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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7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 띠링!

=
*HARD MODE*
[다시 떠오르는 태양]


첫 번째 분기, [선동]을 성공적으로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진행을 포기하며 현재까지 쌓인 분기 클리어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포기  획득 가능한 보상
- 소모품,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타래 (3개)

아직 클리어하지 않은 분기 : [점령], [계승]
=


[하드모드 퀘스트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중도 포기하시겠습니까?]


고민할 것도 없이 퀘스트를 계속 진행하길 선택했다.
솔직히 가장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 첫 번째 분기라고 예상했는데, 다행히 굴곡 하나 없이 넘어가는 것에 성공했다.
아마 [점령]과 [계승]은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으리라.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쯥!  평생 안줏거리 하기 좋은 이야기가 생기겠군.”
“그럼 우린 개국공신… 아니, 재건(再建)공신자인가?”
“나쁘지 않은데? 큭큭.”
“미래의 아들내미 볼 낯은 있겠어.”

자신들을 전부 합친 것보다 강한 기사들과 명분을 거머쥔 2 왕자가 함께해서 그런 걸까?
슬슬 위태한 전투에 대한 압박이 들며 불안에 떠는 자들이 생길  했는데,
용병은 기사들이나 입곤 하는 마법이 인챈트 된 판금 갑옷과 칼을 장비하면서도 사기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갑옷을 주먹으로 두들겨 보며 더 의욕을 냈으면 냈지.

아무래도 왕자가 읊은 대본이 꽤 매끄럽게 먹혔나 보다.
돈에 목을 매는 용병이 보수를 입에 올릴 생각을 하지 않는 걸 보면.
다들 2 왕자를 믿고 있는 것이다.
차후 그가 왕좌에 앉아도 자신들을 팽하지 않으리란 것을.


“선두는 과인의 기사단이 맡을 것이야. 자네들은  머릿수를 이용하여 좌익과 우익을 포위하는 식으로 전투를 이끌어 나가면 되네.”

“알겠습니다. 아, 왕성 내부의 침입자 방어 마법진은…”

“전부 손을 써두었으니 걱정 말게.”

미리 말을 맞춰둔 이야기가  번 더 오갔다.
덩치가 큰 하늘 산맥이 우익을 맡았으며,
하얀 고래와 철사가자 좌익을 담당했다.
중소 용병들은 양측에 적절하게 분배되었고.


고작 수백의 인원이라 할지 몰라도, 왕성 전체를 피로 물들이기엔 충분하고도 남은 인원이다.
목표는 현 왕을 비롯한 계승권자를 제압 혹은 사살하는 것.
만일 적합자가 2 왕자밖에 남지 않는다면…
여태 중립을 유지하던 귀족들은 이대로 왕족의 피를 세상에서 지우기보다는 그를 왕으로 인정할 것이다.
비록 내란이 일기는 했어도, 2 왕자의 능력과 핏줄은 진짜니까.


- 척! 척!

묵직한 발걸음이 동시다발적으로 대로를 밟는 소리가 울린다.
하나가 되었다고 보기엔 약간 어설펐지만, 나름 균일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기사단을 앞세운 채 수백의 병력이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쯤 되니 왕성에서도 무언가 낌새가 이상하단  눈치챘나 보다.
저 멀리, 성의 망루에 있던 병사들이 허둥대는 것을 보면.
외견상 기사로 보이는 이들의 수가 일천의 절반을 넘는다.
이건 술에 거하게 취한 사람이 봐도 술기운이 확 깨는 상황이다.

- 척! 척!

하지만 호들갑을 떨며 빠르게 돌진하지는 않았다.
이미 이렇게 가까이 온 이상 기습은 성공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겠다며 묵직한 판금 갑옷을 입고 달리며 체력을 빼기보다는…
서로의 발걸음을 맞추며 당일에 만들어진 군대의 일체감을 올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군대가 왕성의 성문 앞에 도달했을 때.
긴장된 얼굴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인물이 있었다.
오늘 기사 주둔지에 잠입했을 때 봤기에 알고 있었다.
왕국에서 기사가 올라갈  있는 곳 중 가장 높이 선 자.
왕실 기사단장이다.


“멈춰라!!”

- 척!!


기사단장이 칼을  들고 우리를 향해 겨누며 말했다.
명색이 왕국 제일의 기사라는 걸까?
수백의 기사를 홀로 상대하며 차오르는 긴장을 숨기지 못했으면서,
꿋꿋내 겨눈 칼을 거두고 도망치지 않았다.

