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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235) (235/310)



〈 235화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슬슬 출발할게. 내가 다녀올 동안 심심하더라도 참아?”

“…야.”

“응?”

“그, 꼭 가야 하냐?”

데이지가 공방의 문밖을 나서려는 내게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았다.
평소라면 시원스러운 목소리로 어서 꺼지라 욕이나 할법한 얘가 날 붙잡다니…
이색적인 경험이긴 하나, 데이지가 저런 얼굴이 된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

아직 연금술에 대해 가르쳐 줄 것들도 무척 많지,
함께 잡담할  있는 시간은 하루하루 줄어만 가지…
시간이 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만큼 아까운 것이다.

그런 촉박한 상황 속, 나라는 사람은 며칠 동안 수도를 떠나 어디를 다녀온다고 해버렸다.
데이지의 입장에선 지금 말고 나중에 가면 안 되냐고 불평이 나올 법도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다녀와야 한다.
데이지 역시 자세한 설명은 전혀 듣지 못했지만, 내가 가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미룰  있는 일이라면 이미 그리했으리란  알고 있을 테니까.

“풋. 너 얼굴 엄청 웃기다. 주인이 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아.”

“누구보고 개라고? 이 개자식이?”

“오래 안 걸린다니까. 누가 보면 일주일 넘게 다녀오는  알겠어?”

“……”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알아. 내가 미안해.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장담컨데, 위험한 일은 아니야.”

“…그럼 다행이고. 네게 줄 포션 값이 굳었다는 의미에서.”

이미 내 인벤토리에는 데이지가 준 포션이 들어차 있다.
위험한 일 없을 테니  챙겨 줘도 된다는 내게 전력을 다한 발길질과 욕설까지 해가며 던져 준.
그런데 뭐? 포션 값이 굳어?

하지만 여기서 조목조목 사실을 확인하려 들면 데이지가 화낸다.
그러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어찌 되었든 잠깐 떠나도 된다는 수락은 받은 것 같으니.

“이젠 진짜 출발할게. 아, 선물 사 올까?”

“치워. 선물은 무슨.”

뭘 받든 유품이 하나 늘어나는 꼴밖에 더 되나, 데이지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 말을 못 들은  하기로 했다.
데이지도 나더러 들으라 한 소리는 아니었을 테니까.

“그럼, 며칠 뒤에 봐.”

“어.”

- 끼익. 쿵.

나를 째려보는 데이지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연금 공방의 문을 닫았다.
곧장 수도를 나서지는 않았다.
우선 내가 묵고 있는 숙소부터 들려야 한다.
크리스와 멜, 자넷에게 며칠간 다녀올 곳이 있다 말하기 위해서.



*

- 우우웅!

부드러운 엔진음이 귀를 울린다.
사실 빠른 속도 덕에 바람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마공학 모터사이클 ‘Gran Turismo’.
테스트 시승을 제외하고, 실전에서 타보긴 오늘이 처음인데…
생각보다 훨씬 안정감 있고 좋았다.

굳이 문제를 꼽자면, 길이 포장도로는 커녕 길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산길이었기에 상당한 운전 스킬을 요구한다는 것?
하지만  반사신경 덕에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세계에선 면허증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냥 타고 다니지만,
지구에서는 오토바이 면허증이라도 따야 하려나?

솔직히 교통 법규만 외우면 얼마 걸릴 것 같지 않기는 하다.
당장 지금을 보라.
비록 울창한 숲은 아니라고 한들,
무작위로 수 놓인 나무 사이에서 손쉽게 길을 찾고 있지 않은가?

- 우웅!!

“칠면석척(七面), 혼령이끼, 만월석(滿月石), 천둥 소라의 용골… 이제 두  남았나?”

상세한 장소를 알고 찾더라도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던 것도,
의외로 사람이 사는 마을과 가까운 숲에서 얻을  있었던 것도 있었으며,
누군가가  가치를 알아보고 숨겨 놓은 것도,
전혀 몰라본 채 시장 골동품 상점에 나뒹구는 것도 있었다.

결론은 전부 왕국 내에서 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름만 듣기에도 연금술사에게 귀한 가치를 지녔을 것만 같은 약재들.
당연히 불로의 약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들이다.
내가 수도 밖을 나온 이유는 이 재료들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혹시 이 재료들이 ‘세계관 귀속 아이템’이면 아기 천사나 안젤리를 꼬드겨 천사의 고리를 빌릴 생각까지도 했지만…
운이 따라준 덕인지 그리 돌아갈 일은 없었다.
위 재료들 전부가 다른 차원에 들고 가도 되는 물건들이었으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계획보다 시간을 훨씬 단축 시켰어. 이 정도면 내일 안에 끝낼  있겠는데?’

초짜에 불과한 내 운전실력을 고려하여 이동 시간이 많으리라 예상했는데,
초인적인 신체 능력에 더해 『팔방미인』 특성 덕인지 금방 운전에 익숙해질  있었다.

