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화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오전 10시 10분.
오늘은 외부인의 초청 없이 교내 사람들끼리만 하는 작은 세미나가 열리는 날이다.
그렇기에 난 에일린이 알려준 널찍한 강의실로 향하고 있었다.
시작 시각이 10시 정각이라 하였으니, 난 10분 지각한 것이 된 것이다.
허나 의도한 지각이었다.
교수가 들어오기 전에 강의실에 들어가 있으면 너무 어그로가 쏠리잖아?
괜히 말을 거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다들 한창 토론에 집중하고 있을 때 물 흐르듯 2학년 사이에 끼어들 것이다.
아니. 끼어든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나는 구석에 짱박혀서 말없이 구경만 할 거니까.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없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자.
“음… 에일린 선배가 알려준 곳은 이곳인데…”
방음을 신경 쓴 듯한 강의실이지만, 안쪽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를 잡아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수의 인기척.
아무래도 내가 길을 잘못 찾았거나 그녀가 장소를 잘못 알려준 건 아닌가 보다.
- …끼익.
강의실의 뒷문을 조심스럽게 연다.
문틈 사이로 안쪽을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나를 눈치챈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고요한 발자국 스킬을 활성화 시키며 재빠르게 강의실 안으로 몸을 넣었다.
‘연갈색의 장발… 에일린 선배는 뒷모습만 봐도 찾기 쉽네. 선배가 여기 있다는 건 잘 찾아왔다는 뜻이겠지?’
반백을 넘는 수가 강의실 안에 존재했다.
다행히 뒷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한 명을 제외한 전원은 내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에일린을 포함한 2학년 전원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걸 보면 날 눈치챈 인물은 한 명밖에 없는 듯했다.
당연히 날 눈치챈 인물은 교수일 수밖에 없다.
저 중년 여성은 학생들을 마주 본 채 지도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정면으로 본 것이다.
‘허락… 에일린은 받았다곤 했지만, 좀 불안하네.’
흥미로운 눈으로 나를 살펴보는 것이 이미 내 견학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었나 보다.
혹여 듣지 못했다면 의문 섞인 눈으로 날 봤으리라.
내 소망은 교수가 이대로 모르는 척 수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표정이 구겨지지 않게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교수가 손뼉을 치며 학생의 주목을 모은 뒤, 손바닥으로 나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 짝짝!
“잠시, 다들 뒤쪽을 봐주시겠나요? 오늘은 견학생이 있습니다. 1학년생이니 여러분이 선배가 되겠군요.”
대략 50명.
총 100여 개의 동공이 나를 향한다.
고작 시선 따위에 부담을 느끼지는 않지만,
혹시 이 일을 원인으로 귀찮은 일이라도 생겨봐라.
교수가 1학년의 견학을 너그러이 허락해 준 건 고마웠지만, 방금 그 감사의 마음이 팍 식어버렸다.
나를 발견한 뒤 하나 같이 놀랐다는 표정들.
눈빛을 보니 휴식 시간이 찾아오면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내 미래를 예상케 했다.
마음 같아선 쉬는 시간이 찾아오기 5분 전에 미리 도망치고 싶으나…
허나 이런 세미나 같은 경우는 정규 강의와 다르게 쉬는 시간은 교수 마음대로 정해진다.
내가 예상해서 미리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 꾸벅.
터져 나오는 한숨을 내리누르고, 소리 내 인사하는 대신에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이들은 전부 20살을 넘긴 이들이다.
이 세계의 법으론 미성년자지만, 어린애는 아닌 만큼 사리 분별은 하겠지.
내가 엮이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면 눈치껏 떨어져 나가길 기대할 수밖에.
“복잡한 사정이 있는 듯 하여 견학을 허가했습니다. 여러분도 토론에 집중하되, 후배가 무언가를 질문하면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배려를 보여주세요.”
배려는 무슨.
에일린에게 내 사정을 약간이라도 전해 들었다면 주목을 모으지 않는 것이 배려라는 생각을 했어야지.
저 중년 여성은 일류 대학의 교수직을 맡을 만큼 머리가 좋으나, 눈치는 별로 없었나 보다.
사람의 시선에 큰 부담을 느낀다는 핑계.
사실 거짓말이라서 다행이지, 내게 정말로 그 트라우마가 있었다면…
하얗게 질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에일린에게 괜찮다는 눈짓을 보내었다.
교수와 마찬가지로 내 사정을 알지만, 교수와 다르게 눈치가 있는 만큼 상당히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박찬영’이라는 후배가 낸 용기의 첫걸음이 이런 식으로 되어버려서 그녀가 죄악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여러분. 후배를 반가워하는 것도 좋지만, 슬슬 다시 앞을 봐주시겠나요? 방금까지 이야기했던 주제를 이어…”
교수는 한번 끊겼던 토론을 다시 시작하였다.
