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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8화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 똑똑똑.

“들어 오세요.”

익숙한  번의 노크음.
지금 동아리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고개를 들어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익숙한 목소리가 내게 말을 걸었다.

“뭐야. 이젠 고개도  드네.”

“어라? 오늘 목소리가 좀 쳐져 있네요? 어디 아프세요?”

“그건 아닌데… 넌 어쩐지 신나 보인다?”

“네. 컨디션이 좀 좋아서.”

오늘은 기분이 좋다.
어제, 에트나라는 선배와 이야기하며 이 세계의 연금술에 대한 정보를 잔뜩 얻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재료와 공식을 들어봤더니 전부 익숙한 종류의 것들이었다.
내가 데이지에게 배우는 연금술과 같은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뜻이다.

마나(Mana)와 스펠(Spell)이라는 대전제적인 소재를 두는 마법과 달리,
연금술은 각종 세계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는 한다.
그렇기에 연금술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도 걱정이 앞섰다.
이름만 연금술이고, 실은 내가 배우는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학문이라면 의미가 사라지니까.

‘잘만 하면 이 세계에서도 실기 연습을  수 있겠는데?’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모든 일이 술술 풀렸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그럴 리가 없단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다는 걸까?
그건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공이 정해지는 것은 2학년.
정상적인 루트를 밟는다면 1년이 지나서야 연금술에 손을 댈 수 있다.
당연히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나마 희소식은, 에트나가  5등 안에 들며 모든 연금 재료에 대한 지원금을 전액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목표는 에트나와 친하게 지내며  혜택을 나누어 받는 것.
쉽지 않은 길이겠지만, 첫걸음은 잘 디딘 듯했다.
어제 그녀의 호감을 사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만 같았으니.

“그러고 보면 선배님. 어제는 동아리실에 왜 안 오셨어요?”

“응? 어제? 하지만 세미나에서 얼굴 봤고… 그래서 안 갔지.”

“평소처럼 이야기는 못 나눴잖아요. 분명 오실 거라 생각하고 오후 동안 기다렸는데.”

“…그랬어?”

뭐지?
여태까지만 해도 힘없이 축 늘어졌던 에일린의 목소리에 기운이 들어갔다.
마치 시들었던 꽃이 단번에 생기를 머금은 것만 같다.

이렇게 단시간에 기분이 휙휙 뒤바뀌다니…
이건 설마, 그날인 건가?
남녀 역전 세계라고 여성이 생리를 안 하진 않을 테니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물론 실제로 물어보는  선을 아득히 넘는 짓이라 입을 닫고 있겠지만.

“큼… 그 있잖아, 너는 에트나가 마음에 들어?”

“에트나 선배님이요? 좋으신 분 같던데.”

“그래? 그럼… 나랑 비교하면?”

“…허, 말이 좀 의미심장한데요. 혹시 질투 같은 거라도…”

“아앗! 잠깐! 그런  아니야! 외모는 물론 성격이나 능력 같은 거 다 포함해서,  중 누가 더 남자에게 인가가 많을 것 같은지? 걔랑 내기도 했으니까 솔직히 대답해줘.”

“아. 그런 쪽? 박찬영의 시선이 아닌, 그냥 남자의 시선이 필요한 거네요.”

“응. 이런  남자가 결정해야 패배자 쪽에서 군말이  나오니까. 마침 너랑 나, 에트나는 서로 아는 사이기도 하고.”

“풋. 둘의 나이 치곤 유치한 내기 같은데.”

“유치하긴 한데, 그래도 궁금하잖아?”

에트나가 에일린 중 누가 인기가 많을 것 같냐라…
애초에 에트나와 나는 어제 처음 만났다.
그렇다고 원작에 등장했던 인물도 아니고.
내가 그녀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없다.

이를 고려하고서라도 둘을 비교해 보자면…
능력적인 면에선 우열을 가리긴 힘들었다.
둘 다 공부를 잘하고, 성격도 좋으며, 매력 있는 여성이니까.
하지만 교내 평판이 더 우수한 쪽은 에일린이니 그녀의 판정승이라 봐도 될  같다.

