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
그는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부드럽고 따스한 눈길로, 잠깐 바라만 보고 있을 뿐.
하지만 데이지는 여전히 그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데이지는 남자가 어떤 눈을 하고 자신을 보고 있을지 어렴풋 알 수 있었다.
“역시… 기억 못 하려나.”
“…아니. 당연히 기억해. 그때 네가 한 말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아마 몇 년이 지나더라도 못 잊지 않을까?”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남자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여기고 있다는 듯이.
- 꾸욱.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상처가 났으나, 애초에 악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아서 깊지는 않았다.
저 말이 뜻하는 것은 하나다.
그는, 자신을 잊어달라 말한 데이지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렇게나 상냥히.
‘제발… 자꾸 결심을 흐트러뜨리지 말아줘…’
손바닥에 고통을 주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통각이 멀쩡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나는… 더러운 년이야. 단순히 순결이 더러워졌다, 그런 뜻이 아니라…”
조금 더 본질적인 의미에서.
데이지는 작게 중얼거렸으나, 남자는 무리 없이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날, 그 말은 가볍게 한 말이 아니었구나.”
“내가 순수한 피해자였다면, 더럽다고 할 리 없잖아…!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단 말이야. 여자아이들, 죄 없는 피해자들이…”
당연하지만 ‘노리개’는 데이지를 제외하고도 아주 많았다.
그녀들의 최후를 전부 지켜본 데이지는 그녀들에게 동질감과 연민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납치돼서 몸을 버린 것만 가지고, 나를 더럽고 뻔뻔한 인간이라 소개한다면… 그건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야.”
선택지 하나 주어지지 않고 죽어간 그 아이들을 결코 더럽지도, 뻔뻔하지도 않다.
혹여 욕하는 이가 있다면…
데이지가 가장 앞서서 화낼 것이다.
그녀들은 데이지와 다르니까.
“그 애들은 언제까지나 피해자야. 하지만… 나는 그 애들과 달라. 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지.”
“…연금술사의 밑에 10년가량이나 있었다고 했지?”
“단순히 시간이나 횟수를 말하는 게 아니야! 훨씬 근본적… 아니다. 그냥 전부 말해줄게. 애초에 그러기로 결심했으니까.”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마음속 용기를 찾아본다.
그렇게 입을 뗄 용기는 얻을 수 있었으나,
여전히 그의 눈만은 바라볼 수 없었다.
“있잖아. ‘연회’가 끝난 뒤, 홀로 살아남은 내가 왕실 연금술사에게 주워진 것까지는 알지?”
- …끄덕.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왕실 연금술사는 뼛속까지 소아 성애자였어. 다 죽어갔던 나도 잘 곳 걱정, 먹을 걱정은 없었지. 그런데 문제는…”
어느 정도 자란 여자아이는 버려진다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는…
“초경이 온 애들은 전부 팔아넘기더라. 노예 상인에게. 그때 팔린 애들이 지금 어떻게 됐는지는… 솔직히 알아보기 두렵네.”
이제 막 청소년기에 들어선 여자아이들의 쓸모라곤 하나뿐이다.
분명 연금술사의 밑에 있을 때보다 훨씬 가혹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가령 몇 달간 바다에 나가 있는 어선에 선원들 성욕 풀이용으로 팔린다든지.
벌써 10년가량이 지난 이야기다.
10명 중 9명은 이미 땅속에 묻혀 있지 않을까?
대부분이 혹사당해 죽거나,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테니.
“불행히도, 그때의 나는 노리개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편이었어.”
현재의 외견과 그때의 외견은 단 한 치의 차이도 없었다.
어떠한 이유로 성장이 완벽하게 멈춘 탓이다.
아직 초경이 오지 않았다기에는 살짝 큰 키.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처럼 보이는 얼굴.
잘 먹고 자란 아이라면 당연히 2차 성징이 찾아왔겠지만…
왕국민 대부분이 그렇듯, 데이지의 가정 역시 하루에 한 끼만을 겨우 챙겨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양실조로 인한 2차 성징의 지연.
그것이 그때의 데이지에게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었다.
그마저도 팔리는 날이 1년 뒤로 밀렸을 뿐이지만.
“쯧, 마음에 안드는 세상이야.”
“그렇지. 그렇기에 넌 엄청 대단해. 그래도, 결국은 호구지만.”
“나?”
“세상이 마음에 안 든다고 뒤엎으려 드는 건 평범한 사람이 할 발상은 아니니까. 대부분이 타협하고 세상에 맞춰 살아가려 하지. …나처럼.”
“나는 너랑 달리…”
“됐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지 알 것 같고.”
