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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96) (196/310)



〈 196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왕자님을 뵙…”


- 터억.


“그만두지.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는  선호해서.”

한쪽 무릎을 꿇으려던 나를 기사가 제지한다.
전에 들은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다는 말은 사실인가보다.


- 띠링.

상태창을 살펴보아도 전에  2 왕자가 틀림없었다.
 사실에 몸의 긴장을 얕게 끌어 올렸다.


자넷은 나를 이곳에 데려왔다.
그리고 기사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보이는 기미는 없었다.
그렇다면 왕자의 목적은 나란 뜻이 된다.


거기까지는 용건에 따라 이해할 수 있으나…
문제가 되는 건 2 왕자 본인이 직접 왔다는 것이다.
도대체 내게 무슨 볼일이 있기에?


“이 자가… 자네가 말한 그 수도승인가? 변방이라고 한들, 기사 수준의 무력을 지녔다는.”


“그 밖에 가진 재주가 많고, 머리도 꽤 쓰는 아이입니다.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본 왕자는 하얀 고래 용병단을 신뢰하고 있어. 하지만 입단한 지 얼마 안  자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 묻겠네. 저자는 신뢰할만한 인물인가?”

“입이 가벼운 아이가 아닙니다. 제가, 하얀 고래의 단장 자넷이 보증할  있습니다.”

“오호… 자네가 목까지 내놓고 말한다면.”


2 왕자는 자넷의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목소리에는 미약한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철 가면에 가려져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가면이 없었더라도, 왕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건 똑같았을 것이다.
아무리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한들, 감히 얼굴을 마주 봤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당히 예의 있게 고개만 숙여 2 왕자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도승. 자넨  왕국을 어찌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하면 개판이라 말하고 싶다.
치안을 경비대가 아닌 용병에 맡기는 것부터,
멜이 꽤 위험한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가난한 나라를 만든 것까지.
무엇보다 고위 귀족들이 소아 성애를 즐긴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안 들었다.


하지만 그런 걸 대놓고 말할 리가.
목이 잘릴  있나?
적당히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해 칭찬하면 되겠지.

“저는…”

“아니, 듣지 않아도 대답은 알만하군. 그 누가 왕족 앞에서 왕실을 욕하겠나?”

왕자가 손을 휘저으며 내 말을 끊었다.


답정너인 건 알긴 아나 보네.
왕자가 솔직한 걸 좋아하든 말든, 방금 상황에서 나라 욕을 하는 놈은 정신을 놓은 미친놈이다.

“자네의 입장을 헤아려, 내 직접 말하지.”

“경청하겠습니다.”


“왕국의 실세를 쥔 반(反) 제국파는 그 뿌리부터 썩어 도저히  봐줄 꼴이며, 부강(富强)과 선정(善政)에는 관심이 없고 탐욕(貪慾), 식욕(食貪), 음욕(淫慾)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네. 하물며 수도에서까지 어린 여아가 실종된단 소문이 나돌 때는 기가 차더군.”


“……”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있겠나? 이젠 거렁뱅이조차 본 왕국, 그리다니아가 한때는 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믿질 않아. 철 가면을 쓴 것은 본인인데, 저들의 낯이 더 두껍기 그지없어.”

생각보다 신랄하고, 또 정확한 평가에 놀랐다.
괜히 평소에 두 발로 나라를 돌아다니는 건 아닌가 보다.

왕국민의 고충을 잘 헤아려 주고, 그들을 위해 직접 행동 하는 왕자.
하물며 그가 가진 특성이 말해주길, 국가 운영에 대한 능력도 상당하다고 한다.
2 왕자의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저 판단이 옳은 것이라 말하기엔 힘들었다.
왕실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대가로 2 왕자는 자신의 파벌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을 1 왕자에게 완벽히 빼앗긴 이유다.


“무척이나… 비관적인 시선을 가지셨군요.”

“허나 사실이지. 자네도 느끼고 있지 않나? 왕국은 기울고 있다고. 아니, 기울었다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하나, 또 과하게 비약적인 부분이 없다 말하긴 힘들다 생각됩니다.”


“흐음… 자네는 무척 신중한 성격이군? 용병 단장이 자네를 그리 말한 것이 이해가 가.”

왕자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나빠해야 하는지 모르는 눈치다.

너무 쫄보처럼 보이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형·누나·동생을 욕하는 건 괜찮으나, 남이 가족을 욕하면 울컥하지 않던가?
2 왕자가 왕국에 가진 감상은 그것과 비슷하리라.


그러니 내가 할 처세술은 하나뿐이다.
적당히 가려운 곳을 긁어주되,
왕자가 그어  선이 어딘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조심이 발을 디딜 수밖에.

“한데, 무지렁이인 제게 어찌 이런 이야기를?”

“결론이라… 그래. 말해야지.”


왕자가 짧게 뜸을 들였다.
이윽고,
철 가면 속 닫힌 입술이 열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과인은 결심했다. 왕국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자고.”

한번 목을 가다듬은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선명하고,  올곧았다.
그 말 속에 담긴 의미와 다르게.

