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설들로 들어갈 수 있다 (1화) (182) (182/310)



〈 182화 〉지구

노‍벨‍피‎‎아‎‎ ‎‎소‎‎설‎‎ ‎‎‎‎무료‎‎‎‎ 다운‎‎로‎‎드
h‎‎‍tt‍p‎‎s‍‎‎:‍//‍t.‍‎‎m‎‎e‎‎/‎‎Nov‍‍e‍lP‎‎‍i‍‍aS‎‎hare

- …띠,링!

‘뭐야? 왜 이렇게 시스템 창이 버벅대?’


시스템 창이 살짝 흔들리며 올라온다.
마치 구닥다리 컴퓨터에 돌린 최신 프로그램처럼.
많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좀 지나니 올라오긴 했다.

‘…역시 안되나.’

아무튼 내가 천사의 고리라고 부르는 이 아이템의 정보는 확인할 수 없었다.
상세 정보를 쓴다고 한들 티끌의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같지 않다.

그리고 틈 사이에 삐져나온 칼날 역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조금의 정보라도 얻고 싶었던 나로서는 좀 아쉬웠다.

- 콰득…!!


“잠깐, 지금 뭐 하세요?!”


공간에 구멍을 낸 칼날이 아래로 그어졌다.
그와 동시에 작은 틈이었던 구멍이 넓어지며 하나의 선이 되었다.

- 대화는 서로 얼굴을 보며 해야지. 그게 예의야.

“용사 박시우! 어차피 당신의 능력으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뭐야. 그래서 존재를 드러낸 거야? 틈을 더 벌리지 말라고?


“알면 당장 그만두세요!”

- 이 정도 구멍은 내가 수복을 막지만 않으면 금방 재생돼.

“이러면 문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에 멈춰요. 경고입니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용사는 틈을 벌리는 것을 늦추지 않았다.
아기 천사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왜, 내가 너한테 찝쩍댈까 봐? 걱정 마. 난 나보다 늙은이한텐 흥미 없어.

“핑계 대지 마세요! 그냥  주변에 박찬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잖아!”


- 콰작!


“오. 들켰네.”


결국 틈이 벌어지며 그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고집과 산만함이 새겨진 얼굴.
마치 살아오며 패배라곤 한 번도 겪지 않은,
그렇기에 좌절이란 남의 일이라 여기는 오만함이 담긴 표정.

그야말로 시건방졌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위압감이 도저히 쉽게 보지 못하게 했지만.

전체적으로 잘생겼다.
그 못생긴 박찬영의 아버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러고 보면 지구에서도 사업을 성공시킬 정도로 능력이 있었다 했지…?
사실 박찬영의 유전자 자체는 좋은 것이 아니었을까?
당연히 성품은 논외로 쳐야 하겠지만.

“…”

용사의 눈이 사방을 흩는다.
나를 찾기 위해서.
하지만 그는 나를 찾지 못했다.
천사의 고리는 제 역할을 해내었다.

“…이야? 그립네.  거실, 내 집이잖아?”


“이제는 아니죠.”

용사의 얼굴을 봤다.
그러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뭘까?
당연히 용사의 상태창을 살피는 것이다.
놈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야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 …


하지만 상태창을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자꾸 버벅거리는 것이, 올라오는 것에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어째선지 아까부터 상태창이 조금 이상하다.
용사가 무언가를  것 같지는 않았다.
암암리 수를 썼다기엔 그의 표정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고,
애초에 놈은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모른다.

아니…
놈은 내가 상태창을 받은 것도 모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용사의 정보를 들을 수 없듯,
남들도 내 정보를 얻을 수 없을 테니까.

상태창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까도 좀 기다렸더니 정상적으로 나왔기에.

“현재 집 주인은? 그러니까, 나의 재능을 물려받은 육체를 가지게 된 그 아이.”


“외출 중입니다.”

“…젠장. 그건 아쉽네. 근데 네 고리는…”

“제발 잡담은 그만하고 본론으로 가시죠. 차원에 이런 심한 손상을  것, 실시간으로 녹화 중이니 그리 아시고요.”


“…”

“안 그래도 천사장 님들이 당신의 입지를 줄일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오히려 잘됐어요. 이 정도면 좋은 구실이죠.”