성향적인 면에선 나름 차이점이 있는 듯한데…
각자 전공에 기반한 이론을 세우는  에트나와 에일린   마찬가지다.
단순히 에트나가 선호하는 건 직접 몸을 움직여 가며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것이고,
에일린이 선호하는  마법이란 가시성이 높은 현상으로 증명해 내는 것일 뿐.
호불호에 영향을 주는 수준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러했다.

그런데 뭐…
에일린이 원하는 답은 이런 냉정한 계산이 오간 답이 아닌 것 같다.
내게 둘을 비교하게끔 하는 이유를 내기가 오갔다는 이유로 교묘하게 포장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이다.
 중 누가 더 이성에게 인기가 있을 것 같냐는 군대 선임이 할법한 질문을 뜬금없이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내가 에트나랑 친한 척을 해서 질투라도 하는 거겠지 뭐.’

본심은 진짜로 내가 에트나에게 호감을 느꼈는지 떠보기 위함이 틀림없다.
그녀가 원하는 건 냉정하고 객관적인 둘의 비교가 아닌,
내 주관이 마구 섞인 대답이리라.

솔직히 말해 친구로서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에일린이다.
난 눈치 있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게다가 나를 좋아해 주는 여성을 싫어하는 남자는 드물지 않은가?
무엇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에트나에 비해 훨씬 길기도 했고.

“에이. 두 분 다 제 선배인데, 후배가 되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야야. 괜찮아! 걔도 뒤끝 있는 애 아니고, 나도 그런 성격 아닌 건 후배님이  잘 알잖아?”

“그건 그렇지만…”

“편하게 말해. 내기라고 해도 그냥 음료수 값 내기 같은 사소한 거니까. 대신, 솔직하게.”

“…솔직하게?”

“솔직하게.”

“그럼… 에트나 선배님으로 할게요.”

“아… 에트…나구나.”

하지만 속마음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질투를 느끼는 걸 보면 아무래도 친구와 연애 대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양인데,
내가 희망을 함부로 줬다가는 대형 사고가 나버릴지도 몰랐다.

“이상한 오해하지 마세요? 전 누구랑도 사귈 생각은 없으니까.”

“그건… 전에 들어서 알고 있지.”

“혹시 잊으셨을까 봐요.”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다.
내가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난 나름대로 에일린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지금 똥줄 존나게 타고 있다고.

에트나든 에일린이든 아니면 제삼자의 인물이든 그 대상은 상관없다.
내가 누군가와 사귈 생각이 없다는 건 에일린도 훨씬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
그런데도 고백 공격을 받으면, 나로선 무척이나 억울할 따름이다.
내가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지금  앞에 놓인 선택지는 두  다.

 번째는 연심을 품은 것을 알면서도 고백받기 전까진 친구로 지내기.
두 번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에일린에게 솔직한 호감을 보여주며 ‘가능성 있을지도?’라는 생각을 품게 만든 뒤,
정작 고백받았을 땐 차 놓고 ‘제가 고백하지 말라 했잖아요 ㅠㅠ’라며 내겐  없는 척, 온갖 착한 척하기.

둘  쓰레기다.
하지만 전부 알면서도 후자를 고르는 건  자체만으로 상당히 역겨우니,
그냥 전자를 선택해서 최대한 에일린의 고백을 막도록 하겠다.

‘눈치를 보니 질투 때문에 연심이 본래 크기보다 잠깐 증폭된 것 같은데, 다시 크기가 줄어들기를 바랄 수밖에.’

시발.
가불기긴 하네.
개새끼가  건지, 덜 개새끼가 될 건지 밖에 선택지가 없다.
이 미래를 예측했기에 내가 이 세계에서 인연을 쌓는 것을 싫어했던 것이다.

“객관적으로 평가 해달라 부탁받았지만,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서 평가에 제 생각을 섞었어요.”

“그럼… 왜 에트나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도 들을 수 있을까?”

“제가 에트나 선배님의 전공에 흥미가 엄청 많거든요. 딱히 에트나 선배가 아니더라도, 능력 있는 연금술사라면  흥미가 갈 정도로.”

“연금술사?”

“네.”

