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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8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길고 어려웠던 하드모드 퀘스트.
그랬던 만큼 받은 보상이 무려 4가지나 되었는데,
아무래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이템을 먼저 확인하게 되는 것이 어쩔  없는 본능이었다.
그러니  오토바이와 똑같이 생긴 놈의 상태창부터 열어보기로 했다.

-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마공학 모터사이클 ‘Gran Turismo’
종류: 기타
레벨: -
효과: 이동수단
상세:
마법과 과학을 접목시킨 기술을 사용한 이동수단입니다.
마나를 연료로 사용해 움직입니다.


속도에 치중한 스포츠용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환경에서도 무리 없이 운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습니다.
초점이 내구성에 맞춰져 있습니다.

현재 마나 충전량 - 99%

[제로백]
마공학 모터사이클 ‘Gran Turismo’의 내장 스킬.
최대 충전량의 20%를 사용하여 폭발적인 가속을 합니다.
이후 5분간 속도가 1.5배 상승합니다.
쿨타임 - 12:00:00


* 상점창에서 ‘Gran Turismo’의 매뉴얼  간단한 자가 수리 서적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

간단히 말해서 기름 대신에 마나를 잡아먹는 오토바이다.
과학만이 발전한 지구에서도, 마법만이 발전한 이 세계에서도 구할  없으리라.
지금의 내게 있어선  유니크한 놈이었다.


외형은 검은색을 베이스로 하는 지구의 신형 바이크를 연상시켰다.
이건 좀 예상 밖이었다.
마공학 모터사이클.
퀘스트 보상 창의 이름만 봤을 땐, SF 영화에 나오는 미래적인 디자인을 연상시켰으니까.
실제로 보니 주유구가 없는 걸 빼곤 평범한 스포츠 바이크와 상당히 유사하게 생겼다.


“좋은데?”

오히려 내게는 희소식이었다.
지구에서도 불필요한 시선을 받지 않으며 타고 다닐 수 있다는 뜻이니.
웹소설에는 현대를 기반으로  세계관도 무척 많으니, 그 세계관에서도 무리 없이  수 있다는 뜻이다.


날렵한 모양새가 스포츠용이 아닌가 짐작하게 했으나, 시스템창이 아니라고 했으니 아닌 거겠지.
경기용으로 쓰기엔 너무 무게 있어 보이도 했다.


내구성에 신경을 썼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겉보기엔 충분히 튼튼해 보였다.
새 차를 뽑은 사회 초년생처럼 상전 모시듯 대하지는 않아도 될  같다.


“괜찮네. 과하지 않은 수준으로 멋들어져서. 검은색 단색이라 눈에 잘  띄는 것도 마음에 들고.”

- 우웅…


상점창에서 5 카르마에 팔고 있는 매뉴얼을 사서 읽어 보았다.
가이드에 적힌 대로 시동을 켜보니, 바이크가 은은한 울음소리를 내며 잠에서 깨어났다.

기름을 쓰지 않아서일까?
연료를 연소시키며 운동 에너지를 얻는 보편적인 바이크 엔진이 아니라는 것처럼,
진동이나 소음은 거의 없었다.
전기차나 전기 오토바이에서나 느낄 법한 고요함이다.

이왕 매뉴얼까지 읽어본 것.
직접 시승을 해보고 싶지만…
지금은 타이밍이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에 이만 바이크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 세계에서 바이크를 탄 나를 본 사람이 생기면 해명하기 귀찮아지고,
굳이 그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타야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 살펴봐야 할 보상이 많이 남아있다.


- 띠링!


 번째 보상은 [완결 세계관 시간  조정]의 보조 기능,
[배속].

성능은 간단했다.
기존에는 최대 5배밖에 배속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확장되어 최대 100배속까지 가능해졌다.
당연히 완결을 지은 세계만 배속 지정이 가능하다.

‘이 기능은… 당장 도움이 안 될  같은데…’

미래에 수십 개의 세계를 완결시킨 때라면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완결지은 세계는 테라포밍 하나뿐.
물론 ‘하얀 고래의 발자취’도 완성도가 슬슬 절정에 치닫고 있는 걸 보니, 완결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는 중이지만…
당장은 어디 써야 할 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100배로 늘린다는 이야긴 가볍게 들으려야 들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정작 이 대단한 기능을 유용하게 사용할 방법이 애매한  문제지.


사용 예시로 어떤 세계 하나를 SF 세계관으로 단숨에 끌어 올릴 수도 있다.
내가 그토록 바라오던 미래 문물이 넘쳐나는 세계를 확정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허나 배속의 한계는 100배.
과학이나 마법이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는데 대략 200년이 필요하다면, 난 지구에서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짧다 하면 짧지만 마냥 기다리기엔 기나긴 세월이다.
그러니  기능은 쓰지 말고 한동안 봉인을…

“아! 그러고 보면?”