칼날 같은 안젤리의 말에 용사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이 일은 그에게도 부담이 되는 억지였나보다.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가 받는 패널티는 커지리라.

“쯧. 좋아. 빠르게 본론으로 가자고.”

“왜 저를 불렀죠?”

“네가 한가지 오해를 하는  같아서.”


“오해?”


“너는 박찬영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귀환을 막고 있지? 그게 오해란 거야. 내 목표는 박찬영이 아니거든.”


“찬영이… 목표가 아니다?”

“내 진짜 아들. 그러니까 지금 이름이… 백하민이라 했나? 원하는 건 나의 자식이다. 박찬영과 이야기 하는 건 그냥 덤이고.”


목표는 내가 아니라고?
당연하지만, 신뢰할 수 없다.
‘덤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진실이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말로만 그리했다가, 날 죽이려 들면 어쩌려고?

- 띠링!


그때.
지금까지 버벅거리던 시스템 창이 드디어  눈앞에 나왔다.
용사의 상태창이었다.

=
[이름] 박시우
[직업] 용사
[힘] 99 [민첩] 101
[체력] 89  [지능] 61
[기교] 95 [매력] 81
[마나] 1,127 [?] ?

[특성] 『유아독존』 『영웅호색』 『가장 빛나는+』 『불패』
=


=
『유아독존』
곁에 서는 동료를 만들지 않습니다.
조언을 잘 듣지 않습니다.

혼자서 싸울 때 - 모든 스텟 10% 증가
누군가와 함께 싸울 때 - 모든 스텟 25% 감소
=

=
『영웅호색』
영웅은 색을 밝히는 버릇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좀 심합니다.
인류종은 물론 수인, 인외, 몬스터, 심지어 남성에게까지 손을 대니까요.
무엇이든 정도가 심하면 좋지 않은 법입니다.

정력 재생 (中)
모든 상황에서 집중력이 감소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맵니다.
=


=
『가장 빛나는+』
하나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지녔습니다.
‘구원자의 운명’으로 인해 특성이 강화되었습니다.

훈련  기본 스텟 숙련도 상승 + 300%
훈련  스킬 숙련도 상승 + 300%
=

=
『불패』

패배하지 않습니다.
=

‘뭐 이런 개사기… …『불패』는 또 뭐야?…’


그야말로 충격의 연속이다.
100에 달하는 기본 스텟들과, 네자릿수에 달하는 마나는 내 시선을 오래 끌지 못했다.
특성이 말도 안  정도로 사기적인 성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성장에 보너스 300%…
범인보다 4배 빠르게 성장한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현실감각이 없어져 헛웃음만 나오는데, 마지막 특성은 더하다.


패배하지 않는다니?
설마 말 그대로의 의미라고?

‘그럴 리가. 말도  되지.’

신이 덤벼와도 이기게 해주는 특성.
그런 게 존재할 리가 없다.
그럼 저 특성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다.


내가 아직 모를 뿐이지,
저런 특성을 뚫을 방법은 있다.
어처구니없는 특성에 전의가 꺾일 법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 찾아봐야겠네.’

용사의 말대로 지금 당장은 적대하지 않더라도, 이후 적대하게  확률이 높다.
안젤리와도 사이가 안 좋아 보이고,
솔직히 나도 놈의 언행이 마음에 안 든다.


나는 피해자다.
용사가 싸질러 놓고  똥에 무고하게 당한.
하지만 놈의 얼굴을 보면 미안해하는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과연 내가 저런 놈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절대 못 한다.


“…그러니 내가 짜증 나는 건 하나야. 내 아들이란 새끼가, 심지어 소원권까지 받았는데, 그런 머저리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


“지금 천계에 내 아들놈이 어떤 식으로 불리는지는 네가 더 잘 알겠지. 내 얼굴에 얼마나 먹칠을… 후…”

아기 천사의 표정이 살짝 어색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면 나와 백하민은 천계에 아주 유명인사라고 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새끼가 좋은 별명으로 불릴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요. 직접 아들을 교육하겠다고요? 여태 방치하다?”

“놈도 성인이니 알아서 잘해낼 줄 알았지. 적어도 내 피를 받은 놈이니. 하지만 결과는 어땠지?”

