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19) 하얀 고래의 발자취
술이 전부 내게 넘어왔음에도 맞닿은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억눌러 왔던 무언가가 터지듯.
뒷 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녀가 내게 몸을 맡겨온다.
술은 속을 태울 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그녀의 혀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달콤하고 생생한 멜론의 향기가 입천장을 간질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에게 닿았던 입맞춤.
자넷에게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는 것을 의식해서, 최대한 부드럽게 그녀를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느새 손을 서로의 몸에 두른 채 밀착시키고 있었다.
- 츄웁…
열심히 숨을 참고 있는 자넷을 배려해 잠깐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 그녀가 숨을 들이쉬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재차 입술을 탐했다.
처음에는 자넷의 눈동자 속에 존재했던 미약한 죄책감도,
우리가 키스를 나누면 나눌수록. 서로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을수록 옅어져 갔다.
그래.
이 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슬슬 위로 쑤셔 넣은 술이 몸에 돌 때가 됐지.
자넷은 스스로를 필사적으로 속이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지금 술에 과하게 취해 있다고.
마음 같아서는 그런 거짓투성이의 장막 따위 벗어 던지고 싶지만…
지금의 자넷에게는 이 장막이 필요했다.
- 츄릅!
“파하… 하…”
거칠어진 숨이 바로 눈앞에서 느껴진다.
마음의 한구석을 간질이며 더욱 그녀를 갈구하게 되는, 그런 마력이 있는 애틋한 숨결이었다.
이 머리카락 색을 닮은 연갈색의 눈동자도, 내가 느낀 것이 착각이 아니라는 듯 만족하지 못한 자의 눈을 하고 있었다.
방금의 키스를 마지막으로 오늘 밤의 일탈이 끝나는 줄 알았을까?
자넷의 손이 떨어지기 싫다는 듯 내 허리춤의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눈치로 보건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녀는 한창 강한 척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별것 아니네? 키스라는 거.”
부끄러움에 내 눈을 피할 법도 한데,
새빨개진 얼굴로 기어코 눈을 부릅뜨며 내 눈을 마주쳤다.
아무래도 눈을 피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하나 보다.
저절로 따뜻한 웃음이 피어나는 애교다.
그녀가 의도한 애교는 전혀 아니겠지만.
“파계승 너… 얼굴이 완전 웃음꽃인데? 그,그렇게 좋았냐? 짜식.”
자넷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듯 실실 웃었다.
방금처럼 강한 척을 연기하기 위해 꾸며낸 웃음이 아니라, 정말로 기뻐서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다.
그 파멸적인 귀여움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그녀의 입술의 높이와 맞추었다.
“…뭐,뭐야. 끝이 아니었어? 또… 하려고?”
“…방금 네가 유혹 했잖아.”
“무슨… 내가 언…! 하읍!”
전보다 약간 거칠게 그녀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살짝 놀랐는지 떨림이 있는 어깨를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포개진 몸을 이용해 서서히 밀어붙였다.
그렇게 자넷은 뒷걸음치며 밀려나다 무언가가 오금에 걸렸다.
바로 여관방의 구석에 놓인 침대였다.
- 스윽.
큼직한 손바닥을 그녀의 뒷머리에 감싸며 보호해 준다.
서서히 허리를 숙이는 동시에, 한 손으로 침대를 잡고 몸을 지탱했다.
그대로 포개진 몸을 침대에 눕혔다.
자넷이 넘어지는 것에 겁을 먹지 않게끔 신경을 써서 느긋하게.
“흐읍?!…”
- 풀썩.
자넷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침대의 시트가 등에 닿았을 때였다.
즉…
눈치챘을 땐, 자연스럽게 침대에 누인 자신과 그 위에 몸을 겹친 나를 인지한 뒤였다.
그녀가 앞으로 이 침대 위에서 일어날 일을 어렴풋 이해했다는 건 알기 쉬웠다.
딱히 급박하게 오른 그녀의 심박 수가 아니더라도,
내 등을 갈구하듯 쓸어내리던 손이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 츕.
“프하! 자,잠깐만…!”
입술을 떼자 기다렸다는 듯 자넷이 내게 속삭인다.
큰 목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공기를 반쯤 머금은 작은 소리였다.
“나,나는 이런 것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당연히 그렇겠지.
키스하러 오는 것조차 직전에서 망설였던 그녀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리 없다.
나 역시 처음에는 키스 정도로 멈추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는 그녀의 눈이,
쉽사리 끌 수 없는 불을 지펴버렸다.
자넷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녀가 느끼고 있는 수많은 감정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망설임. 불안. 슬픔. 거절. 미련. 고민. 애정. 욕심. 부족함…
그리고 혹시나 하는 기대까지.
- 쪽.
“읏…”
그러고 보면 자넷의 인생은 첫 키스부터 혀를 섞는 연인의 키스로 시작했다.
그녀에겐 방금의 짧은 입맞춤이 보통의 첫 키스가 되는 대부분의 사람과 반대인 것이다.