혹시 질투를 더 부채질하면 악효과가 나올  있으니,
충분히 납득할만한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었다.
아니, 핑계가 아니다.
이건 내 본심 그 자체니까.

“제가 전공을 연금술 쪽으로 갈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래? 특이하네. 연금학과, 남자한텐 인기가 엄청 없거든.”

“에트나 선배님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연금학과의 위상은 지구의 기계과와 비슷한 위치인 것만 같다.
성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열려있지만, 남녀 성비는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그렇게나 연금술이 힘든 일인가?
내가 지금 연금술을 배우고 있는 만큼 잘 이해가 안 되었다.
단순히 마법을 쓰는 것에 비해선 확실히 몸을 써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힘든 일은 아니었다.
당장 어린아이의 체력을 가진 데이지만 해도 왕국에서 손꼽히는 실력을 갖춘 연금술사지 않은가?

“왜 그리 연금술에 대한 인식이 낮은 건가요? 제겐 뚜렷한 단점이  보이는데.”

“연금술사는… 취업도 엄청 잘되고, 돈도 많이 벌지만…  힘든 전공이야. 육체적으로.”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연금 재료는 취급법이나 보관법이 백중  달라서 전공자만 관리할 수 있거든. 그 의미는… 연금술사가 직접 재료를 구하고, 옮기고, 폐기해야 한다는 뜻이지.”

“아하. 그런 단점도 있군요.”

“연금 재료 중엔 살아있는 생명도 있다? 다리가 수십 개 달린 채 꿈틀거리는 벌레도 손으로 만져야 한다고. 이게 남자들이 기피하는 결정적인 이유지!”

- 꾸물꾸물!

에일린이 손끝을 내 쪽으로 향한  손가락을 마구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손가락이 벌레의 다리라도 되는 것 마냥.

아무래도 겁을 주려는 모양인데, 내가 그런 유치한 장난에 겁을 먹을  없었다.
에일린이 깜빡이도 없이 급발진 고백을 하면 또 몰라도.
…확실히 그건 무섭네.

“괜찮아요. 청결 문제만 해결된다면, 벌레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으니까.”

“…큼. 그래? 그뿐만이 아니야.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 연금술 도중 유독성 기체가 파생될 때도 있거든. 안전 장비가 없으면 그대로 유해 물질을 흡입하게 되는 거지.”

“너무 단점만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요?”

“……에,에트나 걔는 장점만 말할 것 같아서? 그냥 균형을 맞추는 거야.”

“풉.”

있는 힘껏 질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보이기만 할 뿐.
처음보단 확실히  농도가 옅어졌다.
지금은 반 장난식으로 내게 위험을 경고해 주고 있는 것이니까.
모르고 전공을 정했다 후회하지 말라고, 최대한 정보를 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동기만큼은 질투가 확실하다.
정보를 줄 것이 목적이었다면 장점도 좀 이야기했어야지.
안 그래?

내 웃음에서 에일린도  사실을 자각했나 보다.
자신이 너무 노골적으로 속마음을 내비쳤다는 것을.

“하… 쪽팔리네. 나 지금 찌질해 보이냐?”

“그건 잘 모르겠고, 끙끙대며 질투하는 게 귀엽긴 하네요.”

“무,뭐?!”

놀래기는.
여태 채찍질만 너무  것 같기에 조그마한 당근 조각을 줬는데,
효과가 너무 좋은 것 같다.

“뭐, 아무리 에트나 선배랑 친해져도 선배님보다는  친해지지 않을까요?”

이 세계에서 나랑 가장 친한 사람의 자리는 언제나 에일린 네 것이니,
부디 이걸로 만족해 줘.
여태 그랬던 것처럼.

이것이 내가 에일린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다.
내가 하고픈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다행히, 그녀는 내 확언에 나름 만족하는 것 같았다.

“하… 이런 말에 안도하는 내가 싫다… 으윽. 진짜 찐따 같아…”

“그럼 찐따인가 보죠. 친구가 고픈.”

“…선배한테  하는 말이 없어.”

내가 학창 시절에 왕따해 봐서 아는데,
에일린은 절대 찐따가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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