“……제가 방금…?”


“잘못 들은 것이 아닐세. 본 왕자를 지지하는  제국파는 총 3할.  부족한 몸에 기꺼이 목숨을 걸어 준 충신과 함께, 기울어 가는 왕국에 광명을 되찾으리라.”

지금…
내가 설마 왕위 찬탈권에 대한 도전 선언을 들은 건가?
그것도 왕자가, 용병 따위한테?

원작 시점에선 이런 중대한 사건의 조짐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2 왕자라는 인물이 있는지도 서술되지 않았으니.
나로서는 염두에 두었을 리 없는 상황인 것이다.


“과인을 비롯한 ‘친(親) 제국파’들의 잘못이 없다 말하진 않겠네. ‘반(反) 제국파’의 압도적인 수에 밀려 고삐를 제어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올바르지 않은 것은 마땅히 고쳐야 옳지.”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군요… 제가  이야기를 들어도 되는 것 맞습니까?”


“하하하! 그러니 반드시 자네를 설득해야지. 과인은 어깨에 짊어진 이가 많으니.”

설득이라…
좋게 말해서 설득이지, 이야기가 틀어지는 낌새가 보이면 살인 멸구 하겠다는 뜻이다.
무려 반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자를 살려 보낼 리 없으니까.


‘후우… 정말, 『자연치유』 덕은 톡톡히 보네.’


눈앞에 있는 이는 역심(逆心)을 품은 왕자.
그리고 나는 일개 용병.
상황은 원작에도 나오지 않은  분기를 앞두고 있다.
혹여 말실수라도 하는 순간,
옆에 있는 기사가 망설임 없이 내 목을 자르려 들겠지.

전력을 다한다면 도망치는 것 정도야 가능하지만…
이런 눈에 띄는 외모를 하고는 다신 왕국에 발을 딛지 못하리라.
짙게 일은 동요가 눈동자를 진동시켰으나,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쉰 것만으로 혼란은 가라앉았다.
짧은 시간 굳었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일단 이런 변수가 생긴 원인부터.’

원작  2 왕자는 반역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연중이 될 때까지는 ‘하얀 고래 용병단’에 접촉하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왕자는 유적으로 직접 내려와 자넷을 포섭했다.

가장 처음 발생한 나비의 날갯짓이라 짐작이 가능한 건…
‘유적에서 보물이 발견되지 않음’인 것 같다.


용병을 중요하게 쓰려고 하는 왕자.
용병이 보물을 빼돌렸으리라 의심하는 귀족들.
딱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갑작스럽지만, 감히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유적에서 보물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을 때. 혹시 귀족들이 용병들을 핍박하려 했습니까?”

“…그건 어찌 알았나? 당장 용병들을 잡아 고문을 시켜야 한다고 길길이 날뛰더군.”

“제 생각이 맞았군요.”

“어처구니없는 건,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안건이 정말로 통과 직전까지 갔다는 거야. 그렇기에 과인이 말을 일축시키고 직접 유적으로 내려온 것이지.”

“혹시 정말로 용병을 옥에 가두었다면… 으음… 커다란 반발을 살 뻔했네요.”


“극도로 발전한 용병업! 우리 왕국에 단 하나 남은 특산물이자 큰 이점이야. 유일하게 왕국을 부흥 시켜 줄 무기인데, 반 제국파  돼지들은 용병의 소중함을 모르지.”

나는 깊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2 왕자는 용병의 값어치를 안다.
그런 그가 용병을 어떻게 써먹을 생각인지는 훤하게 읽혔다.

“용병들을 인접한 나라로 파병시킬 계획이십니까? 으음… 쉽게 말해 용병을 타국에 대여해 준다고 할까요? 거래를 주도한 왕국은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허?”

“엇… 용병들이 타국에서 의뢰를 수행할 경우, 수시로 돈을 떼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국가에서 주도하여 의뢰를 받아,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고자 하신 것이 아니신가요?…”

자넷은 이곳에 오며 분명히 말했다.
왕족은 물론 귀족까지 의뢰 완수금을 떼먹으려고 발악한다고.
 주변에서 가장 생활 수준이 높은 제국이 그러는데, 다른 나라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 눈동자만을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왕자가 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확한 감정은 철 가면 때문에 표정을 읽지 못하겠다.
그는 지금 고민하고 있을까, 아니면 멍을 때리고 있을까?


정답은 곧 알게 되었다.

“…놀라워! 이게 정말로 용병의 시야라고? 넓군! 왕궁에 눌러앉은, 향락에 뇌가 썩은 돼지보다 나을 정도야!”


“…이 모두 왕국의 치안이 안정화 되고, ‘수많은 용병들이 일감 부족에 허덕여야 한다’는 중요한 전제가 따라야 하지만요.”


“옳다!”


철 가면의 뚫린 눈구멍 사이에서 왕자의 눈이 빛을 발한다.
그의 안에서  가치가 팍팍 오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별 대단한 추측을   같지는 않은데…
아니, 생각해 보면 당연한가?
2 왕자는 ‘나와 크리스가 개입하지 않았을 때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진실은 내게 주어진 단서는 꽤 많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나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 계획을 꿰뚫은 자로 비추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큰 걸림돌은 치워지지 않았습니다.”