- 쪽.
“…뭐 하는… 거야?”
“유혹이요.”
“…어?”
- 쪽.
계속해서 고개를 숙여 가벼운 입맞춤을 계속했다.
입술이 닿은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담을 수 있는 모든 정성을 꽉 채워 담았다.
사랑스러운 무언가에게 내 생각이 전염되기를 기도하며.
- 쪽.
“자,잠깐… 야…”
자넷이 그만두라는 듯 내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 저항은 너무나 미약했다.
이런 약하기 그지없는 힘으로 밀면 큰 신장을 가진 나는커녕, 작은 어린아이조차 밀어내지 못한다.
- 쪼옥.
“하,하지 말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제대로 된 저항이나 하고 그리 말씀하세요.”
“……그건 그냥 술기운에 힘이 풀려버려서…”
가슴에 닿아있는 자넷의 손을 꼭 쥐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했다.
내 눈을 피하지 않겠다던 자넷의 조그마한 다짐이 무너진 것이다.
자넷이 고개를 돌렸기 때문에 이대로 얼굴을 내린다면 입맞춤은 볼에 닿게 될 것이다.
하지만 노리고 있는 목적지는 그녀의 입술뿐.
불편한 각도 따윈 괘념치 않고 자넷의 부드러운 입술을 찾아 헤맸다.
- 쪽.
다행히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아닌 척 자넷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도로 돌리며 입술을 마중했으니까.
“…으응…”
“단장. 오늘 밤은 저랑 있어요.”
“하으윽?! 미,미쳤어! 너무 직설적인 거 아니야?! 너?!”
이럴 때는 낯간지러운 말이 효과가 좋던데, 자넷은 쉽사리 유혹에 넘어오지 않았다.
눈을 질끈 감은 걸 보면 충분히 설레하는 것 같긴 했지만.
“…역시 안돼.”
“으음…”
“그,그정도로 슬프냐?”
“당연하죠…”
너무나 아쉽다는 듯한 탄식이 내 입에서 나오자, 자넷이 꽤 당황했다.
솔직히 나조차 조금 놀랐을 정도로 아쉬움 가득한 숨이었다.
“수,수도승이 그렇게 여자 여럿을 만나도 되는 거야?”
“우선 저는 수도원을 떠나 속세의 삶을 시작했고,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것은 무거운 죄라 배웠거든요.”
“……”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 말하는 것이 죄입니까?”
“…내게는 죄였어.”
사람의 말을 맛볼 수 있다면, 분명 방금 그녀의 말에서는 쓰디쓴 맛이 날 것이다.
그만큼 무거운 목소리였다.
자넷의 얼굴에 살짝 고통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가더니,
평소의 자신감 섞인 웃음을 꾸며내었다.
“너. 아직 크리스랑 잔 적 없지? 뭐, 하얀 고래 애들은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네?”
“너네 둘이 같은 방을 쓸 때마다 매번 애들이 내기하더라. 했을지 안 했을지.”
“그건 알고 있지만…”
“듣기로는 매번 침대 시트가 깨끗하기 그지없었다면서?”
“…그렇겠죠.”
내기가 뒤에서 도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크리스와 몸을 섞는 걸 피했다.
굳이 청결함이 부족한 이 세계에서 하는 것보다는, 지구에서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이 세계에서 크리스와 몸을 겹친 적은 없었다.
그것이 이런 오해를 불러일으켰나보다.
나와 크리스는 아직 몸을 섞은 단계가 아니라고.
“너네 둘. 가끔 서로 볼에 입을 맞추던데, 안 보는데선 키스 정도는 했을 거 아니야. 그래서 나도 키스까지는 용기 냈지만…”
원래 나의 연인인 크리스보다 더 빠른 진도를 나갈 수는 없다는 건가.
이제서야 자넷이 그토록 거절하던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이건 그녀에게 있어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인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을 밝힐 수 있을까?
숨기고 있었을 뿐, 크리스와 매일같이 하고 있다고?
성욕에 행동을 맡긴다면 그럴 수 있으나…
자넷을 위한다면 무척이나 꺼내기 힘든 이야기다.
연인 앞에서 전여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금기 중 금기인데,
아직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익숙해지지 않은 자넷에게 말하기는 너무 배려 없는 이야기다.
자넷은 아닌 척하지만, 둘만 있는 이 자리에서 크리스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내가 자넷보다 크리스를 사랑하고 있다 단언했기 때문에.
‘사실, 당장만 해도 너무 빠른 진도지. 사귀기도 전에 키스부터 했으니까.’
조급해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공식적인 연인이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자넷이 받을 상처를 최대한 줄이며 첫날밤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단장이 거절하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이해… 해준 거야? 고마…”
“그런데 이대로 물러서긴 너무 아쉽네요.”
잠깐 멀어졌던 그녀와의 사이를 좁힌다.
자넷이 고개를 돌리지 못하게 한 손으로 볼을 잡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컨대, 넣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죠?”