2학년들은 마지못해 내게 눈을 떼고 강연에 집중하는 듯했다.
다행히 교수가 나를 지목하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이미 나를 힐끗거리며 돌아보며 의식하는 여학생들은 좀 생겼지만.
*
이런 걸 새옹지마라고 부를까?
의외로 내 존재가 2학년들에게 알려진 건 안 좋게만 작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여학생이 자신의 마법을 최대한 화려하게, 최대한 유용한 면을 보여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 눈은 상당히 즐거웠다.
가장 눈에 띄었던 마법?
개인적으론 에일린의 원소 마법을 꼽을 것이다.
‘전공이 원소 마법이라니… 너무 과하게 광범위하지 않나? 마법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에서도 세세할 정도로 전공을 나누는 이유는 한 우물을 파기도 벅차기 때문이니까…’
그녀의 전공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허나,
내가 직접 본 에일린의 마법은 결코 얕은 수준이 아니었다.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마법 제어의 정교함이 학생 수준을 넘은 것처럼 보였다.
다른 학생의 시연은 담담하게 그 실용성을 논하던 교수가 에일린에게 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니 내 착각만은 아니리라.
원소 마법으로 반구형 미니어처 세상을 만든 다음,
난기류와 열대성 저기압 환경을 조성해 태풍이라는 자연 현상을 재현했다.
그 밖에도 용오름이나 해저 화산이 폭발하며 섬이 탄생하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등 남자의 흥미를 끌어내는 다양한 주제가 연속되었다.
그래서 한 줄로 평하자면, 겉보기에 어마어마할 정도로 화려했다.
그야말로 원소 마법사의 이상적인 모습.
만일 이대로 마법의 크기만 키우게 된다면 모든 자연 현상을 손 아래에 두는 대마법사가 되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갈 길이 멀었지만,
20대 초반이라는 나이에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 에일린의 재능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음? 가지고 온 물을 다 마셨군요. 물도 떠 올 겸, 이참에 15분 정도 휴식할까요? 어디보자… 지금이 11시 8분이니, 23분까지 휴식하겠습니다.”
조용히 에일린이 보여주었던 그 광경을 다시 되새기고 있을 때.
교수가 휴식 시간을 준 채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 끼익. 쿵.
그렇게 교수가 사라진 강의실.
다들 친구와 잡담을 하는 척을 했으나,
모든 인원의 의식은 한 명을 향해 있었다.
당연히 그 대상은 나다.
“후배님!”
그렇게 어색하지 않은 듯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내게 말을 거는 인물이 있었다.
다른 2학년은 그 용기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네. 에일린 선배님.”
“앗. 혹시 사람들 앞에서 친한 척하면 불편해?”
“이미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그냥 평소대로 편하게 하세요.”
“킥킥. 고마워.”
나와 에일린이 대놓고 친한 티를 내자, 절반 이상은 놀랍다는 얼굴을 했다.
놀라지 않은 나머지 절반은 에일린이 이미 나와 안면이 있다는 걸 알렸나 보다.
그녀가 한 손을 세워 입술을 가리고, 고개를 내게로 숙여 보였다.
몸짓만 보면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모양새인데…
내가 그녀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오히려 내 귀에서 멀어지는 참사가 발생했다.
물론 듣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긴 했다.
“…오늘 토론회의 진행을 맡은 교수님, 착하기는 한데 눈치가 좀 없단 말이지…”
“아. 그건 반박을 못 하겠네요.”
“…내가 교수랑 한번 이야기해볼게. 방금 그 일에 대해서.”
“으음… 전 괜찮아요.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무엇보다 선배는 1년간 그 교수님에게 계속 강의를 들어야 하잖아요?”
솔직히 그 교수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건 내 감정의 문제일 뿐.
에일린이 엮여선 안 되는 일이다.
오늘 일을 원인으로 그녀와 교수의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난다면?
앞으로 그녀의 학교생활은 꽤 고달파 질 것이다.
어지간해선 이를 막아주고 싶었다.
나에겐 수많은 세계 중 하나의 세계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겐 이 세계가 전부일 테니.
무엇보다 굳이 정면으로 들이박지 않더라도,
정 교수가 아니꼬우면 교수를 골탕 먹일 방법은 많다.
난 그만한 능력이 많으니까.
“아니. 그래도 항의는 할 거야. 비록 공개된 장소에서 사과받진 못하더라도,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널 불러 사과를 해야 한다 생각해.”
“다시 말하지만, 전 괜찮은데…”
“이건 필요한 일이야. 그리고 걱정 마. 나도 교수랑 싸울 생각은 없어. 좀 한심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최대한 말을 유하게 돌려 해야지 뭐…”
“한심은 무슨… 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못된 놈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고.”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났나 보다.
날 위해 대신 화내주겠다는데, 내가 나서서 말리는 것도 우습다.
