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어린아이가 술을 마시는 걸 방관해야 하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합법적인 음주의 나이대가 지구보다 훨씬 적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머뭇거리고 말았다.
내가 데이지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을 때는 이미 취기가 도는 것처럼 보였다.
이리 말하기 힘들면 말해주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데이지의 방에 있다.
아무래도 심각한 이야기가 오가는 만큼,
접객실에서 계속 대화하긴 꺼려졌기 때문이다.
“자. 물.”
“…”
“안 받아?”
“나는… 진짜 어렸을 때, 납치당했어.”
데이지는 물잔을 받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술의 힘을 빌리고 싶나 보다.
그래도 용케 또박또박 말하는 걸 보면 생각보다 많이 취하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물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가 언제든 물잔을 쥘 수 있는 위치에.
“납치의 목적은 뭐… 응… 그런 거지.”
“…후.”
“그거 알아? 귀족들 거시기는 진짜 작다? 새끼손가락만 할 정도로. 킥킥킥.”
데이지가 의도적으로 밝게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그녀의 농담에 웃지 못했다.
그런 나를 바라본 데이지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이야길 계속했다.
“…나 말고도 한 십수 명 있었어. 납치당한 애들. 뭐… ‘파티’ 끝에 살아남은 사람은 나뿐이지만.”
“잠깐, 전부 죽었다고? 열 명을 넘는 아이들이?”
“맨 처음은 귀족. 귀족 다음은 기사. 기사 다음은 행정 관료나 시종… 그런 거지. 10살 전후의 나이로 그걸 전부 버텼던 애는 나밖에 없었고.”
나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
반 제국파를 쓸어버릴 때 기사와 시종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다고.
윗물에 비교해 만만치 않을 정도로 아랫물 역시 썩어 있었다.
그중 가담하지 않은 무고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아니, 내 눈에는 전부 똑같아 보였다.
이 세계의 법은 유죄 추정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니 거기에 어울려줘야지.
“그렇게 산속에 십수 구의 시체들과 함께 버려졌고… 누군가에게 주워졌어. 다행이지. 왜냐하면, 그때 난 말 그대로 죽어가고 있었거든.”
나는 속으로 작게 빌었다.
부디 과거 죽어가던 그 작은 소녀에게 단 한 번의 행운이 깃들었기를.
그녀를 거둬간 사람이 악의라곤 없는 선한 사람이기를.
하지만 데이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입에서 한숨이 나오게 만들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사람이 왕실 연금술사야.”
“…그에게 연금술을 처음 배운 거야?”
“그렇지. 대신 대가를 몸으로 지불받고서는. 그때의 그는 별로 이름값 없는 자였는데, 상류층의 취미에 어울리고 싶었나 봐?”
그러니 그 남자를 스승이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아, 데이지는 작게 말을 덧붙였다.
내가 데이지에게 얼마나 호의를 느끼고 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적어도 나는 데이지를 친구라고 여겼다.
그러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투성이 일 수밖에.
그들을 향해 백하민과 동등할 정도의 살의가 끓어오른다.
“네게 손을 대었던 귀족이랑 그 연금술사. 이름 기억해?”
“…귀족은 몰라. 방어 기제일까? 그때의 기억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거든. 근데 그런 건 왜 물어?”
“복수나 좀 해주려고. 너 대신에.”
“뭐? 너 미쳤어?!”
안타깝지만 이 이상은 말해주지 못했다.
서약서의 제약이 내 입을 막았다.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으니 순순히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귀족에 대한 복수는 나도 포기했어! 지금 반 제국파가 얼마나 위세가 대단한 줄 알아?”
반 제국파란 것만 알 뿐, 정확히 특정하지는 못한 다라…
그냥 그쪽 파벌의 귀족을 무차별적으로 죽이면 된다는 뜻이다.
애초에 2 왕자도 그리할 생각이었고,
퀘스트도 그들에게 징벌을 내리라 적혀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일단 알겠어. 그럼 연금술사는?”
“참고로 왕실 연금술사도 전부 귀족이다?…”
“그 정도는 알지.”