“저희 잘못은 아니지요.”

“알아. 아무튼 녀석에게 준 기회는 끝이야. 나는 지구에 남은  명의 아들에게 많은 편의를 봐주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

소원권에 더불어서 나의 복수까지 막아 달라는 요청.
그 어떤 부모도 해주지 못할 대단한 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놈의 병신 짓은 막지 못했다.
이건 용사 박시우의 노력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백하민이 과도하게 머저리였다는 것이 맞겠지.

“이쪽 차원에 있는 나의 다른 자식들은 전부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오직 그놈만, 눈에 거슬려.”

“다시 말하지만, 저희 잘못은 아닙니다.”


“적어도 추태는 부리지 못하게 막았어야지. 그게 약속이잖아?”

“틀렸어요. 정확히는 ‘박찬영’이 ‘백하민’의 인생에 복수를 목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금지입니다.”


“…맞네. 후… 젠장, 내 자식이 그리 저능아일  예상 했겠냐…”

용사는 짜증을 내며 머리를 긁적였다.
일이 꼬인 것에 대한 두통이 덮쳤나 보다.

“박찬영과의 접촉은 포기하세요. 이야기는 거기서부터입니다.”


“…”


“왜 대답이 없으시죠? 설마 그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아니시죠?”

“…아직 보류야. 자세한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 봐야 판단할  있겠어.”

안젤리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무래도 제대로 화가 난 것 같다.

“역시 거절하는군요. 모르겠나요? 그는 피해자입니다. 당신이 그러고도 용사야?”

“나도 아는데, 감정이란  그렇지 않다고. 어? 내 혈육이야! 혈육! 그것도 첫 번째 자식! 한심한 놈이지만, 혼을 내도 아비인 내가 내야 해.”

“모순덩어리. 본인이 방관을 선택해 놓고, 그 책임을 다른 이에게 찾다니?”

“후… 그걸 아니까 박찬영 그 아이와 이야기만 하자는 거지. 내가 설마 걔를 죽이겠어?”

“난 당신을 못 믿어요.”

안젤리가 단언하듯 말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저 얼굴을 봐라.
아무리 생각해도 용사는 나를 적대할 확률이 높다.


“원칙적으로는  차원 이동시켜주는 것이 맞잖아!”

“…당신이 가진 힘이면 인간 박찬영을 죽이는  쉽습니다. 그리고 처벌은 고작해야 당신의 천계 영향도가 초기화되는 정도겠죠.”

“허어?! 장난해? 어떤 개지랄을 떨며 쌓은 인과인데, 그걸 초기화하는 게 고작? 고자악?”


“무고한 사람을 죽인 처벌치고는 너무나 값싸죠.”

“그러니까 안 죽여! 안 죽인다고! 내가 왜 죽여! 내 아들뻘인 아이를!”

“하려면 하실 수 있잖습니까. 당신에겐 그럴 의향도 있고요. 용사 박시우. 인과를 모두 잃더라도, 시간을 들여 다시 쌓으면 된다는 계산이 머리 한켠에 없었나요? 진심으로?”

“…그…”

“수틀리면 죽이고 그냥 처벌을 받고 말 생각인 거, 제가 진심으로 모를 줄 알았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아.”

“그럼 팔을 자르면 적당한 처벌인가요? 다리는? 아주 자비롭기 그지없네요. 참 용사답죠?”

천사는 화나면 꽤 무섭구나…
하지만 화낼만한 상황이니 충분히 이해한다.
용사는 모르겠지만, 나는 안젤리의 연인이다.
누군가 연인의 안전을 위협한다니?
나같아도 발작한다.
그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후… 이야기가 길어질  같네. 내가 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야. 너도 합의점을 찾을 생각은 있지? 더 자세한 이야긴 천계에서 하자고. 계속 이러고 대화하긴 부담이라.”


“좋습니다. 우선 차원을 닫으…”

“잠깐. 그 전에.”

까닥까닥.


용사가 칼을 쥐지 않은 빈손을 까닥거렸다.
마치 무언가를 마시는 듯한 모양새다.
안젤리는 용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달았다.

“…차까지 달라고 하고, 제정신인가요? 그리 여유로워요?”