“남은  개는… 우리 보드엠 국왕님이 가지고 계셨지?”

나는 한층 속도를 높여 왕성이 있는 수도로 향했다.
새로운 왕의 탄생으로 한창 혼란스러운 왕국, 그것이 아니더라도 국왕이라는 사람을 당일에 만나고 싶다 해도 만날  있을 리 없지만…
그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나 줄 것이다.
왜냐하면…

‘용병들을 선동하는 대가로 받기로 했던 보수, 그거 결국  받았잖아.’

처음 보드엠이 나를 고용한 의도는 용병  명  명을 차근히 설득하여 개인의 능력에 딱 맞은 보수를 책정하고,
그리 아낀 예산을 내 보수 삼아 챙기라는 뜻이었지만…
나는 그딴 귀찮은 일을 전부 생략한 채 단체로 선동 시켜 버렸다.

당연히 선동 당시에 보수는 정하지 않았다.
결국 용병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게  건 보드엠의 대리자.
왕위 계승전에 참전한 용병으로써의 몫은 배로 쳐서 받긴 했으나, 그건 내가 다른 용병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수의 기사를 제압했기 때문이다.
원래 내가 받기로 한 보수는 정상적으로 지급받지 못했다.

내가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선동 기간을 말도 안 될 정도로 단축시키는 파격적인 능력을 보여줬다.
보수가 곱절이 되어도 이상치 않은데 연기처럼 사라졌다니?
게다가  국왕을 사로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던 만큼, 이대로 흐지부지 넘기진 못하겠다.

지금까지 받는 걸 미뤄 두었던 보수.
내일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 우우웅!!



*



작은 크기의 병에 담겼던 불로의  치고는 많은 수의 재료를 전부 모으는 것에 성공했다.
붉은 실타래가 완벽한 답을 알려주었던 만큼, 큰 문제는 없으리라 충분히 예상하긴 했으나…
하나라도 빠지면 절대 안 되는 만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손에 모든 재료가 들어온 오늘에야 크게 한시름 놓을  있었다.

그 덕일까?
어쩐지 이론 공부에 대한 의욕이 마구 솟아,
기세를 잃을세라 ‘게임  마법 아카데미’ 세계로 빠르게 들어왔다.

챠락.

한때는 비어있던 뒷부분이 메꿔진 이론서를 펼쳐 방금 가르침 받은 내용을 복기했다.
그리고 다음 수업에 배울 챕터에 대한 예습도 약간.

페이지는 어느새 절반을 넘어섰다.
이 책의 한해서는 절반 이상의 부분까지 이해를 마쳤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슬슬 이론 공부의 50%를 끝마쳤다는 뜻이냐?
그럴 리가.

지금 당장은 한  뿐이지만, 데이지가 내게 만들어  책은 이 하나가 끝이 아니다.
데이지가 말하길 내 이해도가 빠르면 총 5권,
이해가 느리면 비유와 설명을 더 추가해 6권 분량을 예상하고 있다 한다.

내 목표는 총 4권 안에 배움을 끝내는 것이다.
난 데이지의 예상을 깨는 재미로 살고 있거든.
이렇게 목표가 높은 만큼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하아…”

24시간 중 대부분이 자유시간인 만큼,
이론 공부는 아직까진 막힘없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불평하기엔 배부른 상황인 걸 알지만…”

아쉬운 점이 생긴 원인은 내게 이론에 대한 기초 토대가 세워졌다 판단한 데이지가 실습수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글로 배운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연금술까지 해보았다.
그런 만큼  실기 부분도 예습과 복습의 필요성이 느꼈지만…

“후우…  세계에선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잖아… 아니, 애초에 연금술이라는 개념이 있으려나? 원작에는 언급이 없던데…”

장소도 마땅치 않을뿐더러,
연습용 재료도 없다.
게다가 연금술이 존재하는 지도, 연금술사가 어떠한 시선으로 보이는지도 모르는 만큼 상당히 조심스럽다.

붉은 실타래가 알려주길, 이대로 예습 복습 없이 가더라도 데이지가 이지를 상실하지 않은 채 목숨을 구할 수 있다 하였다.
하지만 나는 한시라도 더 빨리 불로의 약을 만들고 싶었다.
최우선적인 목표는 데이지의 이성과 생명이지만…
이왕이면  챙기고 싶은 것들도 있기 때문에.

‘불로의 약은 절대 치료 약이 아니야… 그저 현재 상태를 영원히 고정해주는 약. 이미 사라진 오감이나, 손상이  청력은 회복시켜주지 못해.’

연금술 실습은 연금 공방에서밖에 못한다는 뜻은,
내가 실기를 연습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데이지의 청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내 재능이 미천해서 실습에 애를 먹는다면…?
어쩌면 데이지는 평생을 귀머거리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더 심해질 경우 촉각을 못 느끼거나, 앞이 안 보이게  수도 있고.