“무슨 소리야…! 못 들었어? 걔보다 더한 진도를 나가면 안 되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요. 저희 지금, 술에 취해 있다고요. 끝까지 안 나간 것만 해도 많이 노력한 거 아닐까요?”
“그건 그렇지만…”
“단장은 좀 이성을 잃을 필요가 있어요.”
내 입술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 자넷의 입술과 달라붙었다.
윗입술을 움직이며 자넷의 입술을 살짝 벌린 다음,
뜨거운 숨과 함께 혀를 넣었다.
볼을 잡은 손의 엄지를 이용해 자넷의 이마를 애무하듯 쓸어 주었다.
색다른 자극을 준 것이다.
그녀의 오감을 선명하게 세우기 위해서.
나는 어깨를 움직여가며 내 외투를 벗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채 내 움직임을 읽은 자넷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걱정하는 선을 넘을 일은 없다는 것처럼, 부드럽게 혀를 얽어가며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살짝 벌어진 입술 틈.
조금씩 새어 나오던 자넷의 숨결이 점점 열기를 품기 시작했다.
- 스윽.
“하움?!…”
우선 외투만을 벗은 뒤 그녀의 어깨를 만지자, 자넷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그 어깨를 타고 팔을 쓸어내리며 굳어있던 그녀의 손을 쥐었다.
그리고, 바지 위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낸 나의 자지의 위에 얹었다.
“츕… 프하… 야,야아? 이거 무,슨…”
“한참 전부터 이랬습니다. 슬슬 아파져 와서…”
“나보고 어쩌라고!”
“그냥. 좋을 대로 해주세요. 너무 험하게 가지고 놀지는 마시고.”
“가,가지고 놀…”
자넷이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녀의 손 위치를 옮겨준 뒤, 도로 혀를 섞으며 내 옷을 벗는 것에 집중했다.
슬쩍. 슬쩍.
자넷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바지 위를 쓸어내렸다.
옷 위로도 느껴지는 그 형태와 뜨거움이 신기했나 보다.
동시에 야한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인지, 스킨십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간을 보던 자넷이 대담하게 내 기둥을 움켜쥐었다.
평소라면 별로 반응도 하지 않을 수준의 쾌감이었겠지만…
예상치 못한 기습.
게다가 한참 동안을 민감하게 서 있던 내 양물은, 자넷의 손길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다.
내 몸을 흩는 쾌감에 크게 한번 움찔거리고 말았다.
그 반응에 눈을 감은 채 키스를 즐기던 자넷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혹시 내가 고통을 느낀 건가 불안에 찬 것이다.
- 츄릅! 츄웁!!
하지만…
눈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적극적으로 내 혀를 얽혀 오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느낀 것이 쾌감이란 걸 눈치챘나보다.
…연상답게 리드하려 들기는.
“하움… 츕… 하아… 자,잠깐…”
“저만 벗으면 억울하잖아요? 전 벌써 상체가 알몸이라고요.”
“내,내가 시켰냐? 네 멋대로 벗은 거잖아, 이 변태야…”
“큭큭. 괜찮으니까 겁먹지 마세요. 아픈 일 안 합니다. 오늘은,요.”
“파계승이 아니라 새,색마였네. …그… 방금 약속은…”
“반드시 지킬게요.”
자넷의 옷을 슬며시 건들자, 역시나 말리려 들었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약속했다.
결코 끝까지 하지는 않겠다고.
“……술…때문이니까.”
자넷이 팔뚝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말로 잠깐은 못 본 척해주겠다는 자세였다.
“팔 잠깐 들어줄래요?”
“……”
조용히 시키는 대로 따르는 그녀의 외투를 벗긴 뒤,
천 한 장과 속옷만을 남긴 상태에서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체온이 느껴지는 얇음이다.
“혹시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하세요.”
“…그럼…”
“그럼?”
“그, 큼… 또 만져봐도… 되냐?”
만진다?
오늘 밤 그녀가 만졌던 건 하나밖에 없다.
내 하물.
그런데 그걸 보통 요구까지 해가며 만지려 드나?…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하지 못해서 멀뚱히 바라만 보자,
자넷은 오히려 버럭 화를 내었다.
“뭐! 너는 내 가,가,가슴 만지면서 나는 만지면 안 되냐? 어?”
“안되는 건 아닌데…”
“그럼 허리나 좀 내봐!”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화가 틀림없다.
나는 그리 확신했다.
아니, 내가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큼… 그,그럼…”
결국 요구받은 대로 살짝 자세를 틀어주었다.
오히려 자넷이 만져주는 건, 내가 바라던 일이니까.
자넷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바지 위에 닿았다.
“…우… …어,엄청 단단해… 얘는 평소에 성욕을 안 풀어서 그런가?…”
흥미 반 부끄러움 반 섞인 얼굴로 그리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속마음이 새어 나왔다는 건 비밀로 하기로 했다.
반응이 귀엽긴 하지만, 또 화내는 척을 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