씁쓸하게 중얼거리자, 남자가 그녀를 대신해 변호해 주려 들었다.
허나 데이지는 그 변호가 이어지지 못하게 막았다.
작고 가는 손을 들어 올리며.
대충…
데이지의 때와는 달리, 그에게는 능력과 기회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상대는 단순한 귀족 가문 수준이 아닌 하나의 국가.
이런 적을 상대로 개인의 능력과 기회를 따지는 게 의미가 있을 리 없기에.
“그때 너는… 또다시 인생이 크게 뒤틀릴 뻔했네.”
“그래도 봐봐. 결과적으론 노예로 팔리지 않았잖아? 내가 연금술사 밑에 있었던 건 10년이나 되니까.”
“…그 연금술사가 먹였던 불로의 약 덕분인가… 새옹지마라더니, 참…”
데이지는 ‘새옹지마’가 정확히 무슨 뜻을 가졌는진 잘 이해하지 못했으나,
어렴풋한 의미만큼은 알 수 있었다.
피치 못하게 일어난 불운한 사건이 예상 밖의 이득을 불러왔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남자의 대답에 고개를 저을 수 있었다.
볼로의 약은…
피치 못할 사건이 아니었으니까.
“틀렸어.”
“틀렸다고?”
“응. 조금 달라.”
입이 떨어지기 싫다는 듯 혀가 굳었다.
하지만 억지로 혀를 씹어가며 말을 잇는 것에 성공했다.
데이지는 그의 얼굴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조금 돌려 말하긴 했으나, 그는 데이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항상 포근한 표정을 짓던 그의 얼굴이 아닌…
살짝 굳어진 얼굴이었으니까.
“다르다…? 그렇다면 설마… 네가 스스로…”
“정답. 연금술사가 실험 삼아 억지로 먹인 것이 아니라, 내 의지로 먹은 거야. 실패작인 불로의 약.”
인체 실험을 함부로 시도했다가는 흑마법사로 몰려 종교 재판에 매달린다.
하물며 능력도, 뒷배도, 명성도 없었던 초창기의 연금술사라면 더더욱.
주로 실험 대상이 된 건 쥐와 토끼, 그 밖의 다양한 소동물이었다.
당연히…
데이지는 그가 만든 불로의 약이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 알고 있었다.
존경에 목마른 연금술사가 매일같이 연구의 진척을 자랑했으니까.
“그와 거래를 했어. 합법적인 절차로써, 실험 대상이 되는 것에 동의를 할 테니 나를 팔지 말아 달라고. 그리고…”
“…네게 연금술을 알려달라고?”
“당연한 거야. 어떤 머저리가 노예 시종 따위한테 연금술 같은 귀한 지식을 공유해주겠어? 대가도 없이.”
데이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과연 남자는 지금 어떤 눈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까?
충격에 세차게 흔들리는 눈?
아니면 동정심에 연민을 담은 눈?
“도망치다 잡혀 맞아 죽었다면, 수동적으로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 끝내 죽었다면, 스스로를 피해자라 말할 수 있었겠지. 다른 아이들처럼. 하지만… 나는 추하게나마 살기를 선택했고, 깨끗하게 죽을 기회를 잃은 거야.”
“데이지. 자기혐오가 너무 심해. 살기 위해 노력한 것을 보고 죄? 나로선 전혀…”
“아닐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거든.”
“……”
약을 먹었던 동물들은 노화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각, 후각, 청각, 시각, 촉각의 순서대로 서서히 잃어갔다.
오감을 잃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피부가 녹고 몸이 뒤틀리며 흉물스럽게 변해버렸다.
그 최후는 생각하는 법을 잊고 그 어떠한 외부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영원히 생명 활동을 유지할 뿐인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이지를 잃었다.
즉, 혼이 떠나버린 껍데기.
이것은 첨언을 붙일 필요도 없는 ‘사망’이다.
목표는 불로의 비약이지만, 결과물로 나온 건 부작용은 물론 수명을 깎아버리는 실패작이었다.
데이지는…
자신의 목으로 넘어가는 약이 어떠한 최후를 가져오는 약인지 알면서도 마셨다.
“실험 기록상으로는, 복용체의 기본 수명 값에 따라 부작용의 진행 속도가 다르게 나왔어. 인간으로 치면… 부작용이 전부 나타나기까지 10년이 좀 넘으려나?”
“10년이라면… 젠장.”
“그땐 10년은커녕 1년 뒤조차 살아있으리라 장담 못 하고 있었으니까. 당장 죽기보다는, 미룬 거지. 눈에 보이지 않게끔.”
10년 동안 열심히 연금술을 배운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란 계산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10년 후인 지금의 데이지가 지고 있었다.
