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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220) (220/310)



〈 220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단장은?”

- 절레절레.

크리스가  물음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금 시간은 저녁.
자넷이 방에 틀어박힌 지 40시간이 넘었다.
당연하지만,
그녀는 40시간째 식사는커녕 물조차 마시지 않고 있다.


“대답은 꼬박꼬박 해줘?”


“응… 희한하게 목소리는 멀쩡하더라.”

문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기운이 없거나 질척한 감정이 섞여 있다면 우리도 행동을 달리했을 것이다.
가령 강제로라도 문을 열어 혼자 두지 않는다거나.

하지만 어제 크리스와 함께 들은 자넷의 목소리는 너무나 평온했다.
마치 얼마 지나고 나면 금방 일어설 정도의 슬럼프를 겪는 것처럼.


‘하지만… 슬슬 탈수 증세가 보일 정도로 위험할 텐데.’

그때 자넷의 목소리를 확인한 나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허나 그것도 어제까지의 이야기.
금방 얼굴을 비추리라 생각했던 자넷은, 오늘 해가 졌음에도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원인은 역시… 길드장 때문이겠지?”

“그렇겠지. 지난번 멜까지 넷이서 와플을 먹었을 때, 길드장과의 과거 이야기를 약간 듣기도 했고.”

“다들 길드장이 죽을  예상 못했나 봐. 그래서 더 충격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네. 그만큼 강한 사람이었단 걸까? 죽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길드장… 길드장이라… 후.”


- 벌떡.


간단하게 외투를 걸치며 일어섰다.
가설이라기보다는, 망상에 가까운 가능성이 한가지 떠올랐다.
하지만…
만약 내 머릿속에 떠오른  망상이 사실이라면?


“찬영? 어디 가게? 벌써 해도 졌는데.”


“잠깐 확인할 것이 생겨서.”

걱정스럽게 자넷의 방이 있는 2층 숙소를 바라보던 크리스가 물었다.
그렇게 여관의 문을 나서기 직전.
나는 크리스를 돌아보며 물었다.

“크리스.  자넷을 어떻게 여기고 있어?”


“으응? 자넷? 그런 건 갑자기 왜?”

“여자친구의 사생활이 궁금해서.”


“…뭐야 그게.”

“단순히 호기심이야. 대답하기 힘들면 안 해줘도 되고.”

“아니야. 으음… 굳이 단어를 찾자면…”

크리스가 살짝 부끄러워하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렇게 나온 대답은…


“…치,친구?”


나도 모르게 터질뻔한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비웃음이 아니라, 예상 밖의 귀엽고 솔직한 대답에 놀란 것이다.


친구라니.
아마도 자넷이 듣고 있지 않기에 할  있는 대답인 것 같다.
그녀도 자신이 꽤 부끄러운 소리를 했다는  아는지, 괜스레 머리카락 끝을 손가락으로 꼬며 딴청을 피웠다.

“처음에는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하더니.”


“……”


“생각이 바뀔 계기라도 있었어?”


“뭐… 대화를 하다 보니 의외로 마음이 좀 맞아서? 약간 바보인 거 빼고는.”

싱글거리는 나의 얼굴을 본 크리스의 입이 살짝 나왔다.
나는 실제로 그녀의 대답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크리스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 그녀는 자넷을 크게 경계했다.
그렇기에  만남 바로 직후에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고.

그 원인은 크리스의 감이다.
나를 잃는 것을 두려워한 그녀가, 자넷을 ‘연적’으로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 까칠한 반응을 보인 이유는 연인을 향한 집착과 트라우마가 뒤섞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넷과 친구가 되어있다.
연적이라 여겼던 대상에게 마음을 조금이나마 열면서, 내면에 있던 불안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뜻이다.
이는…

‘트라우마가 거의 아물었다는 의미네.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내게는 크리스를 제외하고도 연인이 있다.
그 사실을 바로 고백한다면 크리스의 트라우마가 크게 덧나버릴 수도 있기에 여태 미루었지만…
이제는 가라앉은 딱지가 떨어지기 직전이다.
비록 흉터는 남겠으나, 상처가 다시 벌어질 수준은 아니리라.

