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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83) (183/310)



〈 183화 〉지구

“그럼 찬영님! 전 선배랑 같이 다녀올게요.”

“찬영의 입장에는 순식간일 거야.”

나는 둘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기천사에게 천사의 고리를 돌려주며.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갔을 때처럼 먹먹한 느낌이 들던 오감이 다시 돌아왔다.
내 존재가 완벽히 드러난 것이다.


“조심히 다녀와. 용사와의 협상은… 맡길 수밖에 없겠네.”


“…응! 걱정 마. 우린 지금 상태를 유지시켜도 상관없으니까. 아니면 용사가 찬영을 완벽히 포기하던가.”

안젤리가 말하길,
내가 용사의 공격에 순간을 버틸 무력을 갖출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공격이 감지되는 순간 안젤리는 물론이고 다른 천사들이 그를 제압하기 위해 달려들 테니까.

즉…
지금의 나는 놈의 일격에 즉사를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텟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여태까지 본 능력치   자릿수에 달하는 스텟은 처음 봤기에.


‘조급할 건 없지. 지금까지처럼  걸음씩 나아가면 돼. 놈은 더이상 강해지지 못하니.’

내게 손을 흔드는 안젤리와 아기 천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눈을 한번 깜빡였을 때,
아기천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으아아아…”

안젤리가 갑작스럽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축 처진 어깨는 그녀가 지쳐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아무래도 용사와 이야기를 끝마쳤나 보다.

‘아기천사는 돌아오지 않았나 보네?’


피곤이 들어찬 표정은 이야기가 몇 시간 만에 끝나진 않았음을 알게 해주었다.
…아니.
어쩌면 대화는 금방 끝났을 수도 있다.
용사의 성격을 다시 떠올려보자.
아무리 나라도 한 시간 정도를 그와 대화하면 안젤리처럼 지칠 것 같다.

“거래는 어떻게 됐어? 아기천사는?”

“결국 제자리걸음… 찬영과 대화만 하고 싶다는데, 의도는 뻔하지.  남자를 상대로는 차원을 사이에 두고도 방심할  없어.”


안젤리와 용사의 거래.
그녀는 천계의 인권 법률을 어긴 죄를 용사가 뒤집어쓴다는 조건으로, 백하민을 직접 대령해 준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용사는 거부했다.
‘겸사겸사 오랜만에 고향 땅을 밟아 보고 싶다.’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로.


안젤리가 위험 부담까지 짊어져 가며 크게 양보한 제안을 거절하다니?
목표는 백하민 뿐이라던 발언과 너무나 모순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개새끼.’

이렇게 되면 목표는 뻔했다.
극구 부인하며 아닌 척했으나, 사실 나도 백하민에 준하는 목표였던 것이다.
물론 입으로만 하는 보증을 홀랑 믿는 머저리 새낀 용사의 첫째 아들놈 말고는 없겠지만.


“용사 박시우는 겉으로 보면 엄청 젊어 보이지? 하지만 사실 백 년을 넘게 산 노괴야. 거짓말에 속으면  돼.”


“속기 이전에  티끌도 믿지 않았어.”


“후후. 그럼 다행이고.”


일단 놈이 나를 반드시 만나려 한다는 건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건…

“용사는 마음 내키는 대로 지구로 향하는 틈을 열 수 있는 거야?”


“당연히 안되지. 적어도 차원 좌표를 알아야 해.”


방금은 어떻게 차원 좌표를 알아낸 것이지?
그러고 보면 이 집은 용사가 살던 집이다.
허나 그때의 놈은 세계를 구한 박시우가 아닌, 아무 능력이 없던 박시우였다.
과거에 갔었던 공간의 좌표도 알 수 있는 건가?


나는 이 문제를 안젤리에게 물어보았다.


“…후배가 용사의 차원 이동을 방해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접촉했잖아? 그때 후배에게 수작을 부렸나 봐… 그래서 후배가 지구에 도착하자마자 용사가 나타났던 거고.”


“어휴… 또 걔야?”

“윽!… 후배를 욕하지는 말아 줘… 그런 은밀한 역추적, 감지할 능력 자체가 없거든.”

조심성 부족이 아닌, 능력 자체가 부족하다니 탓할 수도 없다.
안젤리가 나를 지켜야 하는 지금.
아기천사를 제외하곤 용사를 막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미리 알고 있었어도 일어나고 말았을 일.
이건 천재지변이라 불러야 하는 놈이지, 아기천사의 죄는 아니리라.
게다가 결과적으로 잘 되기는 했다.
용사의 성장을 영구적으로 막았으니까.


“사실, 나조차 정밀 검사 전에는 수작을 눈치를 못 챘어. 저번에 말했지만, 그 괴물… 나보다 훨씬 강하니까.”


“그래도 재발 방지는 했지? 표정이 밝은 걸 보니.”

