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너… 머리 괜찮아?”
데이지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어왔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단 걸까?
내가 연금술에 손을 댄다는 것이.
“뭐 어때서 그래?”
“설마 진지하게 한 말이야? 연금술을 배우겠다는 거?”
“당연하지.”
“으음…”
데이지가 미간을 짚은 채 고민에 잠겼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곤 살짝 당황해 버렸다.
내 실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방금 나는 데이지가 경지에 서 있는 분야에 입문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나…
그녀의 입장에서 보이는 나를 생각해 보면 좀 달라진다.
나, 박찬영이란 사람은…
이미 전투에 대해 둘 없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낱 평민이 국왕에게 빚을 지울 정도로 공을 세우고, 20대 중반에 왕실 기사 자리를 제안 받을 정도로.
그런데도 연금술에 욕심을 낸다?
오랜 시간 고민을 한 기미도 없이 갑작스럽게?
본인의 실력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제 재능에 취해 연금술이란 학문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게 데이지와 연금술을 무시하려는 의사가 있었을 리 없다.
하지만 많이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잠깐! 말을 좀 생략해버려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네. 난 연금술을 얕잡아 보고 한 말이 결코 아니…”
“하! 네가 그럴 사람이 아니란 건 변명 안 해도 알거든? 별걱정을 다해 아주.”
“……”
“…뭘 그리 싱글거려? 으으. 기분 나쁘게.”
“신뢰받고 있다는 게 기분 좋아서.”
“…윽! 미,미친놈…”
데이지가 휙 하고 돌아서며 내게 등을 보였다.
아무래도 정곡을 찔려서 마주보기 쪽팔리나 보다.
“…연금술을 배우려는 이유가 뭐야?”
그녀는 그렇게 뒤를 돈 채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를 앞에 두고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도 하려나 보다.
“지금까지 그걸 유추하고 있었어?”
“…뭐어. 응. 그 이유, 살짝 알 것 같기도 한데…”
데이지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어떻게?
내 목적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시스템의 존재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가 이것을 알 리 없지.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데이지는 약간의 오해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라고 생각했을까, 이 꼬맹이는.”
“……”
대답을 기다렸지만, 데이지는 어떠한 망설임 때문인지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꼬며 입을 다물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내게 연금술을 알려주기 싫어서 망설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있어 연금술 지식이란…
남에게 쉽사리 알려주기 힘들 정도로 특별한 사연이 깃들어 있었고,
보기보다 속마음이 여린 그녀는 마음을 연 친구의 부탁을 칼같이 거절하기 힘들어 할 테니까.
하지만,
어쩐지 망설임보다는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은 것처럼 보이는데?…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확신은 하지 못하겠다.
“으음… 내게 연금술을 알려주는 것. 역시 어려우려나? 하긴, 네 지식은 엄청 어렵사리 손에 넣은 것들이지… 그걸 아무렇지 않게 알려달라고 하기도 좀…”
“아! 그건 상관없어! 진심으로!”
“정말 괜찮아?”
“…아니, 솔직히 말해서… 네게 연금술을 알려주면…… 나야 좋…지.”
“뭐? 좋다고? 어째서?”
그녀가 싫어하는 상황을 예상하긴 했어도, 좋아하는 건 예상치 못했다.
어느 세계에서도 지식이란 특히나 값진 것이니까.
하물며 고급 연금 지식의 가치는 결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데이지가 거절하더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어째서는 뭐야… …지도 알면서.”
“안다고? 내가?”
“이,이… 너 꼭 내 입으로 들어야 하겠냐? 어?”
“아니, 내가 뭘…? 말해주면 듣긴 할거지만.”
지금 내 머리는 붉은 실타래가 보여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만큼,
예견된 장애물을 넘는 것에 신경이 쏠려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데이지가 어째서 저리 성을 내는지 재빠르게 파악이 안 되었다.
우리 사이에 무언가 오해가 있다는 건 알겠다.
얼굴이라도 마주 보고 있으면 표정으로 억울함을 호소할 텐데,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일단 듣기로 결정했다.
가장 빠른 길은 오해를 듣고 나서 해명하는 것이니까.
“그래! 이 질 나쁜 놈… 말한다 말해! 연금술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니까, 너랑 잡담할 때 말재주 없는 나라도 이야기할 것도 많아서 조…좋… …이득이다! 됐냐?! 네가 내 전문 분야에 흥미를 가져주는 것도 나름 …나름… 음… …나쁘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속마음이 내게 쏟아졌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끄러운 말을 마구 들었는데…
과하게 솔직해서,
나름 뻔뻔하다 싶은 나조차 얼굴이 상기 될 정도의 농도다.