“그래? …뭐어. 어차피 상관없겠지. 그 연금술사는 얼마 전에 죽었거든. 사고로.”
“사고라면… 설마…”
왕국 연금술사.
얼마 전에 일어난 사고.
사망.
생각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수도 주위에서 발견된 ‘유적’의 열쇠를 가진 왕실 연금술사.
“데이지. 혹시 널 거두어준 연금술사, 왕국에서 제일 뛰어난 연금술사라던 그 사람?”
“…무,뭐야? 알고 있었어? 하긴… 유명하긴 했지. 날 거둘 때만 해도 평범했던 연금술사가 갑자기 천재성을 각성한 듯, 그런 고차원적인 논문을 몇 개나 냈으니.”
“뒤바뀌듯 천재로 변했다라…”
“인정하긴 싫지만, 그 남자는 천재였어. 학계를 몇 번이나 뒤집어 놓았거든.”
천재는 그가 아니라 유적의 진짜 주인이겠지.
액체 골렘을 만들고 불로의 비약을 만든.
그는 수백 년 전, 연금술사가 눈속임으로 남겨놓은 자료만으로 천재가 된 가짜일 확률이 높았다.
‘…잠깐.’
지금까지 별 의문 없이 남아있던 단서가 합쳐진다.
정말 안 좋은,
진짜 너무나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그 연금술사… 영원히 늙지 않는 약을 연구하고 있었어?”
“어? 너 그건 어떻게 알았어? 분명 학계에 공표하기 전에 죽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유적의 열쇠와 눈속임용 자료.
크리스가 마신, 미로의 중심부에 놓인 비약.
같은 연금술사라면 욕심이 난다.
무려 불로의 비약에 대한 연구 자료니까.
“타이밍이 오니 말하는데, 난 너보다 나이 많아. 그러니까 반말해도 된다고.”
“나는… 네가 내게 반말을 한다고 불만을 말한 적 없는데.”
“아무튼. 나는 원래 스물 다섯 살이야. 보이는 나이는 그 절반에 불과하지만.”
납치를 당한 열댓 살에서 스물 다섯 살까지.
대략 10년의 기간 동안 왕실 연금술사의 밑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동시에 그 기간 동안 끊임없이 더러운 손길을 견뎌내야 했다는 말도 되었다.
솔직히 그녀가 겉보기보다 나이가 많다는 건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연금술의 레벨도, 생각의 깊음도 어린아이에 걸맞지 않았으니까.
어렴풋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닿을 수밖에 없었다.
내심은 그냥 성숙하고, 많이 천재인 어린 소녀였기를 바랬지만.
“그럼… 데이지 넌 왕실 연금술사가 만든 비약을 먹은 거야?”
“그렇지. 그에겐 비약의 실험 대상이 필요했고, 마침 내가 그 옆에 있었어.”
데이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얘는 안 좋은 이야기일수록 담담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타입이니까.
내가 떠올린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가설’은 점점 가능성이 커져만 갔다.
그럴 리가 없겠으나, 그러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아 물어보았다.
“그럼… 네가 먹은 건 완성된 불로의 비약?”
“…그……”
“역시 실패작이었구나.”
애초에 왕실 연금술사가 가진 재능은 그리 없다고 했었다.
그런 그가 홀로 불로의 비약을 만들었을 거라 예상하긴 힘들었다.
그렇다면 데이지가 먹은 건 크리스가 먹은 것과 같은 ‘생명의 씨앗’일까?
수명을 늘려 주지는 않지만, 노화는 막아 주는?
아니다.
정말 빌어먹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데이지는 내가 모르는 종류의 비약을 먹었다.
그것도 너무나 불완전한 약일 확률이 높은 놈을.
왜냐하면…
그녀가 은연중에 보인 부작용이 너무나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데이지. 너는 미각이 있어?”
“…뭐?”
“완전히 사라졌구나. 후각은? 그리고… 청각은? 점점 잃어 가는 중?”
정곡을 찔린 데이지가 몸을 굳혔다.
