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95) (195/310)



〈 195화 〉하얀 고래의 발자취


멜은 데이지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겸양을 보이며 조용히 괜찮다고 하던 데이지가 점점 지쳐갈 때까지.
아무튼 중요한 것은, 멜의 감사가 확실하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데이지는 포크를 들어 썰려진 와플을 찍고 있었다.
과도하게 작게 조각난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와플은, 데이지의 작은 입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오물오물.

멜이 눈을 빛내며 데이지의 반응을 관찰했다.
달콤한 것을 먹은 소녀의 반응이 기대되나보다.

“그… 멜씨?… 그리 보시면 좀 부담되는데…”

“앗, 미안해! 어때? 맛있지? 아, 데이지 너는 수도에 사니까 가끔 먹으려나?”

“아뇨… 이건 처음 먹어봐요.”

“어라? 정말로? 그럼 감상은 어때? 엄청 맛있지 않아?”


“어… 어어… 마,맛있네요?…”

데이지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린애가 달달한 간식을 먹었을 때의 기쁨이란 한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얘는  걸 싫어하나?

그러고 보면  탄내가 나는 차도 곧잘 마시곤 했지.
데이지는 의외로 괴식이 입에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 하하! 그렇구나! 큼…”


생각보다 소극적인 반응에 작게 실망한 걸까.
멜이 헛기침을 하며 자신의 몫인 와플을 입에 넣었다.
데이지의 조각보다 훨씬 커다랗게 썬 조각을.


한입 가득히 와플을 넣은 멜은 행복한 얼굴로 입을 우물거렸다.
얘가 한 시간 전만 해도 눈물을 보였단 것이  믿기질 않네.

“…사주셔서 고마워요. 제가 차라도 타올…”


“앗! 아,아니야! 나는 물로 충분하니까!”
“나도 괜찮아.”

차를 타오겠다는 데이지의 말에 나와 멜이 다급하게 말렸다.


*


해가 완전히 하늘에서 사라진 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이 세계의 보편적인 생활 습관인데도, 수도의 거리는 술기운에 몸을 맡긴 자들의 고함이 간간이 귀를 울렸다.
하지만 이건 귀가 밝은 나이기에 들을 수 있는 소리다.
커다란 가정용 발광석에 의지해 책을 읽고 있는 데이지의 귀에는 무엇도 들리지 않겠지.

 발광석.
보기에 굉장히 유용해 보여서 어떻게 구했는지 물어봤더니, 아티팩트란다.
심지어 마도학이 발달한 제국에서 공수해 온.
그래도 상점창에 등록은 마쳤으니 언젠간 유용하게 쓸 때가 오지 않을까?

“……”


- 파락.

크리스를 비롯한 다른 단원들에게도 쾌유를 축하받았다.
그들은 내 부상이 어디까지 악화가 되었는지 직접 본 적이 없었으니,
연금술사가 내준 힐링 포션이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멜은 직접 부상을 봤지만…
내가 깊은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궁금증을 삼켰다.

최상급 포션을 받은 것은 나와 데이지 둘만이 알고 있어야 한다.
혹시 황실에 납품이 예정되어 있는 물건을 빼돌린 것을 들키면, 곱게는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데이지에게 폐가 가지 않게는 해야지.


“그런데 데이지. 전에 맡긴 물약의 감정 결과는 언제쯤 나올까?”


“응? 뭐라고 했어?”

“너 집중력이 엄청 좋다. 따로 신경을 기울이지 않으면 외부의 소리가 잘  들려? 특히 책을 읽을 때는.”

“…네 목소리가 너무 작은 거야.”

데이지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봤지만, 내 목소리 크기는 평범했다.
정작 그녀의 말대로 크게 목소리를 내면 이상한 비명과 함께 깜짝 놀라는 주제에 무슨.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하려 했는데?”


“진짜 못 들었나 보네. 그 초록색 물약. 언제쯤 감정이 끝날지 궁금해서.”

“말했잖아. 헨리가 나 대신 일 하고 있다고. 가끔 경과를 듣긴 하는데… 많이 헤매는 모양이더라.”


“너는  도와줘? 네 실력이면 금방 감정을 할 것 같은데.”


“하얀 고래랑 계약한 건 내가 아닌 헨리니까.”


“정확히는 ‘헨리의 연금 공방’이랑 계약한 거지. 너는  공방의 주인이고. 게다가 일이 빠르게 끝나면 서로 좋잖아?”

- 움찔.


“…빠르게? 좋아?”

데이지가 살짝 눈썹을 꿈틀대었다.
어느 부분이 심기를 건드렸는지 알만하다.
하지만 데이지가 솔직하게 말할 리 없으니, 내가 확답을 내려 주기로 했다.


“이상한 걱정 하기는. 설마 거래가 끝나면 너를  찾아 오겠어? 비록 용병단으로 돌아가더라도, 자주 놀러 올 테니까 외로워하지 마.”


