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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232) (232/310)



〈 232화 〉게임 속 마법 아카데미

사립세크로맨스 마법 대학.
흔히 줄여 부르길 마악관.
비록 마법학에 한정하긴 하나,  드넓은 대륙에서 손꼽을 정도로 인정받는 학술원이다.
그런 만큼 얼마나 뛰어난 인재들이 모여 있는지는 설명해 봐야 입만 아플 것이다.

날고 긴다 하는 학생들의 집합소.
전교생이 취미와 수면 따윈 까맣게 잊어버린 채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공부에 목멘다는 것이 교외에서의 인식이다.

하지만 반전이라면 반전일까?
이런 평범과 아득히 동떨어져 보이는 괴물들도, 사실은 한창 흥미 있는 것이 많은 그 나이의 또래와 같았다.
그 증명으로 오늘의 마악관을 들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학식과 전혀 관계없는 토픽으로 인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으니까.

“야야, 넌 둘 중 누가 더 취향이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어라. 너  봤냐? 1학년 신입생 중에  남친 두 명 있잖아!”

“남친은 지랄… 신입생 중 잘생긴 후배라면, A반의 걔?”

“오! 봤나 보네!”

1학년 A반의 데이안.
진한 눈썹 덕분인지, 상당히 드세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허나 외견과 반대로 무척이나 쑥스러움을 많이 탔기에 수많은 여학생이 색다른 반전을 느끼기도 했다.

“그게 바로 찐따미라고 하는 건가? 킥킥. 걔가 찐따 짓 할 때마다 존나 귀엽더라.”

“…너 설마 걔 보려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는 거야? 2학년이, 1학년 반에?”

“뭐,뭐 어때서 그래? 그냥 멀리서 보고만 있다고! …말 걸지는 않으니까 괜찮은  아니냐?”

“어휴… 이 병신. 니가 찐따 짓 하면, 그건 찐따미가 아닌  그대로 찐따새끼니까 제발 자중해라. 보기 괴로우니까.”

“……”

“그런데 두 번째는 누구야? 한 명 더 있다며. 난 데이안  말고는 딱히 눈에 띄는 남자를 못 본 것 같은데?”

“아. 하긴, 다른  명은 교실로 등교를 안 하니까  볼만 하지.”

“교실로 등교를 안 한다고?”

“그 있잖아. 입학 전에 말 많았던…”

그 두 번째 인물은…
입학 전부터 범죄자의 자식이 학교에 들어온다며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났었던, 박찬영이다.

한때는 수많은 재학생들이 학교의 이름을 깎는다며 적의를 보였다.
허나 그것도 지나간 일.
그의 얼굴을 확인한 뒤부턴 박찬영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여자에 한정해서만.

“아. 설마 박찬영?”

“응. 네가 생각하는 걔 맞아.”

“뭐냐.  입학 전까지만 해도 걔 엄청 싫어하지 않았어? 돈으로 학교 문턱 뚫었다고.”

“야야! 그건 잘 모르고 했던 말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우리 이사장이 기부금 때려 박는다고 들여보내  인간은 절대 아니잖아? 그러니까 너도 어디 가서 그런  하지 마! 시비 걸린다?”

“…걔가 그 정도로 잘생겼어? 여론이 확 뒤바뀔 정도로?”

“내 남친 후보 중 다섯 손가락 안에  정도니, 말해야 입만 아프다.”

“그런데 동아리실로 등교한다는 건 무슨 소리야?”

“박찬영 걔 입학할 때 학교 분위기가 보통 날 서 있었냐? 안 그래도 속 타는  많이 겪었을 텐데, 여러모로 힘드나 보지.”

“하긴… 완전 병약 미소년이네.”

“그래. 우린 어지간해선 걜 만날 일이 없다. …데이안이면 몰라도.”

그렇게 여학생 둘이 학교 어디에서도 들을 수 있는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둘 사이에 난입하는 사람 하나가 있었다.

“아. 데이안을 노리는 거면 서두르는 게 좋을걸? 걔랑 같은 반 된 신입생들 아주 난리가 났더라.”

“응?”

여학생은 자신들에게 말을 건 인물을 확인했다.
웨이브를 주었음에도 결이 뒤섞이지 않고  정리된 연갈색의 장발.
식단까지 신경 써야 비로소 완성될 법한 몸매.
보들보들해 보이는 피부와 자신감 넘치는 눈매까지.
꽤 유명한 인물이기에, 여학생은 눈앞의 여성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챘다.

“에일린?”

소위 ‘인싸 그룹’에 속했지만 전교생과 두루 친할 정도로 성격이 좋았다.
누구처럼 꾸며낸 겉모습이 아니라, 모두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이 달랐다.

평소에 밝고 자신감 넘치는 에일린인 만큼, 동급생끼리의 대화에 스스럼없이 끼어드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신입생을 제외한 전교생은 에일린과 한 번 이상은 말을 섞어 봤으리라.