나는 그 반응을 보고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데이지는 달콤한 와플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
데이지는 탄내가 올라오는 차를 먹어도 그 향을 느끼지 못한다.
데이지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의 인기척을 잘 감지하지 못한다.
이건…
벽을 기어 다니며 유적을 지키던 실험체.
그들이 공통으로 가진 ‘오감을 잃는’ 부작용과 너무나 유사했다.
그리고 모든 오감을 상실한 이후에는, 이지마저 잃겠지.
마치 내가 수십 마리를 죽인 실험체처럼.
- 뿌드득.
“도대체 그 왕실 연금술사 새끼는 네게 뭘 먹인 거야…!”
“……”
괜찮다.
아직 시간은 있다.
부작용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데이지의 외견과 실제 나이를 떠올려 볼 때, 비약을 먹은 지 적어도 7년이 지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사라진 것이 미각과 후각.
그리고 청각은 지금 진행 중이다.
오감을 모두 잃기까지 적어도 5년 정도는 남았다고 볼 수 있다.
“네 말이 맞아. 부작용은 천천히 진행되고 있어. 그래도 너무 걱정 마. 막을 방법은 시간을 들여 찾으면 돼.”
“도대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약이길래…”
“약을 먹자마자 그 약은 실패작이라고 결론 내렸어. 아주 확정적으로.”
너무나 불행이 가득한 삶이다.
데이지가 성인이 아닌, 진짜로 어린아이였다면 토닥이며 위로를 해주고 싶을 만큼이나.
하지만 그런 동정을 바라고 있을 리 없다.
그녀가 원하는 건 마음을 터놓을 친구니까.
그렇게 내 가설이 맞아버린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이어진 데이지의 말속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다.
“오감을 서서히 잃는 부작용이 있었다니, 참… 먹고 나서도 몇 달 동안은 몰랐다니까.”
“…뭐? 잠깐. 조금 발언이 모순되는데.”
“모순?”
“시간이 흐르면 오감이 사라지는 부작용이 있는 줄 몰랐다고? 몇 달이나?”
“그렇…지? 그게 왜.”
저 말은 분명하게 이상했다.
너무나 이상했다.
오감을 잃어 가는 부작용이 있다는 걸 몇 달 뒤에야 알았다니?
그렇다면 왕실 연금술사의 눈에는 불로의 비약을 제작하는 것을 실패했다고 단정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당장 눈에 띄는 부작용이 없었으니까.
그것도 한 달을 넘게 데이지가 멀쩡히 다녔는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실패보다는 성공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데이지의 말로는, 약을 먹자마자 실패작이라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것도 ‘확정적’이라는 말을 쓰며 못까지 박을 정도로.
도대체 어째서?
아무런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오히려 성공에 가까운 것일 텐데.
“…네가 먹은 약에는… 다른 부작용이 있구나. 오감이 줄어드는 것 말고도.”
결론은 하나다.
만든 비약에 중대한 결함이나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오감이 사라지는 것을 제외하고.
‘생각해보자.’
정말로 불로의 비약을 만든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대성공이다.
수명을 조금 늘려주는 비약을 만든다면, 절반의 성공이다.
수명은 늘려주지 못하되 외견을 젊어 보이게 유지 시켜준다면, 적어도 실마리는 잡았다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확정적으로 실패했다고 낙인을 찍는 건 어떠한 경우일까?
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데이지. 너… 수명 얼마나 남았어.”
수명을 늘리기 위한 목적의 약이, 오히려 수명을 깎았을 때다.
질문을 받은 데이지는 작게 입을 벌렸다.
멍하니 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머리가 나쁜 건 아녔나 봐.”
“네가 정보를 너무 많이 흘린 거야.”
“아… 하하. 그런가? 술 때문에 머리가 잘 안 돌아가네.”
“그래서. 대답은?”
“…솔직히? 솔직히 말해?”
“거짓 하나 없이.”
“…들으면 너도 괜히 신경 쓰일 텐데. 후회 안 해?”