그가 굳이 성벽 아래에 내려 온 이유?
간단하다.
혈귀화를 쓰지 않은 내가 어렵지 않게 성벽을 오른 것처럼,
그의 스텟으론 언제든 저 성벽을 단박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왕국의 태양이 머무는 그리다니아 왕성! 사병의 집합은 거대한 중죄라는 걸 모르나! 누가 감히 허락받지 않고 수도에 발을 디뎠는가! 당장 발을 돌려 수도를 떠나라!”

급하게 소집된 티가 역력한 왕실 기사들이 하나둘씩 성벽 위로 얼굴을 드러내었다.
그리곤 우리의 수를 보고는 살짝 두려운 얼굴을 했다.
용병 500명은 상대 해볼 만 하겠으나, 우리들의 외견은 모든 무장을 마친 기사였기 때문이다.

나는 물론, 용병과 기사들은 왕실 기사단장의 말에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사전에 무리의 총괄자를 누구로 할지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대표할 인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곧.
 적합한 인물이 기사의 사이를 헤치고 가장 선두에 나와,
겨누어진 기사 단장의 칼끝을 당당히 마주했다.

“못 알아 보겠나? 과인일세.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 하나 듣지 않겠나?”


“보,보드엠 왕자님…? 그런데 재밌는 이야기라니…”


“주인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는데, 집을 지켜야 할 개가 주인을 보고 짖더군. 마치 제집이라도 되는 것 마냥.”

“…예?”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야. 그렇지 않나? 그런데 더 우스운 것은, 그 집에 들어차 주인 행세를 하는 짐승들이 개뿐만이 아니란 것이지. 온갖 구역질 내를 풍기는 짐승들이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어. 이래서야… 이리 튼튼한 집을 지어 물려주신 선조분들을 만나 뵐 낯이 없지 않은가?”


- 꿀꺽.


점점 기사단장의 눈빛에 불안이 담겼다.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닌가 보다.
왕자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와, 수백에 달하는 병력을 왕성 앞까지 끌고  것의 이유를 어렴풋 눈치챈 것 같으니까.


흐읍, 2 왕자가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윽고 철가면 안쪽에서 거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 그라다니아의 적합한 계승자 보드엠 드 그리다니아는! 왕국을 좀먹는 벌레를 청소하고, 바래진 빛을 되찾는 것에 주어진 모든 생을 태울 것임을 선언한다!”

“허억!… 그,그 말씀은…”


“듣거라! 타고난 피만을 믿고 그리다니아를 병들게 하는 패륜아들이여! 이 시간 뒤로 본 왕국에 네놈들이 설 자리는 없다! 허나 떠날 필요는 없다! 본 왕이 손수 도륙을 내줄 터이니!”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왕성을 울렸다.
얼마 없던 마나를 전부 사용하며 왕성 전체에 자신의 목소리를 전한 것이다.

굳은 다짐이 담긴 선언을 들은 기사단장이 충격에 휩싸인 얼굴을 했다.
2 왕자가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기 때문이다.
저래서야 현실에서 도피하지도 못하리라.


그리고…
방금 왕자가 신호를 보냈으니, 슬슬 이려나?
나는 살짝 몸을 풀면서 때를 기다렸다.


- 끼긱… 끽… 끼이이익.

그렇게 왕실 기사 전원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고 있을 때.
굳게 닫혀있던 왕성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어,어라?”
“뭐야! 어째서 문이!”
“너! 당장 성문 제어실로 달려!”
“넵!”


- 허둥지둥!


성문이 마법에 의해 자동으로 열고 닫힐 수 있는 시스템이라 다행이다.
덕분에 중세 배경의 드라마나 영화처럼 성벽을  수 있는 장치가 성문 바로 옆에 없었다.


그렇게 성문에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틈이 열리자,
선두에  기사들이 칼을 빼 들고 자세를 낮추며 슬슬 돌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왕실 기사단장이 식겁한 얼굴을 하며 성문 안으로 몸을 뺐다.
이대로 있다간 허무하게 목이 잘릴 거란 걸 알았나 보다.


기기긱… 쿠궁…


제어실로 향한 기사가 사라진 지 이십초가 넘게 흘렀지만, 열리던 문은 닫히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왕성의 성채만큼 거대한 성문이 절반쯤 열린다.
떨어지는 낙엽의 잎맥조차 헤아리게 하는 나의 시력이, 성문 안쪽에 우리를 기다리는 기사와 병사가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아직 왕실 기사단의 본대는 도착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혀로 입술을 슬며시 흩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곧 있을 거대한 전투에 용병 대부분이 입술이 마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눈에 공포를 품은 자는 없었다.
그렇다기엔 옆에 선 수백의 동료와, 몸에 걸친 아티펙트 갑옷이 너무나 든든했기에.