나는 인벤토리를 뒤져 열매 하나를 꺼냈다.
질리도록 먹어와 이제는 보기만 해도 그 맛이 입안에 감도는 ‘프룸’이다.


-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프룸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일정 시간 동안 스텟 성장률 증가.
상세:
마나 농도가 짙은 곳에서만 서식하는 프룸나무의 열매.
신체의 활성도가 올라 성장 속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섭취 직후 3시간 동안 근력, 민첩, 체력 스텟이 얻는 숙련도를 33% 증가시킨다.
=

상점창에서 개당 50 카르마에 파는 값싼 가격이지만…
지금까지 몇천 개는 훌쩍 넘게 사 먹었기 때문에 모아놓고 보면 꽤 큰 금액이 되리라.


허나 이젠 이 고정지출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속] 기능을 이용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인벤토리 창에 모아놓은 천여 개의 프룸 씨앗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완결 세계 하나에 심어놓고 조금만 배속을 걸고 기다리면…
사실상 무제한으로 프룸을 얻게 되는 것이다.

단,
시간을 마구 감아도 좋은 평화로운 세계관을 완결 지었을 때의 가정이지만.
그것도 마나가 풍부한 세계여야 한다는 조건까지 있다.

“테라포밍 세계는 이대로 배속을 돌리긴 좀 그런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  세계는 크리스의 고향이다 보니 내가 홀로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아졌다.
 년은 쓸 일 없을 거로 생각했던 기능의 재발견 덕택에.

- 스윽.


“이름은 실타래인데, 그냥 짧은 실이잖아?”


다음으로 붉은색의 실 한 줄을 꺼내었다.
두 뼘 남짓의 얇고 가는 실.
조금만 힘을 주면 가볍게 끊길 것 같기도 하다.

도저히 특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기에, 도리어 수상해 보이는 붉은 실이다.


겉으로만 봐서는 도무지 성능이 짐작되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템 정보창을 불러오자…
내가 지금까지 얻었던 보상 중 가장  값어치를 지닌 물건은 바로 이 바람에 실려 날아갈 것만 같은 실이란  깨달았다.

- 띠링!


=
[아이템 정보 확인]
이름: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타래
종류: 소모품
레벨: -
효과: 길잡이
상세: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의 해답을 알려주었다는 신화 속 유물.
원하는 무언가를 손에 넣을 방법을 알려줍니다.


특별한 힘이 깃든 물건,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 침입자를 허용하지 않는 숨겨진 장소의 위치를 알려주는 건 물론…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이나, 비원을 이루는 방법 등등 물질적이지 않은 것도 찾아 줍니다!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소유주가 ‘바라는 것’이라면 얻어낼 기회를 주죠.



[경고] - 아이템 정보 확인 Lv 2

‘신이 되는 방법을 알고 싶다’라고 묻는다면,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타래는 그 방법을 알려 줄 것입니다.
하지만 부디 현명하게 사용하세요.
방법을 알려준다 한들, 그 길이 상냥할 것이란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는 것이 가치 있고 찬란할수록 운명이란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능력 이상의 것을 욕심내다간 유물을 쓰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단  인지하세요.
=

“소모품인 만큼  값어치 있는  줬다는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납득이  되었다.
이런 전설 속 물건을 하나도 아닌 무려  가닥이나 주다니.

사용처가 무궁무진하다.
아까 [배속] 기능이 쓸만한 곳이 적어서 문제였다면,
이건 너무 선택지가 많아서 도리어 골치 아팠다.
행복한 두통이다.


시스템창에 적힌 경고 문구는 사람의 경각심을 바짝 자극했다.
나 역시 시스템의 경고에 대해 백번 동의했다.
방법을 아는 것과, 정말 손에 넣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의 거리가 있으니까.


학창 시절 때 죽도록 공부하면 일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모두 알지만,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은 것처럼.
하루 3시간씩 운동에 투자한다면 근사한 몸을 가질  있다는 걸 모두 알지만,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은 것처럼.
에베레스트의 정상까지 가는 길을 안다고 모두가 절벽을 오를  있는  아니다.


“…비상용으로 한 개는 남겨야겠네. 반드시 필요할 때만 쓰자.”

총 세 가지 가닥 중 두 개는 이미 쓸 곳을 정했다.
한 가닥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남기기로 했다.
이건 충분히 비장의 수가 되어줄 만한 성능을 지닌 물건이다.

만일 소설  세계에서 죽을 위기가 처한다면,
실타래를 써서 위기를 빠져나가기보다는 그냥 죽고 퍼팩트 클리어 보상을 포기하길 선택하겠다.
이건 사용 시 영원히 사라지지만, 단순 사망은 시간을 돌려 재시작하면 되니까.
나는 그 정도로 이놈에게 높은 가치를 매겼다.

이제 마지막인가?
모든 분기점을 클리어하면서 받은 추가 보상, 선택과 집중 스킬을 볼 차례다.

- 띠링!