어쩐지 쓰레기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돌이켜 보면 내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길 강요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아… 이미 이런 말을 들어버린 이상, 이젠 오해라고 해명 해도 이 악물고 안 믿을 것 같은데…’
일단 뒷감당은 나중으로 미루자.
확실한 건, 내가 연금술을 배우는 것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너무 일이 술술 풀려서 역으로 당황스럽네.
“이…씨이… 꼭 이렇게 쳐 물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거 봐…”
“…전부 오해고, 네가 멋대로 민망한 말을 한 거라 하면 믿을 거야?”
“믿겠냐?! 어? 믿겠냐고!”
- 휙.
화를 못 이긴 데이지가 결국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1초간 눈이 마주쳤다가, 데이지가 슬쩍 내 눈을 피했다.
화 때문인지 쪽팔림 때문인지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평범한 그 나이대의 소녀 같네.
“큼. 그, 무엇보다… 연금술을 배우려면 일단…”
“뭐야. 계속하는 거야? 그 민망한 이야기?”
“…입 안 닥쳐? 한 대 맞으면 다물 거냐?”
“큭큭. 알겠어. 조용히 들을게.”
데이지가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럼에도 말을 하려는 걸 보면, 정말 해야 하는 이야긴가 보다.
아니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거나.
“연금술. 나한테서 배우는 거잖아?”
“당연히.”
“…그럼… 수도를 떠나선 안 되니…까. 적어도 네가 연금술을 배울 동안은…”
“그렇지. 한동안 의뢰는 못 하겠네.”
“응. 그래. 이게… 네 답이지? 아까 수도에 남아달라 부탁했던 것에 대한…”
“아!”
데이지는 ‘내가 연금술을 배우려는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알 것 같다고 했었다.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 발언에 대해 데이지가 어떤 오해를 했는지.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불로의 약을 ‘혼자’ 만들 수 있을 정도까지 연금술을 알려달라고 했을 때.
데이지는 우리가 함께 불로의 약을 만드는 것을 포기한 거라 이해했다.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다가올 작별의 때를 인정했다고 이해했다.
그밖에도 여러 오해를 하는 중인 것 같다.
내가 용병을 그만둔 채 수도에 남아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에 있어 주기 위한 핑계로, 연금술을 배우는 것을 선택했다고.
직접 그녀의 연금술을 익히며, 데이지가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연금술이란 고리를 만들어 기억하겠다고.
비록 함께 만들지는 못했지만, 훗날 나 혼자서라도 불로의 약을 만들어 떠나간 그녀의 한을 풀어주겠다고.
…이런 오해를 산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수도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데이지가 가장 바라고 있으면서도 기뻐할 만한 대답이다.
동시에 그녀 하나 때문에 하얀 고래 용병단에서 탈퇴한다는 부담을, 개인적으로 연금술에 흥미가 생겨 배우겠다는 핑계로 지웠다.
내 삶의 목적 중 ‘불로의 약 제작’을 세워, 평생 데이지를 기릴 것이란 걸 표현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내가 할 법한 상냥한 제안이지 않은가?
어쩌면,
내게 시스템이 없었더라면,
정말로 이 판타지 세상에서 태어나 우연히 데이지를 만나게 된 것이라면,
나는 위와 같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건네주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리 봐도 자의식 과잉이 역겨울 정도로 들어찬 망상이지만… 어쩐지, 너라면 그럴 것 같아…서……”
“……변명을 못 하겠네.”
“머,머저리가! 그렇게 인정하면 무슨 반응을 해야… 내,내가 닥치고 있으라고 했지!”
오해를 풀까, 하고 생각도 해봤지만…
그냥 이대로 두기로 했다.
아직 그녀에게 시스템에 대해 설명해 주기엔 힘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기습적으로 완성된 불로의 비약을 가져다준다면… 얘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최고의 서프라이즈 선물이 될 것이다.
한번 떠나보냈던 미래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니.
데이지가 느끼기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길어야 한 달.
이 세계 기준으론 몇 주 뒤에 그녀의 부작용을 치료할 수 있다.
내게 있어서는 어림잡아 4개월을 넘는 시간을 써야 하지만.
“그런데 너. 정말 내 수업을 따라올 수 있겠어? 공부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글쎄. 깜짝 놀라지나 마.”
“킥킥. 글을 알고 있다고 너무 기고만장하는 거 아니야?”
“나름 자신 있거든.”