적어도 여덟 명의 기사가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열렸을 때.
가장 선두에서 그 장면을 응시하던 2 왕자가 입을 열었다.


“기사단이여! 오늘은 그리다니아의 역사서에 기록이 될 변혁의 날이다!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결코 잊히지 않을 그 첫걸음을, 자네들의 칼날로 새겨주어라!”


드디어 돌진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말에 선두에 선 기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돌진했다.
준귀족이란 체통조차 잊은 채 속에 담긴 열기를 입 밖으로 뿜어내며.

“와아아아악!!”
“그리다니아를 위해!!”
“왕국의 유일한 국왕, 보드엠님을 위하여!!”
“무장한 자는 전부 목을 쳐라!”

용병들 역시 뒤질세라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기사들은 성문을 향하지 않고 성벽으로 향하는 자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좁은 입구를 뚫기보다는 성벽을 넘으려는  같았다.

- 파악! 퍽! 퍽!

기사들이 별로 특별한 재질이 아닌 평범한 석벽에 칼과 강철 부츠를 박아 넣으며 오르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순식간에 위까지 도달할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런 아군을 성벽 위에  적들이 비웃었다.


“멍청한 놈들! 이 벽에는 전시 상황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
“어,어라? 제압용 공격 마법진이 말을  들어!!”
“뭐?”


- 서걱!

“끄아악!!”
“노,놈들이 올라왔다!!”
“성문뿐만이 아니라 방어 마법진에까지 수작을 부려놨어!!”

성문의 입구만을 방어하기 위해 뭉쳐있던 적들이다.
의외의 곳이 뚫려버리자 명백할 정도로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총력전이 아니라, 입구 막기를 하며 본대가 오기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으니까.


필사적으로 입구를 틀어막던 적들이 성벽을 넘은 기사에게 둘러싸이기 전에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계속 싸우면 몰살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판단이 옳았다고는 절대   하겠다.
명절날 귀성길처럼 꽉 막혀있던 입구가 봇물 터지듯이 뚫린 것이다.
그들은 목숨을 버려가면서 입구를 사수했어야 했다.

- 좋아! 이제야 팍팍 들어가네!!
- 들어가!! 들어가서 좌익 우익으로 나뉘어!!
머릿수의 이점을 잊지 마!!


드디어 용병들이 성문 안쪽을 마구 채우기 시작했다.
병력 소모비가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 공성전인데, 기습이란 이점으로 너무나도 손쉽게 전군 진입에 성공했다.
아직까지 사망은커녕 부상조차 입은 자가 없을 정도로.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되며 다들 코앞의 적에게 칼을 쑤셔 넣는 것에 집중할 때.
나는 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고 있네.’

저 멀리서 부지런히 달려오고 있는 은색의 물결.
적어도 백은 넘으리라 쉽사리 짐작이 간다.
목적지는 당연히 이곳, 성문 안쪽 꽤 큼직한 공터.
왕성의 본대가 도착하기까지 머지않았다.


‘왕성의 본대에는… 당연히 있겠지. 그놈들이.’

달리면서 옆을 바라보았다.
내 곁에는 당연히 크리스가 있었다.
이 수많은 군대 중 유일하게 판금 갑옷을 입지 않은 그녀가.


“크리스. 곧 올 거야.”

“응. 내게 맡겨줘.”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녀만이 가능하며, 그녀의 능력으로 충분히 이룰  있지만, 연인으로서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위험 요소가 없는 건 전혀 아니기에.


콰아앙!!!

그때.
내 머릿속의 걱정을 절단하듯 큼지막한 폭발음이 아군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머리카락을 뒤섞는 후끈한 열기와, 눈을 감아도 선명히 느껴지는 마력의 파동.
언젠가 영지전에서 경험해 본 적이 있는 현상이다.

- 끄아악!!
- 마,마법사다!!
- 젠장!! 흩어져!!


“파이어 볼… 정말 괜찮겠어? 크리스?”


“킥킥. 걱정도 많아라. 나는 괜찮으니까, 나중에 보자.”

 걱정을 악동 같은 미소로 떨친 크리스가 눈앞에서 꺼지듯 사라졌다.


용병들은  멀리 허공에서 파이어볼로 추측되는 불길의 공을 경계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방심하고 있기에 당했지만, 두 번째는 보고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이 분산되며 전투 효율이 떨어진  사실이었다.


그렇게 모든 기사와 용병의 시선이 저 화염 구가 어디로 향할지에 쏠렸을 때.
불의 공이 갑작스럽게 증발하듯 사라졌다.

- 방금 뭐야! 어떤 여자가 방금…
마,마법사님이!!
- 젠장!!


원인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떠한 소음도 없이 홀연히 나타나는 암살자가 마법사 사냥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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