“당연히! 두  다시는 헛짓 못 하게 난수화는 기본에다, 기존 좌표까지 갈아엎었으니 절대 지구를 못 찾을 거야.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어… 그렇게 쉽게 조치가 가능한 거였어?”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안 했지?
그 의문은 곧바로 풀렸다.


“이러면 지구에서도 그쪽 차원으로 간섭이 불가능해지거든. 그래도 이건 찬영이 강해지기 전까지만 ‘잠깐’ 유지할 거니까, 위법은 아닌 정도? 어차피 보안 감사 기간엔 자주 이러거든.”


“잠깐이라… 내 생각에 1년은 지나야 안정권이라 생각하는데 그리 오래 막아도 괜찮은 거야?”


“응? 1년이면 엄청나게 짧은 시간 아니야? 보통 감사 기간에는 최소 100년… 아앗!”

“…”

“마,맞아! 1년! 응! 1년은 길지! 그래도 괜찮아!”

아무래도 인간과 천사의 시간관념은 상당히 차이가 있는 듯했다.
갑자기  생각인데,
안젤리는 도대체 몇 살일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 이상으로 나이가 많다 하더라도 싫어지는 게 아니며, 그녀도 평소에 나이 관련 주제는 꺼린다.
 신경 쓰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유 없이 상처를  필요는 없지 않은가?


허둥지둥.


“그,그래서 후배는 지금 용사의 차원 이동 절차를 질질 끌고 있어! 여태 그랬던 것처럼!”

안젤리가 최선을 다해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런 노력이 가상하여 모른  흘려 넘겼다.

“앞으로 이런 위협은 없을거야. 적어도 상사에게 걸리기 전까지는?… 그래도 걱정하지 마. 지금 천계는 엄청 바쁘거든. 지구 관련 일은 내게 대부분 위임할 정도로.”

배신자의 색출.
그것 때문에 천사장급 천사들은 정신이 없으리라.
우리에게는 나쁜 것 없는 이야기다.
그녀가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게 들키니까.

“응. 수고했어. 나 때문에 고생하네.”

“…아니야. 다들 골치 아픈 상황에 끼인 거지… 나도, 찬영도, 내 후배도…”


- 스윽.


슬며시 그녀의 곁으로 가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나와 대화하며 목소리는 제 톤을 찾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피로가 서려 있다.
평소 생글거리던 그녀의 표정과 대비되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러니 어깨라도 주물러 주고 싶었다.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찬영?”


“그냥 안마야. 수고했으니까 해줄게.”

“안마는 받아본  없는데…”


“그래? 천사는 근육이 안 뭉쳐?”


“당연히 뭉치지! 발키리가 되기 위해 훈련할 때마다 얼마나 근육통이 심한데.”

“이참에 한번 경험 해봐. 딱히 내가 안마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못하는 것도 아니니.”

“으응… 그럼 조금만?”


안젤리의 어깨를 손바닥 안에 담았다.
내 손이  건지, 아니면 안젤리의 어깨가 왜소한 건지…
한 손에 전부 담을  있는 크기다.
안마하기 편하겠네.


- 주물.

“흐악?! 앗! 잠, 흐읍!”

“어라? 아파?”

“그,그건 아닌데! 너무 간지러워서어엇?!”


- 주물.


생각 이상의 감각에 안젤리가 크게 놀랐다.
순백의 깃털로 뒤덮인 날개가 파르르  정도로.
많이 자극적이었나보다.

그럴  했다.
안젤리의 어깨는 놀랄 정도로 굳어 있었다.
적당한 악력으로 주물러 풀어주는 맛이 있을 만큼이나.

“계속할게?”

“조,좀 살사아알?! 힉!”


아프지 않을 정도로 힘을 조절하며 어깨를 마사지해나갔다.
그녀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흘러나온다.
그 목소리에는 놀람과 쾌감이 뒤섞여 있었다.
익숙지 않았을 뿐, 안마 자체는 시원하게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흡! 찬…영! 좀 처,천천히잇!”


“신기하네. 왜 이렇게 많이 뭉친 거야?”


- 주물. 주물.


그 이유는 곧 알  있었다.
단단히 뭉친 근육이 풀리는 감각에 몸을 떨며,
안젤리의 거대한 가슴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존재감을 가진 물건을 왜 잊고 있었지?


“가슴 때문에? 음… 뭉칠 만 하겠다.  크기면.”

“…그,그냥 내가 자주…! 뭉치는 체,질이…야! 흐읍!”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가슴이 큰 건 단점이 절대 아닌데? 적어도 내게는. 그리고 너도 스스로의 가슴 크기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 않았어?”


- 휙!

“내,내,내가 언제!!  그런 적 없어!!”

나는 어깨를 주무르던 손을 떼어야 했다.
 생각 없이 뱉은 말에 안젤리가 크게 당황하며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 얼굴은 붉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자극적인 안마 때문인지 정곡을 찔려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너 맨날 크리스의 가슴 크기 보면서 이겼다는 표정 짓잖아.”