지금은 자퇴했으나,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름 있는 명문대에 재학 중이었다.
심지어 그 공부 귀신들 사이에서도 수준급의 학점을 유지했고.
그때는 내 겉모습을 가꾸는 것에 반쯤 미쳐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현대인이 그렇듯, 고등 교육을 받으며 평생을 공부에 익숙해져 있는 몸이다.
그렇기에 초반부 정도에선 헤매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물론 목표로 하는 수준이 숙련자급인 만큼, 이후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
*
“목표부터 정해야 해. 너는 훌륭한 연금술사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그냥 불로의 약을 혼자서 만들 수만 있으면 돼. 다른 포션이나 물약은 단 한 개도 만들 수 없더라도 상관없어.”
“그게 무슨 극단적인 경우람… 진짜…”
데이지의 작은 입에서 한숨을 푹 새어 나왔다.
무리한 요구란 건 안다.
덧셈 뺄셈도 배우지 않고 미적분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다만…
정공법으로 갈 수는 없다.
불로의 약의 제조,
데이지 같은 천재도 10년을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해야 닿을 수 있는 경지다.
반면에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이야. 내가 널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반년이거든. 그리고 연금술이란 분야는 너무 깊지. 과할 정도로.”
“그럴 것 같았어. 당장 필요한 것만 선택해서 배우자.”
“…원래 이런 식으로 배우게 되면 연금술사 사이에선 혐오 어린 시선을 받지만…”
“상관없어.”
“후… 그래. 우선 이것부터 배우고, 제대로 된 기초는 다른 연금술사에게 배워. …한 반년 뒤에.”
“글쎄. 난 누군가에게 더 배울 생각은 없는데.”
어차피 데이지는 살아날 테니, 내겐 이미 훌륭한 연금술사 친구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로의 약을 만들고 나면 연금술을 공부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내가 아무리 잘해봐야 데이지보다 못할 테니까.
“…응.”
하지만 데이지는 다른 식으로 이해했나 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내 목표는 뛰어난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 아닌, ‘데이지’에게 연금술을 배우는 것이라 오해했으려나?
사실 그렇게 오해하라고 한 말이 맞다.
- 터억!
내 앞에 책이 쌓이기 시작했다.
한 권… 두 권…
한꺼번에 들고 오기에는 그녀의 근력이 허락하지 않았는지, 열심히 왔다 갔다 하며 책을 옮겼다.
그렇게 놓인 책이 10여 권이 훌쩍 넘었을 때.
“전부 읽어! 아니, 전부 외워!”
“…이론 수업은? 설마 없어?”
“이건 사전이야. 용어 사전. 이론 수업도 이걸 외웠단 전제가 있어야 시작 할 수 있다고? 킥킥!”
“……”
결국 외워야 한다는 말이다.
이 10여 권의 책을 전부.
나는 얌전히 책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데이지는 왜 이 자리에서 읽지 않느냐 물었지만,
그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인벤토리에 넣은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세상에 가서 외우고 올 거니까.
‘최대한 이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해.’
데이지에게는 모르는 것이 생길 때만 자문할 것이며,
단순 암기나 예습·복습은 모조리 다른 세상에서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고?
지구나 테라포밍 세계는 아니다.
당연히 천계도 아니다.
내게 필요한 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내겐 100배속을 걸며 3달 남짓한 시간이 되지만…
그 세계에 있어선 10,000일은 오롯이 10,000일이다.
대략 27년 동안 불로의 약을 만드는 장소에 위협이 없어야 한다.
마왕이나 세력 다툼이 거세게 일어나는 세계관은 부적합하다는 뜻이다.
언제 내 불로의 약 보관 장소가 싸움에 휘말릴지 모르니까.
또한 마나가 존재해야 하며, 마법사가 흔할 정도로 마력 분포가 풍부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스토리에 완전히 벗어나 공부에 전념하더라도 주인공이나 세계가 위험에 처해서는 결코 안 된다.
‘웹소설에선 찾기가 까다로운 조건이네. 아주.’
허나 정말 우연히도.
이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세계가 이미 있다.
게다가 이미 한참 전에 등장했다.
배경은 마법 아카데미.
장르는 로맨스 코미디.
대륙 자체가 단일 국가로 이루어져 있어 대외적인 위협도 없으며,
내가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들 세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원작 스토리 전개의 대부분이 일상과 히로인의 캣파이트로 이루어진…
바로 남녀 역전 세계의 소설이니까.
나는 하얀 고래의 발자취보다 이 세계를 먼저 완결시킨 뒤,
데이지를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써먹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