“야! 멋대로 생각을 유추하는  그만둬! 내가 외로움을 탄다고? 네가 사라지면 드디어 독서에 집중할  있고, 나야 좋지 뭐.”

데이지가 목소리를 높여 반박했다.
하지만 내심은 나의 대답이 합격점이었나 보다.
언성은 높아졌지만, 냉기를 뿌리며 날이 섰던 표정은 오히려 사라졌기에.


솔직하지 못할 뿐, 속으론 내가 이 공방에서 사라지는 걸 반기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반박에 속아 넘어가는 척 하기로 했다.
내게는 물약의 감정을 빨리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 그럼 조금씩만 헨리를 도와줘.”

“…안돼.”

“어째서?


“난… 지금 해야  게…”

- 꼬옥.

책을 잡은 데이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손에 들린 책은 처음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먹고  때를 제외하곤 단 한 순간도 저 책에서 눈을 떼어놓지 않았으면서.
지금까지 보여준 집중력에 정 반대되는 독서 속도다.

그 정도로 해석이 어려운 책일까?
확실히 그럴 것 같긴 했다.
어려워 보였던 제목도 그렇고,
슬쩍 보이는 내용은 내가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저 책에 반드시 알아내야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겠지.
어쩌면 데이지가 실력을 숨기고 있는 것과 관계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급하게 공부할 것이 있나 보네. 잘은 모르지만, 연금술 관련 국가 자격시험이라도 가까워졌나?”


“…뭐 비슷한 거지.”


데이지는 ‘해야  것’이란 주제로부터 말을 돌리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나는 모른  넘어갔다.
굳이 말하기 싫어하는 것을 캐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물약의 감정은, 여러 테스트를 거쳐서 경우의 수를 하나씩 지우는 작업이야. 아무리 천재라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수밖에 없어.”

“네가 도움을 주더라도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맞아.”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내가 데이지에게 물약의 감정을 보챘던 이유…
그건 최근 들어 의문 하나가 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가 언제쯤 완결이 가능하게 될지에 대해서.


원작 소설과, 나와 크리스가 개입하며 변한 이 세계는 상당히 틀어졌다.
분기가 갈렸다기보다는…
스토리의 진행이 훨씬 빨라졌다.


원작에선 자넷이  부상을 입고 유적 탐사가 질질 끌린다.
게다가 고위 귀족이 유적에 내려온 것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겪은 현실은 달랐다.


‘원작 시간대에선 지금쯤에야 미로의 끝을 발견했으려나?’


자연히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연중 된 시점을 따라잡았다는 판단은 어떻게 될까?

내가 얼마나 스토리를 앞당겼든, 고정된 시간을 정해두고?
아니면 시간과 관계없이 에피소드의 진행도를 따라서?

전자라면 완결이 가능해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리라.
적어도 몇 주는 더 있어야 원작의 시간대를 따라잡을 테니까.


하지만 후자라면…
연중 된 시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물약의 감정 실패라는 결과가 나온 이후 연재가 중단되니까.


‘솔직히 후자였으면 좋겠네. 잘못하면 완결할 타이밍을 놓칠  있으니까.’


완결의 선택권은 빠르게 얻을수록 좋다.
어차피 원작 에피소드 이후의 스토리를 모르는  똑같기 때문이다.



*





“데이지님! 너무 어렵습니다! 반응을 끌어내 보려고 해도, 도저히 작용을 보이는 물질이 없어요! 마치 맹물처럼!”

“맹물은 아니야. 너도 봐서 알잖아? 병에 담긴 액체는 초록색인 것. 세상에 초록색 맹물이 어디 있어? 무언가 원인이 있기에 색을 띠는 거야. 그 점을 파고들라고.”


“당연히 그리했지요! 하지만 식물성 원료의 농축액이나, 녹색 피부를 가진 몬스터의 피가 보이는 반응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물감의 원료가 되는 공작석(孔雀石)조차 아니었…!!”


다음  아침.
날이 밝자마자 헨리는 데이지에게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며칠을 연구해도 단서 하나 잡지 못했다며.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니,
 학자가 할법한 생각이다.


‘사실은 소금이랑 과일 향 첨가제가 좀 들어간 맹물일 뿐인데…’

아무래도 원작과 다른 이유로 감정이 실패할 것만 같다.
이 세상에는 식용 색소를 탄 초록색 이온 음료는 없는 것 같으니까.


- 옥신각신!

그렇게 아침도 먹기 전부터 의견을 교환하는 둘을 구경하고 있을 때.
연금 공방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파계승. 다시 한번 쾌유 축하해.”


“단장님? 3일 연속으로 보네요? 게다가 이런 이른 아침부터.”


“……그러네.”


어쩐지 자넷의 표정이 흐려 보였다.
정확히는 깊은 근심에 잠겨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넷은 접객실의 의자에 앉지 않았다.
대신 내게 조용히 턱짓해 밖으로 따라 나오라는 몸짓을 했다.
분위기상 공방 앞에서 이야기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꽤나 떨어진 장소까지 걸어갈 것만 같은 느낌.