“…난 여전히 네게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
“사실 여기까지만 들어선 나 같아도 그래. 하지만…”
지금부터 말해야 할 것이 데이지의 죄다.
부끄럽고, 너무나 숨기고 싶은.
결심은 이미 한참 전에 끝마쳤다.
이제 와서 망설이지 말자.
말해야 한다.
눈앞의 남자에게는 무엇 하나 숨기지 않기로 했으니까.
“있잖아. 내가 그 자식의 뒤통수를 칠 수 있었던 건 언제쯤이었을 것 같아?”
“최근이지? 네가 왕실 연금술사를 살해하고 도망쳤던 건 고작 몇 달 전이었으니.”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구나.
고개를 숙인 데이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진실을 밝혔다.
“…아니야. 밤마다 그 짓거리를 하다 내게 정이라도 붙인 건지, 5년 뒤부터는 나를 제자 비스름한 걸로 취급했거든.”
데이지의 어린아이 연기가 능숙했던 건,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그의 앞에선 항상 순수한 어린아이를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금술사를 향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를 향한 건지 모를 살심을 억누르고, 밤이 조금이라도 늦게 찾아오길 빌면서.
“탈출은 5년도 훨씬 전부터 가능했고, 그를 살해하는 건 지난 5년간 언제든 가능했어. 사실상 재료 조달을 내게 일임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탈출을 안 한… 아…”
- 질끈.
드디어 남자가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
“이제 알겠어? 난 언제든 떠날 수 있었어. 언제든 죽이고 복수를 할 수 있었어. 언제든. 언제든 그 역겨운 밤에서부터 도망칠 수 있었어. 그런데, 그러지 않았던 거야. 나는.”
지금 상태에서 남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그녀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니 그가 대꾸하기 전에, 빠르게 죄의 고백을 마쳐야 한다.
한번 말이 끊기게 되면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기에.
“나를 제외한 피해자들. 새로 들어오고 어디론가 사라지길 반복하는 여자아이들. 학대받던 헨리. 훨씬 일찍 구해줄 수 있었어. 5년 전에 죽었다면, 최근 5년간 그 새끼에게 희생된 사람은 없었겠지. 하지만 난 이걸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어. 왜냐고?”
연금술 지식이 탐나서.
부작용이 예정된 그녀가 살기 위해선, 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니까.
데이지는 다시금 자신과 이 남자는 완전히 다름을 느꼈다.
삶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해결할 수 있었던 피해로부터 눈을 돌린 데이지.
친구를 위해 목숨의 위기 정도로 망설이지 않고 왕국에 칼을 겨눈 박찬영.
아무리 놓고 보아도, 어울리지 않았다.
이 둘 사이에는 너무나 커다란 격차가 있었다.
그 사실이 칼날처럼 다가와 데이지의 가슴을 찢었다.
“혐오스럽지? 난 근본적으로, 뒷골목 매춘부와 전혀 다르지 않아. 그들은 몸을 대가로 돈을 받았고, 나는 지식을 대가로 받았다는 차이가 있을 뿐.”
데이지의 입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 웃음은 누가 듣더라도, 기뻐서 터뜨린 웃음이 아니었다.
조금 더 질척하고 어두운.
듣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웃음이었다.
“미안. 우스워서 견딜 수 없네. 내 꼴이.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을 무시했어. 내가 살고 싶다는 이유로. 그런데… 정작 치료 약 따위 실마리도 못 잡고 있잖아. 이제… 1년, 아니. 반년도 남지 않았는데.”
차라리 그때.
치료를 포기하고, 주어진 10년에 만족한 채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매일 꿈에서 데이지를 괴롭히는 그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으리라.
24시간을 연구에 매진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일상을 즐길 수 있었으리라.
친해진 친구에게 매년 기일마다 자신의 무덤을 찾아와 달라 말할 수 있었으리라.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던 미래.
그런 미래를, 데이지는 스스로의 손을 걷어 차버렸다.
“불로의 비약. 늙지 않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불로의 비약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효능.
그건 당연히…
“한번 먹으면, 그 약효가 평생 지속이 되어야 해. 너무 당연한 전제 조건이지?”
100년, 200년 수준이 아니다.
완전한 불로의 비약을 만들기 위해선 필요한 조건이 너무나 많았다.
“’불로의 약’. 이 약의 치료 약이 개발될 확률은 없어. 애초에… 해약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약이거든.”
“…!!”
약효가 땀이나 오줌같이 노폐물로써 빠져나가선 결코 안 된다.
출혈이 일어나서 피가 빠지더라도 효능이 약해져선 안 된다.