‘그렇게 될 위험이 보이면 연금술 스킬에 카르마를 무식하게 때려 박는 한이 있더라도 레벨을 끌어 올리겠지만…’

- 끼이익.

“후배님! 안녕?”

“이제는 노크도 안 하시네요.”

“어? 했는데 못 들었어?”

“…정말요?”

“당연하지. 내가 남자 혼자 있는 방에 노크 없이 들어갈 정도로 매너 없는 사람은 아니라고?”

에일린의 표정을 보니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만큼 깊이 생각에 잠겼나 보다.
일부러 노크를 무시한 적은 있었어도, 정말로 못 들은 적은 처음이라 신기하네.

“잘 오셨어요.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했는데, 적당히 심심풀이용 대화 상대가 등장하다니.”

“무서워라. 보통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장난이 90%쯤 섞였다 생각했을 텐데, 넌 진심으로 그리 생각할 것 같다?”

“저도 당연히 장난이죠. 90%까지는 아니지만.”

“이거 봐. 이거. 뒷말을  붙이면 나도 행복했을 텐데!”

“킥킥. 혹시 진심이  퍼센트였는지 궁금하세요?”

“으음… 아니, 안 들을래. 상자 안의 고양이인  두자고.”

“현명한 선택입니다.”

에일린이 호들갑을 떨며 몸서리를 쳤다.
이렇게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자니 정말 그녀와 친구가  것이 실감이 난다.

“그러고 보니 개별 과제가 있었지… 그것도 마법 실기 관련. 음… 지금이 연초니까, 1학년은 아직 마법 관련 수업은 이론만 배우지?”

“수업에 빠지는 저에게 물어보셔도…”

“아. 그건 그렇네.”

“선배는 마법에 자신 있으세요?”

“후후. 마법뿐이 아니지. 후배님은 모르겠지만, 나 학교 안에서  유명하다?”

안다.
원작 속 에일린은 그야말로 만능형 히로인이니까.
학업, 마법, 외모, 성격, 심지어는 집안까지.
무얼 대더라도 부족한 것 하나 없는 것이다.
일단 설정이 그러할 뿐, 정작 원작에서는 만능형이란 설정을 유용하게 써먹지는 않지만.
써봐야 주인공에게 공부를 알려주는 핑계를 만들 때뿐?

“어때. 너도 내년에 배울 것들인데, 2학년 선배들 마법 쓰는 거나 견학 와볼래?”

“…오? 그건  흥미 있는데요? 가보고 싶어요.”

“네가 그럼 그렇지. 뭐, 나도 기대하고 한 제안은 아니니까 신경 쓰지… …잠깐 뭐라고?”

에일린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만큼 빈말이었다는 뜻이다.
하긴, 그녀는 내가 동아리실로 등교하는 이유를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싫어서라 알고 있을 테니 당연한가?

“농담?”

“농담 아니라, 진짜로.”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견학이 가능하다면 꼭 가고 싶다.

그 이유는…
스킬이든 마법이든, 일단 소설  인물이 그 기술을 쓰는 것을 인지했을  이득이 되니까.
이 소설을 완결지었을  상점창에서 내가 봤던 스킬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오니 잡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세계에 들어온 목적은 데이지를 구하기 위함이 맞다.
하지만 챙겨 가야  건 최대한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뭐 유혹에  이겨 종일 놀거나 여자랑 뒹구는 것도 아니고…
찰나의 시간이라도 눈에 담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안 하면 바보지.

“어… 너 학교 내부가 부담스러웠던 거 아니었어?”

“동급생은 아니잖아요? 그럼 평소에 마주칠 일 얼마나 있겠어요. 심지어 다들 선배 친구일 테고.”

“어어… 확실히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럼 견학은 언제쯤이 좋을 것 같아요?  2학년 선배들의 일정은 전혀 몰라서.”

“그, 마침 2일 뒤에 학과 구분 없이 2학년들을 모아서 세미나 같은 걸 하거든? 그 연구회에 다들 여러 시연을 할 예정인데… 마법을 구경하고 싶다면 그때가 제일 좋지 않을까?”

“세미나라면… 토론회도 열릴 텐데  학교에 입학한 1학년의 견학을 교수님이 허용하실까요?”

“내가! 내가 어떻게든 허락받아볼게! 응! 후배님은 절대 걱정하지 마!”

- 턱!

에일린이 내 어깨를 쥐며 말했다.
동공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아무래도 하루종일 동아리실에 틀어박힌 내가 밖으로 나간다고 한 것이 감격에 찬 모양이다.
뭔가 어렵사리 낸 용기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처럼, 화이팅 포즈도 하고 있고.

음…
나는 굳이 오해를 해명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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