가장 최적의 타이밍은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다.
만약, 그때도 미룬다면 그건 크리스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녀에게 미움받는 것에 겁먹어 우유부단하길 선택하는 것이겠지.

‘최악이야. 지금 이 순간에도 속이고 있는 시간은 지나가고 있으니까. 미루면 미룰수록 크리스가 받는 배신감은 커질 테니.’

이미 뺨 정도는 몇 대 맞을 각오는 끝마쳤다.
그녀를 성공적으로 설득해낼 자신도 있다.
그러니 확신이 서면, 쫄지 말고 정면에서 부딪치자.

“그럼… 다녀올게. 늦을 수도 있으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고 있어.”

“조심해. 곧 밤이니까.”

“큭큭. 날 습격하는 강도를 걱정해야 할걸. 걱정 마.”

가볍게 크리스의 볼에 입을 맞춘 뒤,
문밖으로 나섰다.


끼익. 쿵.



*


- 똑똑.


“데이지. 자?”

문을 두드렸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창 안쪽 연금 공방의 불은 켜져 있다.
잠깐 인내심을 가지고 누군가 나오길 기다렸다.

- 끼익.

“어라? 박찬영님 아닙니까? 하얀 고래의.”


“안녕하세요 헨리씨. 늦은 시간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공방의 문을 열어준 것은 암청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아닌, 헨리였다.
그가 문을 열어 준 이유는 충분히 짐작되었다.
데이지?
무얼 하고 있을지  봐도 뻔했다.


“죄송합니다. 데이지… 아, 데이지님이 지금 책에 빠져 있어서 못 들으셨나 봐요.”


“네. 그럴 것 같았어요. 큭큭.”

다행히 내 목소리를 들은 헨리의 덕에 무단 침입은 면했다.
그렇게 공방 안으로 안내받은 뒤.
나는 망설임 없이 데이지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노크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도 듣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 챠략. 챡.


역시나.
문을 열자 무단 침입자도 눈치채지 못한 소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에도 독서를 하기 위해 야명주 혹은 발광석으로 불리는 돌에 바짝 붙은.

신기하게도,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은 여타 누리끼리한 저급 종이의 묶음이 아니었다.
표백제라도   새하얀 백지.
거기다 표지는 깔끔하게 마감이 되어있다.
분명 내용이 없는 빈 노트라도 큰 값어치를 할 것만 같은 생김새다.


그럴 수밖에.
중세 시대의 투박한 종이 같은 물건은 구하기가 무척 귀찮았기 때문에,
대충 문방구의 두꺼운 노트를 200개입 상자째로 털어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가 읽고 있는 백 권을 넘는 저 책들은 전부 수작업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리다니아 왕국어 언어팩이 인터넷에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타이핑도 불가능했다.
과연 데이지는 저 책들에 꽤 많은 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걸 알까?

- 터억!

“와악.”

“끄으아악!!!”

내가 데이지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목소리로 몸을 뒤틀어 대었다.
아마 자기 방이라서 그런지 그만큼 긴장을 풀고 있었나 보다.

“너,너너, 너 뭐야!! 왜 여기 있어!!”

“반가워.”

“반갑기는 개…!! 너 나 놀래키는 거  들였지!!”

“건물 밖에서도 불렀고, 방문 앞에서도 불렀고, 노크까지 했고, 심지어 앞에서 너를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었잖아.”


손가락을 한 개씩 접어가며 내게 죄가 없음을 피력했다.
물론 한 개를 제외한 전부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래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 같으니, 거짓말이 아니지 않을까?

들킬  없는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실제로 데이지는 내 말을 그대로 믿는 듯했다.
후… 작전 성공.


“노크에 대답이 없으면 들어오지 않는  정상 아니야?! 상식적으로!!”


“아직도 내게 상식을 기대하는 거야?  네 예상을 깨는 재미로 살고 있는데.”


“이,이익! 야밤에 숙녀의 방에 남자가 들어오다니!!”

“음… 너 나를 남자로 보고 있었어? 마음은 고맙긴 한데, 미안해. 난 연인이 있어서. 네 마음을 받아 줄 수가 없…”


“이 개자식이!!”

“큭큭큭. 미안해. 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자꾸 즐기게 되네.”


데이지가 씩씩거리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이러다가 거품을 물 것 같아, 조금 진정시키기로 했다.
빠르게 사과를 하며.