“최근, 긴 대화 같은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 손에  잡히더라. 몸에 익은 수련 빼고는 싫증이 잘나. 천계에는 구름 나무 차가 있지? 그거 마시면 집중력 올라가잖아. 한 잔만 주면  돼?”

그러고 보면 『영웅호색』의 패널티가 집중력 저하였던가?
어쩐지 아까부터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더라.
 집중력 부족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싫습니다. 설마 방금 그걸 부탁이라고…”


- 스윽.

나는 요구를 거부하던 안젤리를 제지했다.
말을 해도 인식 저해가 풀리지 않으려나?
안젤리의 경우는 말은 물론 행동까지도 숨겨지긴 했다.
하지만 내게도 그리 적용될지는 모른다.


- 힐끔.


입을 여는 척을 해봐도 아기천사나 안젤리가 말리려는 몸짓은 하지 않았다.
그에 안심하고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용사에게 차를 내줘. 여기 지구에서.”


“…?”

“생각이 있어서 그래.”

…끄덕.

안젤리가 살짝 의문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결국 내 의견대로 해주었다.

“…좋아요. 딱, 한 잔. 드리죠.”

“고마워. 그럼 난 천계로 향하는 마력 통신로를 열러 가볼…”

“…예의 없긴. 제가 당신의 하인인가요? 가만 기다리고 있어요. 가지고 올 테니까.”

“아, 그러지. 큼…”

- 터벅. 터벅.

나와 안젤리는 부엌으로 향했다.


용사에게 차를 주려고 하는 이유?
하루라도 놈과 나 사이에 벌어져 있는 무력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그 방법을 찾다가…
…하나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안젤리. 이 천사의 고리… 내 감이 맞는다면, 단순히 인식을 저해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존재를 감추는 거지?”

“…”

“대답… 아! 너는 지금 용사에게 인식 당해서 모습이 보이고 있구나. 맞았다면 오른손 검지를 까닥여줘.”


- …까닥.


안젤리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역시 그런가.
당연하지만 이 천사의 고리는 잠깐동안 내 소유가 되며 상점창에 등록되었다.
등록 자체는 되었지만…
‘구매’ 버튼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마치 시스템으론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처럼.


세계관 귀속 물건이라 등록이 아예 안되는 것과는 달랐다.
어찌 되었든 등록 자체는 되었으니까.

‘그리고 상점창도 올라올 때 엄청 버벅댔어. 이렇게 여러 번 시스템창이 이상해진 것 역시 우연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혹시 이 천사의 고리, 시스템창도 속일 수 있어?”

“…?”


“하긴, 시도해 본적이 없으니 모르려나.”

하지만 될  같다.
내 감이 강렬하게 말해주었다.
게다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하사하는 시스템 창.
신의 사자가 직접 사용하는 천사의 고리.
어느 쪽의 권한이 높을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예상되었다.
상점창에 천사의 고리에 대한 부분이 버그가 터진 이유가 이것이겠지.

여태 시스템 창이 버벅댄 이유도 밝혀졌다.
천사의 고리가 시스템 창의 인식을 방해했기 때문이리라.


절반쯤 고장이 나버린 시스템.
그렇기에 이건 커다란 기회다.


‘어쩌면…’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그냥 잃어버리더라도 큰 상관 없으나,
지금 쓸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유용하게 쓸만한 아이템.


- 스윽.


망설임을 버리고 아공간을 발동시켰다.
내 손에 자연스럽게 무언가가 잡힌다.
원래라면 시스템이 간섭해 카르마로 바꾸며 사라져야 할 이 ‘세계관 귀속 아이템’은…


‘역시! 천사의 고리는 시스템의 인식에서 아이템의 존재도 숨겨줄 수 있었어!’


사라지지 않은 채  손에 남아 있었다.

나보다 한참 앞에서 걸어가는 자를 빠르게 따라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번째로 내 쪽을 향해 끌어 내리는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멈추어 서게 만드는 것이다.


“…불로의 비약. 도박은 성공했네.”


그리고 내게는 멈추어 서게 할 방법이 있다.
하얀 고래의 발자취 세계에서 얻게 된 히든 피스가.

- 힐끔. 힐끔.