나는 조용히 눈짓으로 불어보았다.
내 역할은 헨리와 데이지가 혹시 물약을 들고 도망갈까 봐 감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후우… 상관없어. 그런 것보다  배나 더 위가 쓰린 이야기가 있거든…”

“최근 단장님이 계속 신경을 쓰신  이야기인가요?”

“…나 그렇게 티 났나?”

“많이는 아닙니다. 제가 관찰력이  좋아서.”


나는 아직도 말다툼이 끝나지 않은 데이지와 헨리를 향해 말했다.
잠깐 어디 다녀올  같다고.
말을 하지 않고 갔다가 혹시 볼일이 길어져서 데이지를 기다리게 만든다면 꽤 혼날 것이다.


- 저벅저벅.

나는  없이 걷고 있는 자넷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표정이 꽤 심각해 보였기에,
평소의 나라면 했을 굳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은 던지지 않았다.


방향은…
하얀 고래가 머무는 숙소도, 유적이 있던 수도 외각 쪽도 아니다.
내가 전혀 모르는 방향이다.


“너는… 우리나라, 그러니까 왕국의 사정에 대해서 잘 모르지?”

“이젠 어느 정도 알지만요.”

“그래? 그럼 나라 상황이 개판인 것 정도는 알겠네?”


“…듣기는 했습니다.”

내가 직접 보아왔던 왕국은 꽤 살만해 보였기에 실감은 못 했으나,
멀리 떨어진 국경선 부근이나 작은 마을의 경우는 굶어 죽는 사람이 허다하다고 들었다.
몬스터의 영역인 숲에 산적이 자리 잡을 정도이니 얼마나 도적 떼가 들끓는지는 쉽사리 예상되었다.


“참, 웃기는 이유이지만… 그래서 이 나라의 용병 산업이 제국에 준할 정도로 발전한 거야. 전국적으로 치안이 엉망진창이니, 돈으로 살 수 있는 무력이 중요해진 거지.”

“저희는 용병으로서 좋아해야 하는 걸까요?…”

“뭐… 일거리가 넘쳐나는 건 둘째치고, 일단 용병의 입지가 강해지니 나쁜 건 없지.”

“입지가 강해진 다라…”

“당장 왕국에선 용병에게 돈을 떼먹는 건 왕실도 함부로 못 할 짓이잖아? 제국은 전혀 다르지. 왕족은커녕 귀족이 의뢰 완수금을 뒤로 미뤄도 찍소리 못하거든.”


자넷의 말은 경험담처럼 느껴졌다.
아마 제국에 가서 돈을  일 뻔한 적이 있었나 보다.


물론 돈귀신인 그녀가 진짜로 대가를 못 받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서 받아 내었겠지.
자넷이 가진 특성의 힘도 있고.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런 이야기는 왜? 아, 제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오늘은 달라. 이건 필요한 이야기야.”

“필요한 이야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용병 중에서도 하얀 고래는  특별한 취급이란 것. 어지간한 기사단보다 높게 치기도 하거든. 1개 기사단은 고작 10명도 안 되지만, 우린 50명이니까.”


기사의 스테이터스는 여러 번 봐서 알고 있다.
기사 개인은 정말 강하긴 했으나, 기사 10명과 하얀 고래 50명이 맞붙는다면 도저히 질  같지 않았다.
오히려 잘만 싸운다면 20명까지도 상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사 몇 명을 고용하고 끝이 아닌, 제대로  기사단 운영은 어지간한 귀족도 운영할 엄두를 못 낸다.
전에 영지 전이 있었던 곳처럼 오래전부터 기사 가문이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 보니 하얀 고래 용병단이 보유한 무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준인지 새삼스럽게 체감이 와닿는다.


“저희는 꽤나 이름이 있었군요?”

“그게 아니면 전국에서 우릴 알아볼  없잖아? 그래서 결론은, 앞으로 있을 일에 크게 놀라지 말란 거야. …불가능하겠지만.”


자넷은 쓰게 웃으며 한 건물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도착했나보다.

‘평범한 민가처럼 보이는데?’

아무리 봐도 특별할  없는 수도의 민가였다.
지어진 지 오래되어 살짝 더럽고, 올린 층은 1층이 끝인.


- 똑똑. 똑. 똑.

자넷은 그녀의 손으로 문을 열지 않았다.
그저 규칙적인 리듬으로 문을 노크했을 뿐이다.
미리 약속한 암호를 신호하듯이.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렸다.
안쪽의 사람이 열어준 것이다.
평상복을 입었으며, 허리에 검을 찬 남자가.


창문을 전부 막아 둔 탓일까?
건물 밖은 눈부신 아침임에도 안쪽은 너무나 어두웠다.


- 띠링!


하지만 상태창을 열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문을 열어준 눈매가 사나운 사내.
 남자는 기사다.

‘이런 평범한 민가에 기사라…’


기사는 우리를 보곤 말없이 민가의 안방이라 짐작이 되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가 우리를 안내해  방에는…

 가면을  남자.
2 왕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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