋아하냐? 머릿결이 흐트러지지 않게 잘하면 또 몰라. 봐봐. 후배님 머리 엉망이 됐잖아.”

“윽… 진짜네… 미,미안해…”

“후배님?  앞에 잠깐 앉아봐. 쟤가 싸지른 똥, 내가 정리해줄게.”

내가 해도 된다는 말을 사양한 채, 에일린은 내 손을 이끌고 자신의 앞에 앉혔다.
에트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중화제를 나 대신 틀에 부어 넣고 있었다.

의자에 앉으며 다시 한 번 스스로 정리해도 된다 말하려 했지만,
나오려던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머리를 정리해주기 위해  쪽으로 숙인 에일린의 허리.
동시에 그녀의 가슴이 코앞까지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실수인 척 고개를 숙이기만 하면 바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거리다.
꼼꼼한 그녀의 성격 탓인지 단추가 풀어져 가슴골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코앞에서 연인이 아닌 여성의 가슴을 보고 있다는 건  자체만으로 선정적이었다.

지금  그곳이 서버리면 한동안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다.
나는 의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을 돌리고자 했다.

“후우…… 슬슬 집에 갈 시간이네요. 오늘 강의는 전부 끝나신 건…”

“흐앗?”

하지만 큰 고비다 다가왔다.
내 한숨이 가슴을 파고든 탓에 간지러움을 느낀 에일린이 기묘한 신음과 함께 몸을 움찔거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깜짝 놀라서 내지른 신음이겠지만,
한창 마음을 다스리고 있던 내게는 다른 식으로 다가와 버렸다.

전에 스쳐 지나가며 본 여성스러운 남자 무리를 떠올리며 마음을 식혔다.
효과는 무척이나 대단했다.
순식간에 가라앉았으니까.

“후,후배님. 간지럽잖아.”

“……죄송합니다. 조심할게요. 큼. 이후에 일정 있으신가요? 다들?”

“난 아무것도 없지.”
“나는 평소처럼 연금술이나 좀 하고 가려 했는데…”

“별일 없다는 뜻이네요. 그럼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요? 제가 살게요.  분한테는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으니까.”

한창 머리를 정리해 주던 에일린이 놀라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까지 나는 에일린에게 마악관 밖에서 만나잔 약속을 잡은 적은 없었다.
애초에 거절당할 걸 아니까, 그녀로서도 내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놀라울 법했다.

“…갑자기?”

“저녁 약속 정도는 갑작스럽게 정하곤 하잖아요? 그래서. 가능하세요? 시간  되시면 다음으로 미뤄도 되는데.”

“나,나는 상관없어!”

에일린이 황급히 수락했다.
에트나 역시 방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다행히 두 명 다 시간이 되나 보네.
둘 중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약속을 없던 것으로 하려 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에일린과 마악관 밖에서 만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둘이서 나돌아다니지는 못하겠다.
그래서야 데이트가 되고, 에일린이 나를 의식하게 될 테니까.

그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에일린을 의식해버린다는 것이다.
단둘이 놀러 다닌 뒤.
전과 같이 그녀를 친구로만 여기리란 보장을 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면 셋이라면 상관없지. 건전하게 놀 수밖에 없어질테니.’

에일린도 에트나도.
마음의 빚이 꽤 쌓여서 저녁이라도 사주고 싶었는데, 마침 잘되었다.
고기라도 사서 먹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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