“알 것 같군. 왕좌를 차지할 수단에 대한 것이겠지?”


“…맞습니다.”


왕실의 수뇌부를 차지한 이는 대다수가 반 제국파.
이건 무력으로 미는 수밖에 답이 없다.
어느 쪽이 이기든 푸른 피가 왕궁의 바닥을 흥건히 적시겠지만…
이 정도 내전이야 지구의 역사에도 흔하게 있었던 일인데 뭘.


반역의 성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그 무력의 여부다.
따르는 세력이 없어 보유한 기사단이 반 제국파보다 적으니,  공백을 용병으로 대체하여 반역을 일으킨다?
초등학생조차 고개를 저을법한 발상이다.


‘불가능한 이유가 도대체 몇 개야?’

돈으로 움직이는 용병이  없는 2 왕자를 따르리란 보장이 없다.
단체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용병이 ‘기사단’처럼 하나가 되어 뭉칠 리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을 걸고 싸워 얻는 이득이 없다.

가만히 있어도 일거리가 넘치는 환경인데  하러 목숨까지 걸며 반역을 도와주겠나?
왕위 찬탈이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돈도 목숨 다음에 챙겨야지.

‘당장 눈에 보이는 금화를 쥐여준다면, 무식하기 그지없는 대부분의 용병들은 왕자를 따를지 몰라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갈 텐데? 힘도 권력도 없는 2 왕자에게 그런 돈이 있을 리가.’


수십번의 기적이 겹쳐 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한들,
애초에 용병은 기사에게 맞상대가 안 된다.
상식적으로 반(反) 제국파가 보유한 기사가 한둘도 아닌데, 어떻게 용병만으로 대체 하겠는가?
단순히 무력의 일부분이 되어 힘을 보태어 주는 정도면 몰라도.

2 왕자를 지지하는 세력이 3할 정도 된다고 했다.
단순 셈으로 30%와 70%, 무력의 격차는 4할이다.
이런 커다란 차이를 좁혀줄 정도로 용병은 만능이 아니다.

파악한 문제점을 하나씩 짚기 시작했다.
비꼰다는 감정이 들지 않도록, 부드럽게 돌려 말하는 화술을 사용한다.
왕자답게 학식을 쌓았다는 걸까?
그는 은유적인 표현임에도  알아들었다.


“하하하. 오늘은  유쾌한 날이군! 자네, 공무에 관심 없나?”

“죄송합니다. 저는 제 직업에 상당한 만족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고 보니 자네는 용병이었군? 게다가 일류 용병단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출중한 무력을 가진… 아니, 그래도 안타까워. 자네가 문관이 아니라니? 이것만큼 재능을 썩히는 일이 없을 텐데!”

2 왕자가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정도로 내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신중하고 생각이 깊으면서도, 상당히 급진적인 인물이다.
한번 내린 판단을 실행하길 망설이지 않는다고 해야 옳을까.
그가 어째서 『어진 군주』란 특성을 가졌는지 알 것만 같다.

그런 그가 지적당한 문제점을 보완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나로서는 마땅한 정답이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한낱 용병과 왕자는 가진 정보력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가령 2 왕자가 용병 전체를 고용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숨겨두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살짝 기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왕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리 현명해 보이는 자가 반역을 결심할 정도이니, 분명 돌파구가 있으리라.


승리 계획이 확실하고,
 대가만 만족스러운 정도면…
이런 깊숙한 이야기까지 해주면서 내게 구할 협조.
해주지 못할 것도 없다.

이 반란을  주도하에 성공적으로 완료시키면…
하드모드 퀘스트 클리어는 기본에, 소설의 완성도까지 극도로 끌어 올릴 수 있어 보이니까.
하루라도 빨리 용사를 뛰어넘어야 하는 지금.
왕자가 짜놓았으리라 예상되는 판은 꽤 구미가 돌게 만들었다.

“일단 자넨 한가지 오해를 하고 있네. 용병은 중히  것이나, 계획의 가장 큰 핵심은 용병이 아니야.”


“용병이 아니라니… 역시 따로 준비를 해두신 방법이 있단 뜻이군요.”


“제국. 제국이 계승권 찬탈을 돕기로 했네.”


“제…국?…”

2 왕자는 목소리에 무게감을 담아 그리 말했다.
그와 별개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차가운 철 가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례라고 질책해도 할 말이 없으나, 의지로 제어하기 전에 튀어나온 조건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방금 저  가면 아래에서 ‘제국’이라는 단어가 나왔나?
국가 내전에 타국을 끌어들이다니?
그것도 바로 국경을 마주한 붙은 강대국을?
나는 순간 2 왕자가 제정신인지 의심했다.

‘제국이 뻗은 손을 잡는 순간, 왕좌에 앉는다고 한들 꼭두각시가 되어버릴 텐데?’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한 2 왕자는…
여전히 담담한 몸짓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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