“후… 그래. 무슨 용건이야?”

“섭섭하게 바로 본론으로 가는 거야?”


“요즘 너무 바빠. 이것들, 최소한 5번씩은 읽어 봐야 해. 가능하면 이해도 해야 하고.”

그렇게 말하며 책의 산을 보는 데이지의 얼굴은 어딘가 신나 보였다.
무얼 해야 할지 몰랐던 과거보다는 지금이 훨씬 마음에 드나 보다.


“책은 읽을 만 해?”

“…오타가 너무 많잖아.”


“아무래도 손수 적은 거니까. 최대한 줄이려고 해본 건데, 미처 눈치 못 채고 넘어간  좀 있나 보네. 내용 이해에 지장을  정도면 언제든 물어봐. 그 부분만 내가 따로 다시 번역을…”

“야! 노,농담인데 왜 이렇게 진지하게 반응해?!”

“뭐야. 농담이었어?”

“…칫. 오타가 신기할 정도로 없더라. 게다가 명필이고. …너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해본 적 없는 용병 맞아?”

초인이 되며 얻어낸 반사 신경과 넓은 시야는 오타를 잡아내는 것에도 톡톡한 효과를 보았다.
다행히 심각한 수준의 오타는 없는 듯했다.


“큼큼… 나도 학계에 발표하진 않았지만, 논문 몇 개를 써보긴 했어.”

“그래?”

“…잘 모르겠어? 이렇게 글을 옮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나도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하고픈 말은… 끄응… 아악!”

“큭큭. 솔직하게 ‘날 위해 수백 권의 책을 옮겨 적어줘서 고마워…!’라고 해. 이리 힘들게 돌려서 말하지 말고.”

“알아들었으면 닥쳐 제발!”


데이지가 자신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게 던질만한 물건을 찾고 있는 것이다.
손에 들린 책은 결코 던지지 않는 것이, 내가 아는 데이지 그 자체였다.

“진짜 용건은…  개 있는데, 우선 이거야. 이거 좀 사러 왔지.”

“뭐야. 그거? 옆 잡화점에서도 팔고 있는데?”


“그래도 여기서 사는 것이 싸잖아.”


“…됐어. 값비싼 포션이면 몰라도, 그건 푼돈 수준인데 돈은 무슨… 그냥 가져가.”

“오! 정말?  정도는 호의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이 정도 수준의 물건은 공짜로 받아도 빚으로 남기지도 않을 정도의 사이다.
이럴 의도를 가지고 그녀를 찾아온 건 결코 아니지만, 그래도 무료로 준다는데 굳이 돈을 챙겨주기도 그렇다.

나는 유리병 안에 든 투명한 액체를 잠깐 흔들어 보며 인벤토리 안에 집어넣었다.
내 손에서 병이 사라지자 데이지가 잠깐 놀랐지만…
곧바로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그래서 그다음 용건은?”

“으음… 혹시 너… ‘베르테스’라는 이름을 알아?”

- 콜록!콜록!


데이지가 당황한 목소리로 기침을 했다.
그 명백한 반응에, 나는 망상이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꼈다.


베르테스.
길드장 로저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그가 내게 물었던 딸의 이름.
어쩐지 깊은 한숨을 내쉴 것만 같다.


“놀랐어… 너 어디서  이름을 들은 거야?”

“그냥. 어쩌다가?”

“으음…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를까?”

“왜?”


“숨기려고 숨긴  아닌데, 내 원래 이름이 베르테스거든. ‘데이지’는 내… 어린 시절 돌아가신 엄마의 이름이고.”

깊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던 것은 아니었다.
왕실 연금술사에게 주워지기 직전.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그녀의 앞에 주마등처럼 스친 것은 상냥했던 어머니와의 기억이었다.

그렇게 제정신이 아닌 채 행복했던 추억 속에서 머물러 있을 때.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왕실 연금술사가 죽어가던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어머니의 이름을 대었다.
이것이 베르테스가 데이지로 살아가게 된 이유였다.

“그럼 데이지는 가명?”


“그랬는데, 이젠 데이지로 살아가기로 정했어. 이젠 그 이름이 귀에 익었고… 무엇보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 좋잖아? 앞으로도 데이지면 충분해.”