“걱정 안 해도 알고 있어. 용사의 스킬 중에는 ‘극독 면역’이 있다는 것을.”

 손에 들린 병을  안젤리가 걱정에 찬 얼굴을 했다.
안젤리는  액체가 독인 줄 알았나보다.


안젤리와 용사가 기나긴 대화를 하는 중.
나는 용사가 가진 수많은 스킬을 전부 외웠다.
그중에는 ‘낙인의 시선’도 있었고, ‘극독 면역’도 존재했다.

그러나 물건의 상태를 감정하는 스킬은 없다.
놈은 차에 이 액체를 타더라도 마시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한다.


극독 면역?
내 추측인데, 상관없을  같다.
‘불로의 비약’은 절대 독이 아니니까.
이놈은 이름에 붙어있듯이 비약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극독 면역에 그 효능이 무효화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신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겉으로 봐서는 무색무취의, 물과 다를 바 없는 액체인데…

‘미각. ‘맛’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모르니까. 혹시 특이한 맛이 나서 용사가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꽤 소란이 일어나리라.
하지만 어차피 놈은 나를 발견할 수 없다.
게다가 자신이 뭘 마셨는지도 바로 눈치채기 힘들 것이다.
이 비약은 시스템이 극찬한 천재가 만든 거거든.

- …쪼륵.

나는 망설임 없이 안젤리가 탄 구름나무차에 ‘불로의 비약’을 넣었다.


이미 영생을 거머쥔 용사에겐…
이 비약은 패널티 밖에 존재하지 않는 끔찍한 물건이겠지.


“됐어. 이걸 가져다주면 돼.”

“…”

- 까닥.

안젤리는 오른손 검지를 까닥거렸다.
알겠다는 뜻이다.

어쩌면 안젤리를 공범으로 만든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이 액체가 뭔지도 모르지 않는가?
만일 누군가 경위를 알게 된들, 그녀에게 죄를 추궁하기도 힘들 것이다.
 비약은 보기엔 평범한 물이었으니.


터벅터벅.


“여기요. 빨리 마시고 차원이나 좀 닫죠.”

“찻잔은?”

“…가지시던지.”

용사가 찻잔을 받아든다.
불로의 비약이 섞인 차는 차원을 넘어 용사의 손으로 넘어갔다.

- 꿀꺽!!

“꺼억… 어후. 이제야 좀 머리가 맑아지는  같네.”

뜨거운 차를 한번에 입에 털어 넣은 용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몸을 긴장시켰지만, 이상함을 감지한 낌세는 없었다.
다행히 비약은 무색·무취에 이어 맛조차 존재하지 않았나 보다.

나는 아까 열어 둔 놈의 상태창을 다시 봤고…


=
.
.
.
[특성] 『유아독존』 『영웅호색』 『가장 빛나는+』 『불패』



* 특이사항
현재 ‘불로의 비약’을 마셔 모든 상태가 고정되었습니다!
더이상 스킬과 마나를 획득할  없습니다.
스킬의 성장이 영구적으로 멈춥니다.
스텟의 성장이 영구적으로 멈춥니다.
육체의 성장  노화가 영구적으로 멈춥니다.
생식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됩니다.
수면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됩니다.
=


비약의 효과.
아니, 패널티가 제대로 작동한 것을 확인했다.


“자. 나머진 마법으로 이야기하자고. 그, 내 아들놈과 박찬영의 처우에 대해서.”

“다시 말하지만, 저는 굽히지 않을 겁니다.”


“…차원 닫을게.”

 방을 덮었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벌려진 차원이 순식간에 복구된 것이다.

안젤리는 아기천사로부터 천사의 고리를 넘겨받았다.


“그럼 다녀올게. 걱정 하지 마. 그가 절대 찬영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거니까.”

“용사의 인식은 완전히 풀린 거야?”


“응. 한번 풀리면 다시 인식해야 해. 그런데… 아까 그 액체는 뭐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들보다 4배 더 빠르게 강해지는  너무 배 아파서.”


“응?…”

“별거 아니야.”


결국 진실은 안젤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달려가는 누군가를 추월하기는 쉽지 않지만…
멈춰 있는 목표지점을 넘어서는 건 해볼 만한 일이다.
그 목표가 아무리 높다고 한들.
 

0