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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200) (200/310)



〈 200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화제를 돌렸다.
너무 깊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다.
데이지는 화제 전환을 반기는 눈치였다.

그녀는 이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내가 당장 줄 수 있는 도움은 없어 보였다.
그러니 생산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시한부 삶에 대한 화제는…
나도, 데이지도 내심 꺼려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나대로 방법을 찾을 것이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절망적이지는 않다.
세상은 너무나 넓으니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혹여 이 세상에는 방법이 없다면?

‘다른 세상에서 찾으면 되지.’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자.
당장은 곧 있을 반역에 집중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데이지의 복수를 대리해서 이루어줄 방법이 사라질 테니까.

“데이지. 난 한동안  공방에 오지 못할 것 같아. 의뢰가 하나 생겼거든.”

“…또 싸우러 가?”

“응.”


“많이 위험…해?”


“……”

많이 위험하다.
무려 왕궁의 호위 기사를 상대하는 일이니, 어쩌면 골렘 때처럼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약 때문에 대답은 주지 못했다.


그래도 침묵만으로 상황을 이해했나 보다.
말없이 나를 지켜보던 데이지는,
연금실로 들어가더니 병 몇 가지를 챙겨 내게 건네주었다.


상태창을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자작 힐링 포션이다.


“넌 칠칠하지 못하니까. …다쳤을 때 먹던가.”


“치료 포션이야?”


“지난번에 줬던 것처럼 무지막지한 위력은 절대 아니야! 절대 과신하지 마. 그냥 위급 상황에서 쓸만한 정도니까.”


“큭큭. 지난번에는 ‘무지막지한 위력의 포션’쯤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며.”


“무,물론 그렇지만! 너 따위한테 전력을 다한 포션을 또 주기에는  실력이 아깝거든?”


“하긴, 용병이 쓰기에는 너무 과분한 위력이긴 하더라.”

내가 순순히 수긍하자 데이지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마치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처럼.

“노,농담인데  진지하게 받아? 너 친구 없어? 지금은 그 포션은 주려고 해도 만들어 둔 것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참…  설명하게 만드는 건데 진짜…”

“오… 친구 없냐는 말은  아팠어.”

“읏, 그… 나,나도 없으니까.”

“큭큭큭. 그건  보면 알지.”

“…너 그건 무슨 뜻이냐?”


소심하게 변한 데이지의 눈이 확 되살아난다.
내게는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보다 이쪽이 더 익숙했다.
그래도 화내기 전에 수습은 해야지.
나는 따뜻한 목소리로 데이지에게 말했다.

“포션, 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고.”

“……”

“잘 쓸게.”


불만을 말하려던 데이지의 입이 쏙 들어갔다.
내 진심이  전해졌나 보다.

“…남으면 꼭 가져와서 반납하라고. 빈 병도 포함이니까!”


“…아하. 큭큭. 알겠어. 의뢰가 끝나면 어디로 새지 않고 돌아와서 병이랑 포션 반납할게.”


“음! 그렇지! 똑똑하네!”


- 끄덕!


눈을 부라리며 내게 경고하던 데이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포션이 남으면 반납하란 말은,
싸움이 끝난 즉시 바로 연금 공방에 돌아오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데이지는 내가 가진 무력의 크기를 모르는 만큼 상당히 걱정스럽나 보다.
그녀가  처음 봤을 때는 커다란 부상을 안고 있었기도 했으니…
그리 이상할 건 없었다.

언제 한번 그녀에게 알려줘야겠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강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에게 걱정을 받는 기분은 정말 나쁘지 않았기에,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 띠링!

나는 그녀에게 받은 포션의 상태창을 열었다.
기존에 종아리가 다친 나를 위해 만든, 하반신 치료에 유독 효과적인 힐링 포션은 아니었다.
어디가 다칠지 모르는 만큼 전체적으로 효과가 있는 약을 주었나 보다.
하지만 그 생김새는 몇 번이나 마셔 눈에 익었다.

“그런데 데이지.”


“말해.”

“아무리 봐도 전에 먹었던 ‘해독약’인데. 병의 모양도 똑같고, 그 색도 똑같고.”


“뭣… 아니거든! 와,완전히 다른 거야! 넌 색깔하고 병의 모양만 같으면 같은 내용물이라고 판단하는 바보니?!”

“큭큭큭. 그래?”

“당연하지! 내가 만들  있는 물약의 종류만 몇백 개인데!”

데이지는 뻔뻔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어때? 반박  하겠지?’ 하는 의기양양한 얼굴을 보면 마구 울상으로 일그러뜨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실제 나이는 나보다 많다는데, 왜 행동은 아이처럼 변할까.
외견이 실제 성격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건가?