=
[스킬 이름] 선택과 집중
[레벨] -
[속성] 기타
[타입] Passive
[상세]
스킬을 지정합니다. (최대 5개)
해당 스킬은 지정을 해제하기 전까지 더이상 숙련도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집중’할 스킬 한 개를 선택합니다. (최대 1개)
현재 ‘지정’ 되어있는 스킬의 수에 따라 추가 숙련도를 획득할  있습니다.

1개: + 15%
2개: + 35%
3개: + 70%
4개: + 125%
5개: + 200%


현재 숙련도 획득이 제한된 스킬 : -
현재 집중된 스킬 : -


[재사용 대기시간] -
=


선택과 집중.
딱 이름에 걸맞은 효과다.

보통은 사용을 주저할 것이다.
한가지 스킬을 위해 무려 다섯 가지의 스킬이나 포기해야 한다는 건 아무리 봐도 손해처럼 보이기에.


하지만 내게는 매력적인 성능으로 비쳤다.
‘지정’할 스킬은 액티브 패시브를 가리지 않는 듯했으니까.
상점 창에서 자질구레한 무술 패시브 스킬을 쓸어 담은 나에게는, 5개를 꽉꽉 채워서 지정이 가능하단 뜻이다.


숙련도 보너스 200%?
남들보다 3배 더 빠르게 성장이 가능하단 뜻이다.
게다가 여러 숙련도 버프를 합한다면…
스킬 하나의 성장 속도 만큼은 용사가 가지고 있던 사기적인 특성의 위력을 넘어서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천권일각. 선령일일 만요월월. 아공간.
내게는 명확하게 주력 스킬이 있는 만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지정’ 스킬은 더이상 성장만   뿐, 현재 효과는 여전히 사용할 수 있기도 했고.

‘지금 당장 지정하자.’


- 띠링!

집중 대상은 일단 천권일각.
‘지정’ 스킬은 숙련도가 가장 낮은 무술을 찾아 순서대로 등록했다.
패시브 스킬의 숙련도가 유독 낮다는 건, 평소에 사용을 거의  한다는 뜻이니까.

내가 주로 주먹으로 싸우는 만큼 등록이 된 건 무기술이었다.
창술이나 검술처럼 유명한 종류 말고, 쿠크리나 톤파처럼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종류의 것들.
물론 있으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없더라도 타격이 없는 놈들이다.

“……”


다시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붉은 실.
평범한 외견에 평범하지 않은 효과를 가진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타래다.

“후…”

역시 써야 할까?


아니. 쓰자.
애초에 효과를 읽었을 때부터 2개의 실은 용도를 정해 뒀잖아.


RPG에서 얻은 귀한 포션이나 소모품은 최종보스와 싸우면서도 안 쓰고 아끼는 타입인 나지만,
지금은 소인배 티를 벗어 버리기로 했다.

눈을 감고 염원을 담아 붉은 실에게 기도했다.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그 길을 보여달라며.

- 후욱!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며 실이 흩날린다.
혹시라도 실타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검지에 힘을 잔뜩 주었을 때.
붉은 실이  검지 손가락에 휘감겼다.
마치 의지라도 가지고 있는 생명체처럼.

실타래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녹아들듯 내 검지 손가락에 흡수되는 것이다.
그렇게 붉은 실의 존재가 완전히 지워지자,
내 눈앞에 주인 없는 미래가 펼쳐졌다.


알고 있었던 정보도 있었고, 알지 못했던 정보도 있었다.
확실한 건…

“이 길이… 맞았구나. 다행이다.”

실타래를 쓰기 전.
나 역시 나름대로 길을 찾기는 했다.
다만,   끝에 내가 원하는 것이 있는지를 확신하지 못했을 뿐.


실타래는 내 추측과 비슷한 길을 제시해 주었다.
내가 추측한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선명하고 정교하게.
예전에는 어두운 절벽 길을 별빛에 의지해 걷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대낮처럼 밝혀졌다.

‘걸어야 할 길이 절벽 길인 건 달라진 게 없긴 하네.’


길이 보이게 된 뒤.
내 앞에 놓여있던 장애물을 보곤 확신할 수 있었다.
아끼지 말고 쓰기를 정말 잘했다고.
과연 실타래가 아니었다면 몇 번을 넘어져야 했을까?
몇 번을 저 낭떠러지로 떨어져야 했을까?


무엇보다 길이 있다는 것에 크게 안심했다.
만일 실타래가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 포기하라 일러줬다면?
난 어쩌면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의 진도를 나가길 그만두고 시간을 멈춘 채 뒀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이든 쉽게 가능할 정도로 대단한 능력을 갖출 때까지,
혹은 다른 수많은 세계에서 방법을 찾을 때까지.

물론 아기 천사가 경고했던 ‘세계를 포기하면 받게 되는 패널티’가 따라올 확률이 높겠지만…
나라면 감수했으리라.


 정도로 나는 데이지를 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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