두 명의 여학생 역시 에일린이 대화에 끼어든  이미 전에 경험해  일이었다.
그런 만큼 에일린의 합류를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였다.
독특한 매력의 데이안에 관심이 있던 여학생은, 에일린에게 농담 섞인 불평까지 하기도 했다.

“여자 신입생 놈들… 이제  들어왔으면 공부에나 집중할 것이지, 벌써부터 연애질부터 하려 해? 걔들은 앞으로 학교생활 3년이나 남았는데,  선배한테 양보해 주지.”

“데이안… 확실히 잘생겼긴 하더라. 게다가 살짝 얼빵해 보이는 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막 드는 느낌?”

“뭐,뭐냐. 너도 노리고 있어?”

겉으로는 장난스러움을 모방했지만, 사실은 진지하게 데이안을 노리고 있던 여학생은 당황했다.
자신은 성적도, 외모도, 그리고 여러 배경도 에일린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니까.
인간뿐만이 아닌 모든 동물에게 설계된 것이 그러하듯,
구애 활동 중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은 저절로 그녀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응. 하하, 좀 부끄럽지만… 데이안이 아니라 박찬영 쪽.”

“…그래?”

하지만 이어진 에일린의 말에 여학생은 화색을 보였다.
다행히 에일린은 그녀의 경쟁자가 아니었다.

“좀 인연이 있거든. 정확히는, 내가 후배한테 잘못을 좀 저질러 버려서.”

“잘못? 네가?”

“하하!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말하진 못하는 내용이라, 그냥 그런 게 있어!”

에일린은 며칠 전 박찬영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사실 그때만 해도 별 깊은 생각은 없었다.
겉보기에 잘 생겼으니, 애인까지는 아니어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웠다.
매력 있는 이성 친구를 두면 이래저래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기니까.

하지만 친해지는 방식이 잘못되었다.
그에게 첫인상을 전해 줄 때, 친구와의 내기로 정하다니?
최소한 그 사실을 들키지는 말아야 했다.

‘…엄청 쿨했지. 따라가려던 발이 나도 모르게 멈춰 설 정도로.’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날, 에일린이 잘못을 저지른 대상이 그 유명한 박찬영이란 것을.
순할 것 같은 인상을 해놓고 그런 속사정이 있었다니?

허나 정말로 보이는 것처럼 속이 굳센 건 아니었다.
정말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을 정도로 마음이 강했다면…
아픈 곳 하나 없다는 듯 혈색이 건강해 보였던 그가 교실이 아닌 동아리실로 등교할 리 없을 테니까.

‘만약 나였다면? 내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거물 범죄자의 자식이었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울 거야.’

상냥한 듯 보이지만 차갑다.
하지만 그건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감추기 위한 허세.
심지어 부모를 잃어 기댈 곳이 완전히 사라진 그다.
어쩌면 그는 생각보다 여린 마음씨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꽤 등이 넓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그의 뒷모습.
어쩐지 에일린의 눈에는 위태롭게만 보였다.
누군가는 오지랖이라 말할지도 모르지만,
아니. 분명 오지랖이겠지만…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에일린은 신경 쓰이는 걸 그냥 넘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

걱정했던 동아리실 등교…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담당 감독관이 있기는 했으나 이 동아리실에는 나밖에 없다.
불시적으로 살피러 오지도 않았다.
완전히 자유로운 시간을 보장받은 것이다.

감독관이 하는 일은 그냥 쉬는 시간마다 내 얼굴을 확인하는 것이 끝.
딱히 1학년 진도를 따라가라며 자습에 대한 압박을 주지도 않았고,
감시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험 삼아 자해에 가까운 행동을 해봤음에도 내게 달려오는 인물은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편하잖아? 감독관이 학식도 가져다주고, 동아리방 청소도 해주고…’

교장은 무얼 공부하든  자유라는 것처럼, 1학년 교과서 전권과 도서관 출입증을 주었다.
물론 전부 동아리 방구석에 박혀있다.
내게는 다른 공부할 거리가 너무 많으니까.

“후우… 갈 길이 머네.”

머리를 식히기 위해 계획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그랬더니 저절로 한숨이 나와버렸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
대강 어림잡아 4개월을 넘는 시간.
연금술 실력을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자원과 카르마.
국왕에게 남겨놨던 빚.
다시 얻을 수 있을지 장담 못 하는 붉은 실타래.
게다가…

한 소설 세계의 올바른 완결을 포기하며 얻게  패널티까지.

‘분명 세계를 방치하거나 포기하면 무시 못 할 패널티를 얻게 된다고 했지.’

제일 걱정 되는 것이 이것이다.
아무리 봐도 지금의  행동은 ‘게임  마법 아카데미’를 진심을 다해 완결시키겠단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스템 AI도 바보는 아닐 테니, 비록 세계를 방치하는 것까진 아니라곤 해도 어느 정도 패널티가 올 것이다.

붉은 실타래 역시 그 패널티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패널티의 존재 자체는 짚어 주었다.
내가 패널티를 받는 건 확정이란 뜻이다.