“…그래.”

나는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데이지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로저의 특성.
삶에 의지를 가지면 사라지는 특이한 조건을 달고 있는 『필사즉생』.
내가 보지 못한 사이 이것이 사라졌다고 해야 로저의 죽음이 납득이 간다.

그와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에 대한 주제.
모든 단서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난번에 너한테 가족이 있다고 했었지? 혹시 찾아봤어?”


“당연히 찾아봤지. 왕실 연금술사 밑에 있었을 때. 그런데…”


“그런데?”


“집이  비었다더라. 수소문해 보니까 딸을 찾기 위해 용병이 되었다던데… 터무니없는 헛소문이지.”

“헛소문? 어째서?”

“내 아빠는 내가 가장 잘 알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 우리 엄마만큼 착하고 순해서, 칼로 몬스터를 죽이는 험한 일은 절대 못 해. 킥킥. 아빠 성격이면… 아마 고블린만 봐도 겁먹고 도망칠걸?”


“…”


“그냥… 어디선가 잘 먹고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 딸이 이런 몸으로 나타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서워서, 적극적으로 찾지도 않았고.”

로저의 유언.
나를 포함한 그와 면식이 있는 이들은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죽기 직전에 뱉었던 그의 뼈저린 후회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딸보다 자넷을 우선해 생각했다.
자신이 그에게 있어 딸보다 소중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자넷이 방에 틀어박혔고,
이를 부끄럽게 여긴 로저는 부디 자신의 삶을 딸에게 알리지 말아달라 부탁했다.
다만,
그가 유일하게 전해달라 한 것은…

“네 아버지는, 잃어버린 너를 마지막까지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딸의 복수도 자신의 손으로 했겠지.”

“…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내가  아버지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큭큭. 나는 누구에게 복수해주길 강요하지 않아. 주제넘게 기대하지도 않고. 그래도… 정말로 그랬을 수도 있겠네. 응.”


오롯이 나의 죄라 하기에는 힘들다.
선택한 것은 로저고, 책임을 진  또한 로저니까.

내가 아니었다면 로저가 살았다?
그 이전에 왕위 찬탈…
즉, ‘복수’에 성공하지 못했으리라.

평생을 바쳐도 복수를 이룰  없음을 실감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보다, 죽음으로 복수를 이루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 말하지는 못한다.
그의 삶을 평가해서도  된다.
나는 로저 본인이 아니기에.


하지만 나에게 일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은 변명할  없었다.
그러니, 최소한 뒤 책임은 내가 지기로 했다.
적어도 그에게 큰 의미가 있는 데이지와 자넷의 미래 만큼은…
불행하지 않게 만들어 줘야 옳지 않겠는가?
그래야 스스로를 떳떳이 여길 수 있을 테니.

“미안해. 데이지.”

“뭔데? 갑자기.”

“그냥?”

“…너…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큭큭. 그런  아니야.”

그 하나를 구하고자 시간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자살하면서까지 모두를 구하려 애쓰는 삶.
분명 눈부시고 멋지긴 하지만…
그런 삶을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10년을 그리 살아도 견딜 수 있을까?
『자연치유』가 있다고 한들 내 정신력은 명백히 유한하다.


그 이전에, 그렇게 모두를 구하는 영웅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내가 구해야 하는 생명의 기준은 무엇일까.

차원에 속한 사람들 모두?
그런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할 리 없다.

원작 소설에 이름이 나오는 주·조연만?
테라포밍 속 ‘블랑 프랑수아’는 원작에 이름이 나오지 않았지만, 나와 친구가 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그가 죽어도 시간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나와 친해진 사람은 구하고, 아니면 그냥 무시하고?
제일 역겹다.
사람의 생사가 나를 만나거나 그렇지 않음에 따라 정해진다니…
이건 일개 개인이 가지기엔 너무 오만한 생각이다.


그러니 나는 일찍이 이런 일을 대비해 미리 결정해 놓았다.
내가 정해놓은 선은 어디까지나 ‘내게’ 소중한 사람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오만하지 않은가?

안타깝게도 길드장은 그 선에 들지 못했다.
그러니 나는 데이지에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
로저는 ‘나의’ 소중한 사람은 아니지만,
소중한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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