“그러고 보면… 내가 의뢰를 하러 떠나기 전에 먹어야 하지 않을까? 독을 완전하게 해독하는 약. 아무리 짧게 잡아도 의뢰는 하루 이상 걸릴 것 같아서.”

“아 그건…”


“그건?”

“지난번 다리가 치료되는 포션을 먹었을 때, 같이 해독됐지. 응. 이제 해독약은 먹을 필요 없어.”

“아하.”

그런 것으로 하자는 뜻이다.
데이지는 더이상 해독제로 묶지 않더라도 믿을 수 있나 보다.
내가 그녀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작 한 달도 안된 만남이었으나, 우리는 서로를 향해 꽤 신뢰를 쌓였다.

“그럼 의뢰에 다녀온  다시 독을 먹일 거야?”

“그런 짓 안 해! 굳이 그렇게까지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넌 답답할 정도로 착해 빠졌으니.”


“오. 뭔가 기쁘네. 그런데… 내게 독을 먹였다는 그 이야기. 언제 거짓말이라 고백할 거야?”


“거,거짓말 아닌데? 증거 있어?”


“넌 남에게 독약 같은 험한 것을 먹이지 못하는 심성을 가진 것처럼 느껴져서.”


내 말에 데이지가 변명하려다 말고 작게 입을 다문다.
취기를 깨우기 위해서인지, 책상 위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니야. 난 네가 보지 않은… 잔혹한 면도 있어. 외견이 어리다고 진짜 어린애는 아닌걸.”


데이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종아리의 부상을 보곤, 이런 심각한 부상은 처음 본다고 했길래 익숙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과거는 내 예상보다 더욱 험난했나 보다.

“그래서. 언제 떠날 예정이야?”


“내일. 아니면 그다음 날.”

“…코 앞이네. 뭔가… 치사하다.”


“미안해. 나도 갑작스럽게 생긴 의뢰라서.”

데이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딴에는 내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했지만, 내 눈과 귀에는 전부 잡혔다.

- 스윽… 턱.

“잠깐 거기서 기다… 윽…!”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데이지의 몸이 쓰러질 듯 기울었기 때문이다.
앉아있다 일어나니 술기운이 확 오르며 어지러움이 덮쳤나 보다.
딱 술을 처음 마셔보는, 갓 성인이  청소년이나 할 법한 실수네.

“큼. 이제 괜찮으니까. 놔줘도 돼.”

“술 처음 먹어봐?”

“…아닌데? 내 취미가 고급 와인을 즐기는 거야. 혼자서.”

거짓말인 것이 분명한 말을 하고서는 뒤를 돌아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자세한 걸 묻기 전에 도망치려는 모양이다.


값비싼 와인을 즐긴다고?
미각과 후각이 없는데 즐기기는 뭘.
그냥 어른스러운 취미를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데이지가 발을 헛디디면 빠르게 다가가 잡아주기 위해 몸의 긴장을 끌어 올렸으나,
다행히 방문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그리 위태롭지는 않았다.

- 끼익.


이제 데이지의 방 안에는 나 혼자 남아있다.
그녀의 방은 열댓 살의 소녀의 방도, 스물다섯 살의 여인의 방도 아닌…
꾸밈이라곤 전혀 없는 칙칙한 방이었다.

오로지 놓여진 것은 연금술에 관련된 책뿐이다.
너무나 실용적이기 그지없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방을 나간 데이지는 금방 돌아왔다.
손에는 하나의 병과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가지고 온 병은 힐링 포션이 아니었다.


“그냥. 넌 취미 같은 거 없어?”

“방금 말했잖아. 나는 와인을 즐기는…”

“그거 말고.”

 거짓 취미는 당장 들추지는 않기로 정했다.
하지만 기억해 두었다 나중에 놀리기로 했다.
적어도 그녀의 복수를 대신해주었을 때.


“취미는… 딱히 없어. 한가하게 무언가를 즐기고 있을 틈은 없는걸. 내겐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전부 치료하고 나면 같이 찾아보자.”


“큭큭. 참, 넌 속도 좋아.”


- 탁.


데이지는 가져온 병과 주머니를 내게 내밀었다.
병에 담긴 액체는 초록색.
하얀 고래 용병단이 이 공방에게 감정을 맡긴 포션이었다.

“자. 받아. 헨리는 감정할 능력이 부족해 보이고, 나는… 넌 내 사정을 아니 이걸 감정할 시간은 없단  알지?”


“…그러네.”


저번에 감정을 도와달라 했을 때 들었던, 시간이 나지 않는다던 말.
이제는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의뢰는 실패야. 그 주머니에는 선수금의 50%가 들어있어. 그… 자넷씨라고 했던가? 네 용병단의 단장에게 전해 줘.”


“응? 5할이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선수금이라면 뱉어내지 않아도 상관없잖아.”