시간, 카르마, 빚, 실타래, 시스템 패널티…
그럼  모든 것을 희생해서 얻는 것은?
데이지 하나뿐이다.

워낙 낯부끄러운 말이라 결코 입밖에는 뱉지 못하지만,
생각으로 그친 것이니 상관없겠지.
데이지의 생명.
내게 있어서 동기는 그걸로 충분했다.

“슬슬 다시 시작해…”

- 똑똑똑.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두꺼운 용어 사전을 펼쳤을 때.
동아리방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들어오세요.”

감독관이려나?
하지만 지금은 쉬는 시간이 아닌데?

- 끼익…

“안녕?”

내게 인사를 건넨 인물은 며칠간 얼굴을 익혔던 중년 남성의 감독관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적 있는 얼굴이  사이에 존재했다.

나는 여성의 얼굴과 이름은 잘 잊지 않으며,
아름다운 여성인 경우는 특히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 여학생의 경우는…
내 합격선 기준을 널찍하게 넘었다.
그러니 어렵지 않게 기억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
애초에 만난  며칠 지나지도 않기도 했고.

“선배님… 이라 불러드려야 하나. 아무튼 어쩐 일이시죠? 아무리 봐도 절 찾아온 것 같은데.”

“어라? 나 기억해?”

“며칠 전 제가 깐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아하핫! 뭐야. 너 의외로 농담도 하는구나?”

“농담 아닌데.”

이 세계에서는 최대한 관계를 쌓지 않으려 했다.
혹시 공부 시간을 잡아 먹히게 되면, 계획했던 4달을 훌쩍 넘겨버릴 수 있으니까.

눈앞의 이 여성.
난 분명히 강하게 쳐냈던 거로 기억한다.
그런 상황이었고, 그런 언행이었다.

하지만…
처음 엮인 인연이 이렇게 밝고 긍정적인 사람일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주치기 부끄러워서라도 날 피해 다닐 텐데, 도리어 찾아오다니…?
꽤 신경이 굵은 사람인가보다.

“그런데… 지금은 수업 시간인데요. 혹시 땡땡이치신 건가요?”

“2학년부터는 세부 전공이 나뉘어서. 공강이 생기거든. 아, 넌 신입생이니 공강이 뭔지 모르나?”

“…아. 아뇨. 공강, 무슨 뜻인지 알고 있습니다.”

학생이 반을 배정받는 것도 그렇고,
구조 자체가 대학이라기보다는 고등학교에 훨씬 가까웠기 때문에 살짝 잊었다.
마악관은 대학이었지?

“그래서. 언제쯤 용건을 들을 수 있을까요?”

“아. 다른 건 아니고, 지난번 했던 실례를 사과하려고. 그때는 당황했다고 한들, 제대로 된 사과도 못 했잖아?”

“네. 사과, 받아들이겠습니다.”

“……어? 뭐야. 이게 끝? 으음… 사,살짝 당황스럽네.”

나는 손을 휘저으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입안으로 들어오려는 떡을 삼키지 않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하지만…
지금 내 어깨에 얹힌 하나의 생명이 어지간히 무거운 것이어야지.

혹시 내가 실수라도 해서 ‘불로의 비약’ 제작에 실패한다면?
계획이 끔찍할 정도로 뒤틀어지리라.
불로의 비약 재료는 쉽사리 구할  있는 것들이 아니니까.

‘두 번 다시 못 만드는 건 아니지만… 실패 한 번으로 잃어야  것들이… 어후. 상상하기도 싫네.’

일의 우선순위를 떠올리자.
지금은 연애질을 할 때가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세계는 28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배속을 돌릴 예정이다.
만일 여기서 연인을 만든다고 한들, 지구로 데려오지 않는 이상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난 홀연  잠수 이별을 한 것이 돼버린다.

연애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손을 댄다?
그건 먹고 버리는 행동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합의 하에 하는 원나잇이면 몰라도, 내게 마음을 준 여성을 단순히 성욕 처리용으로 쓰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지구로 데려오자니…
안타깝지만 이미 내 ‘파티원 지정’ 기능의 자리 예약은  차 있다.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에서 지구로 데려와야 하는 사람이 좀 있거든.

이러한 이유로…
논리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이 세계에서는 인연을 최대한 쌓지 않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세상에, 남녀 역전 세계에 들어와 놓고 철벽을 쳐야 한다니?
솔직히 억울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붉은 실타래를 쓰며 감수하기로 결심한 것 들이니까.

“어… 우선은 네가 나랑 별로 대화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알겠어.”

“잘 알아들으셨네요.”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니, 내일 다시 찾아올게. 안녕!”

“…내일?”

- 끼익. 쿵.

아직 이름을 듣지 못한 그녀는 동아리실의 문을 닫고 사라졌다.
내일 또 온다고?
아무리 봐도 내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아…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공부에 집중하자.
나는 골치 아픈 일을 내일의 내게 미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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