“그마안!!”

“그리고 같이 동침할 때마다, 계속 가슴 만져 달라고 어필 하…”

- 퍽.

윽.
방금 안젤리가 가진 무력의 편린을 경험했다.
명백하게 삐진 얼굴로 내게 날린 주먹.
주먹이 날라 오는 것 자체는 인지했으나, 피할 엄두도 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힘 조절도 무척 절묘해서,
그리 빠른 속도로 때렸는데도 약간 아픈 수준이다.
스스로를  강하다고 말하던 것은 허언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안젤리의 상태창은 본 적이 없네.’


보면 실례가 아닐까?
하지만 궁금증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나는 그녀 몰래 상태창을 띄웠다.

하지만 상태창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내가 무얼 했는지 안젤리에게 들킨 것 같다.

“흥! 우리가 만든 건데, 우리의 정보를 알 수 있게 해놓겠어?”

“…천사의 고리는 기능 레벨만 높으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던데.”

“앗! 그거 버그야! 확인 가능한 것처럼 보일 뿐, 확인은 못 할 걸?”


“그래?”


오랜만에 버그를 찾았다.
아공간 이후로 처음인가?


“화난 건 좀 풀렸어?”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린 것이 아무래도 화가 아직  풀렸나 보다.

“미안해. 난 정말 너의 가슴이 좋아서 그랬지.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귀엽고.”


“…윽…”

“솔직히 말했는데도 화가 안 풀렸다니… 으음… 어떻게 해야 용서를 받으려나?”


“…”

톡톡.

안젤리가 나를 살짝 흘겨보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볼을 두들겼다.
…무엇을 원하는지 뻔하게 보인다.
그렇기에 사랑스러웠다.

- 포옥.

“…”


안젤리를 부드럽게 당겨 내 품에 끌어안았다.
그녀는 못 이기는 척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
품에서 느껴지는 싱그러운 향을 음미하며 안젤리의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내 입술보다 부드러울 것이 분명한 볼.
처음엔 가볍게 짓누르듯이 맞닿았고,
곧 ‘쪽!’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음… 한 번 하니까 더 하고 싶네. 계속해도 괜찮지?”


“…괘,괜찮아.”

안젤리는 화난 척을 하기 위해 무심한  대답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나는 웃음이 터지지 않게 조심하며 그녀의 뺨에 다시 한번 입맞춤을 했다.
가볍지만 무겁게.
애정이 잔뜩 느껴지도록.


- 쪽. 쪽.


두 번.  번. 네 번…
둘밖에 없는 거실, 말소리는 하나 들리지 않고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안젤리의 볼이 푸들거리며 떨린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막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피로를 풀어주는 방법은 따로 있었네.’


아무래도 안마를 받는 것보다는  뺨 키스가 훨씬 기분 좋나 보다.
애초에 키스를 해줄  그랬나?


키스는 볼에서 그치지 않았다.
귀엽게 언덕을 이룬 광대.
유독 입을 오래 맞추고 싶게 생긴 이마.
높게 솟았지만, 입술의 감촉으로 느껴보면 말랑말랑한 콧등.
아름다운 파란색의 동공을 숨긴 눈꺼풀.
마지막으로 치솟는 입꼬리를 억누르기 위해 힘이 꽉 들어간 입술까지.


온 얼굴에 내 소유라는 마킹을 하듯이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 입을 맞췄다.
종착지인 입술은 특별하니 여러 번.
무거운 키스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볍게, 키싱구라미(Kissing gourami)가 된 것처럼 계속 키스했다.

쪽. 쪽. 쪽…


“푸흐흐!”

다른 곳은 한두 번으로 끝났으나 입술에만 열 번을 넘긴 입맞춤.
그 노골적인 편식에, 안젤리는 결국 터지는 웃음을 막지 못했다.
한 번 웃음이 크게 터지자 싱글벙글거리는 표정이 살아난다.
일로 인한 피로 따위는 벌써 잊어버린 얼굴이다.


업무에 지친 아내의 스트레스를 스킨십으로 풀어 준다니…
…이래서야 기둥서방 같은 거 아닌가?

“화는 풀렸어?”

“킥킥. 방금 걸로 어떻게 안 풀릴 수가 있을까? 그게 더 어렵겠다!”

- 꼬옥.


안젤리가 나를 사랑스럽다는 듯 꽉 껴안았다.
가슴에 고양이처럼 얼굴을 비비는 것이, 방금 서비스에 대한 만족감이 하늘을 찌르나 보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이.

“그러고 보면 오늘 둘밖에 없네.”

“…그,그러네?”

나는 거기까지만 말을 하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목적지는 나의 방이다.
안젤리는 품에 끌어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못이기는 척 손길에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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