나는 말 없이 데이지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올곧은 눈으로 동공을 쳐다보자, 약간 부담을 느낀 데이지가 눈을 피했다.
하지만 대답은 들을 수 있었다.
너무 솔직해서, 되려 비수처럼 가슴을 후비는.
“…1년.”
나오려는 탄식을 눌러 참아야 했다.
당사자인 그녀의 앞에서 과하게 걱정하는 건 오히려 짐으로 느낄 수도 있다.
“약을 딱 먹은 순간 느껴지더라고. 몸이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려가는 게.”
“1년은… 너무 짧잖아…”
“사실… 1년을 견디는 것도… 음…”
데이지는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이어 나올 말이 무엇인지는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시스템이 극찬한 천재 연금술사조차 수백의 실험체를 양산할 정도로 부작용을 해결하지 못했다.
범인에 불과한 연금술사가 자체적으로 만든 비약은 그 질이 더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재능이 떨어지는 이가 불로의 비약에 욕심을 낸 대가는…
엉뚱하게도 데이지가 짊어져야 했다.
“그래서 내게 이 공방의 주인이 너란 사실을 1년만 숨겨달라 말한 거야?”
“1년 뒤면… 둘 중 하나겠지. 죽어서 사라지거나…”
“성공적으로 치료하고 네게 더러운 짓을 한 귀족이 살아 숨 쉬는 이 왕국을 떠나거나?”
- …끄덕.
우리 사이에는 방금의 대화를 끝으로 정적이 이어졌다.
나도 할 말을 찾지 못했고, 그건 데이지 역시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나는 사색에 잠겼다.
찾을 수 있을까?
저 끔찍한 부작용에 대한 치료 약을.
최상급 포션을 만들 수 있는 그녀가 해결하지 못한 부작용이다.
데이지가 부작용을 인지한 이후, 무려 7년 동안 방책을 찾지 못했다.
남은 기간은 1년.
5년이라 생각했던 기간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야. 있잖아. 너 다리 잘라야 할 뻔한 거… 내가 치료해준 거 기억하지?”
“…그런 걸 잊을 리가.”
“그럼… 만약에, 혹시나, 만에 하나 내가 치료 약을 발견 못 하고 죽게 되면… 네가 날 기억해 줄래?”
“뭐?”
“난 딱 하나 있던 가족을 잃어버렸거든. 왕실 연금술사 밑에 있을 때 고향을 찾아 가봤는데, 집주인이 바뀌었더라. 유일한 가족인 부친의… 생사조차 몰라.”
데이지는 담담하게 말했다.
흔들림 없는 말투와는 반대로, 점점 술기운이 올라오나보다.
저리 감성적으로 된 것을 보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 것일까.
그녀의 저런 말은 내 가슴까지 아리게 만들었다.
“그러니 아는 사람은 헨리뿐. 하지만… 내가 죽었을 때, 날 기억하는 사람이 한 명 뿐이라면 쓸쓸하잖아. 외롭고. 난 외로운 게 싫거든.”
용병단이 헨리에게 맡긴 의뢰가 끝나면 난 이 공방에서 떠난다.
그녀는 그 사실을 꽤나 싫어했다.
데이지는 겉으로 보이는 나이처럼 외로움을 잘 탔다.
“치료 약을 만들면 되지. 직설적으로 말할게. 데이지, 난 널 도울 거야. 네가 돕지 말라고 하더라도.”
“…킥킥. 조금, 아니 많이 위로되네. 응. 정말로…”
“재료가 구하기 힘든 거야? 아니면 너무나 값비싼 것?”
“아니. 차라리 그런 거라면…… …아니다. 맞아. 만약 구하기 힘든 재료가 있다면, 널 의지할게.”
“장담하는데, 난 네 상상 이상의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벌써부터 포기하지 마. 아직 1년이나 남았으니까.”
“…그래. 그러자. 꼭.”
데이지는 슬프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능하단 걸 직감했지만, 차마 나를 걱정시키기 싫다는 듯이.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언제나 들고 다녀 내게도 익숙해진 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