“네가 저번에 말했던 대로, 용병단은 ‘헨리의 연금 공방’에 의뢰했지만… 그 공방에 소속된 나는 의뢰를 돕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내겐 돈은 큰 가치가 없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초록색 물약과 주머니를 챙겼다.
이것으로 의뢰는 정식으로 실패가 확정되었다.

- 띠링!


[소설, ‘하얀 고래의 발자취’가 연중 된 시점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부터 ‘하얀 고래의 발자취’의 완결이 가능해집니다!]


=
[이름] 박찬영
[직업] 밤피르(вампир)
[힘] 31  36 [민첩] 34 → 39
[체력] 32 → 38 [지능] 21  33
[기교] 31 → 37 [매력] 45  51
[마나] 312 → 501


[특성] 『자연치유』 『팔방미인』

선령일일 만요월월(仙令日日 灣謠月月)의 버프, 매력 제외 모든 스텟 +6 (00:00:03)
프룸의 버프, 힘·민첩·체력 스텟 성장률 증가 33% (01:00:13)
마나 각성, 힘·민첩·체력·지능·기교 스텟 성장률 증가 50% · 마나 흡수 小
대지모신(大地母神)의 가호 - [자세히 보기]


현재 진입 중인 소설, ‘하얀 고래의 발자취’의 완성도 - 39% [신규 에피소드의 시작. 연재 중단과 다를  없음.]


보유 카르마: 121,200
=


예상했던 대로 실패가 확정되자 완결이 가능해졌다.
어차피 이미 원작과 많이 틀어졌다.
게다가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눈에 보이는 만큼,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카르마가 많이 쌓였네…’

패시브 스킬은 살 수 있는 것은 전부 샀고,
낮은 레벨의 액티브 스킬은 카르마로 레벨을 올리기 꺼려졌다.
『팔방미인』 특성 덕에, 마나가 차오를 때마다 사용만 해도 숙련도가 쑥쑥 쌓였으니까.


카르마까지 써가며 빠르게 올릴 만  것은 선령일일 만요월월(仙令日日 灣謠月月) 하나뿐인데…
그냥 레벨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큰 전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섣불리 사용하지 않고 아껴두는 것이 좋을 거라는 감이 든다.

“감정을 못 해줘서 미안해.”


“아니야. 근데, 이것으로 내가 여기서 묵을 이유는 사라졌네. 하지만… 하룻밤만 더 자고 가도 되지? 작별 인사는 내일 아침까지 미루고 싶어서.”

“…그,그러던가.”


잡담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이왕이면 데이지와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었지만,
밖에서 기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공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이제 하루종일 그가 내 곁에 붙어서 나를 감시할 계획이다.


“데이지. 이분은 우리 용병단 소속의 단원이셔. 오늘 의뢰와 관련된 이야기 때문에 회의를  해야 하는데… 오늘만 공방에서 자고 가도 될까?”


“앗, 그으… 헤,헨리님께 여쭤보고 올게요…!”


데이지는 낯을 가리는 척을 연기하며 연금실로 도망갔다.
아니면 실제로 성인 남자와 대화하기 부담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나는 데이지에게 설명을 듣고 나온 헨리와 대화했다.
당연히 기사의 숙식 허락은 어렵지 않게 받을  있었다.



*



다음 날이 밝았다.
데이지는 언제나 그렇듯 퉁명스러운 얼굴로 아침 인사를 했다.
다만, 떠나기 전에 아침은 먹고 가라고 붙잡았다.

어지간해서는 공방의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 데이지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 손에 책을 껴안은 채 문밖까지 나와 나를 배웅했다.


- 스윽. 슥.


“으악?”

데이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에.


뜬금없는 어린애 취급에 데이지가 표독스러운 눈으로 나를 째려보았지만,
뒤에 기사가 보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어린 소녀를 연기해야 했다.


“아이참. 이,이러지 마세요… 하하…”

“큭큭큭. 다음에 몸 성히 보자.”

“네에엑…”

뿌드득.

나와 기사는 이빨이 갈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어제의  장소로 향하려 했으나…
기사가 말하길, 2 왕자는 어제와 다른 장소에 있단다.
반란을 모의하는 집단답게 방비는 철저하나 보다.

기사의 인도를 따라 평범해 보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면을 쓴 그는 담담한 몸가짐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2 왕자를 보자마자 확정 짓듯 말했다.


“어제 주신 제안, 하겠습니다.”


- 띠링!


[*HARD MODE*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마음을 굳혔군.”


“네. 용병을 선… 큼. 아. 죄송합니다. 서약서의 발언 금지 때문에.”

“알아들었네. 그럼… 자네 용병단의 단장을 믿고, 맡기도록 하지!”


왕자는 흡족한 말투로 그리 말했다.


선동, 한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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