그녀는 행동을 가볍게 하지도, 또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니 알아서 잘하겠지.
그냥 믿고 맡기기로 했다.
“큼… 그보다 내 마법은 재미없었지? 일주일 전부터 열심히 준비하긴 했는데, 보통 남자들은 이런 거에 흥미가 많이 없으니까… 세미나에 네가 온다는 걸 몰라서 이런 걸 준비했지만, 나중에 둘이 있을 때 다른 재밌는 것도 보여줄게. 예를 들어 불꽃으로 된 나비나 물로 만들어진 토끼 같은?”
“아뇨? 오늘 보여주신 것들, 엄청 신기했는데요? 그보다 불꽃 나비라니, 그건 너무 어린애 취급 같은데.”
원소 마법을 사용해 만든 귀여운 동물들이라…
확실히 어린 아이에게 보여주면 엄청 좋아할 것만 같은 마법이다.
그리고 이 세계 기준의 남자에게도.
…으시발.
귀여운 것을 보곤 두 손을 모은 채 꺅꺅대는 남자?
아마, 직접 보게 된다면 생리적으로 참지 못하고 죽탱이를 날릴 것만 같다.
원래 내가 여자랑만 친하게 지내려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이 세계에서는 각별히 남자랑 친해지지 말아야겠다.
“후배님… 표정이랑 말이 일치하지가 않잖아… 지금 경멸스러워 하는 표정 아니야?”
“잠깐 다른 생각을 해서. 그런데 정말 흥미 있다니까요? 자칫하면 저도 원소 마법으로 진로를 정할 뻔했을 정도로.”
“…어? 그래? 정말?”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하지만 에일린의 원소 마법 레벨을 본 뒤 포기했다.
그녀의 마법 레벨은 무려 6레벨.
대단하긴 하지만, 6레벨이나 되는 높은 수치임에도 그리 위력이 나오지 않는 것 같기에.
내가 상상하던 대마법사가 되려면 스킬 레벨이 9레벨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후배님이 원소 마법에 입문한다고? 와아! 언제든 환영해! 난 완전 어렸을 때부터 입문한 타입이거든? 내가 하나부터 끝까지 다 알려 줄…”
“죄송해요. 입문은 안 할 것 같아요. 전 이미 진로를 반쯤 정해 둬서.”
“…그래? 아쉽네…”
에일린이 노골적으로 시무룩해진 얼굴을 했다.
아무래도 상당히 기대했나 보다.
“에일린. 이 애가 그때 말한 그 후배?”
그때.
사람들의 시선 따윈 개의치 않고 잡담을 나누던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드는 인물이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그을려진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성이 내게 인사를 건네었다.
“선배님의 친구분이신가요? 안녕하세요. 1학년인 박찬영이라고 합니다.”
“안녕? 반가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노란빛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같이 흔들렸다.
탈색한 건 아닌 것 같고…
선천적으로 금발인 건가?
전체적인 인상은 어쩐지 장난을 무척 좋아할 것만 같이 생겼다.
“뭐냐. 네가 왜……”
“야. 에일린. 뭐해? 나 소개 안 시켜 주고.”
“…뭐어… 얘 이름은 에트나. 보이는 겉모습처럼 공부 안 하고 놀러 다니는 게 취미인 년이지.”
“야야! 첫인상인데, 멋대로 날조하지 마!”
에일린이 정성이라곤 하나 없는 말로 에트나라는 선배를 소개해주었다.
아무래도 전에 스치듯 말했던 나를 친구에게 소개해주기 싫다는 말은 진실이었나보다.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걸 보면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은 엑스트라인가 보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 역시 에일린에게 말했듯이, 그녀를 제외한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에휴… 됐다. 그냥 자기 소개할게. 박찬영이라 했나? 만나서 반가워. 비록 성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이래 봬도 학생회 일원이야.”
“학생회… 의외네요.”
“킥킥. 역시 그래 보이나?”
에트나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몸을 떨었다.
꼼꼼한 에일린과 달리 상당히 흐트러진 교복.
저리 몸을 떨어대면 말려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드러난 귀여운 배꼽이 내 시선을 빼앗았다.
그렇게 찾아온 행운에 조용히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있을 때.
난 이어진 에트나의 말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내 전공은 연금술이야. 에일린이랑은 학생회에서 만나며 친해지게 됐지.”
“연금술…이요?”
“응. 남자한테는 좀 생소한 전공이지? 아무래도 머리뿐만이 아니라 몸도 쓰는 일이다 보니까.”
연금술, 이 세계에도 연금술은 존재했다.
하물며 이렇게 인연이 엮이다니?
굴러들어온 복이다.
나는 진지하게 눈을 빛내며 에트나를 향해 말했다.
“에트나 선배님. 저희 친구 할래요?”
친해지고 싶다.
내 입에서 나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던 말인지, 에일린이 경악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