다른 잔병에 걸려 약을 먹더라도, 그 약에 들어간 재료와 반응을 일으켜 효과가 변형되면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약효를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비싼 재료라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돈을 모아 구해보기도 했지. 결과는 뭐, 역시 안되더라.”
뿌리, 벌레, 뿔, 유충, 내단, 꽃, 껍질, 버섯, 알, 씨앗, 해초 등등…
시험해 본 것만 천을 헤아린다.
하지만 아무리 귀하고, 아무리 뛰어나고, 아무리 비싸다고 한들 효과는 없었다.
데이지의 몸속에 잠긴 불로의 비약과 어떠한 반응도 일으키지 않았다.
“적어도 티끌만 한 반응이라도 보여야 치료가 가능… 할… 텐데…”
- 툭. 투욱.
아.
결국 못 참았다.
데이지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신의 눈물을 보며 생각했다.
“너도 성직,자라고, 했지? 역시 신이란… 있나,봐. 이리 벌을 받은 걸 보면. 쓰레기같,은 년에게 어울리는, 비참한 최후,잖아?”
한숨이 들린다.
데이지의 입에서가 아닌, 박찬영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곧 이어질 경멸 섞인 말을.
차라리 실컷 욕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담담한 말로 실망했다는 말을 듣거나, 말없이 이 공방을 떠나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보다는.
그러나…
상황은 데이지의 예상과 훨씬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좋아. 다 끝났어?”
“훌쩍. 어?”
“네 거무튀튀한 자기혐오. 다 끝났냐고.”
“어? 어어… 너, 이 이야기를 다 듣고서도 아직도 내가 혐오스럽지 않아? 바보라서 이해하지 못한 거야?”
“네가 생각보다 많이 바보란 건 알겠다. 적어도 나보다 바보야.”
데이지는 고개를 들어 이 방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박찬영의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심장이 쿵 내려앉고 말았다.
똑같았기 때문이다.
비록 표정은 웃음기 없이 진지해 보였으나, 평소와도 같은 따뜻한 눈빛.
그 친근감을 보내는 눈이, 데이지의 동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 물어볼게. 혹시, 불로의 약은 볼로의 약으로 덮어씌울 수 있어? 그러니까, 네 몸에 있는 불완전한 약을 완전한 약으로 억누르는 것처럼.”
“무슨 소리…”
“우선 대답부터.”
진지하게 묻는 말에, 데이지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어. 그야, 불로의 비약이란 것이 수십 개의 가설이 있는 만큼 완성품이 어떤 구성을 띄고 있는지에 따라 다른걸. 하지만… 만약 그 왕실 연금술사의 이론을 기반으로 한 완성품이라면… 두 약이 똑같은 뿌리를 두었다면… 가능성이 있긴 한데…”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알법했다.
치료 약이 아닌 완성품을 만들자는 뜻이겠지.
물론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분명 해본 적 없는 기발한 발상이기는 하나,
완성품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미치도록 희박했다.
당연히 치료 약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차라리 시간을 돌리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 후두둑.
하지만…
그런 데이지의 앞에 수십 개의 책이 갑작스럽게 쏟아져 내렸다.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에서.
“…뭐야 이거? 어떻게?”
“이게 실험 일지니까 이것부터 읽어 봐. 원래 이 책들 전부 암호문으로 적혀 있었는데, 손글씨로 번역해 오느라 많이 피곤했다고.”
- 차락.
허공에서 책이 솟아난 것에 대한 의문도 잠시.
데이지는 박찬영이 건네어 준 책을 받아 첫 장을 펼쳤다.
그리고 저자를 확인했을 때.
‘트리스 메기스투스? 가짜…?’
가짜라고 확신했다.
그야, 연금술사 사이에서 소문으로만 나도는 인물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는가?
마치 현대 지구에서 저자가 ‘덤블도어’라고 적힌 마법 책을 발견한 것처럼.
하지만 박찬영의 제안대로 천천히 읽어가며…
일지 곳곳에 남겨져 있는 그 발상의 편린을 발견해 버렸다.
그 글귀 하나하나는,
연금술사 데이지의 몸에 깃들어 전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일지는 진품이 맞았다.
진짜 트리스 메기스투스가 아니더라도,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가진 이가 작성한 책이 맞았다.
“이,이건 어디서…!”
“그것보다, 표시해 둔 페이지를 봐봐.”
“…책갈피가 껴있는 곳?”
- 챠락.
그렇게 페이지를 후반부로 넘겼을 때.
그녀의 눈에 경악이 담겼다.
[드디어 신에게 닿았다. 나는 오늘, 신이 정해준 수명을 거스르는 연금 이론을 찾아냈다.], 데이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